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하찮은 것들
거악.
칠죄종.
고귀한 추악함.
자신을 일컫는 이명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흡족하게 들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태어난 순간부터 영원까지.
무언가를 갈구하며.
무언가를 ‘질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존재.
칠죄종, 질투.
그러나 근래의 아르카나 대륙에는 질투할 것이 없었다.
잘린 오른팔이 무색해질 정도로.
어렵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잡종들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구나.』
마계의 잡종들에게 짓밟힌 대륙은 고요했다.
질투는 그 정적이 마음에 들었다.
하찮은 것들 주제에 무엇이 그리도 행복했던 건지.
끊이질 않았던 인간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부숴버리고 싶었던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칭찬해주마, 잡종의 왕들이여.』
특히나 마왕.
잡종의 왕을 자칭하며 무리를 이끌어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그들마저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잔뜩 위축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질투는 절단된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악크샨. 빌어먹을 악마 사냥꾼…….』
비록 녀석에게 오른팔을 잃었지만.
이런 아르카나 대륙이라면.
굳이 평온을 쫓아 다른 세상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빌어먹을……!!”
하루아침에.
제로 산맥과 함께 모험가들의 세계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동굴에 처박혀 있으면서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냐고?
쿵쿵─
심장의 고동부터가 달라졌으니까.
대체 어떻게 생긴 세상이란 말인가?
부정적인 감정의 총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절망으로 가득한 지금의 아르카나 대륙과 비교한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카림제바.”
애송이가 괜히 이곳으로 자신을 불러들이려던 게 아니었군.
그러나 질투는 감탄하면서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 세계엔 악크샨의 생존자, 악마 사냥꾼이 살아있다는 걸.
그 사내가 자신에게 남겼던 말까지도.
-“오른팔을 잃은 악마여. 내가 그 사실을 기억했다.”
질투는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봤다.
“칫.”
활력으로 날뛰는 육체다.
상처 따윈 진작 재생되었어야 하거늘.
악마 사냥꾼에게 잘린 오른팔은 자라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상태로 녀석과 마주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난 지옥에 처박힐 것이다.’
칠죄종 탐욕과 마왕, 데카라비아처럼.
그 공포는 질투를 더욱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게 만들었다.
더욱 깊은 동굴, 보다 눈에 띄지 않는 동굴로 파고들게 했다.
그러나 질투의 은둔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로 산맥엔 플레이어들이 존재했으니까.
“추, 출현 메시지 입니다……!!”
“주군……!!”
“거악, 칠죄종 질투인가.”
죽여야겠군.
질투는 동굴에 진입한 모험가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부터 생각했다.
모험가들만큼 하찮으면서도 심기에 거슬리는 족속이 또 없다고.
쿠드득!
질투의 육체가 추악하게 일그러져 간다.
인간으로 위장했던 육체가 터져나가며 본래.
질투의 거대한 몸집으로 변해간다.
“하찮은 족속이여, 미련하게 태어난 걸 원망하거라.”
모험가.
아르카나 대륙의 인간들보다도 우둔한 존재들이었다.
부활이라는, 자신조차 가지지 못한 권능이 무색하게도.
나약하기 짝이 없던 족속들.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가.
저들끼리 모여 대륙 곳곳을 누볐던 존재들.
미치도록 신경에 거슬리던 존재들.
그렇기에 저들의 숨통을 거두겠다, 생각했다.
“……?”
허나, 질투는 그러지 않았다.
마주한 모험가에게서 질투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감상이었다.
“주군, 아무래도 자리를 피하시는 게……!!”
주군.
그리 불린 사내는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수많은 인간이 한 사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자신이 보기엔 심사가 뒤틀려야 마땅할 광경이 분명했거늘.
‘이상하구나.’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런 질투에게 사내.
류오쥔춘은 입을 열었다.
“거악이여.”
“?”
“모험가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나?”
.
.
.
질투는 거적을 걸치고 천하통일의 집결지로 향했다.
수많은 인간들이 약속된 장소에 모여있다.
질투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미련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미련하구나.”
류오쥔춘.
그를 주군으로 여기며 따르다니.
질투가 류오쥔춘에게서 평온함을 느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래, 놈은 인간이면서 악마와 다를 것 없는 악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추악함에 내가 질투를 느낄 리 없지.”
그것이 질투의 흥미를 자극했다.
“네가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럼에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절망하는 인간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류오쥔춘에겐 가치가 있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도 않으며 정보를 제공한다.
류오쥔춘.
그가 아니었다면.
악마 사냥꾼.
그 이름도.
이명도.
그가 모험가들의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지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이렇게 산맥을 활보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제공한 정보 덕분이었다.
