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1)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을 되찾아라. (진행 중)
●붕괴된 도시, 마키마를 복구하라. (성공)
●붕괴된 마을, 홀덤우드를 복구하라. (성공)
●붕괴된 도시, 폴스타를 복구하라. (성공)…….
성공.
성공.
성공의 연속.
거만하신 주둥이가 가만히 있을쏘냐.
“새삼스럽구나.”
남이 보기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특히 제국 병사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나는 갑자기 포탈에서 튀어나온 대마법사가 따로 없겠지.
“이걸 무어라 말해야 할지…….”
수염이 덥수룩한 제국군 장교, 본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봐도 말문이 막히긴 한다.
채 반나절도 안 돼서 무너진 성벽이 완벽하게.
아니, 이전보다도 으리으리하게 솟아올랐으니까.
“제가 알고 있는 마법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마법이 존재하는 아르카나 대륙이지만, 마법이라고 다 같은 마법이 아니다. 제국 소속 마법사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마탑의 기준에서 그들을 평가하면…….
‘잘 쳐줘야 숙련 마법사?’
아니, 대부분은 견습 마법사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건 아르카나 대륙 최강의 무력 집단이라 불리는 마탑이 워낙 잘난 거지. 제국 소속 마법사들이 부족하다는 이야긴 절대 아니다.
“이 은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신 감사를 표하는 본스와 제국군.
그리고 생존자들 앞에서 나는 우쭐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여기서 우쭐거리기엔 양심에 찔리잖아……!
‘발버둥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또 몰랐는데.’
쥐뿔도 없던 과거.
살아남기 위해 벽을 세우고, 반전 마법으로 다시 무너트리고, 계단까지 수놓았던 경험이 도움 될 줄이야. 게다가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만 목격해도 완벽하게 발현해 내는 그랑펠이 반복해서 발현했다?
당연하게도 그 발현력은…….
‘또 하나 창시해도 되지 않을까, 건축마법학이라고.’
어마어마할 수밖에.
웅장한 성벽을 감상한다.
단순하게 쌓아올린 게 아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있다.
‘벽도 세워본 놈이 단단하게 세울 수 있다는 거지.’
투석기가 바윗덩이를 날려대도.
몇십 대까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거?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다.
‘거기에 심미까지.’
[심미]까지 더한 이유는 간단하다.
심미안으로 평가하듯 황궁을 둘러보던 내가 아니던가.
황궁처럼 화려한 성벽이야말로.
제국의 영토라는 상징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쉽게 말해서.
“말보다 행동인 법.”
그냥 그랑펠의 자기만족이라는 거다.
‘……그래, 누구를 탓하겠냐?’
사실 이렇게 마력을 낭비할 수 있는 것도 잘나신 클라우디의 후광 덕분이다. 뭣보다 언제까지고 비아냥거릴 수도 없겠지. 나도 받은 게 있었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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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여도 : 300,723,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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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단위에서 절사해도 무려 억, 억, 억.
‘균열 클리어 보상금보다 놀랍다.’
나는 기여도 시스템을 처음 겪는 게 아니다.
프로스트 탈환에서만 하더라도 기여도 시스템을 경험했으니.
그런데 이런 기여도 단위는 처음이었다.
만약,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면…….
‘영락없이 버그인 줄 알았겠는데.’
하지만 게임이 아니니까.
머리를 굴려보자.
그러기 위해서 일단, 뻔뻔하게 마음을 먹어야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 내가 잘난 덕분이다.’
자화자찬.
이것도 사람이 수치심만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덕분이다.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한다, 안토니움의 모두들……!
어쨌든.
관점을 바꿔서 바라보니 납득이 되기 시작한다. 내게는 진짜로 거창한 일이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건 제국의 기적 수준이었으니까.
‘제국의 힘만으론 이뤄낼 수 없는 일이란 거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신이시여…….”
성벽 앞에 무릎을 꿇고서는 두 손을 모아서 기도를 드리는 생존자. 정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란 것이다.
‘나도, 그랑펠도 무교지만.’
감격한 생존자들에게 무신론을 떠들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나와 마찬가지로 감격한 생존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국의 병사들. 그들을 대표해 본스가 입을 열었다.
