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너는 특별하지 않다 (1)
심호흡을 하듯.
마법, 검강, [집념]을 자연스럽게 다루기 위해 집중한다.
그 연습에 적절한 상대다.
‘820레벨.’
그것도 네임드 몬스터.
마냥 방심할 수만 없는 게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상대였으니까.
저런 몬스터를 상대로 연습이라니.
진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그러나 어쩌겠냐.
매일같이 한계를 자극하는 단련 퀘스트.
[집념]을 더해 휘두르는 엑스칼리버.
……가 아니라 바위에서 발현해낸 검까지.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자 나아가야 하는 길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련의 개고생들이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더불어 마탑, 수석으로 쌓은 지식도 근거라면 근거가 되겠지.
‘위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섭하거든.’
오직 마법만으로 세공된 마도구는 마탑에도 존재한다.
마법부여학에서 주로 다루는 게 그러한 마도구들이었으니까.
그런 마도구들의 성능?
‘대박은 없어도 최소치가 보장되어 있어.’
제련 과정에서 불순물이나 방해요소가 섞일 이유가 없다.
아르카나 시스템적으로 표현하자면…….
최소 [레어], 최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것.
‘마탑의 적자 담당이니까, 마법부여학파는.’
순수한 마력으로 마도구를 제련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첫 세계수의 축복]이 존재하는 이상.
마력에 관한 걱정은 덜어도 되는 내가 아니던가.
슥─
순수 마법으로 생성한 검의 위력은 귀철처럼 과하지도.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그래, 회초리로 더없이 적절하단 의미다.
[챔피언 도전자 거대쥐에게 ‘혼란’이 발생합니다.]
“바로 서라.”
“……!”
“말하지 않았느냐. 나의 가르침은 엄할 것이라고.”
“찍찍!!”
슈슉!
과연, 챔피언에게 도전했던 근성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는 것인가.
나의 차디찬 꾸중에도 곧장 정신을 차린다.
커다란 이빨을 내세워 돌격해 온다.
‘마법이든, 검술이든 간단하게 흘려낼 수 있어.’
그러나 중요한 건 물 흐르는 듯한 마법, 검강, [집념]의 운용.
[집념이 마력으로 환산됩니다.]
곧장 [집념]을 전환하여 마법을 발현한다.
발현하려는 마법은 더없이 익숙한 건축마법.
번거로운 과정 따윈 특강에선 과감히 생략이다.
쿵!
이윽고 솟아난 암벽.
탐색, 간섭 과정을 완벽하게 생략했기에 솟아나는 과정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들의 반응이 증거라고.
“허, 허공에서 벽이 생겨났다고?!”
“저게, 뭐야. 저, 저런 건 마탑에서도 못 봤는데요……?”
“또 한 걸음 진보하셨군요, 총대장님.”
그중에서도 뱀눈을 뜬 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히사기가 유달리 부담스럽구나……. 그러나 역시나 내색은 할 수 없다. 게다가 절차를 중요시하는 내가, 훈육 대상 앞에서 관심을 돌릴 수 있을쏘냐.
“훈육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하게 만들어 주겠다.”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건 나였거늘.
역시나 뻔뻔하게 내뱉는 말.
거대쥐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찍?
그러나 이내, 사방에서 솟아난 암벽이 완전히 녀석을 포위한다.
쿵쿵!!
갑작스러운 구속에 육중한 몸으로 암벽을 들이받는다.
하지만 건축마법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나, 이호열이 세운 벽이다.
“소란은 금물이거늘. 이래서야 어쩔 수 없구나.”
빠각!
설령 금이 간다고 할지라도.
스스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창시한 『반전마법』으로 되돌리면 되거든.
그러니 운명을 받아들여라.
가엾은 산맥의 작은 들짐승이여.
“이 시간부로 체벌의 강도를 올리도록 하겠다.”
마법, 검강, 집념.
훈육을 빙자한 삼위일체로 향하는 길.
그 행보에 얌전히 협조하란 말이다.
.
.
.
찍─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거대쥐들.
[레벨이 올랐습니다.]
히사기는 점멸하는 메시지를 뒤로 한 채 전황을 살폈다.
여신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건 [첫 세계수의 축복].
그 효과는 예상했던 대로 어마어마했다.
“부상자는?”
히사기의 물음에 곧장 우렁찬 대답이 돌아온다.
“전원 무사합니다!”
800레벨의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도 피해가 전무하다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전과다.
히사기가 긍지롭게 말을 이었다.
“승리의 여신께서 우리와 함께한 덕분이겠지.”
“……?”
……어느새 여신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토요모가 숨을 고르다가 흠칫했지만 찰나였다.
