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자비롭지 않은 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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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뭔데 우리 호열이가 또 한 건 했어?
-보름이나 가출하더니 유명인사 되셨네ㅋㅋ
-(춤추는 멍멍티콘)
-자매님들 ㅡㅡ 그 반응이 맞아???
“허.”
이예림은 헛웃음을 뱉었다.
-오른쪽 위에 떠있는 제목!!!!! 그거 보라고!!!
-오른쪽 위? 나 요새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여ㅜㅜ
-예림아 왜 큰언니한테 상처를 주고 그래
-아니 기껏해야 한두 살 차이면서 웬 엄살??
어쩔 수 없다.
드드드드.
친절하게 캡처 속 글씨를 옮겨 적는다.
-용군주, 흑암룡 이호열. 세상을 향해 울부짖다.
-저게 방송 제목이야?
-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뼉 치는 물개티콘)
-아니 언니 이게 그냥 기뻐할 거야?!!
호열이를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건.
전 세계와 우리 엄마 아빠면 충분하잖아?
왜, 몇 명은 놀려먹는 사람도 있어야 균형이 맞지.
원치 않은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타이핑한다.
-흑ㅋㅋㅋㅋ암ㅋㅋㅋㅋ룡ㅋㅋㅋㅋㅋㅋ
-용이면 되게 좋은 거 아니냐?
-그치~? 막 이름만 들어도 대단해 보여~
-하………………….
고작 한 살, 두 살.
삼십 평생 언니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거늘.
어떻게 저런 수식어를, 호칭을 멋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거야?!
-언니들 진짜 기억 안 나???
-(갸웃거리는 물개티콘)
-호열이 저거 어렸을 때 말이야
-네가 호열이 쥐 잡듯 놀려먹던 때?
-내가 언제 쥐 잡듯 놀렸다고 그래?
-예림이 지금도 그러면서 ㅎㅎ
-어쨌든 웬 옛날 얘기?
-아니 막내 저거 중학생 때 말이야
이예림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호열의 중2 시절을.
그러나 이은혜와 이지윤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호열이가 중2면…….
-나랑 언니는 고등학교 다닐 땐데?
-그러게 그땐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을 때라ㅜㅜ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이모티콘)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연년생 사 남매.
언니들은 고등학교에 적응하느라.
또 기울어져 가는 가세에 내색하지 않는 데만도 전력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호열이의 중2 시절을 지켜봤다고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진짜 내가 또 술 마시면 개다.”
잦은 음주 가무로 기억력이 퇴화한 자신밖에!
이예림은 한숨을 삼켰다.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말긴 뭘 말어 준비해야지
-……준비? 놀릴 준비?
-뭐래? 축하 파티라도 해야지
-파티? 안 그래도 엄마 보고 싶었는데ㅎㅎ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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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랑이 신났네ㅋㅋㅋㅋ 저거 나한테는 안기지도 않는데 호열이한테는 잘만 앵기더라? 이모가 벌써부터 많이 섭하다 아랑아
-에휴
“이씨 가문 화목하다. 화목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심보를 고쳐먹자.
“사실 놀려먹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
실상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포기한 것뿐이었거늘.
“지금은 내가 봐준다, 우리 막내.”
이예림은 어른스럽게 포기한 척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액정을 두들겼다.
그랬다.
이 단톡방의 참가 인원은.
막내, 호열을 포함해 총 4명이었으니까.
-들었지, 호열아? 시간 있으면 우리 얼굴 한번 보자~
*
……진짜 미친 건가?
웬수에게 걸려온 부재중 통화가 한 건밖에 되지 않아 이제야 좀 철이 들었구나, 싶었는데. 이거, 단톡방에서 정말로 어마어마한 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역시 기억하고 있었어!’
1, 2호에게 그 시절을 언급하다니.
나, 이호열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마법으로 웬수의 기억을 지워버릴까, 하고는.
하지만 그건 정말로 나의 충동적인 바람에 불과했다.
심정과는 정반대로 말이 튀어나왔으니까.
“평온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누님들.”
어이, 그랑펠.
내 얼굴로 엄마 아빠는 몰라도.
