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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87화 (287/489)

◈ 287화. 악크샨이 굶주렸다 (2)

자, 전력을 비교해 보자.

상대는 거악, 칠죄종 질투.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흡수한 상태로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는 컨디션. 그것도 모자라 필드를 변형시켜 히든피스라는 홈그라운드를 등에 업었다.

반대편에는 내가 있다.

지휘관으로서 여명의 재킷을 걸치고 있는 나와 더불어.

지옥에서 모습을 드러내신 악크샨 선배님들이 대략 십.

거기에다가 하나둘 정신을 차려가는 그림자 용병단까지.

‘레이드치고는 단출한 구성이군.’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했던 시절.

나는 보스 레이드에 무지했다.

고작 50레벨 언저리에 불과하던 레벨도 문제였지만, 악마 사냥꾼이라는 클래스가 근본적인 원인이었지. 파티에서도 쫓겨나는데, 레이드는 개뿔.

하지만 그 시절을 경험한 플레이어들이 곁에 있지 않던가?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 슈레이그…….’

과거부터 걸출한 실력을 자랑하던 랭커들.

성전 연합군이 출범한 이후.

어깨너머로 그들의 지식을 습득했던 나였다.

때문에 지금의 칠죄종 질투 레이드가 얼마나 급조스럽고.

빈약한지 잘 알고 있다.

‘못해도 백 명은 달라붙어야 하니까.’

보스 몬스터는 차원이 다르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아니라면 머릿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스 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생명력에 있었으니까.

질투가 입을 연다.

“뒈져버린 악크샨이 어찌 부활했나 했더니…….”

거악이라 그런가, 눈치가 썩 괜찮군.

“결국, 지옥에 떨어졌던 애송이들이지 않은가?”

지옥.

악마가 떨어지는 장소.

그래, [악크샨의 유지]는 평범하게 전사한 악크샨 악마 사냥꾼을 불러낼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악마가 되어 지옥에 떨어지고만 악마 사냥꾼들을 불러내는 효과다.

‘검성, 셰그윈처럼.’

질투가 웃음을 터트렸다.

“흥미롭구나.”

아니, 그건 웃음을 넘어선 광소였다.

“원한다면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고 좋다.”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간신히 말을 잇는다.

“과거의 명성 대신 비루함만 남은 존재들이여!”

그런 평가도 이해한다.

거악이라면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테니까 말이야.

거악 입장에서 악마로 타락해 지옥에 떨어진 악마 사냥꾼?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너는 모르잖아?

이 순간, 지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 모습이 한없이 무지하기에 악마답구나.”

지옥에 떨어져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물론, 지옥을 경험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말이야.

너와 다르게 내게는 경험이 있거든.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구슬땀을 흘렸던 경험이……!

“인간의 긍지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

설령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잊지 않는 악크샨 정신.

그렇다, 육체에 각인된 노가다 정신이다.

지옥에서 육체 훈련을 반복하며 [집념]을 키워왔을 우리 악크샨 선배님들이시다. [집념]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그들과 함께 한계에 다다르는 훈련을 반복한 내가 잘 알고 있다.

[집념 : 정신력을 능력치로 환산한다. 집념이 상승할 때마다 환산되는 능력치가 추가로 상승.]

더불어.

나와 다르게 지옥에 떨어진 악마들을 영원히 사냥해 오신 선배님들이시다. 설령, 과거에는 악마로 타락해 지옥으로 떨어지셨을지언정.

스릉─

지금은 한 분, 한 분께서 초절정의 실력을 자랑하는 악마 사냥꾼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 그를 증명하듯 악크샨 선배님들께서 땅을 박차고 뛰쳐나가신다.

쌔액!

그들의 움직임에 생생한 반응이 들려온다.

“……저들은 누굽니까, 부단장?”

“저건 어디서 튀어나온 인간들이야?”

“저런 아르카나인은 본 적이 없는데……?”

울프와 알카리의 뒤를 이어 정신을 차린 그림자 용병단원들이다.

빈사에 이르렀어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운 광경이긴 하겠지.

그 수치를 가늠할 수 없는 [집념].

그런 집념이 변환된 [근력]과 [민첩].

거기에 숙련된 악마 사냥의 경험까지.