“베푸신 기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악마 사냥꾼이기에 알아볼 수 있다.
그 눈빛이 살아있는 게.
정말, 어떤 악마가 몰려와도 꺾이지 않겠어.
‘하지만.’
나는 대답했다.
“아니, 그대들은 지금까지 잘해왔다.”
“……?!”
나의 말에 본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겠지.
성벽이 성벽이기 위해서는 그 성벽을 지키는 병사가 필요하다.
본스와 병사들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성벽을 지켜낼 각오했을 터.
그러니까 하는 소리였다.
“그대들은 더 이상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
본스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혹 주군께서 철수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그러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주위를 훑어본다.
제로 산맥.
인근의 작은 도시, 폴스타.
제로 산맥이 현실을 범람한 지금.
폴스타는 대륙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꼴이나 다름없었다.
본스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곧,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따를 수 없습니다.”
척─
이내, 고개를 숙이는 본스와 제국의 병사들.
그 행동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와 병사들이 폴스타에서 철수한다면, 새로운 성벽은 무색해지겠지요. 폴스타는 곧장 악마에게. 혹은 악인들에게 다시금 함락되고 말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보다시피 폴스타의 생존자들은 대다수가 노약자에 불과하다.
항명하는 본스의 결단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
나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랑펠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니, 이해하는 걸 넘어서.
“그대의 긍지를 내가 알았다.”
“……?”
본스의 행동이야말로.
긍지론적인 관점에선 정답이지.
그러니까 더더욱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쿵!
내가 말을 내뱉는 도중 들려오는 굉음.
쿠궁!
아니, 정확하게는 울린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왜, 굉음이 울릴 때마다 몸이 들썩거릴 정도였으니.
‘정말,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흑암룡 이호열 전설이 떠돌고 있는 지금.
아르카나 대륙에 저런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존재?
역시 하나밖에 없겠지.
나는 말을 이었다.
“악크샨이 그대들의 긍지를 알았다.”
“!”
그렇다.
악크샨의 유산.
퀴른베르크 기계탑이다.
나는 하이엘을 통해 드워프들에게 물었다.
현재 가동 중인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숫자.
그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은 하이엘을 통해 돌아왔다.
‘현재 가동 중인 기계탑은 전체의 7할.’
아르카나 대륙의 판세가 악마에게 넘어간 걸 생각하면 괜히 악크샨의 유산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 정도의 전투 성과였다. 하지만 검성, 셰그윈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퀴른베르크 기계탑도 결국 악크샨이었단 걸!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대부분은 은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악마에겐 악마 사냥꾼 이상의 천적이지만, 악마를 제외한 이들에겐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나사가 빠졌단 거지. 악마가 아닌 적을 상대하는 악마 사냥꾼처럼.
‘그런 의미에서.’
탈환한 도시에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배치하는 건 최선의 판단이었다. 제국에겐 악마를 제외한 그 어떤 적과 싸워도 버텨낼 저력이 있고, 악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사냥할 퀴른베르크 기계탑이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
문제가 되는 건 오직.
까다로운 긍지의 승인뿐이었거늘.
괜한 걱정이었다.
긍지가 없는 이들은 진작 제국을 저버렸을 게 지금 상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묻겠지.
악크샨이 그걸 허락하겠냐고.
“악크샨이라니……. 그들은……?”
그 이름에 본스가 당황해서는 머뭇거린다.
직위 덕분에 대충이라도 사정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악크샨이 멸망하던 순간.
제국은 그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짐짓 우려하는 거겠지.
“……제국의 병사인 저희가 어찌 악크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악크샨을 간과하지 마라.
우리 선배님들, 그렇게 뒤끝이 길지 않거든.
애초에 그 양반들 성격에 그런 사사로운 감정은 육체를 단련하면서 모조리 날려버렸을걸? 게다가 무엇보다 악마를 사냥할 수 있다면 뭐든 찬성일 거다, 선배님들은.
그런 뜻을 담아서 나는, 나답게 말했다.
“악크샨은 악마에게 고통받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
“설령 그것이 자신의 손을 놓은 원수라고 할지라도.”
악크샨, 최후 생존자의 관점으로 봐도 합당하다.