혈육들을 떠올리면서 그런 아련한 표정은 짓지 마라.
특히 3호, 저 웬수를 생각하면서는 더더더욱……!
황제한테도,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에게도 반말을 내뱉으면서 말이야. 누나들한테는 누님이라고, 꼬박꼬박 극존칭을 하는 이유가 뭔데?
“마땅히 찾아뵈어야 하거늘.”
덕분에 나는 몸에서 닭살이 가시지 않는단 말이다!
하지만 그랑펠의 격식이 언제는 나의 사정을 봐줬나 싶다.
결국, 나는 극진한 투로 답장을 전송했다.
“적어도 쉼표를 찍은 뒤에 찾아뵙겠습니다.”
긍지에 어긋나지 않게 웬수를 회피할 수 있다니.
이럴 때는 과하게 떠맡게 된 짐들이 도움되기도 하는구나…….
나는 마지막으로 사진을 보고 읊조렸다.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니 기쁘구나.”
나와 그랑펠의 뜻이 일치하는 건 하나뿐인 나의 조카 아랑이에 관한 생각밖에 없구나. 정말로 볼 때마다 쑥쑥 크는 게……. 이 삼촌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단다, 아랑아.
‘……네가 혹시라도 저 뜻을 이해할까 봐.’
손가락을 움직이자 나타나는 이전 사진.
그건 카메라로 찍은 TV 화면.
정확하게는 나를 다룬 프로그램 타이틀이었다.
[용군주, 흑암룡 이호열. 세상을 향해 울부짖다.]
보아라, 풍성한 거품을.
흑암룡이 용군주가 되어가는 과정을.
이놈의 입방정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진정으로 세상이 들었단 것인가.”
VBC 방송국이랬지?
내가 그 이름 똑똑히 기억해 두겠다……!
정말로 거창하게 확인 사살을 해준 덕분에.
그랑펠의 긍지가 도져서는, 대충대충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내 입으로 떠벌리게 되는구나.’
현 시각.
마탑의 로비.
그리고 유스라 황금 궁전 앞에는 나를 기다리는 취재진들로 인산인해였다. 원래는 성전 연합군 회의를 마치고, 곧장 제로 산맥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레벨 업.
십만 동굴 공략.
천하통일과의 조우.
일석삼조를 거머쥐기 위해선 낭비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마음 같아선 취재진이고 뭐고. 포탈을 발현해서 제로 산맥으로 워프하고 싶었건만.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겠지.”
또각─
보다시피 긍지로운 나의 발걸음은 황금 궁전 정문으로 향하고 있다.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생각 또한 정리해 보자.
그래, 호열아.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다면…….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전설, 흑암룡 이호열]을 실체화했던 나는 숙지하고 있다.
[전설]의 효과는 나의 강함에 비례하는 게 아니다. 해당 [전설]이 얼마나 널리 울려 퍼지는지. 또 어떠한 위용을 가졌는지에 따라 그 효과 발현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걸.
‘안토니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공과 사를 분리하듯.
수치심과 [전설]의 성장을 분리하여 생각해 보자.
기자들.
전 세계에 송출될 카메라 앞에서.
내가 흑암룡이라 떠벌리는 것?
진심으로 끔찍한 경험이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끔찍할수록 나의 전설은 더욱 강해진다.’
이번엔 나, 이호열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화가 아니다.
가감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심적인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지는군.
아니, 그보다는 자포자기하게 된다는 게 맞겠지.
‘그래, 어디 마음대로 지껄여 봐라. 입방정아.’
라이언 하트 기사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대장님.”
에노크가 내게 고개를 숙인다.
“말씀하시면 문을 열겠습니다.”
웅성웅성─
두꺼운 문을 뚫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전해진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였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체감이 되는군.
하지만 결심한 이상, 망설임은 없다.
나는 말했다.
“부탁하지.”
끼이익!
에노크가 다시금 고개를 숙이자 문이 열린다.
환호성은 들려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본의 아니게 저쪽도 훈육했으니까…….’
격식의 강제 주입.
