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44화 (244/489)
  • ◈ 244화. 꼰대

    『빙룡을 추락시키는 서른 가지 방법』

    세니오스가 집필한 마법 서적.

    거창한 제목과 다르게.

    그 머리말에는 대뜸 적혀있었다.

    ──────

    빙결마법은 쓰레기다.

    ──────

    첫 문장에 놀라기는 이르다.

    다음 문장부터는 더욱 가관이니까.

    ──────

    혹시나 독자, 그대가 빙결마법사라면 지금이라도 빙결마법 같은 건 때려치우는 게 이롭다. 빙결마법사는 여름에 시원한 것 말고는 장점이 없다.

    ──────

    읽으면서 생각한 거지만…….

    세니오스는 마법사 중에서도 별종이었다.

    어떻게 그런 성질머리.

    아니, 성품으로 원로 마법사라는 자리에 올랐는지 싶을 정도로.

    물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남긴 서적을 읽으면서 알게 됐거든.

    세니오스.

    그는 불세출의 천재였다는 걸.

    ──────

    나는 모든 속성마법에 능통했다. 그런 내가 확신하건대 빙결마법은 모든 속성마법 중에서 최악이다. 가장 아름다운 속성마법이라는 세간의 평가? 그것은 예쁜 쓰레기라는 뜻이다.

    ──────

    빙결마법 쓰레기론!

    설파는 페이지를 스무 장 남짓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거기까지 독파했을 때의 소감?

    세니오스에게 되묻고 싶을 뿐이었지.

    그렇다면 대체 왜, 빙결마법을 선택한 거냐고.

    다행히도 다음 페이지부터는 그에 관한 답이 있었다.

    ──────

    내가 빙결마법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

    진짜 삐뚤어져도 한껏 삐뚤어지셨다, 우리 세니오스 원로님.

    ──────

    나는 최약으로 최강을 증명하고 싶다.

    ──────

    속성마법에는 물고 물리는 상성이 존재하다.

    허나, 그중 최고를 뽑는다면 단언컨대 화염마법이다.

    카림제바가 화룡이라 불렸던 것처럼.

    압도적인 겁화에는 상성조차 뒤집을 힘이 있었으니까.

    이해하기 쉽게 과학으로 비유하자면…….

    ‘거센 불은 물조차도 증발시켜 버린다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세니오스는 집필한 서적에서도 은근히 자신의 야욕을 드러냈다.

    최약으로 최강을 증명하겠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멋진 말이겠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는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카림제바를 이겨 먹겠단 거잖아.’

    참 과거부터 한결같은 양반이구나, 싶었지.

    그러나 세니오스와 카림제바의 전투를 목격했던 나였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세니오스는 정말로 최약으로 최강을 증명할 뻔했다는 사실을.

    -“그대가 목숨을 걸었을 줄이야. 의외로군.”

    -“……!”

    -“허나, 목숨을 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속성 상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실상 무승부.

    카림제바가 자신의 심장을 불살라 위기를 타개하긴 했다만.

    카림제바 또한 살아도 산 게 아닌 부상을 입었으니까.

    그런 만년설의 세니오스가.

    자조하듯.

    써내려간 빙룡의 공략집이란 말이다.

    ──────

    애당초 집필하고자 했던 것은 속성 상성 극복에 관한 가설이었다. 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빙결마법은 쓰레기라는 결론이 서른 개나 나왔다. 그래서 나는 사고를 전환하여 빙룡을 추락시키는 방법을 서술하기로 했다.

    ──────

    그렇다.

    자신의 빙결마법을 쓰레기라 칭할 정도로.

    빙결마법의 약점을 집요하게 들여다봤을 세니오스였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빙룡?

    겉모습만 반짝거리는 쓰레기용(龍)에 불과했겠지.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그가 남긴 빙룡의 공략법이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뚝뚝─

    빙룡, 프로즈낙스가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다.

    “네놈, 마탑의 마법사인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이신데?

    하다못해 화염과 맞닿은 것도 아닌데, 얼음이 녹아내리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근데, 그렇게 놀라면 쓰나.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리고 마법사라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수석이지. 수석 마법사가 아니다.”

    그게 뭐가 다르냐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엄밀하게 다르다.

    악마 사냥꾼 같은 클래스로.

    여기까지 발버둥 쳐온 나의 처절함을.

    단순한 마법사 취급으로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마탑의 마도구를 들고 할 말은 아니지만.’

    둥실─

    공중에 부양시킨 건 다름 아닌 [소형 마력 태양].

    화염마법학 선임.

    벤쉬가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는 그 마도구가 맞다.

    [소형 마력 태양]

    [등급 : 에픽]

    [제한 : Lv.1,000]

    [효과 : 화염마법 사용 시, 그 마법을 흡수한다.]

