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그것이 나다 (2)
보도에 앞서서 최우선으로 확인해야 할 것?
당연히 팩트 체크였다.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소식이라면 더더욱.
더군다나 VBC는 어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소 방송국이 아니다. 대격변 이후, 물살을 타고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방송국으로 거듭났다.
카메라 감독, 윤종진은 그 사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VBC 마크가 달린 카메라를 들이대면 안하무인으로 굴던 플레이어들조차도 그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지곤 했으니까.
덕분인가, 그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아니, 선배. 이거 이렇게 추진해도 되는 거예요?”
질문이 향한 곳은 리허설이 한창인 스튜디오.
스튜디오의 총괄을 살피고 있는 PD 현용석이 있었다.
현용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뭐해? 스탠바이 안 하고.”
“아니, 선배애애.”
“징그럽게 말꼬리는 왜 늘려? 뭐, 왜?”
현용석은 그제야 윤종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절박한 표정에 헛웃음을 뱉었다.
“마려운 강아지 표정이 따로 없네, 이거.”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의 시선이 쏟아진다.
윤종진은 눈치껏 성대의 음량을 낮추고 속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성급했다.
“선배, 막말로 저희 최근 들어 똥볼만 찼잖아요.”
“이거, 말하는 거 봐?”
“아니,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고요.”
투데이 아르카나.
최근 시청률 추이는 누가 봐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방송국과 다르게 대격변 이후의 트렌드는 급격하게 돌아간다.
“제로 산맥에서는 길드 단위의 개인 방송 송출에 밀려. 그렇다고 현실에서 떠도는 떡밥을 물자기엔 뇌피셜 말고는 쏟아낼 게 없어. 심사숙고해서 추진하면 정작 패널들이 섭외가 안 돼…….”
윤종진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대격변의 시대에서 방송국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나마 시청자들을 낚을만한 떡밥이 상해도 한참 전부터 상했기 때문이다.
“천하통일, 그 새끼들 때문에 우리 선배가 스트레스받은 건 이해해. 내가. 같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그 새끼들 뒷담화를.”
천하통일의 행보.
깊게 파고들지 않고 수박 겉핥기처럼 다뤄도 화제성은 보장됐었다.
문제는 윗분들이 그걸 원치 않았다는 거였지만.
“대체 얼마나 까마득한 윗선부터 엮여있길래. 말도 못 꺼내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저도 선배가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싸그리 날아가서 상심한 거 이해한다고요. 근데, 연타석으로 이것까지 감당할 수 있겠어요?”
플레이어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식.
흑암룡의 정체는 이호열이다!
팩트는 드러나지 않았다.
심증도 오직 하나, 플레이어들의 증언밖에 없다. 그것조차도 마탑 상공에 포착된 이상 현상을 목격한 플레이어들에 한정되어 떠오른 메시지에 불과했다.
“심지어 호열 씨가 흑암룡이라는 메시지도 아니라면서요? 단순하게 흑암룡의 복귀를 목격했다는 업적 메시지에 불과하대잖아요.”
그런데 기정사실처럼 특별 방송을 추진하다니.
현용석의 표정엔 미동이 없었다.
윤종진은 한숨을 머금고 물었다.
“그래도 확신하시는 거죠? 그럼 됐어요.”
천재 프로듀서의 직감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용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아, 아니라고요?!”
진짜 이 형님이 왜 이러실까?
윤종진은 계급장 떼고 묻고 싶을 정도로 황당했다.
쥐뿔도 없었던 예전 같았으면 이래도 괜찮았겠지.
막말로 시말서 한 장이면 넘어갔을 테니까.
“근데, 그러기엔 VBC도 선배도 덩치가 커졌잖아요. 잃을 것도 많고,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겠다는 욕심에 독박을 쓸지도 모른다고요!”
더군다나 덤터기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려 십여 마리의 드래곤들이 울부짖었던 존재, 흑암룡이다.
어찌 보면 지구가 멸망에 가장 가까웠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으니.
“이러다가 진짜 모가지…….”
“종진아.”
“네, 현 피디님.”
“네가 알고 있는 걸 내가 모르겠니?”
“……생각하고 계시긴 하셨어요?”
현용석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미친놈처럼 보이긴 해도 생각 없이 움직이진 않거든. 그래도 뭐, 인정할 건 인정할게. 네 말대로 내가 최근 들어 똥볼을 차긴 했지.”
