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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45화 (245/489)

◈ 245화. 한마디

솔직하게 괜한 말을 한 건가, 싶다.

훈육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건데.

드래곤이어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대화의 여지조차 없는 상대라는 게 문제였다.

왜, 지금도 보다시피.

크롸롸롸─!

빙룡, 저거.

잔뜩 성이 나서는 피어를 내질러 대고 있었으니까.

절대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나는 어지럽게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드래곤 피어’를 거절합니다.]

용마대전의 기록에서도 자세하게 적혀 있다.

드래곤의 울음소리.

드래곤 피어는 강대한 정신력을 자랑하는 마탑의 마법사들조차도 벌벌 떨게 하였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세계수의 축복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나였지만…….

‘그런 내 입으로 뱉은 말이 있다는 게 문제야.’

지껄인 말은 반드시 지켜내고야 마는 고집.

그리고 그런 주인을 닮은 귀철까지.

덕분에 귀철은 빙룡을 상대하면서도 형태를 바꾸지 않은 상태였다.

-주인이여, 힘 조절이라는 건 어렵군.

목적은 베는 것이 아닌 체벌이다.

입방정 때문에 나와 유낙서스만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철이 말을 잇는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이여, 그대는 존경스럽다.

존경스럽기는, 누구 놀리냐……!

이쪽은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서고 있구만.

그래도 다행인 건 프로즈낙스에게 젊음의 패기가 있다면.

유낙서스에겐 경험의 노련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딜 내빼는 것이냐!”

집요하게 몸싸움을 시도하는 프로즈낙스.

유낙서스는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을 도리어 이점으로 사용했다.

아슬아슬하게 빗겨 비행하며 내게 회초리를 휘두를 틈을 줬다.

‘역시, 비바체의 효과겠지.’

그러나 나는 물론.

유낙서스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다는 걸.

당장 다음 활강에서 유낙서스의 심장이 멈추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빌어먹게도 큰 목표였구나, 주제파악을 하게 된다.

‘지금 내 수준으로 용의 신전에 도달하겠다는 게.’

유감스럽지만…….

인정해야 한다.

빙룡은 시작에 불과하겠지.

유낙서스의 말에 따르자면 전룡 소집에 모인 드래곤은 수십이다.

막말로 프로즈낙스를 참교육해 내고 [히든피스, 빙룡의 설산]을 클리어한다고 치자. 곧바로 다음 드래곤이 튀어나와 우릴 맞이할 가능성은 차고도 넘친다.

펄럭─!

문득, 시야에 일렁거리는 백색의 겉날개.

유낙서스가 프로즈낙스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이리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아차렸구나?

나한테 콩깍지가 씐 귀철과는 다르게.

유낙서스는 드래곤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봤겠지.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

척 봐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몇몇 꼼수를 빼면 내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체벌이니, 뭐니, 오만하게 지껄이기나 하고.’

사람이 이래서 말조심을 해야 하는데……!

낯이 뜨거워져서 할 말이 없었거늘.

자기반성 같은 건 하지 못하는 나였으니.

나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게 전부였다.

“그랬나.”

유낙서스가 곧장 말을 잇는다.

“그렇기에 송구합니다. 아무리 클라우디께 은총을 받았다고 한들, 이 노쇠한 몸으로는 동족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께서 베푼 자비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뭐야, 그런 의미였어?

‘그럼 다행이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을 끌어들였다고 날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었거든.

그러니까 용서 따윈 구할 필요 없다, 유낙서스.

아니, 오히려 묻고 싶은 건 이쪽이다.

“유낙서스.”

“듣고 있습니다, 이호열 클라우디시여.”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겠나.”

“무슨 의미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설령 다음 날갯짓에서 그대의 심장이 멈추어도. 이대로 그대가 끝없는 설산의 바닥으로 추락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유낙서스는 클클 웃음을 흘렸다.

“송구하게도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그 눈빛이 더없이 강렬했다.

“되갚아 줄 것이 아직도 많은데. 고작 새파란 어린 용 하나에 밀리고 있다는, 자신의 나약함에 후회가 막심할 따름입니다. 노쇠한 육체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노선을 바꾸지. 장기전은 전격 철회하겠다.”

“철회하시겠다니……?”

“훈육이 필요한 이들이 가득하니, 신속히 가르치겠다.”