덕분에 나는 고요한 정적 속에서 걸음을 내디뎠다.
아르카나 대륙도 모자라서 현실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빌어먹게 큰 판이거늘.
이 또한 나를 위한 판이라면 어울려 주마.
아니, 어울리는 걸 넘어서 집어삼켜 주마.
이 또한 내게 주어진 무게라면 보란 듯이 짊어질 수밖에.
나는 입을 열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흑암룡.”
내 입에서 뱉어진 단어에, 좌중이 잠깐 술렁인다.
하지만 그랑펠이 누군가.
언제나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
“그 또한 나의 ‘일부’에 불과하니.”
“……!!!”
고작 한마디로 거품을 몇 배나 더하다니.
그랑펠식 화법 성능 한번 확실하구나.
동시에 진지하게 앞날이 걱정이 된다.
이 기자 회견이 끝났을 때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있을까……?
*
천하통일의 최정예 간부는 총 5인.
그들은 천하의 다섯 별이라 불리며 오성(五星)으로 통한다. 허나, 그 정보는 외부에선 당연히 비밀이며 천하통일 내부에도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다.
심지어는 같은 오성끼리도 상대방이 오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다.
허나, 모든 것은 류오쥔춘의 계획이었다.
필요한 건 군주인 자신을 향한 충성이지.
오성들 간의 긴밀한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왜, 대국의 역사에서도 수도 없이 반복되지 않던가?
신하들이 일으킨 반란에 왕의 목이 날아가는 역사가.
토끼 가면의 여인.
오성, 유지오는 상대방을 살폈다.
붉은 휘장을 보면 같은 천하통일이었다.
“이곳에서 뭘 하고 계신 걸까?”
다만, 이건 예정된 만남이 아니었다.
천하통일은 거대 길드를 넘어선 초거대 길드다.
거대 길드로 분류되는 샤이닝, 가온 이나즈마 버서커 연합보다도 길드원의 숫자가 배 이상이니까. 따라서 천하통일은 철저한 규칙에 따라 활동한다.
“이 구역은 이 몸. 유지오 님의 관할인데 말이야?”
유지오는 상대측의 수를 살폈다.
채 열이 되지 않는 머릿수다.
‘세력으로 봐선 오성은 아닌데.’
쯧, 아군끼리 이게 무슨 눈치싸움인지…….
이따금 유지오는 지금처럼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비효율적인 과정 또한 주군을 위한 것이라며 인내할 뿐.
그러니 의문이 들었다.
‘한데, 어째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지?’
꼭 오성만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규칙은 없었다.
다만, 서로서로 조심할 필요가 있는 오성을 제외하고는 그 얼굴을 가면으로 덮을 이유는 없었다. 지금도 보다시피 불필요한 의심을 사게 되니까.
‘그것도 처음보는 가면으로.’
오성이라 추측되는 돼지 가면도, 늑대 가면도 아니었다.
유지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했더니…….
설마, 오성을 사칭하는 녀석들이었나?
“그런 소식을 접하긴 했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오성의 특징을 내세워 오성의 명성을 팔고 다니는 녀석들이 내부에 있다고. 그게 진짜인 줄은 몰랐는데, 담이 큰 녀석들이구나?”
유지오는 천하통일의 구조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래, 모든 건 주군께서 너무나도 자비로우셔서였다.
레벨의 높고 낮음을 떠나 초신성까지.
갈 곳이 없는 어중간한 이들을 전부 품으신 탓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신이 오성으로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자책하시기 전에 처리하는 게 저의 책무겠죠.”
일백(一百).
스스스!
유지오의 특임대가 열 명 남짓한 상대를 포위한다.
이쯤 되면 눈치채고 얼어붙은 거려나?
너희 같은 사칭범이 아니다.
자신이야말로 전정한 천하의 별이라는 사실을.
유지오는 깨진 손톱을 살피며 말했다.
“유감이지만, 애원해도 봐줄 생각은 없단다.”
설령 진짜 오성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유지오는 자신할 수 있었다.
주군의 손과 발을 대신할 건 자신 하나면 충분하다고.
다른 별들은 주군과 자신 사이를 어지럽히는 방해물에 불과하다고.
