◈ 289화. 거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1)
클라우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울프는 모험가들의 세계에서 떠돌던 소문을 떠올렸다. 이곳, 현실에 나타났던 마왕성 악마들이 울부짖던 단어가 바로 ‘클라우디’였으니까.
이 세계가 의문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인터뷰니, 스마트폰이니, 인터넷이니.
자신들도 모험가들이 떠들어대는 것들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데.
모험가들이 아르카나 대륙의 존재.
악마가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관해 무엇을 알겠는가?
-“들어본 적 있어, 부단장?”
하지만 문제는 그림자 용병단.
자신들조차 클라우디에 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흔한 악마 몇몇이 아니다.
무려 수만의 마왕군이 내뱉던 단어다.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단어를 그림자 용병단조차 알지 못한다?
‘이상하다 생각하기는 했어.’
클라우디.
그에 관해 일부러 숨기고.
부정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칠죄종 질투.
거악이 총대장님과 마주하고는 입을 연다.
그러곤 분명하게 말한다.
“네 녀석은……. 클라우디로구나.”
불현듯 스쳐 가는 가능성.
“……!”
울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생각하며 호열을 바라봤다.
분명 부정하시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호열이 내뱉은 건 긍정과 다를 것 없는 대답.
“정말이지…….”
울프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알아, 단장?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어.’
키치.
그녀에게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해도 듣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 어떤 이유도 단장직을 내팽개치고 자취를 감춘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젠장.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맞아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림자 용병단에 맡겨졌던 거악의 의뢰.
그 의뢰가 성공했다는 사실.
깨닫고 난 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고는 자취를 감춘 키치. 그리고 클라우디라 불린 총대장님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응시하는 거악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 같아도 도망쳤을 거야, 단장.”
거악의 의뢰.
그것이 클라우디.
총대장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뢰였다고.
울프는 떨궈진 고개를 애써 치켜들었다.
‘……총대장님께선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거지?’
의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않아도 됐다.
“내뱉었다면 그에 관한 책임을 져라.”
스스스─
호열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기운.
그건 흔한 마력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검고 어두운, 적합한 마력.
“후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져 온다.
총대장님의 감정이 전해져 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덕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내가 알아차린 걸 모르실 리가 없겠지.’
무엇보다 총대장님께서는 당사자셨으니까.
울프는 문득,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놀란 눈치였다.
“그럼 총대장님이 악크샨 관련자라는 건가?”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보다 저 마법은 뭐야, 노친네.”
“……흑마법.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흑마법이네.”
“흑마법?”
꼭 클라우디가 아니더라도.
전장에 놀랄만한 요소는 넘쳐났으니까.
울프는 쓰게 웃었다.
‘이런 게 단장의 무게였나, 키치.’
위치에 따라 보이는 시야가 다르다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울프는 다시금 호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짊어진 무게만큼이나 드높은 위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야.
그리고.
‘어째서 다시금 저희에게 자비를……?’
그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그릇까지.
그러나 울프의 탄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윽고 칠죄종 질투가 광소를 터트렸으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
감히 내뱉었으니까.
“결국, 네놈도 가여운 인간에 불과했구나.”
*
거악.
자신들에 비하면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영겁을 사는 자신들에 비하면 그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며.
그런 짧은 삶조차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니.
“칭찬해 주마.”
그에 비하면 악크샨.
악마 사냥꾼들은 양호했다.
저들은 무의미한 원죄를 쫓지 않았으니까.
콰드드득─
변해가는 질투의 외형.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의해 박살이 났던 육체가 마치 번데기를 벗어내듯 떨어져 나간다. 그 속에서 새로운 육체가 새싹처럼 돋아났다.
“그리고.”
그러한 질투의 시선이 옮겨간다.
악마 사냥꾼들에게서 호열에게로.
나부끼는 은빛의 머리카락.
“진정으로 감탄했다, 클라우디.”
비아냥이 아니었다.
질투는 이 순간 더없이 진심이었다.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추악하기 그지없는 아르카나 대륙, 그리고 인간들을 굽어살필 수 있다니. 진심으로 존경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나 여신 따위보다 그대가 낫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를 순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클라우디의 최후는 어떠했는가? 그토록 애정했던 아르카나 대륙이! 하찮기 그지없는 인간들이! 결국엔 위대한 그대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질투는 호열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는 들을만한 모양이구나.
허나, 언제까지 꼿꼿할 수 있을까?
클라우디가의 잔혹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질투는 생각했다.
‘진정으로 존중한다.’
그렇기에 친히 계략까지 세우지 않았느냐.
악크샨.
그리고 클라우디.
하나만으로도 까다로웠거늘.
녀석은 두 가지 배경을 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악크샨과 클라우디.
그 배경은 모두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다.
‘너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질투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클라우디 가문과 악크샨.
두 세력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미천한 인간에게 손을 뻗쳤던 자신들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인간 따위와 손을 잡는 굴욕을 감내했으니까.
그러한 굴욕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었으니까.
진심을 다해 동정할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을 알게 된 지금.”
자신을 초월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더 이상 네게서 질투를 느낄 수 없구나.”
탈피.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
한계를 초월했다는 말이 이보다 적합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질투.
자신의 원죄를 넘어서서.
이토록 찬란한 날개를 펼치지 않았는가.
활짝!
앙상한 박쥐의 날개가 아니다.
검고 풍성한 깃털로 이뤄진 날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 절망을 불러일으킬 모습이었다.