그런 심정이라면.

조금 더 체벌의 강도를 올려도 되겠군.

그렇다면 ‘빙룡을 추락시키는 서른 가지’의 방법 중.

가장 간결하며 효율적인 방법으로 넘어가겠다.

다만, 그 전에.

“마지막으로 묻지.”

“얼마든지 답하겠나이다, 클라우디시여.”

“그대는 추위에 익숙한가.”

“……?”

갑자기 뭔 썰렁한 소리인가, 싶겠지.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다, 유낙서스.

떠올리는 세니오스의 공략집.

──────

허나 빙결마법의 진정한 천적은 화염마법이 아니다. 자신과 똑같은 빙결마법이다. 보다 강렬한 열기에 종속되는 화염마법과 다르게. 일정 수준에 다다른 냉기마법끼리는 그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냉기마법만으로는 결착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냉기에는 명확한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마지막에는 그런 말까지 덧붙였었지.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쉽다. 용마대전이 발발했던 시절, 내가 마탑에 존재했더라면. 적어도 마탑은 빙룡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나는 빙룡 따위에게 지지 않았을 테니.

──────

마치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정말로.

세니오스 원로답게.

──────

설령 만년설 아래에 영면한다고 할지라도.

──────

한계점이 존재하는 이상.

냉기와 냉기는 서로 승부를 낼 수 없다.

프로즈낙스.

너의 냉기가 한계점에 도달했을지는 맞부딪혀야 알겠지만.

이쪽은 확실하게 그 한계점에 도달해서 말이야.

그래, [『절대영도』]라는 한계에.

유낙서스가 거리를 벌리자 프로즈낙스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창공으로 비행했다.

다음 페이즈로 돌입한 거겠지.

그 다음 공격이 예상이 간다.

‘피어, 다음에는 당연히 브레스다.’

화르륵─!

갑작스러운 열감.

유낙서스의 입가에서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빙룡의 냉기 브레스를 브레스로 되받아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유낙서스.

“괜찮다.”

“……?”

“그대는 나설 것 없다.”

“……!”

화륵……?

나의 말에도 유낙서스는 쉽게 브레스를 되삼키지 못했다.

같은 드래곤이니까.

드래곤 브레스가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는 거겠지.

근데, 진짜로 괜찮다니까?

‘나도 다른 브레스면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말이야.’

냉기 브레스라면 기이, [『절대영도』]가 있는 이상.

설령 정통으로 얻어맞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그런 속사정이 있었건만.

이놈의 무게 잡기는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니.

나는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명하겠다, 유낙서스.”

“노룡이 클라우디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나의 허락 없이 눈을 감지 마라.”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거라.”

절대영도.

많이 우려먹었던 기이인 만큼.

나는 그 정확한 효과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단순하게 대상을 얼어붙게 하는 게 아니다.

절대영도라는 대상과 대상이 존재하는,

‘시간’마저도 얼어붙게 하는 절대적인 냉기.

그렇다.

나는 그 시간의 흐름조차 얼어붙는 절대영도에서 빙룡, 프로즈낙스를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구질구질한 걸 넘어서 무모한 방법이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쿵쿵쿵…….

비바체의 약빨이 다하지 않는 사이에.

[히든피스, 빙룡의 설산]을 돌파하는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다는 의미였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내가 아니던가.

덕분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유낙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좋아, 기다리고 있으라고.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허공에 홀로 섰다.

멀어지는 유낙서스에서 프로즈낙스로.

시선을 옮겼다.

쩌저저저적─

가까워진다.

모든 것을 냉각시키는 빙룡의 냉기 프레스가.

나는 지체하지 않고 기이, 절대영도를 발현했다.

세니오스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자신으로부터.

나의 심장으로부터.

심장을 감싼 서클로.

입김으로.

대기 중의 수분으로.

마지막으로 프로즈낙스까지.

절대영도의 발현 범위를 늘려나갔다.

눈앞에 어지럽게 메시지가 떠오른다.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냉기’가 발생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냉기’가 냉기 브레스를 거절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냉기’의 영향으로 시간의 흐름이 왜곡됩니다.]

[빙룡, 프로즈낙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냉기’가 발생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냉기’의 영향으로 빙룡, 프로즈낙스의 시간의 흐름이 왜곡됩니다.]…….

시간조차 멈추는 절대영도 속.