일단락된 전투.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호열로 옮겨 갔으니까.
‘그럼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상상 그 이상.
제로 산맥의 십만 동굴은 만만치 않았다.
던전이나 미궁을 예로 들어볼까?
보통 보스 하나에 다섯을 넘지 않는 게 네임드 몬스터의 숫자다.
‘마왕들이 특별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지.’
마왕이 부리는 네임드 몬스터.
악마 군단장의 머릿수는 평균적으로 십부터 시작하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제로 산맥에서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걸로 10마리째입니다……!!”
이제야 초입이었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성소였거늘. 입구 어귀에서 등장한 네임드 몬스터의 숫자가 벌써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히사기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전력을 헤아렸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던 건.’
말했다시피 [첫 세계수의 축복]의 효과.
거기에 상대한 거대쥐들이 일반 몬스터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패턴이 존재하기에.
요령이 생겨 능숙하게 상대할 수 있었단 소리다.
토모요가 나지막이 입을 연다.
“만약 총대장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축복이고 뭐고 우린 대응할 수 없었겠지.”
“역시 그랬겠죠?”
움직임만 봐도 확실히 다르다.
딱히 패턴이랄 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챔피언 도전자 거대쥐]들이 호열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이었지만.
호열은 단 하나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히사기는 작게 웃었다.
‘면목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피부에 와 닿는 호열의 배려.
제아무리 제로 산맥의 동굴이라고 한들.
용군주이자 흑암룡이신 총대장님에게는 시시한 사냥터에 불과할 터였다. 아니,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호열의 레벨을 생각한다면 사냥터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
‘820레벨짜리 네임드 몬스터라고 해도.’
호열의 요구 경험치를 고려하면.
설령 수천 마리를 사냥한다고 한들 미비한 수치에 불과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었거늘.
‘오직 저희를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시다니.’
여전히 한없이 깊으신 긍지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이상.
히사기에게 우두커니 멈춰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만큼 자신은 호열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한다.
또한 보답해야 한다.
히사기가 명했다.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한다.”
거대 연합 소속의 탐험가들.
그들이 클래스 전용 장비, 돋보기를 들고 동굴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전리품은 물론, 퀘스트와 연결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들이 보답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쩌면 호열은 탐험가들보다 이 동굴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게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
성소, 어딘가에 묻혔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든 호열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히사기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긍지라는 것을.
그러니까 나지막이 읊조렸다.
“부디 저희의 긍지를 거절하진 말아 주십시오, 총대장님.”
당사자가 듣는다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다짐이 아닐 수 없었다…….
*
[장미 덩굴의 성채]
[적정 레벨 : 750]
[붕괴도 : 100%]
몬스터의 수준?
레벨의 격차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레오니의 직업은 광전사, 버서커.
역경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클래스다.
──────
꺼지지 않는 투지 (Master) : 생명력이 낮아질수록 근력과 민첩, 생명력 재생이 대폭 증가합니다. 또한, 치명타를 상태이상, ‘출혈’로 변환합니다.
──────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흔히 도트 데미지라고 한다.
점처럼 지속되는 피해라는 의미.
‘출혈’은 대표적인 도트 데미지 상태이상 중 하나였다.
주륵─
전신이 피범벅이 된 레오니가 피를 뱉었다.
“칫.”
제 얼굴에 침 뱉기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버서커는 하자가 많은 클래스다. 고레벨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만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니.
‘만든 새끼 멱살부터 잡고 싶다, 진짜로.’
아르카나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에야 로그아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대격변 이후엔 인생 하직.
자칫 잘못하다간 스틱스 강을 건넌다는 뜻이지.
[상태이상, ‘출혈’이 발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혈은 엿 같지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치명타를 도트 데미지로 바꿀 수 있다면 갑작스레 전투불능에 빠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콰가가각!
레오니의 쌍검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다른 길드원들이라고 다를 건 없다.
스스로를 한계에 한계까지 몰아넣는 전투 스타일.
버서커 길드는 자신처럼 글러 먹은 이들만 받아들인 길드였으니까.
“하아─”
근데, 이젠 나도 벅차다…….
“젠자자아아앙─”
깊은 탄식이 치밀어 오른다.
강적과의 전투에 특화된 버서커라고 하더라도 최소 250레벨 이상의 격차를 만회하기는 무리다. 게다가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상식이었거늘, 버서커는 모순적이기 짝이 없다.
“진짜 존나 짜증 나네!”
육체도 정신력도 너덜너덜해져야만 제 성능을 발휘하는 클래스.
금방이라도 외줄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지금의 압박감을 견뎌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언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대 연합.