    [설명 : 해가 뜨지 않는 세계의 태양이었던 기계 구체. 화염을 집어삼키며 사용자의 뜻에 따라 축적했던 화염을 찬란하게 내뿜는다.]

    레벨 제한 무려 일천(一千).

    ‘사실 선임 마법사의 출탑쯤이야.’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특히나 제로 산맥이 현실에 튀어나온 지금.

    선임 마법사가 제로 산맥에 서있기만 하더라도, 인류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지. 그 존재감만으로 플레이어들에게는 믿을 구석이 되고, 몬스터들의 기세는 크게 꺾일 테니까.

    그런데.

    ‘목적이 더없이 불순한 게 문제다.’

    벤쉬 윌리엄.

    그의 출탑 목적은 우선순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이유라도 성의있게 덧붙이든가.

    밑도 끝도 없이 마도구를 사용하기 위한 출탑이라니.

    그것도 보통 마도구라면 내가 말도 안 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마도구를 어디에 쓰겠다는 건데?’

    비범한 레벨 제한에서 알 수 있듯.

    [소형 마력 태양]은 착용하거나 휘두르는 마도구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아군과도 같은 마도구라고나 할까.

    ‘에픽 아이템답게 이질적인 효과다.’

    화염마법 발현 시, 마법 소모량을 줄여주지도 위력을 증가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가 발현한 화염마법을 흡수했으니까. 그러나 그 진가는 이제부터 드러난다.

    흡수한 화염마법을 연료로 삼아서.

    “……거슬리는군, 마법사.”

    빙룡조차 흠칫하게 할.

    이름 그대로.

    태양과도 같은 열기를 뿜어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나는 열기에 녹아내리는 빙산을 바라봤다.

    ──────

    빙결마법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물이 얼어붙지 않는 장소에서는 빙결을 유지하는 데에만 하더라도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빙룡을 추락시키기 위해서는 환경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

    세니오스의 공략과 함께.

    세니오스와 카림제바.

    두 반신(半神)의 결투를 상기해 본다.

    ‘전장은 북극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도…….

    -“강한 상대일수록 유리한 전장을 택하는 건 중요하다네.”

    세니오스는 전장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줬었지.

    최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결국, 빙룡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단순하게 폼을 잡으려고 빙산을 솟게 한 게 아니구만?

    설령 그것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고 한들.

    빙결 속성의 한계를 빙룡 또한 가지고 있다는 증거겠지.

    자신의 약점이 훤히 드러난 상황이거늘.

    만물의 왕이셔서 그런가.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러나 헛된 노력이구나, 마법사여.”

    쩌저저적─!

    다시금 얼어붙는 [히든피스, 빙룡의 설산].

    환경을 유지하는 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막대한 마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말이야.

    사실 드래곤의 마력이야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러나 무한에 가깝다는 거지, 무한은 아니다.

    뭣보다 그건 내가 잘 알고 있거든.

    ‘같은 핏줄이니까.’

    [첫 세계수의 축복]에도 한계가 있듯.

    분명, 네 마력에도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읊조렸다.

    “여전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군.”

    “상황파악?”

    “그 모습이 용보다는 개구리에 가깝지 않은가.”

    “……!”

    우물 안 개구리.

    동시에 달아오르는 물에 서서히 익어가는 줄도 모르는 개구리 같다는 중의적인 표현이었거늘……. 생략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랑펠.

    오죽했으면.

    “……개구리라.”

    잔뜩 성이 났던 유낙서스도 멈칫했겠냐고.

    하지만 놀랄 때가 아니다, 유낙서스.

    빙룡과의 전투는 장기전으로 몰고 가야 승산이 생긴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갉아먹을 때까지 빙룡의 공세를 버텨내야 한다는 뜻이다.

    “배신자 유낙서스. 이제는 마법사 놈과 놀아나는 게냐!”

    후두두둑!

    서릿발이 더욱 거세진다.

    아득하게 솟은 빙산도, 거대한 빙룡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치 어두컴컴한 차원의 틈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세찬 서릿발이 모든 감각을 차단했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나는 [소형 마력 태양]을 바라봤다.

    기계 태양을 등불 삼아서 빙룡의 다음 수를 예상해 본다.

    사실 뭐가 됐든 받아칠 자신은 있다.

    세니오스의 가르침은 아직 스물아홉 가지나 남아있었으니까.

    그런데…….

    쿠웅!

    이건 예상 밖의 패턴인데?

    파르르─

    백색의 겉날개가 펄럭거리고.

    유낙서스가 휘청거린다.

    젠장, 시작부터 육탄전이라니.

    진짜 성질머리 한번 대단하구나, 빙룡.

    하지만 동시에 영리하다.

    본능적으로 적의 취약점을 알아본 거겠지.

    “프로즈낙스!”

    유낙서스가 노쇠한 육체로 프로즈낙스의 공격을 되받아친다.

