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일어설 자격을 갖췄군
선악과.
클래스 퀘스트가 떠오른 시점부터 묘한 위화감은 느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
유낙서스를 비롯한 드래곤들은 분명 세계수의 씨앗을 삼켰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시체를 양분으로 씨앗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었지.
당연하게도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내가 [포식자의 늪지대]에서 발견한 씨앗은 뭔데?
[월드 퀘스트 : 세계수의 씨앗]
도래한 아르카나 대륙 절멸의 위기.
거대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싹 틔워라.
─세계수의 씨앗을 발아하라. (진행 중)
●현재 발견한 세계수의 씨앗 1개 / 알 수 없음
●현재 싹 틔운 세계수의 씨앗 1개 / 알 수 없음
선악과는 선과와 악과로 나뉘었다.
드래곤들은 악과를 삼켰으니.
내가 싹 틔운 씨앗은 선과가 품고 있던 세계수의 씨앗이라는 것까진 눈치로 때려 맞힐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씨앗을 누가 대륙에 뿌렸느냐는 거지.
그게 궁금해서 유낙서스한테 물어봤었지만.
-“송구하게도 그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그랬다.
덕분에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세계수에서 선과 악이 나뉜 건…….
내 예상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는.
왜, 발견했던 씨앗의 상태를 떠올려볼까?
씨앗은커녕 바위라 착각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게 씨앗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누가 아르카나 대륙에 선과를.
세계수의 씨앗을 뿌린 건지.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증거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모든 건 추측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시작부터 모든 게 악마의 계획이었든, 뭐든.
“세계수는 악에 잠식되었던 것이다.”
세계수와 드래곤, 그리고 엘프의 관계가 단절된 틈을 타 악마는 행동에 돌입한 거겠지. 세계수에서 선과 악을 분리. 먼저 세계수에서 선을 밖으로 내쫓고 지금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이다.
아젠트레스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악이 깃들었다고?”
역시나 발끈해서는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인간이여. 시슬리는 우리의 땅이다. 악마가 이 땅을 밟았다면 그 존재를 우리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너희, 엘프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게다가 말은 똑바로 들어야지.
세계수에 악이 깃든 게 아니라니까?
“아젠트레스.”
“지껄여 보아라, 인간.”
“빛,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둠이 따르는 법이다.”
“……뭐라고?”
“선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악이 존재한다.”
애초에 진짜 세계수의 씨앗이 뭔데?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선악과의 씨앗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건 상식.
그 말인즉.
세계수가 멀쩡할 때도.
세계수 내부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말이지.
아젠트레스를 비롯한 엘프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감히 어머니를 능멸하는 것인가?”
능멸이라니 서운한 소리를.
그러나 서운한 내색은 할 수 없다.
나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세상에 완전한 존재는 없다. 세계수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그랑펠의 입에서.
이런 의젓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흠칫하기도 잠시, 나는 이유를 덧붙였다.
“그것이 섭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확신에 찬 상태로 말해서인가.
아젠트레스는 침묵했다.
그러나 찰나에 불과했다.
“선과 악을 빛과 어둠에 비교하지 마라.”
그래, 사실 비약이긴 하지.
“어머니가 당신의 몸에 악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의 어머니이자 만물의 어머니다. 만물을 위해서라도 악 따위는……! 애초에 품고 계시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유감?”
“그대는 아직도 온실이 옳다 믿는 모양이니.”
“……!”
온실.
그 소리에 아젠트레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동족들을 바라본다.
용케도 말뜻을 알아차린 걸 보니까…….
‘너도 내심 신경 쓰고 있었구나?’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실, 나 이호열도 이해하지 못했다.
[선악과] 클래스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을 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굳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
물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역시나, 그랑펠 덕분이었다.
“세계수는 믿었다.”
정확하게는 그랑펠의 드높은 긍지 덕분이었다.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선이 존재하는 이상, 악은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으리라고.”