존재하는 것은 나와 프로즈낙스뿐.

비유하자면 ‘의식’과 비슷한 공간이려나.

‘구마의식부터 시공간의 사교장까지.’

나야 의식의 공간이 익숙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일까.

프로즈낙스?

“……내게 무슨 짓을 한 게냐, 미물.”

프로즈낙스는 내가 아닌 유낙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곡된 시간의 흐름 탓.

그림처럼 멈춰있는 유낙서스를 보고서는 위화감을 느낀 거겠지.

그러고는 다시 나를 노려본다.

걷혀가는 냉기 브레스 속에서도 멀쩡한 나를 보고.

적대적인 말을 씹어 뱉어낸다.

“감히 어쭙잖은 장난을 쳤구나.”

환각이라고 생각한 건가.

프로즈낙스가 눈을 부릅뜬다.

과연, 그 모습 또한 만물의 왕답네.

왕처럼 고귀한 정신력을 지녔기에.

단순하게 눈을 부릅뜨는 것만으로.

환각마법을 비롯한 웬만한 상태이상은 우습게 떨쳐낼 수 있었겠지.

그런데, 이거 유감스러워서 어쩌나?

“장난이 아니다, 해츨링.”

말했다시피 이건 네가 재밌으라고 하는 유희가 아니다.

네가 마음을 고쳐먹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영원한 훈육 시간이지.

“감히……!!”

그렇게 사방팔방 냉기 브레스를 뿜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말했잖아?

네 냉기로는 절대영도를 둘러싼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고.

‘육탄전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자면.

멈춰있는 건 유낙서스가 아니라 우리였으니까.

절대영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봐도 무방한 거지.

뭐, 이해하기 쉽지 않을 만도 하다.

장담하는데, 일천 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험은 프로즈낙스, 너도 처음일걸?

하지만 내게는 이 또한 익숙하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다.

무간(無間)이다.

마탑의 지하.

한때 원로 마법사로 추앙받던 악마 숭배자들조차.

정신줄을 놓게 한 그 장소에서도 태연스럽게.

찻잔을 기울이는 것도 모자라 독서까지 즐기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 나의 항상의 자세는.

절대영도로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니.

나는 입을 열었다.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네놈!”

“얼마가 됐든 기다려 주마. 해츨링.”

언제나처럼.

“이런 상황 또한 예상하고 안배해 두길 잘했군.”

녹차 티백(찬물용)을 꺼내 들면서…….

.

.

.

“……그런 뜻이셨습니까?”

유낙서스는 얼어붙은 두 형체를 바라봤다.

호열과 프로즈낙스를.

뒤늦게나마 말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추위에 익숙하다는 것이 그런 뜻이셨습니까……!”

당장이라도.

저 형언할 수 없는 한기를 쫓아내고 싶었다.

쫓아낼 수 없다면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호열과 프로즈낙스를 뒤덮은 한기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미련하구나, 유낙서스…….”

무엇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노룡이라는 말이냐?

말에 담긴 뜻.

하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어찌……!

유낙서스는 얼어붙은 호열과 프로즈낙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너지는 심정을 추슬렀다. 그래, 호열이 남긴 말이 있었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거라.”

그렇기에 기다렸다.

“맹약에 따라 기다리겠나이다.”

설령.

“그것이 영겁의 세월이라고 할지라도.”

.

.

.

일만 년의 삶은.

하루를 하루처럼 느끼지 못하게 하였으니.

유낙서스는 기다린 시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시간은 명백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이 왜곡된 절대영도 속에서도.

그 밖에서도.

어찌 확신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문득, 허공에 검은 형체가 나타났으니까.

그 검은 형체가 얼어붙은 호열에게 속삭였으니까.

“디엔드, 주군의 명을 수행하고 복귀하였습니다.”

결과를 보고했으니까.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클라우디 가문의 저택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쩌저저저적─

얼어붙어있던 ‘클라우디가 후계자’의 기억을.

.

.

.

쩌저저적─

걷혀가는 절대영도 속에서.

나는 경악했다.

디엔드의 한마디에.

망각하고 있던 클라우디 가문.

그 방대한 설정이 하나둘.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까.

“전룡(全龍)에게 고한다.”

그러니까…….

“내가, 클라우디의 후계자가 돌아왔음을.”

이 입방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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