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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86화 (286/489)

◈ 286화. 악크샨이 굶주렸다 (1)

찬란한 걸 넘어서 눈이 부실 정도.

눈살을 찌푸려 가면서까지 재킷을 입은 게 괜한 이유가 아니다.

첫 번째 세트 효과부터 가히 사기적이었거든.

[여명을 기다리는 자 5/5]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세트 효과 : 5/5]

[1. 지휘관일 때 아군의 사기가 ‘최대치’가 됩니다.]…….

관계도와 우호도가 최대치에 다다랐을 때 ‘권한’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과 비슷하다. 사기가 최대치에 오르는 순간, 그건 기적과 비슷한 효과를 내거든.

문제는 그림자 용병단.

그들이 나를 지휘관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림자 용병단이 어떤 존재들인지는 AAU를 통해서.

그리고 빨대를 꽂…….

아니, 함께 마왕성을 공략하며 지켜봐왔거든.

‘개인의 능력은 선임들과 맞먹을 정도다.’

심지어 마왕성 공략에서 그림자 용병단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전투에 임했었다. 그 특출난 능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그림자 용병단이거늘.

게다가 AAU의 조언 아닌 조언까지.

-“단순히 기우라면 좋겠습니다만. 그림자 용병단, 그들에겐 어디까지나 흑막이라는 설정이 붙어있어서…….”

성전 연합군에 합류했다고 한들.

진정으로 나를 따르는 건가, 의문이 들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정신을 고쳐야만 했다.

‘그래야 여명 세트 효과를 받을 거 아냐!’

거악, 칠죄종 질투가 보인다.

그 외관은 여전히 살벌하다.

하긴 차원의 틈으로 손만 내밀었을 때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완전체를 보게 되니까 확실히 거악이라는 느낌이 온다. 왜, 악크샨 선배님들도 말씀하셨었잖아?

-“악크샨의 숙적은 거악이다.”

악마를 하찮게 여기기라면.

그랑펠 못지않은 악크샨이 숙적이라 인정했다는 것?

거악에겐 평범한 악마와 다른 게 있다는 거겠지.

‘물론, 그랑펠에겐 똑같은 악마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 이호열은 긍지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버틸 필요가 있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 용병단의 존재?

이토록 반가울 수도 없겠지.

그래서 입을 열었다.

정확한 사정은 나중에 듣겠다.

지금은 여명을 기다리는 자의 세트 효과를 통해서 함께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대들이 나를 따라야 한다. 그런 복잡한 속내를 그랑펠식 화법으로 전달했다는 말이다.

“내가 고용한 그림자 용병단은 하찮은 악마 하나 따위에 쓰러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으니까.”

“……!!”

울프와 알카리의 얼굴에 동요가 일어난다.

그 동공이 파르르 떨리는 게 이놈의 입방정 수위는 조절할 수 없는 게 문제구나. 그러나 원래 충격요법이 효과는 또 확실한 법이거든. 울프가 입을 연다.

“이렇게 만나 뵙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총대장님.”

이해한다.

나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들만의 방법을 찾아 나선 그림자 용병단이었으니까. 굳이 나의 호의를 거절하면서까지 움직인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말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게 천하통일과 관련이 되어있든.

거악의 의뢰와 관련이 되어있든.

지금은 팔자 좋게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다, 울프.

“그대들의 사정은 사냥이 끝난 후에 듣겠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거악이잖아.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껏 날이 선 귀철의 음성이었다.

-주인이여, 저것이 내가 베야 할 것인가?

“그렇다.”

-과연, 거대한 악이라 불릴 만하군.

전설 등급 아이템, 귀철.

그러나 거악쯤 되면 귀철도 상대를 얕잡아보지 않는다는 거겠지.

게다가 경험을 통해서.

나는 현실이 악마에게 유리한 장소인지 알고 있다.

왜, 그동안 현실에서.

사회 속에서 숨어있던 악마들의 면면을 봐라.

‘남철민, 백이설, 베이커 지부장…….’