“나의 기척을 느낄 순 없겠지.”
이 순간, 놈은 제로 산맥 동굴에 처박혀 있을 테니까.
그 틈을 노려 준비된 제물을 집어삼키는 건 쉬운 일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모험가들의 모습.
질투는 입맛을 다셨다.
“기쁘게 받아주겠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녀석의 몸을 빼앗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류오쥔춘은 여러모로 인간답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몸에 빙의해 모험가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오른팔을 감출 수 있을 테니까.
계획을 세운 질투의 앞을 플레이어들이 막아선다.
“이건 또 뭐 하는 새끼야?”
붉은 휘장.
류오쥔춘의 부하.
몇몇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분란 때문에 잔뜩 약이 오른 상태일 테니.
가엾구나.
여태까지의 모든 게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려는.
류오쥔춘의 계략인지도 모른 채.
죽어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콰득─
질투는 대답 대신 숨겨왔던 악의(惡意)를 표출했다.
갈비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
둘러싼 이들을 순식간에 으스러트려 흡수한다.
“어어어어억……?”
단말마와 함께 눈을 까뒤집는 인간들.
“!!!”
그 광경에 잔뜩 놀라서는 무기를 꺼내 드는 이들까지도.
질투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약하다. 한없이 나약해.”
천하통일에서 상위권이라 분류되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채 500레벨이 되지 않았으니까. 갓 부활한 탐욕의 레벨 600이었던 걸 고려한다면, 질투의 발언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콰득!
콰드득!
콰득!
허나 질투는 불평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을 절단한 악마 사냥꾼, 이호열.
그와 같은 세상에 떨어진 지금.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야 한다.’
자신은 빠르게 힘을 키워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모험가들의 세계.
현실은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좋다. 향신료가 재료의 부족함을 보완하는구나.”
질투가 작게나마 미소를 짓던 순간이었다.
공포로 가득해야 할 이곳에서.
어째서인가.
더없이 호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예상에 없던 상황이구만!”
“뭐 다를 거 있나? 어차피 나중엔 우리 빼고 전부 뒈질 거였는데. 저 개지랄에 얽힌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결과만 똑같으면 그만이잖아?”
“우하하! 역시 자네는 나랑 통하는 구석이 있어.”
꿀꺽.
질투는 들고 있던 인간을 마저 삼킨 채.
두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시선을 옮겨 참상을 바라봤다.
산맥 곳곳에 튀긴 살점과 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인간이라면 공포에 질려 얼어붙을 수밖에 없을 텐데.
두 사내는 지나칠 정도로 멀쩡했다.
마치 이런 참상에는 익숙하다는 것처럼.
벅벅.
거구, 락키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새롭게 전해 들은 계획은 없나?”
“핫하! 우리가 언제부터 마법에 능통했다고.”
“괜한 걸 물었구만.”
락키드, 자신과 핸더슨은 무투파였다.
마법에 관해선 문외한이라는 뜻으로 당연하게도 울프 쪽과는 의사소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울프라고 개뿔이 계획이 있으랴.
“아무리 그래도 다 뒈지면 곤란해진다는 말이지. 그 음침한 여자가 마법으로 시체들을 살려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 아닌가?”
“음침한 여자? 이자벨마를? 듣는 사람 섭하겠구만. 하하!”
“그만 쪼개고, 저 새끼부터 어떻게 해보자고.”
휙─
락키드는 토끼 가면을 벗어던지고 도끼를 치켜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족속은…….
역시 악마밖에 없겠지.
척─
락키드와 마찬가지로.
망치를 치켜든 핸더슨.
락키드가 핸더슨에게 말했다.
“거, 쫄지 않게 조심하쇼.”
“으하하. 제발 그래 봤으면 좋겠군.”
“역시 괜한 소리를 했구만.”
파팟!
그와 동시에 시작된 전투.
그 모든 상황은 나디보를 통해 그림자 용병단에게 공유되고 있었다.
알카리가 짐짓 침음을 흘렸다.
“……으음.”
그 의미를 알아차린 건 부단장, 울프뿐이었다.
“희미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류오쥔춘. 모험가들의 군주가 정말로 자신의 집단이 썩어들어가는 걸 몰랐을까, 하고는요. 이건 무지를 넘어서 오히려 부추기는 수준이었으니까요.”
“흐음…….”
“덕분에 지금은 되려 머릿속이 맑아졌습니다.”
그러나 저 괴인을 악마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의문이 해결된다.
류오쥔춘과 저 악마는 공생관계.
류오쥔춘이 자신의 부하들을 이해관계에 따라서.