“?”
그런데 의아한 일이었다.
어째서인가, 가엾은 클라우디의 생존자에게선.
일말의 동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네 일족의 비명이 아직도 내 귀에 선하구나.”
그 가문을 모독해도.
“악크샨의 최후는 더없이 보잘것없었지.”
악크샨을 모욕해도.
올곧은 자세는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을 관조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
.
.
……저게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악크샨이 통수를 맞은 건 잘 알지.’
악마들의 농간 덕분에 악크샨은 성전을 앞두고 고립.
구체적인 사연까진 알 수 없다만.
그대로 흔적도 없이 절멸해 버렸으니까.
그런데.
‘클라우디 가문도 대륙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클라우디 가문의 설정.
그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실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야 나는 이제야 클라우디 저택의 잔해를 발견하고.
복구에 돌입한 참이었으니까.
비유하자면 이제야 첫걸음을 떼었다는 거다.
그러나 짐작할 순 있다.
‘유낙서스.’
유낙서스를 비롯한 드래곤들도 클라우디에게 진 빚을 갚지 못했다고, 나를 따르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클라우디 가문의 설정이 내가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부풀어 있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악마.
“무엇이 그리도 즐겁나.”
나, 이호열은 착각하지 않는다.
클라우디가의 잔혹사?
그래, 그조차도 그 시절의 내가 적어넣었을 설정 일부에 불과할 테니까. 클라우디 가문을 인정하고, 책임진다고 해서 그 흑역사에 파묻히겠다는 뜻은 아니다.
누누이 말해왔잖아?
이제 와서 다시 중2병이 도지기에는.
나는 나이를 먹어도 많이.
사회의 물을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다고.
흑역사는 몰입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거라고.
그렇다.
결국, 나만 확실하게 하면 된다.
아무리 구구절절하게 클라우디 가문의 잔혹사를 언급한다고 한들. 그게 악마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라면 그랑펠의 태도는 한결같을 테니까.
나는 질투에게 말을 이었다.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거늘.”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과거라면.
동시에 써먹어야 하는 법이지.
이 순간, 일대를 뒤덮은 건 질투가 발현한 히든피스가 아니다.
적합한 마력.
네가 말한 대로 잔혹사라 불려 마땅한 클라우디의 과거에서 끌어낸 적합한 마력이다. 그러한 적합한 마력으로 발현한 흑마법 『흑관』은 오감을 빼앗는 걸 넘어 지배하기 충분하다.
“허상뿐인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다.
나의 시선에서 녀석은 달라진 게 없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적중.
질투는 육체가 망가진 상태로 힘겹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덜덜덜─
거악이라도 극복할 수 없는 [천적관계] 앞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것일까. 오만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잘도 지껄이고 있었다.
“대륙의 모두가 너를 등져버린 것이다.”
그래, 뭐.
클라우디 가문 잔혹사에 악크샨의 최후까지 더하면…….
어쩌면 그 말이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지.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인간이란 족속은 바뀌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어찌 ‘진정한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냐?”
진정한 진리.
그것도 오래간만에 듣는 단어군.
원로 마법사이자 악마 숭배자였던 화룡, 카림제바.
그가 마지막에 지껄였던 단어가 바로 그거였지,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해라.”
아니, 잘못 말했네.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알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그야 악마가 내뱉는 말 따윈 하나같이 개소리잖아?
구체적인 증거를 댈 것도 없다.
지금만 해도 그랬으니까.
“진정으로 ‘모두’가 나를 저버렸다고 생각하느냐?”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질투의 목소리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그러고는 화제를 전환한다.
틀림없이 그쪽을 향할 줄 알고 있었어.
“녀석들, 그림자 용병단만 해도 그렇지 않느냐?”
내가 이래 봬도 눈치는 또 빠르거든.
눈치라도 없었으면 입을 놀리다가 황천에 가라앉을 상황이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그래서 대충 짐작했다. 키치가 말했던 거악의 의뢰라는 게.
‘클라우디의 멸문과 관련된 거라는 걸.’
그걸 노려서 말을 꺼낸 거겠지.
내가 동요하길 원하는 걸 거야.
하지만 더없는 오판이다.
“거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구나, 열등한 족속이여.”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거냐?
“악마와 달리 인간은 바뀔 수 있다.”
“……뭐라고?”
“설령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깨닫는다면 바로잡을 수 있다.”
그 산 증인이 여기 있잖냐?
삐뚤어질 뻔했던 사춘기.
흑역사를 올바르게 극복한 나, 이호열이.
물론, 나 하나의 경우를 일반화하는 건 아니다.
쌔애애액─!
이윽고, 귓가를 찌르는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소리의 정체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여명의 빛을 반사해 빛나는 아홉의 무기.
[그림자 용병단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림자 용병단장, 울프 사카린 휘하 8인의 단원]
[현재 상태 : 죽음을 각오한 투쟁]
푹!
질투의 목덜미에 석궁 볼트를 꽂아넣은 울프가 말한다.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거악, 칠죄종 질투에게 ‘치명타’가 발생합니다.]
[거악, 칠죄종 질투에게 ‘출혈’이 발생합니다.]
[거악, 칠죄종 질투에게 ‘기절’이 발생합니다.]…….
나는 질투를 향해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컥?”
“인간의 긍지를 얕보지 말라고.”
“……!!!”
[거악, 칠죄종 질투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