버서커의 길드원들은 레오니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매순간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레오니였다.
그 성격이 괜히 괴팍해지는 게…….
“너희 지금 내가 지랄 맞다고 생각했지?”
“……으, 으응?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치미는 지랄.”
레오니는 웃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뒤 묘하게 성격이 바뀐 이들이 있다고 했었나?
어쩌면 나도 그 각성의 영향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모른다.
전투마다 한계치에 다다르는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욕지거리라도 내뱉어야 했거든.
그러니까 이젠 한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간만에 아주 지랄 맞다고 생각했을 거야, 다들?”
그래, 그놈의 격식을 지키기 위해서.
어울리지도 않는 말조심을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아무래도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레오니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격식보단 긍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총대장님?”
몬스터와 마주한 시야가 붉게 물든다.
출혈로 흘러내린 피가 눈가에 들어간 모양이다.
미지근하고 묘하게 끈적거리는 피로 범벅이라.
이호열 총대장님.
옷매무새 하나하나에 신경 쓰시는 그쪽이 내 꼴을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몰골이겠지.
레오니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게 내가 생각한 긍지라면요?’
레오니는 잊지 않고 있었다.
거대 연합의 시작을 알리던 그날.
쏟아졌던 세간의 평가를.
-가온이랑 이나즈마가 연합??
-ㅁㅊ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ㅋㅋㅋㅋㅋ
-근데 세컨드 썬도 아니고 버서커는 뭐임?
-그러게 갑자기 급이 확 떨어지는데……?
-쟤네 얼마 전까지도 루키였자너
평가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열이 받았을 뿐.
물론, 어디 가서 기죽을 성격은 아니다.
남태민과 히사기를 쫓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그래야만…….
‘당신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거대 연합으로 활동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두 덩치를 따라가는 것도.
그쪽을 쫓아가는 것도.
격식을 챙기면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당신처럼 우아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으니까.’
나답게.
광전사답게 처절해야지만.
그 뒤꽁무니라도 쫓을 수 있다고 깨달아 버렸단 뜻이다.
“하.”
레오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놈의 긍지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이러면 전부 이해해 주셨잖아요, 안 그래요?”
툭─
그 말을 끝으로.
레오니의 손에서 검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아.
빌어먹을.
거봐, 어울리지도 않는 존댓말 하다가 힘 다 빠졌네…….
레오니가 레오니답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고오오오─
허공에 빛 무리가 떠올랐다.
또각.
익숙한 발소리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격식에 관해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레오니.”
“……?”
“허나, 넘어가겠다.”
더 이상 펄럭거리지 않는 재킷.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후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호열이 말을 잇는다.
“지금은 긍지를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
.
나는 곧장 포탈을 발현했다.
-목표 좌표는 [장미 덩굴의 성채]입니다!
동시에 세 개의 동굴을 브리핑하고 있는 분석관, 남철민이다. 그가 레오니 측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으니, 포탈을 통해 곧장 이동할 생각이었거든.
고오오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마력 소모력은 상당하다.
도착하고 나서 당분간은 검강으로 상대해야겠는데.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며 포탈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히사기가 정중하게 물어왔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말은 고마운데 말이야.
‘수지타산이 영…….’
한 명, 한 명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 한 명, 한 명을 포탈로 이동시키는 데 소모되는 마력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았거든. 그러한 뜻을 담아서 나는 나답게 답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꾸벅─
히사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나를 배웅했다. 프로스트 때부터 나한테 진 빚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그 반응이 심히 부담스럽구나, 히사기……!
‘……됐다, 설명하기도 복잡하다.’
차오르는 탄식을 꾹 삼키고.
빛 무리 속으로 나아가던 순간이었다.
암전된 시야 속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의 경험.
클래스 퀘스트를 수행하며 태초의 악을 추적한 덕분일까.
더욱더 예리해진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좌표가 뒤바뀌는 찰나.
동굴이 아닌 제로 산맥에서 느껴진 기척이라고.
……그런데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주제넘게도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구나.”
나는 몰라도.
그랑펠이 한번 마주한 악마를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었으니.
이건 선임 마법사, 뱅그릿이 폭주했던 마탑의 정기 학회날.
[차원의 틈] 균열에서 마주했던 물음표의 악마.
녀석의 기척이 분명했다.
오른팔을 내놓은 채.
차원을 찢고 도망쳤던 거대한 녀석 말이다.
그런 의미에선 시기가 적절했다.
이쪽도 비로소 만반의 준비가 가능해졌거든.
[레벨 : 700]
드디어 제대로 입어보게 되는구나.
그 이름부터 거창한.
[여명을 기다리는 자의 재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