그들에게 빙의했던 악마들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하는 걸 넘어서 뿌리고 다녔다. 임프, 서큐버스와 같은 무명의 악마들조차 활개를 치는 게 현실이거늘.

이런 현실에 거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구나. 인정하니 머릿속이 편안해졌다.”

천적인 나와 마주하더라도.

[공포]에 질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종일관 질투를 압박하던 템페스트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아우우.”

용맹함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지친 모양이구나.

충분히 그럴 만하다.

질투가 탈바꿈했다는 건.

‘다음 패턴으로 넘어갔다는 소리니까.’

그림자 용병단이 질투에게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는 알 수 없다만.

템페스트 혼자서 거악의 첫 번째 패턴을 공략해 낸 셈이었다.

아무리 그랑펠의 기준이 깐깐하다고 한들.

“훌륭했다, 템페스트.”

더없이 흡족할 정도의 활약이었단 거지.

그런데, 내 말에 멈칫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있다고 해봤자 울프와 알카리일 터.

알카리가 정중하게 물어온다.

“혹시 템페스트가 늑대의 이름이옵니까?”

……역시 그 이름이 중2스럽다고 생각한 건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왜긴 왜겠냐, 고작 템페스트에 흠칫하면…….

귀철의 또 다른 이름에는 얼마나 놀랄까. 더 나아가 그랑펠의 풀네임을 듣게 된다면…….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지, 뭐.

허나, 다행스럽게도.

“하하…….”

알카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마왕과 거악을 사냥감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는지. 그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뭐야, 이제야 안 거구나.’

내가 악마 사냥꾼이자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라는 걸.

그랑펠의 풀네임과 다르게 숨기고자 했던 건 아니다.

그걸 넘어서 정중하게 물어봤다면.

아주 그냥 자랑스럽게 답해줬을걸?

내가 바로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라고.

근데, 커뮤니티에는 떡밥이 돌아도.

나한테 진지하게 물어오는 기자도, 플레이어도 없더라고.

‘예절 교육의 힘이겠지, 뭐.’

허나, 악크샨의 얼굴마담.

플레이어들조차 매료시켰던 악크샨 늑대다.

아르카나인에다가 이런저런 의뢰를 통해 대륙의 정보에 능통한 그림자 용병단이 템페스트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근데, 말했다시피 사과할 때가 아니거든?

“나를 무시하지 마라, 악크샨 애송이.”

팟─

질투가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편다.

스오오오─

불어오는 풍압이 일대의 풍경을 또 한 번 변형시킨다.

다음 패턴으로 돌입했으니 판을 바꾼다는 거냐.

대지가 요동치며 솟구친다.

“템페스트, 쓰러진 이들을 부탁하겠다.”

“아우우!”

템페스트가 신속히 움직인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그림자 용병단원들을 수습한다.

보자, 굳이 치유 마법을 발현할 필요는 없겠군.

알카리의 포션이라면 내 꼼수 치유마법보다 효과가 좋을 거다.

게다가 최대치의 이른 사기의 효과도 슬슬 드러날 때가 됐거든.

[히든피스, ‘질투의 어귀’에 진입합니다.]

기어코 히든피스를 끄집어내셨겠다?

빙룡 프로즈낙스와 사투를 벌였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동요는 없다. 물론, 나 이호열의 심정과는 무관하게. 그랑펠은 언제나와 같은 항상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꼿꼿하게 세운 머리부터 목과 허리의 각도.

거대한 몸집의 질투를 절대 올려다보지 않겠다는 듯.

나는 그대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군.”

그러고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한계가 없는 [첫 세계수의 축복] 버프.

그것도 모자라 [천적관계]의 효과까지.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악마족의 서열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이래 봬도 지금보다 훨씬 나약하던 시절.

상위 마왕 중 하나인 가미긴을 [『기이』]로 억눌렀던 경험이 있거든.

‘물론, 기껏해야 발목 잡기에 불과했다만.’