그랑펠에게 악이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는 열등한 것에 불과했으니.
그런 악을 두려워해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걸 넘어서.
애초에 사전에 없는 일이란 것이다.
‘새삼스럽게 대단하다. 정말.’
세계수와 공감대를 형성하다니.
효자를 넘어서 하늘을 찌르는 긍지로다……!
그래도 뭐,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누구에게도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아젠트레스가 지적해 왔다.
“섭리? 하! 지금의 꼴을 보아라. 네 말대로 시슬리가 악마의 땅이 되고, 어머니가 악에 잠식되어 쓰러진 지금도. 네 녀석은 언제나 선이 악을 굴복케 한다고 자신할 수 있단 말이냐?”
나, 이호열.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정확하게는 머릿속 꽃밭을 엿보인 느낌이군.
‘나라고 그걸 모르겠냐.’
아니, 사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랑펠의 긍지론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 억지에 가깝다는 것을.
얄팍하게 세상을 알고 있는 만큼.
세상 두려울 게 없었던 중2 시절의 긍지였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자신하지.”
그렇기에 꺾이지 않는다.
꺾이지 않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엔 그 꽃밭을 실현해 낼 테니까.
“내가 그리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말은 잘한다고 지적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럼에도 지켜봤다면 알고 있지 않나?
이래봬도 나, 공약 이행률은 꽤 준수한 편이거든.
『그랑펠에게 겸손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소평가에는 증명을. 과대평가는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내고야 말았으니까.』
설령 그 과정이 구질구질했을지언정.
지금보다 더한 악조건 속에서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던 결과를 내놓았던 나란 말이다.
그러니까.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젠트레스.
나는 뻔뻔하게도 지껄였다.
“길을 열어라, 아젠트레스.”
태초의 악이 뿌리를 내린 곳으로!
*
그저 오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저건 오만을 뛰어넘은 ‘무언가’의 영역이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 세계수는 태초의 존재다.
그런 어머니가 악에 지배되었을 줄이야.
그것도 스스로 품고 있던 악에 잠식되었다니…….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었거늘.
꾸욱─
아젠트레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신과 동족은 사명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가 시들어 메마르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낌새를 알아차리고.
축복마저 거두어 가던 순간에야 어머니 앞으로 찾아갔었으니까.
‘어쩌면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족이 아니더라도.
나 하나라도 사명을 다했다면…….
아젠트레스는 그 사실이 분했다.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의 실책이다.’
영겁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책을 할 정도로.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내는 어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또각─
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곧게 뻗는 보폭에서 두려움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잠식한 태초의 악(惡).
그 수식어만으로도.
긴장케 하는 존재에게 나아가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달칵─
그 손에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찻잔까지 쥐고 있었으니까.
‘도마뱀도 저럴 순 없다.’
사내는 만물의 왕이라 칭송받는 드래곤조차 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었다. 오만조차 넘어선 ‘무언가’의 영향일까. 아젠트레스는 문득, 사내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내가 그리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에 하나, 사내가 그리한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러나 곧 주먹을 쥐고 말았다.
‘아니,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다.
녹빛 잎사귀는 시들어 떨어진 지 오래였고, 그 육신도 장작처럼 메말랐다. 사내가 어머니를 잠식한 악을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또한.
‘우리의 과오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긋나도 한참 전부터 어긋났다.
어쩌면 사내의 말대로.
태초부터 모든 게 어긋났는지도 모른다.
슥─
아젠트레스는 사내를 바라봤다.
‘비참하군, 아젠트레스.’
스스로를 비웃었다.
사내는 진정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해서인가.
아젠트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고 말았다.
사내라면 정말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는.
그러나 세계수와 마주한 순간.
“……어머니?”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축복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아르카나 대륙으로 떠난 자신들.
시슬리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그사이.
처참하게 꺾여 있었다.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허나, 아젠트레스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러니 어떤 책망이든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얼마든지 비웃어도 좋다, 인간.’