천하통일.
그 빌어먹을 새끼들 때문에 말이지.
수개월에 걸친 취재가 전부 날아가 버렸다.
어떻게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다만, 중국에서 대한민국의 일개 방송국에까지 입김을 불어넣을 정도라니. 새삼스럽게 세계 최고의 길드가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실감하게 됐다.
현용석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기왕 찬 거 그 새끼들한테 차 줘야 하지 않겠냐?”
이호열, 그가 흑암룡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윤종진도 말했다시피.
현시점에서 증거는 플레이어들의 증언밖에 없었으니까.
그것마저도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했다.
‘자칫하면 뎅겅.’
정들었던 VBC에서 모가지를 당할지도 모르겠지.
그러나 현용석에겐 한 방이 절실했다.
그간의 부진을 날려버릴 한 방은 물론이요.
천하통일과 그에 얽힌 윗대가리들에게 날려줄 큰 한 방이……!
천하통일.
그리고 류오쥔춘 따위와는 다른.
진짜 ‘군주’를 내세울 타이밍이란 것이다.
슥슥─
현용석이 큐시트에 펜을 휘갈겼다.
“봐봐, 이거 제목으로 어때?”
“……갑자기 무슨 제목이요?”
“특별 편성이라도 부제는 달아야 할 거 아니냐.”
“하, 진짜…….”
윤종진이 입을 다물자 현용석은 그제야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웠다. 그러고는 윤종진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말을 꺼냈다.
“나는 믿어, 종진아.”
갑자기 뭘 믿는다는 것인가.
호열이 흑암룡이라는 걸?
아니,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적잖은 플레이어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흑암룡이라 불릴만한 플레이어가 호열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그래서 꾹 입을 다물고 있는데.
현용석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다를 거라고 믿어.”
……다를 거라고?
“뭐가 뭐랑 다를 거라는 건데요, 선배?”
“호열 씨가 류오쥔춘, 그 새끼랑은 다를 거란 뜻이야.”
“……갑자기 류오쥔춘은 왜? 뒤끝이에요?”
현용석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뒤끝이 아니다.
실제로 믿고 있었으니까.
그간 호열의 보여준 행보가 믿음의 근거가 됐으니까.
“호열 씨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보를 숨기지 않았어. 모든 행동엔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그걸 당당하게 세계에 밝히셨지. 물론, 격식을 갖춘 질문이 있을 때만 말이야.”
그러니까 현용석은 확신했다.
“어느 누구도 아니고, 호열 씨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입으로 밝히실 거야. 자신이 흑암룡이라고, 전 세계 앞에 당당하게 말이지. 우리 방송의 기획의도는 바로 그때를 기다리는 거고.”
“때를 기다린다……?”
“쉽게 말해 이호열 중대발표 대기방송이란 거지.”
“!”
만약, 호열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특집 방송은 그야말로 쫄딱 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앵커와 패널들을 불러놓고 시간을 때우는 것에도 한계는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생각대로만 풀린다면…….
“확실하게 터트릴 수 있겠네요, 뭐가 됐든.”
결정할 건 이제 하나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의견 좀 내봐. 부제 뭐로 할지.”
“……선배가 적은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그래? 너무 오글거리지 않나?”
“오글거리는 것도 나름이죠. 호열 씨한텐 사실 뭘 가져다가 붙여도 어울릴걸요? 막말로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는 이명도 소화해 내시는데.”
“하긴 그건 또 그래? 혹시 다른 의견 있는 사람?”
간혹가다 다른 의견이 나왔지만.
그보다 한술을 더 뜨면 더 떴지.
반대 의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특별방송의 타이틀이 결정되었다.
『용군주, 흑암룡 이호열. 세상을 향해 울부짖다.』
땅땅!
*
진짜로 빌어먹게 감사하다, 시스템아……!!
모든 건 나의 명성이 지나치게 상승한 탓이겠지.
왜, 전혀 다른 세계 아르카나 대륙.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에서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환대를 받았던 내가 아닌가?
‘그 상태에서 명성은 더욱 상승했을 거야.’
제국의 영지를 복구하며 쌓은 기여도를 생각해 보자.
무려 10억으로.
그건 황제가 제국의 밑천을 내게 훤히 보여줄 정도였다. 명성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전설, 흑암룡 이호열]의 위상도 함께 드높아졌겠지.
‘그 여파가 현실에 메시지로 드러난 거고…….’
