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용과 같이 (3)
나부터가 막내라서 잘 알고 있다.
원래 첫째는 막내에 약하다는 걸.
그래서 하이엘에게 명했다.
유낙서스의 위치를 찾아보라고 말이야.
마력흔을 추적한다면야 어렵지 않게 위치를 특정할 수 있긴 하다.
근데, 나는 유낙서스가 마법을 발현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거든. 게다가 드래곤이 발현하는 게 마법이라 확신할 수도 없다.
그 탓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히 넓어야 말이지.’
아르카나 대륙은 광활하다.
유낙서스의 몸집이 아무리 커다랗다고 해도 사막의 모래알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까 하이엘이 유낙서스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게 아닌가, 하고는.
그런데 기우였다.
텔레파시처럼.
머릿속을 파고드는 울음소리가 있었으니까.
-“크ㄹ…….”
드래곤 피어.
유낙서스와 직접 마주했던 하이엘이라 그런가.
나보다도 먼저 유낙서르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하이엘이 곧 유낙서스의 울음이 들려온 위치를 전해왔다.
머뭇거릴 이유는 없겠지.
나는 곧바로 포탈을 발현하고 빛 무리 속으로 나아갔다.
그랬더니 보였다.
‘어쭈?’
악마 무리가.
진짜 주제 파악이라고는 조금도 못 하는 게.
더없이 악마다운 모습들이구나.
‘겁도 없다. 진짜로.’
죽어가는 노룡.
유낙서스가 숨이 멎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악마들이었다.
이유야 뻔했다.
유낙서스의 시체에서 뭐라도 얻어가려는 속셈인 거겠지.
그런데.
내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냐?
아니, 내가 발끈해서 나설 필요도 없었다.
유낙서스.
어쨌거나 세계수를 통해 연결된 인연이거늘.
그런 유낙서스가 죽어가는 걸 애타게 바라고 있는 꼬라지를.
그랑펠이 용납할 것 같아?
심지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게 악마?
‘청렴결백과 긍지를 동시에 자극한 짓이지, 이건.’
사냥감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당연히 입을 열 필요는 없다.
마력을 끌어올리거나 귀철을 치켜들 필요 또한 없다.
또각─
그저 한 걸음.
발을 내디디자.
악마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조금 전 떠오른 메시지를 읽어보면 의아한 일도 아니겠지.
수천만의 악마들에게.
상태이상, ‘공포’를 발생시켰던 나였다.
그런 나와 악마가 마주하고도.
“……!!!”
[상급 악마, 플라임프에게 ‘압살’이 발생합니다.]
[중급 악마, 인큐버스에게 ‘압살’이 발생합니다.]
[모독의 일곱 손가락, 세브나위에게 ‘압살’이 발생합니다.]…….
멀쩡한 게 더 의아한 일일 테니까.
그 광경을 그랑펠식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벌레를 짓밟는 수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악마 무리를 사냥했다고 한들.
우쭐대는 일은 없다.
이 정도는 해줘야 천적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리고 경험치가 미동도 없는 걸로 봐선.’
기껏해야 400~500레벨 언저리의 악마들이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선.
정말로 유낙서스가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저런 하찮은 악마조차 쫓아내지 못한 거야.’
유낙서스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치유마법으로 유낙서스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었다. 내가 파둔 살 구멍, 우물에는 치유마법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벨리에 수준까지는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웬만한 힐러 클래스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단 것이다. 그러나 오만이었다. 아니, 오만이라기보다는 대상을 과소평가했다.
드래곤.
만물의 왕.
엘프조차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던 무결점의 생물.
엘프의 지도자, 아젠트레스의 말에 따르면.
드래곤은 [첫 세계수의 축복]이 없어도 완벽한 존재였다. 그 말인즉슨, 세계수의 축복 효과를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거겠지.
‘그런 생명력 재생력 효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상처.’
용마대전(龍魔大戰).
더군다나 마탑이 서적으로 남긴 기록에서 나는 목격했었다.
그 어떤 초고위마법으로도 드래곤의 가죽에는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고.
한데, 그런 드래곤의 살갗이 갈가리 찢겨져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군…….”
차원을 자유롭게 활강하던 날개 또한 보이지 않았다.
과연, 하이엘이 말꼬리를 흐릴 만도 했다.
나는 그런 유낙서스에게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정말, 머릿속으론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대체 누가 유낙서스를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부터.
이래서야 유낙서스와 대화를 나눌 수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미 숨을 거둔 건 아닌가, 하는.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유낙서스가 힘겹게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영락없이 임종 직전 눈을 뜨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선과 마주하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기이로도 무리인가.’
『치유마법』의 간섭 과정에 더할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건가?
그렇게 발버둥을 쳐왔건만…….
드래곤의 죽음을 거스르기에는 아직 나의 수준이 한참 미달이었다.
그런데.