말했다시피 기대는 사라졌다.
제아무리 사내라고 하더라도.
어머니가 저런 모습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정말로 딱히 손을 쓸 도리가 없겠지.
아젠트레스가 무기력하게 참상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또각─
“……?”
사내, 호열이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 어떤 독설조차 받아들이겠다 생각했거늘.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아젠트레스가 호열을 응시하던 순간이었다.
호열이 세계수의 잔해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마의식.”
아젠트레스로서는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허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장, 변화가 시작됐으니까.
화르륵!
“……!!!”
널브러진 어머니의 잔해가 타올랐다.
꺾인 기둥.
남겨진 밑동.
메마른 뿌리.
꺾여서 널브러진 나뭇가지.
무엇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아…….”
동족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아젠트레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축복의 위계질서 때문에?
아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어머니……?”
타오르는 불꽃이 푸르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피워냈던 잎사귀처럼.
마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듯.
녹색의 불꽃이 싱그럽게 타올랐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
온기가 느껴졌다.
축복을 상실한 이후.
느낄 수 없던 온기가 온몸으로 와 닿았다.
그것은 만물을 자애롭게 보살피는 따스함.
어머니의 온기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다.’
아젠트레스는 착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어서 타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 이 온기는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온기란 말인가?
바라볼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호열이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
움직이는 것은 오직 은빛 머리카락뿐.
아젠트레스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나지막이 말했다.
“아젠트레스가 어머니의 뜻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만물을 굽어살피는 드높은 시야.
그 어떤 하찮은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살피는 심미안.
그 어떤 참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격식.
그 모든 걸 포용한 것이야말로 ‘무언가’.
그렇다.
세계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
.
.
나는 퀘스트 목표를 바라봤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엘프들의 땅, 시슬리에 진입하라. (성공)
─시슬리에 뿌리내린 태초의 악과 조우하라. (실패)
─태초의 악을 추적하라. (진행 중)
두 동강이 나버린 세계수.
덕분에 세계수 속에서 갇혀있던 태초의 악은 사라졌다.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예정된 스토리였을까?
왜, 대마법사나 용기사의 클래스 퀘스트처럼.
악마 사냥꾼 클래스 퀘스트의 정해진 스토리인 거지.
이런 시련을 통해 최후의 악마 사냥꾼인 나를.
조금 더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말이야.
‘글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뿐이다.
악에 잠식된 세계수를 구마의식을 통해 화장했으니.
퀘스트 목표대로 태초의 악을 추적하는 것.
그게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이번에도 결국, 궁상맞게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질문에도 ‘글쎄’라고 답해주겠노라.
이 순간, 점멸하는 메시지는.
퀘스트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숭고의 효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히든피스, 시슬리와의 관계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히든피스, 시슬리에서의 영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털썩─
그와 동시에.
귓가에 소리가 들려왔다.
아젠트레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축복의 위계질서] 효과는 아니다.
진짜라니까?
역시나 떠오르는 메시지가 그 증거다.
[엘프, 아젠트레스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엘프, 아젠트레스 휘하 107인의 엘프]
[현재 상태 : 명령 대기]
아까도 무릎을 꿇렸는데.
한 번 더 무릎을 꿇릴 정도로 야박한 사람은 아니거든, 내가.
나는 입을 열었다.
“일어나도 좋다.”
그런데 들려온 대답이 의외였다.
“일어나지 않겠다.”
……아,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늦게나마 철이 들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건 그거고…….’
지금은 다들 일어나야 한다니까?!
그게 이놈의 성격이.
참을성이 없어서 말이야.
[클래스 고유 스킬, ‘악크샨의 수호령’을 습득하셨습니다.]
클래스 퀘스트의 보상.
새롭게 습득한 스킬을 지금 막 발동시킨 참이었거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일어나라, 다들……!
그러지 않으면.
“……?!!”
악크샨의 수호령.
아우우우우─!!
『악크샨 늑대』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