“단번에 달려들면 무언가 바뀌는 줄 아느냐?”

열 명의 악마 사냥꾼들이 한 몸처럼 질투를 압박해간다.

질투의 도발 따위에 낚여서 돌진하는 일은 없다.

악마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악마 사냥꾼이니까.

“……!”

질투의 몸뚱이가 움찔거린다.

그 자유분방하게 조작할 수 있는 육체로 호시탐탐.

낚아챌 기회만 노리고 있던 모양인데.

말했잖아?

그 양반들 보통이 아니라니까.

철컥─

푸슉─

푹─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일련의 과정.

그건 정말로 거악을 눈앞에 둔 이들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결한 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사냥. 그저 일과를 수행하듯 거악을 사냥해 가는 악크샨의 선배님들.

이젠 질문을 넘어서 탄식이 들려온다.

“……울프 부단장, 저들은 대체 누구죠?”

충격에 빠진 울프를 대신해 나는 답했다.

“악크샨.”

“……악크샨이라면?”

“설마, 악마 사냥꾼……?”

마찬가지로 비로소 알게 되었구나.

누운 채로 손과 발을 움찔거리고 있는 핸더슨과 락키드를 제외.

그림자 용병단은 내가 악크샨 관련자라는 걸 알게 된 셈이겠군.

아니, 어디 그뿐이겠냐.

‘대륙에 마안(魔眼)이 있다면.’

현실엔 카메라 렌즈가 있다.

헬리콥터 카메라가 됐든.

인공위성이 됐든.

지금이 됐든.

지금보다 약간 뒤가 됐든.

나의 모습은 얼마 가지 않아 세계로 퍼져 나가겠지.

슥─

자연스럽게 옷매무새로 향하는 시선.

인간, 이호열로서는 민망한 상황이 그지없구나.

‘……이거 전투복보다는 무대 의상에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나 마음을 굳게 다잡자, 호열아.

왜, 위기를 기회로 살린다는 말도 있잖아?

사실 이거야말로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다.

‘제대로 경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상위 마왕.

가미긴 사냥의 약빨이 슬슬 바닥나가던 참이었지.

이런 타이밍에 거악, 칠죄종 중 하나인 질투를 사냥한다면.

그랑펠 말대로…….

‘악마가 주제 파악, 쭈그리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뿐만 아니다.

이 경고는 악마만을 향한 게 아니다.

질투와 관련되어 있는 게 분명한 천하통일과 류오쥔춘.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악을 현실에 풀어놨음에도 업데이트 공지 한 줄도 띄우지 않은 레이먼 션, 그쪽에게까지.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에게도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다.

나는 귀철을 치켜들었다.

[산맥 지하 작은 챔피언의 성소]에서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천적관계]로 전투력이 향상된 지금.

그 감각을 되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력, 검강, 집념의 삼위일체.

악마를 사냥하기 위함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극히 악마 사냥꾼다운 나의 전술.

나는 입을 열었다.

“하찮은 악마여.”

이제 고작 2페이즈였나.

네게 얼마나 많은 패턴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쪽도 나름대로 파놓은 우물이, 살 구멍이 넘쳐나서 말이야.

“저장된 형태는 충분한가.”

기이, 디엔드, 흑암룡 이호열 전설까지……!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힘든.

발버둥의 증거가 잔뜩 남아돈다는 것이다.

*

“그거 확실한 정보야?”

AAU 대한민국 지부.

전달된 정보에 윤수겸은 반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딸깍딸깍─

아까부터 새로 고침을 연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르카나 공식 홈페이지는 갱신되지 않았으니까.

윤수겸의 동료가 말한다.

“그렇다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컨드 썬이, 슈레이그가, 베이커 지부장이 우리 측에게 가짜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잖아?”

런던의 기적.

그날 이후, 대한민국과 영국.

두 나라의 사이는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그 진전에 더불어 AAU 런던 지부와도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 지금의 정보는 덕분에 입수된 속보였다. 그럼에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건…….