    비바체(Vivace).

    한계를 뛰어넘어 빠르게 뛰는 드래곤 하트의 영향.

    덕분에 당장의 힘 싸움에선 밀리지 않고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차이가 극심하다.’

    프로즈낙스가 전성기에 이른 드래곤이라면.

    유낙서스는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노룡이었으니까.

    그 차이가 육체의 크기에서도 보였다.

    “오만하구나, 유낙서스. 인간을 등에 얹은 채로 나와 맞서겠다는 것인가? 일만(一萬)의 세월을 살며 쌓아온 경험이 무색하구나. 그 꼴이 가련할 정도다.”

    쌔애애액!

    둔탁한 충격이 나한테까지 전해진다.

    보다시피 급박한 상황이건만.

    나는 유낙서스에게 물었다.

    “유낙서스.”

    “듣고 있습니다, 이호열 클라우디시여.”

    “그대와 비교하면 프로즈낙스가 살아온 세월은 얼마나 되는가.”

    “일천 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괜히 저렇게 혈기왕성한 게 아니었구나.

    사람의 나이로 치면.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거잖아, 저 빙룡.

    그렇다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저 태도도.

    자신의 육체 능력을 믿고 섣부르게 들이대는 것도.

    하지만.

    인생은 길고, 실전이다.

    중2 드래곤 녀석.

    “아직 훈육의 시기를 넘기지 않았으니.”

    역시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겠지.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엔 거리를 좁히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마법사는 근접전에 취약한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스릉─

    허리춤에서 귀철을 뽑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귀철이 입을 연다.

    -주인이여. 저 핏덩이 드래곤을 베면 되는가?

    주눅이 들기는커녕 빙룡더러 핏덩이라니.

    진짜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냐, 귀철.

    자신감이 넘쳐서 나쁠 건 없다만, 하나 확실하게 해야 한다.

    “베는 것이 아니다, 귀철.”

    -베는 것이 아니라면……?

    “체벌이다.”

    -그런 뜻이었군. 알아들었다, 주인이여.

    사력을 다해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말까 한 드래곤을.

    체벌로써 훈육하겠다니.

    누가 봐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선언이 아닐 수 없겠지.

    그러나 설령 패배해 눈을 감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지 않는다.

    [최후의 모험가] 효과는 발동 중.

    빙룡에게 패배한다고 한들 경험이 남는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실전경험이 말이야.

    ‘그게 죽어도 잘 죽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사실상 독학만으로 현재에 도달한 그랑펠의 찬란한 재능이다.

    그런 그랑펠의 재능이, 죽음이라는 경험에서 어떤 성과를 얻을지는.

    나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거기에다가.

    세니오스가 남긴 지식.

    귀철.

    십여 개의 결전용 마도구.

    그리고 유낙서스까지.

    그러니까.

    해볼 만하다.

    나는 빙룡, 프로즈낙스에게 말했다.

    “그럴 시기라는 것을 참작하여 처분하마.”

    “……?”

    “친히 지도해주겠다는 의미다.”

    “……!”

    쌔애애애액!

    난데없는 선언에 눈발이 더욱 거세진다.

    분노에 부글거리는 프로즈낙스의 음성이 이어진다.

    “하찮은 미물이 무엇이라 떠드는 것이냐?”

    하찮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수천 년에서 만 년을 사는 드래곤들에게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도 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느 쪽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거든.

    그리고.

    나의, 그랑펠의 기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다.

    그러니까 뻔뻔하게도 읊조렸다는 것이다.

    “이천(二千) 년.”

    “……이천 년?”

    “인간의 삶과 드래곤의 삶을 동일시한다면.”

    “……뭐라고?”

    “나와 그대 사이엔 대략 이천 년의 격차가 있다는 의미다.”

    프로즈낙스는 물론, 유낙서스도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인간, 이호열의 나이를.

    드래곤 나이로 환산하면 대략 삼천 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으니까.

    그러나 상관없다.

    말했다시피 기준은 나 자신.

    증명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니까.

    서리 바람에 나부끼는 재킷.

    나는 천천히 귀철을.

    아니, 훈육의 회초리를 세워 들었다.

    “이천 년의 격차를 보여주마, 해츨링.”

    .

    .

    .

    용의 신전.

    수십의 드래곤이 일제히 깨달았다.

    노룡, 유낙서스는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래곤 하트.

    심장에 각인된 ‘맹약’이 드래곤의 육체를 죄어왔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드래곤의 정신세계에.

    거스를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룡(全龍)에게 고한다.

    “……!!!”

    쿵!

    그러자 드래곤의 머리가 떨어졌다.

    쿵쿵!

    하나둘.

    ……쿵!!

    전룡이 머리를 바닥에 납작 붙인 채 조아렸다.

    -내가, 클라우디의 후계자가 돌아왔음을.

    위대한 가문의 귀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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