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용과 같이 (4)
용(龍).
만물의 왕으로 태어났기에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
허나 용의 오만을 탓하는 이는 없다.
용, 드래곤에겐 오만조차 겸손으로 보이게 할 전능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드래곤에게 있어서 패배와 굴욕이란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노룡.
유낙서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계획이 자신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한들.
자신을 배반한 동족의 손에 맞게 되는 최후는 결코 달갑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원통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외면했을 뿐이다.
감히 제까짓 게 원통해할 자격은 있는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관하며.
그러나 드래곤 하트가 멈춰가던 순간.
절규하듯 내뱉었던 마지막 드래곤 피어.
그 울음소리에는 틀림없이 분함이 담겨있었을 터.
‘부끄럽구나…….’
클라우디께서는 분명 그 분함을 알아차리신 것이리라.
유낙서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호열의 말에 담긴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훈육과 체벌이라는 목적을 내세워…….’
늙은 노룡의 최후에 함께 해주시려는 것입니까?
진정으로 분에 넘치는 일이었거늘.
유낙서스는 쉽사리 승낙할 수 없었다.
‘……분명 위험에 빠지실 겁니다.’
말했다시피 자신은 동족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도 모자라, 클라우디와의 ‘맹약’조차 외면해 버렸으니……. 클라우디의 귀환을 알린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유낙서스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느꼈다.
‘또한 저는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심장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것은 회광반조.
드래곤 하트는 언제 멈춰도.
자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까 자신 따윈 어찌 죽어도 문제가 없겠지만…….
‘클라우디, 당신께서는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운가, 유낙서스?”
“……!”
“다가오는 죽음이.”
담담한 말이 정곡을 찔러왔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기에.
죽음 따윈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거늘.
닥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자신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던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두렵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나의 심장이.
행여라도 클라우디, 당신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을까 두려웠기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두렵다면 내가 그대와 함께하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가 눈을 감는 순간을, 내가 목격하겠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목적이 훈육이든, 체벌이든, 자신의 분함을 갚기 위함이든.
진정으로 함께 나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설령 위기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유낙서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제게 그렇게까지…….”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한 말이 돌아왔다.
“그래야 그대가 잊히지 않을 테니까.”
“……!”
“그래야만 전설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테니까.”
그대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전설이 되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클라우디는 이 순간.
무엇보다 따뜻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유낙서스가 고개를 숙였다.
“노룡이 클라우디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둬야만 했다.
자신에겐 그 제안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유낙서스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노쇠한 제게는 당신을 호위할 능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향하는 길이 클라우디, 당신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뜻을 헤아린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위로 덕분에 진정으로 죽음에 두려움 따위는 남지 않았으니.
당신께서 사지(死地)로 함께 비행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내, 돌아온 대답에 유낙서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것은 수십 마리의 드래곤과 마주할 이가 뱉을 말이 아니었으니까.
“우려할 것 없다.”
“……?”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용이 나를 적대한다고 한들.”
“……!”
“나는 죽지 않는다.”
.
.
.
[최후의 모험가 : 아르카나 대륙에서 사망하지 않습니다. 사망 시, 즉시 현실로 귀환하며 일정 시간 동안 아르카나 대륙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 쿨타임 : 24시간]
죽지 않는다.
적어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만큼은……!
그 사기적인 효과를, 나는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르카나 대륙을 오갈 수 있게 된 이제부터는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죽음도 절대 헛되이 여겨선 안 된다.’
말 하나 마나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각오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드래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 앞에서 격식을 운운하러 가는데. 나도 양심이 있지. 목숨이 온전하리란 기대는 티끌만큼도 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진짜 [최후의 모험가]라도 있어서 망정이지.’
진짜 고집 장난 아니구나, 그랑펠.
꼰대 기질이 지나칠 수 없어서 드래곤을 체벌로써 훈육하겠다니.
만약, 현실의 제로 산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 봐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니까 일단은 다행이라 여기자.
이런 상황이 아르카나 대륙에서 벌어진 것에 대해서 말이야.
물론, 그렇다고 또 마냥 기뻐할 순 없다.
유낙서스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실감하고 있었거든.
점점 나를 옥죄어오는 클라우디의 존재감을……!
내가 진짜 설마 설마 했다.
그 ‘위대한 가문’이 ‘클라우디’라는 걸 짐작했으면서도.
끝까지 부정했다는 말이다.
그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그랑펠의 설정이 실현된 것도 충분히 말이 안 되는 일인데. 클라우디 가문까지 실현되는 건 스케일, 그 자체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진짜 현실을, 흑역사를 진심으로 부정하고 싶다.’
분명, 그랑펠은 말했었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믿지 않겠다.”
남의 말만 듣고 단정 짓는 것?
설령 그게 유낙서스의 말이라고 해도.
그랑펠의 고고한 성질머리에 있을 수 없는 일.
덕분에 클라우디 가문의 저택이라도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랑펠은 클라우디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섣부르게 인정하지 않을 거다.
다만.
‘나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젠장,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간결하게 생각해야겠지.
우선 직면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거다, 호열아.
나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월드 퀘스트 : 노룡의 마지막 비상]
죽어가는 노룡은 결단했다.
자신의 최후를 동족의 미래를 위해 불사르겠다고.
노룡의 꾸짖음에 대륙이 전율하리라.
─노룡의 최후를 목격하라. (진행 중)
─노룡을 도와 [용의 신전]에 도달하라. (진행 중)
떠오른 퀘스트 목표는 두 개.