“제로 산맥에 출현 메시지가 떴다고? 적정 레벨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데,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데? 무엇보다 그렇게 커다란 사건에 긴급 업데이트 내역이 한 줄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전례가 없던 일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빌어먹을 새끼라고 욕을 했어도……. 레이먼 션, 그 자식은 지킬 건 지켰어. 예상한 상황이라면 정기 업데이트 내역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면 긴급 업데이트 내역을 띄웠다는 거야.”

그런데.

딸깍─

출현 메시지가 떠오르고 필드가 변형되기 시작한 지금도 홈페이지는 갱신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거지? 윤수겸이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던 순간이었다.

잠자코 있던 성현준이 말했다.

“고의였다면요?”

“……고의라고?”

“레이먼 션이 일부러 내역을 띄우지 않은 거죠.”

윤수겸이 성현준을 바라봤다.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레이먼 션은 그동안 인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업데이트 내역을 제공하고, 플레이어들에게 막대한 균열 클리어 보상금을 제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성현준이 말을 이었다.

“최근의 흐름을 원하지 않는 거죠.”

“흐름이라고?”

“이호열 총책임자님이 이끈 변화가요.”

“……!!!”

이호열.

유스라 총책임자님께서.

레이먼 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라면 혹할 수밖에 없는 막대한 균열 보상금조차도.

총책임자님께는 무의미한 부귀영화에 불과하다고.

늘 말씀하셨었으니까.

그러나 대립구도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건…….

“접속기를 둘러싸고 명백한 대립이 벌어졌으니까요.”

레이먼 션이 내세운 접속기 쟁탈전.

거기에 호열이 보란 듯이 찬물을 끼얹은 순간부터였다.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쉽게 말해 기 싸움이라는 건가?”

“……박 지부장님?”

“꼰대도 아니고. 일일이 인사할 거 없어. 계속해 봐, 성현준이.”

“아, 넵.”

성현준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태를 둘러싼 세간의 반응부터.

유일하게 호열과 반대 노선에 올라탄 천하통일의 행보까지.

그러나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인류를 협박하고 있는 거군, 그 새끼는.”

레이먼 션.

녀석의 속셈은 훤히 들여다보였다.

업데이트 내역이라는 정보를 빌미로, 호열의 입지를 흔들려고 하는 거겠지. 세상이 호열에게 가지고 있는 무한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속셈이다.

‘정말로 추잡한 새끼야, 너는.’

윤수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거악, 칠죄종 질투의 등장은 일종의 선전포고겠군요.”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인류를 향한 경고.

AAU는 누구보다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레이먼 션이 업데이트 내역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진작 균열 침식으로 멸망했을지도 몰랐겠지.

그런 의미에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박민재가 빠득 이를 간다.

“개새끼가 협박을 해도…….”

악마족 몬스터.

그들에 관해서는 AAU 내부에도 확신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다.

그런 악마족 몬스터가 주적이 된 지금.

레이먼 션이 제공하는 정보의 가치는 클 수밖에 없었거늘.

“이건 추잡한 걸 넘어서 반칙이지 않냐?”

그 사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은 물론, 플레이어들까지도.

그 원인이 호열과 레이먼 션의 대립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화살이 총책임자님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빌어먹게도 가슴이 답답한 상황이었다.

거악.

틀림없이 만만치 않은 존재가 확실하다.

제로 산맥에 출현 메시지를 띄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령 총책임자님이시라고 하더라도…….’

거악을 상대로 고전하실 수밖에 없다는 뜻.

레이먼 션은 그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악마에 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고전하는 호열의 모습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호열을 향한 신뢰엔 균열이 생기고 말 테니까.

이내, 속속들이 전해지는 속보.

“거악의 위치를 포착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제로 산맥에서 거악의 위치를 특정한 AAU.

대형 모니터에 거악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게 됐다.

“……자, 잠시만요!”

악마에 관한 정보가 인류에겐 전무하다고 한들.

레이먼 션보다도 악마에 능통한 존재가 있다면.

정보의 공백은 무의미해지는 법.

술렁대는 좌중─

“저 복장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치렁치렁하고 무엇보다 저 석궁은.”

“저, 저기 저 늑대는……?!”

그렇다.

레이먼 션보다도 악마에 능통한.

본능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

“아, 악크샨 늑대잖아?!”

악마의 천적.

악크샨.

그들이 부활의 서막을 쏘아 올렸으니까.

푸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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