악마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데.
제국과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폴스타’를 수호합니다.]
쿵!
파수꾼처럼.
폴스타 앞에 멈춰선 기계탑을 시작으로.
눈앞에 연달아 비슷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홀덤우드’를 수호합니다.]…….
‘다른 도시에도 도착한 모양이야.’
끝으로.
기여도가 다시금 점멸한다.
어디 보자, 확인하기 전에 예상해 볼까?
건축에서 3억 포인트를 획득했으니까…….
못해도 천만 포인트 정돈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김칫국부터 들이켠 나였거늘.
곧.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다시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십백…….
억…….
……시이이입어어어억?!!
*
내쉬가 제국의 마도구, 『점성사의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호열이 전해온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저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진정하자.’
걱정이 앞섰다.
상대는 흑암룡이자 살아있는 전설였으니.
‘……혹 내가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
어쩌면, 나는 흑암룡의 노여움을 사는 게 아닐까?
마탑에 계신 형님께서 들으신다면 우물 안 개구리라 말씀하실 테지만……. 그래도 내쉬, 자신은 제국 최고의 마법사였다.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호열에게서 흘러나오는 순도 높은 마력을!
여전히 목이 탔다.
‘양보다 놀라운 건 재생력…….’
솟구치는 마력은 무한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
저런 마력을 보유했으니 자신감 넘치게 선언했던 거겠지.
-“나 혼자로 충분하다.”
폐하와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내쉬는 마법사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호열 정도 되는 마법사에겐 도시의 성벽을 재건하고, 반나절만에 복귀하는 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이 상황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생략할 수 없는 규율이자 절차라는 건 이해한다.
‘근데, 하필이면 그 절차를 내가……!’
그것이 자신의 업무인 게 문제였다만.
흑암룡, 그가 황궁을 떠난 순간.
폐하께선 말씀하셨다.
-“대신들은 들어라. 내가 호열 경에게 전한 것은 명이 아닌 부탁이었다. 그에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일 터. 그대들의 생각도 나와 같으리라 믿겠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데,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모든 일에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건.
제국의 규율과도 같았으니.
‘보상에 필요한 절차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심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흑암룡.
그가 이해를 해줬다는 것이었다.
마법사답지 않게 자비롭게 고개까지 끄덕여줬다.
“그것이 절차라면 흔쾌히 따르겠네.”
내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점성사의 수정구를 사용하겠습니다.”
모든 도시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안토니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폴스타만 살피면 다른 도시의 윤곽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에 폴스타를 들여다본 내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어라?”
어라라니.
황제와 전설, 대신들 앞에서.
격식 없는 말을 뱉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단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안토니움의 성벽, 그 이상.
높고, 두꺼우며, 화려하기까지 한 성벽이 폴스타를 완벽하게 둘러싸 솟아나 있었으니까. 뿐만 아니다. 그런 폴스타를 호위하듯 서 있는 퀴른베르크 기계탑까지.
내쉬가 수정구를 매만졌다.
“송구합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폴스타만 확인해도 족하다 생각했건만.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의구심이 생겼다.
단순하게 성벽을 쌓아올렸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단순한’ 성벽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폴스타에 모든 시간을 할애한 것인지도…….
“!”
그러나 내쉬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충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가 내쉬의 뒤를 이어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아아…….”
곧, 탄식을 뱉더니.
“황궁의 모두가 들어라.”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황궁 지하 보고를 개방하라!”
“……!!!”
.
.
.
그래, 주고받음.
얌전히 듣고 있었으면 완벽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렴결백,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는 이놈의 긍지가.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있겠냐……!
웅성대는 좌중.
“그 공은 인정하지만……!”
“황궁 지하 보고를 개방하시다니요……?”
“폐하, 그 판단은!”
나는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고작 이런 대가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
제국의 보물이여, 잘 가라……!
언제나와 같은 입방정에 애써 체념하던 순간이었다.
황제와 신하들.
그 사이에서 흘러가는 대화의 방향이 심상치 않았다.
……잠깐만.
그냥 지하 보고도 아니고 심층?
전황의 서고는 또 뭔데?
이거, 아무래도 내 말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