첫 번째는 기본 목표겠고, 두 번째 목표가 내 입방정이 불러온 추가 퀘스트 목표겠지. 그나저나 [용의 신전]이라.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장소라는 게 느껴진다.
“전룡소집은 [용의 신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유낙서스의 말에 따르면.
[용의 신전]은 제로 산맥 최상층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라고 했겠다.
그걸 아르카나 시스템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제로 산맥을 클리어해야 열리는 최종 콘텐츠란 뜻이겠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구나.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된다.
엘프에게도 엘프들의 고향, 시슬리가 있었으니.
드래곤들에게도 그들의 공간.
용의 신전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단지 그냥 걱정된다는 이야기다.
‘이거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도 전에…….’
나라는 계란이 먼저 깨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왜, 지구에 나타난 제로 산맥의 정보를 생각해 봐라.
그 적정 레벨이 무려 [누구에게도 권장되지 않음]이다.
그런데, 제로 산맥보다 한술 더 뜬 장소라니.
진짜 혼자였으면 진입할 엄두도.
아니, 엄두를 냈어도 진입하지 못했겠지.
‘아르카나 대륙에 제로 산맥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유낙서스와 함께인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 말했잖아?
드래곤은 차원을 찢는다고.
이내, 유낙서스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소란스러워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콰지지지직─!
그러자 허공이 찢겨 나갔다.
그 광경을 나는 묵묵히 지켜봤다.
시종일관 거만한 철면피엔 드러나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 적잖이 어이가 없었다.
‘누구는 전력을 다해서 찢었는데……!’
유낙서스는 쓰러져가는 몸으로도 어렵지 않게 차원의 틈을 열어버렸으니까. 이게 바로 핏줄의 차이구나.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 혈통이 바로 저런 거구나.
내가 티를 내지 않고 탄식을 삼키던 순간이었다.
유낙서스가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클라우디시여, 먼저 진입하시지요.”
……아니, 내가 먼저?
잠깐, 잠깐만.
저기,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용의 신전]에 있다는 드래곤들이 내게 호의적일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는 안면이 있는 유낙서스, 그대가 먼저 얼굴을 들이미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유낙서스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어깻죽지를 바라보면서.
“제 꼴에 면목이 없습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동족에게 양 날개를 뜯긴 유낙서스였다.
그 탓에 앞서 나아가며 활로를 열 수 없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런 거라면 우려할 것 없다, 유낙서스.
완전무결한 그대는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결점을 보완하는 방법이야, 이 세상엔 무궁무진하거든.
‘크흠. 이걸 자랑이라 하기는 뭣하지만 내가 또.’
악마 사냥꾼이라는.
나사 빠진 클래스로 여기까지 발버둥 쳐온 나잖아?
나보다 꼼수에 능통한 사람이 또 없을걸?
“고개를 들게, 유낙서스.”
나는 하이엘에게 말을 이었다.
“하이엘, 이 날개를 유낙서스에게 걸쳐주거라.”
갑자기 무슨 날개라고 묻는다면.
무슨 날개겠는가.
당연하게도.
마탑에서 대여한 열두 점의 마도구 중 하나.
내게는 더없이 익숙한 백 가지 빛을 뿜어내는.
[백색(百色)의 겉날개]다.
유낙서스,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대다수의 마도구엔 레벨 말고는 제한 같은 게 존재하지 않거든.
딱히 종족을 가리지 않고 착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이엘이 주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뿐─
하이엘이 유낙서스의 광활한 등에 겉날개를 얹었다.
파아아앗─!
그러자 겉날개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유낙서스의 잘려나간 날개를 대신해서.
아니, 그보다도 훨씬 찬란하고 화려하게.
유낙서스의 덩치에 맞는 날개로 변해갔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키코 선임, 성의는 알겠는데.’
마탑에서 백색의 겉날개를 대여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마르셀로의 말에 따르면, 다른 마법사들은 겉날개의 성능을 1할도 사용하기 어렵다나 뭐라나.
마법부여학 선임, 키코는 그런 나를 위해서.
또 마법부여학의 연구를 위해서. 백색의 겉날개에 새로운 효과를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었다. 그 새로운 효과가 바로 [비행] 효과였고.
‘정말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데…….’
저걸 내가 착용한 모습을 생각하니, 진심으로 끔찍했다.
재킷이 펄럭거리는 것도 모자라서는.
겉날개까지 진짜 날개처럼 펄럭이는 꼴이라니.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거든.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새로운 날개는 마음에 드는가.”
그러니 혹시라도 거절할 생각은 말아주라, 유낙서스.
“…….”
유낙서스는 제 뜻대로 한두 차례.
날개를 펄럭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더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길을 열겠습니다.”
화려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수가 적어진 건가……?
그런 우려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유낙서스.
취향까지 배려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우리.
‘자, 그럼 나도.’
마법을 발현.
앞서서 활강하는 유낙서스의 뒤를 쫓아야겠지.
어디 보자.
마력이 얼마나 재생됐으려나.
내가 마력의 잔량을 확인하려던 순간이었다.
쿠궁!
유낙서스가 고개를 조아리는 것도 모자라.
내 앞에 엎드렸다……?
그러더니 말을 내뱉었다.
“클라우디시여, 이 미천한 노룡 유낙서스에게 부디. 당신께서 하사하신 날개로, 당신과 함께 날아오를 영광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용기사, 스칼이 들었으면 기절할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