그동안은 단지 명분이 없어 인내했던 것뿐이었다.
“억울해하진 마. 제로 산맥에 진입하기 전부터 누누이 말했잖아? 내 구역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건 오직 주군뿐이시라고.”
그랬다.
거미줄처럼 뻗쳐놓은 건 구역이 아닌 함정이다.
오성이든, 오성을 사칭하는 애송이들이든.
걸려든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
유지오는 후후 미소를 흘렸다.
“내 충심은 주군께서도 이해해 주실 테니까.”
스스스!
더욱더 가속하는 유지오의 특임대.
그들이 일촉즉발의 거리까지.
적과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게나.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정말이네요. 그냥 영감님 말 믿을걸.”
“노친네가 하나 맞혔다고 기고만장하기는…….”
유지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녀석들이 뭐라 지껄이는 거지?
그러고는 눈을 의심했다.
짤랑!
……이 상황에서 서로 돈을 주고받고 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내기의 결과를 정산하고 있었다. 무엇에 관한 내기인지는 몰라도 목숨이 달아나기 직전에.
노인이라 불린 이가 클클 웃는다.
“흔히 봐온 수법이지. 조직 내부 서열에 교란을 두는 건. 보게들, 지금처럼 조직의 관리가 수월해지지 않는가? 자신이야말로 진짜 간부라 여기며 서로가 알아서 경쟁하고, 알아서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광경.”
……저 새끼가 노망난 소리를 하고 있잖아?
어떻게 보아도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토끼 가면 아래에서 유지오는 이를 갈며 말했다.
“상황을 모면하려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구나.”
슥─
그러자 이번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여태까지는 쪼그려 앉아있었던 것인가?
평범한 사람보다 머리 서너 개는 더 큰 거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노친네 잘난 체는 됐고. 망이나 잘 보쇼.”
“제로 산맥에 보는 눈이 어디 있다고, 클클.”
“하긴 그것도 그러네.”
“으하하. 이거, 가면이 하나 더 늘겠군.”
툭.
툭.
그러고는 무언가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유지오는 흠칫했다.
정말로 가면이었다.
“돼지, 늑대……?”
오성이라 여겼던 두 사내의 가면이었다.
오성의 가면을 벗겼다…….
그런 짓을 벌이고 살아남았다……?
떠올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죽었다고? 오성 중 두 명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천하통일이라고 했나?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군. 우리처럼 상부상조하는 조직은 더더욱 아니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열 구조에 쓸데없는 장난을 쳐놓은 걸 봐도 알 수 있어. 안 그래요, 영감님?”
“물론이네.”
“오직 우두머리 한 명을 위한 조직이란 거지.”
“……!”
유지오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이 더없이 옳았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외부에서 우릴 간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내부에 스파이가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주군께서는 그 가능성마저도 염두에 두셨다.
분명 누구도 쉽게 간파할 수 없었을 터.
허나, 저들은 달랐다.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놀랄 거 없어. 사실 이런 게 우리 전문이거든. 귀찮지만.”
전문이라고……?
“잠입, 공작, 와해, 폭력, 협박, 강탈. 그리고 살인.”
“……!!!”
“덕분에 뻔히 보인달까.”
순간, 유지오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천하통일과 류오쥔춘을 먼저 생각했다. 내부에 잠입해서 오성 중 둘을 쓰러트리고는 태연하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저들은 명백하게 주군에게 위협이 된다.
‘……주군을 위협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록스?
아니, 샤이닝은 천하통일의 발아래에 떨어진 지 오래.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 사내, 흑암룡.
유지오가 적대적으로 소리쳤다.
“이호열……!!”
허나, 돌아온 것은 한층 냉랭해진 음성.
마치 거울을 바라보고 말하는 것처럼.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우리 같은 쓰레기에 그분의 이름을 붙이지 마라.”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대략 열.
정확하게는 아홉의 그림자.
슥─
그림자 아래로 드러나는 까마귀 가면.
철컥─
가면 중 하나가 석궁을 장전하며 말했다.
“우린 그분처럼 자비롭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