어쨌든 무릎 하나를 꿇게 하는 데엔 성공했다는 거지.

칠죄종, 질투.

네가 가미긴보다 강한지 약한지는 모르겠다만.

“허나 그렇기에 하찮은 족속답다.”

나는 그때보다 여러 면에서 상당히 강해졌다.

고오오오─

일대에 마력을 흩뿌린다.

히든피스, [질투의 어귀].

홈그라운드에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만, 이쪽 원정팀의 사기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여명의 재킷을 걸치고 있을 때까지는 말이야.

“친히 훈육해 주마.”

그러니까 나는 뻔뻔하게도 말을 이었다.

“귀빈에게는 격식을 갖추고 고개를 숙여라.”

콰득!

마력으로 질투의 머리를 짓눌렀다.

“감히…….”

필사적으로 반항하려는 질투의 완력이 와 닿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말했다시피 [천적관계]가 발동된 지금, 절대적인 마력량에 한계 또한 사라졌으니까.

메시지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

[칠죄종, 질투에게 ‘구속’이 발생합니다.]

“흉측하고 거추장스러운 날개 또한 접어두거라.”

“……!!!”

“먼지가 날리지 않느냐.”

[칠죄종, 질투에게 ‘포박’이 발생합니다.]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애써 펴보려는 질투의 날개를 손가락 접듯 접어버린다.

그러고는 잔뜩 열이 올라서는 아득바득 이를 가는 질투에게 말한다.

“내가 격식을 지도하는 악마는 네가 처음이니.”

“……닥쳐라.”

“영광으로 여겨라.”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칠죄종, 질투가 ‘구속’에서 벗어납니다.]

[칠죄종, 질투가 ‘포박’에서 벗어납니다.]

그래, 마법도 기이도 아닌.

순수한 마력으로 오래 묶어두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이건 예절 교육에 불과했으니까.

갑자기 예절 교육이라니.

그것도 사냥감에 불과한 악마에게?

누군가는 묻겠지.

사냥감하고는 말조차도 섞지 않는 거 아니었느냐고.

정답이다.

그랑펠의 긍지는 정말로 한결같아서.

재회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 법도 한 거악이라고 해도.

말을 섞는 걸 달가워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다.

“비로소 갖췄나.”

그래.

질투, 너를 위한 예절 교육이 아니다.

나를 위한 예절 교육이지.

질투에게 강제적으로나마 예절을 주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질투, 녀석이 지금처럼.

눈치 없이 날뛰었다가는 제대로 건드릴 것 같았거든.

“악크샨과 마주할 자격을.”

우리 선배님들의 심기를……!

‘나와 달리 자비가 없거든, 그 양반들은.’

산맥에 널브러진 천하통일의 플레이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류오쥔춘과 질투 사이엔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악마와 거래했다는 건 사실상 악마 숭배자라는 의미.

‘그랑펠을 막기에도 벅찬데…….’

악크샨 선배님들이 질투도 모자라 류오쥔춘까지 사냥하려고 나선다면? 그땐 정말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질투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결국에는 내가 편해지고자 시작한 예절 교육이었다는 것.

화르륵!

──────

악크샨의 유지 : 지옥의 불에서 악크샨 악마 사냥꾼을 불러낸다.

──────

템페스트를 휘감은 지옥의 불이 고요하게 타오른다.

이윽고 눈앞이 점멸했다.

뻔한 시스템 메시지다.

[악크샨과의 관계도, 영향력이 효과에 적용됩니다.]

[악크샨 악마 사냥꾼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허나,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우리 악크샨 선배님들은 관계도나 영향력 따윈 개뿔 신경도 쓰지 않거든. 가미긴을 사냥할 때도 총출동했었는데.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악이 눈앞에 있는 지금?

말할 것도 없겠지.

저벅저벅.

불길 속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들려오는 쇠 부딪히는 소음.

철컥─!

“그렇다면 기꺼이 화답해 주겠다.”

나는 질투에게 말을 이었다.

“악크샨이 주관하는 영원한 사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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