마탑 인근의 플레이어들에게 메시지를 출력하다니.
그것도 그저 평범하게 복귀했을 뿐이거늘.
이래서야 마탑에서 포탈을 발현한 이유가 없잖아?
누구는 심각해서 죽겠는데, 입방정은 태연하다.
“본의 아니게 울부짖고 말았나.”
진짜로 내가 울부짖긴 뭘 울부짖었다고 그래……!
그러나 나의 입방정에 화답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르콘이 껄껄 웃음을 뱉었다.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흑암룡이란 이명에 어울리는 건 역시 경밖에 없으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체 보름 동안 어떤 무용담을 써내고 돌아오신 겁니까?”
다들 그 눈빛들이 초롱초롱하구나.
현실의 시간으로 보름.
아르카나 대륙의 시간으로는 대략 두 달.
그래, 되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긴 했지.
진심으로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다만…….
격식을 갖춘 물음엔 어떤 식으로든 화답해야 하는 법.
나는 입을 열었다.
“수천만의 악마에겐 주제 파악을.”
첫마디부터가 그랑펠식 화법으로 범벅되어 있다.
[천적관계].
악마 사냥꾼이라는 클래스의 특수성 때문에.
악마를 공포에 떨게 한 것뿐이거늘.
하여튼, 포장하는 건 최고다.
“노룡에게는 오래전의 맹약을.”
여기서 노룡은 유낙서스였고, 맹약은 드래곤과 클라우디 가문에 얽힌 설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내뱉으면서 간절히 빌었다.
‘제발 묻지 말아 주라.’
그 맹약이란 게 무엇인지, 격식을 차리고 물어온다면.
나는 좋다고 클라우디…….
나의 흑역사에 관해 떠벌리고 말 테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자리에 나의 말을 끊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그다음 문장도 충분히 문제가 되었다만.
“빙룡과는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유희를.”
목숨을 건 사투를 유희로 포장하다니.
아르카나 대륙에서의 내 목숨이야, 아르카나 대륙 전기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과 똑같으니까. 따지고 보면 유희라고 볼 수 있기도 한데…….
역시나 뻔뻔하다.
나의 말에 좌중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천만의 악마와 마주하셨다고?”
“노룡과 빙룡이라니. 다 같은 드래곤이 아니었구나.”
“설마 얼어붙은 시간 때문에 보름씩이나……?”
허나, 틀린 말은 없어서 정정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마지막 말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발언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니까 다들 놀라지 말고 들어주면 좋겠다…….
“끝으로 긍지를 잃은 드래곤들을 훈육하였다.”
“……!!!”
예상은 했지만, 그 표정들이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으로 향해 간다.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하르콘조차도 되물어왔다.
“드, 드래곤들을 훈육하셨다니? 가르치는 훈육이요?”
차라리 사투 끝에 살아서 돌아왔다면 다들 납득할 수 있었겠지. 처절하게 발버둥 친 덕분에 피어오른 내 거품은 워낙 풍성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훈육은 다른 영역이다. 무엇보다 ‘했다’라는 건 훈육에 성공했다는 의미였으니까. 남태민과 히사기를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역시 긍지.”
“긍지에 불가능은 없겠지요.”
“……뭐라는 거야?”
레오니처럼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것도 이해한다.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긴 하지.
클라우디의 후광이 아니었다면 나도 대화조차 불가능했을 테니까.
허나, 과장이 있을지언정 모든 건 사실이다.
증거가 어디 있느냐 묻는다면.
……그래.
죽어도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었건만.
여기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그대의 말처럼.”
“……?”
“내가 바로 그들을 배후에서 관조하고 조율해 오던.”
한껏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흑암룡이니.”
……기어코 저지르고 말았구나, 호열아!!
.
.
.
TV에서 특집 방송이 시작된다.
그 제목은.
“용군주, 흑암룡 이호열. 세상을 향해 울부짖다아아? 진짜 미친 거 아냐?!”
움찔움찔.
경악하면서도 입꼬리가 멈추질 않는다.
웬수, 이예림은 일단 증거를 남겼다.
찰칵─
“옛날에도 저거 비슷한 소릴 들은 것 같은데……? 얘가 그때부터 게임을 이렇게 잘했었나? 하씨, 기억이 안 나네. 진짜 내년부터는 술 좀 끊어야지.”
호열이 듣는다면 가슴이 철렁일 소릴 중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