악마에게 내던져 준 것으로 생각하면 말이야.
“부하들은 일종의 제물이었다는 거죠.”
울프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우리와 맞먹는 쓰레기가 또 있을 줄이야.”
알카리가 그 말을 거들었다.
“살아온 세월의 차이를 생각하면 우리보다 더한 게 아닌가 싶구만. 이 늙은이의 생각을 한참 앞서나간 악행이라.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겠구만, 모험가들의 군주를 얕잡아봤군.”
비아냥이 아닌 진심이었다.
알카리는 아르카나 대륙의 패권을 관조해왔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살아남은 군주는 성군이어서 살아남은 게 아니다. 어떤 이들에겐 폭군이라 불릴 정도로 자비가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지.
알카리가 울프에게 묻는다.
“그래서 어찌할 생각인가, 울프 단장 대행?”
그림자 용병단 전원의 시선이 울프를 향한다.
“글쎄요.”
울프는 상상했다.
단장이라면, 키치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키치라면 애초에 이런 계획 따윈 세우지도 않았겠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자신은 그녀와 다르게 나약했다.
‘단장이 지키고 싶어했던 모두를 끌어 들였으니까.’
그러나 지키고 싶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림자 용병단, 전원.
우리는 당신을 찾기 위해서 움직인 거니까.
울프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답게 반쯤 죽여놓고 생각하도록 하죠.”
.
.
.
질투는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하였다.”
머릿수가 ‘아홉’.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하나가 비었으니까.
그러나 사내의 몸뚱이를 휘감은 낙인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림자 신의 낙인』
저들은 그림자 용병단이 맞다고.
질투는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난도질 당한 육체가 움찔거리며 재생한다.
질투는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놀랍구나.”
악마인 자신에게 이토록 유리한 상황에서 인간을 상대로 이만한 피해를 입게 될 줄은 몰랐거늘. 질투는 새삼스럽게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과연, 괜히 그대들에게 의뢰를 맡긴 게 아니었지.”
“…….”
울프는 뜯겨나간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단장도 아니고…….
핸더슨과 락키드 탓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공포, 그 중요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니.’
그들이 지나치게 태연해서 착각했다.
흔한 악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젠장, 척 봐도 보통 악마가 아니다.
직접 맞부딪히며 깨닫게 된 것도 모자라서.
키치가 남겼던 말로 알 수 있었거든.
-“거악의 의뢰라는 걸 확인해 보려고.”
덕분에 녀석이 의뢰를 언급한 순간.
확신이 생겼다.
녀석이 바로 거악이다.
허나, 이어지는 말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그대들은 그 막중한 의뢰 또한 충실히 수행해 냈으니.”
옆구리가 뜯겨 나갔다.
“뭐……?”
울컥!
폐를 비롯한 장기의 손상은 극심하다.
움찔거리는 것만 해도.
숨을 들이쉬는 것만 해도 치명적인 피해.
그러나 울프는 피를 토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반드시.
물어야만 했다.
‘우리가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키치는 분명히 말했다.
거악의 의뢰.
그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아 장부에 남아있는 악성 의뢰 중 하나였다고. 거악의 의뢰가 무엇인지 확인한다면, 총대장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총대장님의 아르카나 대륙 진입에 함께했던 키치였다.
울프는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단장.’
의뢰 장부를 들출 수 있는 건.
오직 그림자 용병단의 단장뿐이다.
그녀가 의뢰의 내용도 아니고 성공 여부를 헷갈렸을 리가 없었겠지.
울프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만.’
키치는 자취를 감췄다.
총대장님께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만 남긴 채.
그 시점은 거악의 의뢰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한 뒤일 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고의 흐름.
이내, 울프가 결론에 도달했다.
‘……거악의 의뢰가 총대장님과 연관되어 있던 거야.’
이제서야 키치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하하…….”
그래서 그딴 소리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 거였구나.
“빌어먹게 꼬였네, 이거…….”
울프는 호열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떨궜다.
원망스러웠던 키치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아마도 자신이라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테지.
그러나 이것만큼은 물어야겠다.
울프가 힘겹게 질투를 향해 입을 연다.
“그 의뢰의 내용은……. 무엇이었지?”
“그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 단장이 된 지 며칠 안 됐거든.”
간만에 만난 아르카나 대륙의 인간.
대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질투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클라ㅇ…….”
귓가에 소리가 울렸다.
“……!!!”
그건 쓰러진 그림자 용병단의 신음도.
울프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울프(Wolf).
진짜 늑대의 하울링이었다.
다른 말로는.
“아우우우우우우─!!!”
산맥에 드리운 폭풍(Tempest)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