간신히 뜬 유낙서스의 동공이 어째서인가.
휘둥그레져 있었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확실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날 보고 그렇게 놀랄 이유가 있나?
‘왜, 우리 텔레파시까지 나눈 사이잖아.’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지만.
유낙서스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왜, 내 아이템 정보를 꿰뚫어 본 것처럼.
‘나더러 여명이라고 불렀었잖아?’
하이엘이 또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을 터.
그러니까.
저렇게 놀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ㅋ…….”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처럼.
유낙서스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새어나온 소리가 워낙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혹시라도 감사를 표하려고 하는 건가? 내가 알짱거리는 악마를 처치해 준 것 때문에?
아니, 그런 거라면 애써 말할 필요 없다.
‘구하려고 했던 것도 있다만.’
그저 악마라면 두고 볼 수 없을 뿐이니까.
찾아온 것 또한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
피를 나눈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같은 세계수 족보 아니겠어?
내가 또 이런 규율에는 철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좀 있거든.
그러니까 나는 너그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나의 말에도 힘겹게 말을 잇는 유낙서스.
이어진 건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었으니까.
“……클라우디.”
크으을라우우우디라고?!
얼굴을 보자마자?!
진짜 내 상태창이라도 꿰뚫어 본 거야, 뭔데!!
.
.
.
유낙서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은발은 틀림없이 과거.
자신과 동족을 구원했던 클라우디가(家)의 은발이라고.
그렇기에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머니, 어째서입니까?’
클라우디.
아르카나를 가장 미워해야 할 존재에게.
어찌하여.
‘아르카나를 굽어살펴야만 하는, 축복을 내려주신 것입니까?’
영겁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세계수의 뜻을 의심하지 않았던 유낙서스였거늘.
노룡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뜻 따위는.
클라우디에게는 빌어먹을 농담조차 되지 못할 테니까.
그렇기에 유낙서스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동시에 죽음을 눈앞에 둔 자신의 처지를 다행이라 여겼다.
‘저는 이런 운명의 장난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유낙서스.”
유감스럽게도.
의심이 아니다, 정령이여.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숨을 거둘 때를 기다리는 것뿐.
유낙서스가 생각하는 순간.
클라우디의 입이 열렸다.
‘자비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더없이 냉랭하리라 생각했다.
윽박질러도 마땅하리라 여겼다.
클라우디의 최후를 회상하면, 그리고 그 최후를 외면했던 자신과 동족들을 고려하면……. 곧장 ‘맹약’을 이행하라 명해도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째서란 말인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들려온 것은 더없이 인자한 음성이었다.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럼에도 이해한다는 것처럼.
자애로운 목소리였다.
유낙서스는 자신도 모르게 읊조리고 말았다.
“……클라우디.”
죽어가는 자신이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서.
다시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노룡, 유낙서스가 클라우디를 뵙습니다…….”
가냘픈 숨이 지금껏 붙어있던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까.
유낙서스는 정말로 심장이.
드래곤 하트가 멎어가는 것을 느꼈다.
쿵…….
쿠웅…….
쿠우웅…….
걷잡을 수 없이 느려지는 박동.
정말로 비겁한 일이거늘.
유낙서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용서하십시오. 말씀에 담긴 뜻을 멋대로 해석했습니다.’
클라우디의 한마디.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모든 것을 외면한 채 영원한 안식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유낙서스가 영겁의 삶을 체념한 순간이었다.
“유낙서스.”
“……?”
“내게는 아직 그대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
“……!”
……제가 멋대로 곡해한 게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눌 이야기가 있다.
그건 변명 아닌 변명을 듣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유낙서스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족에게 찢겨나간 날개가 있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서 화답했을 정도로.
그러나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쿵…….
정말로 심장이 멈춰가고 있었…….
……쿵!
……쿵쿵?!
쿵쿵쿵쿵쿵!!
움찔!
유낙서스의 육체가 크게 튀어 올랐다.
무엇이란 말인가?
멈춰가던 드래곤 하트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되돌아온 것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오직 심장만이 다시 빠르게 뛰고 있을 뿐.’
그러나 그것으로도 족했다.
드래곤으로서의 모든 힘은 그 심장, 드래곤 하트에서 비롯되니.
일시적이라고 하더라도.
바람 앞의 촛불이라고 하더라도.
심장이 빠르게 뛰는 동안에는.
그 어떤 일이든 능히 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그러니 이해하거라.”
클라우디, 그가 내뱉은 ‘단어’에 대체 무슨 힘이 담겨있길래.
느릿하던 심장을 다시 빠르게 뛰게 한단 말인가?
유낙서스는 그 단어를 눈을 감는 순간까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바체(Vivace).”
.
.
.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
[만물과 통하는 지도].
[마안(魔眼)의 망원경]…….
마왕의 전리품은 이질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아르카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운율의 지휘봉]
[등급 : 에픽]
[제한 : 없음]
[효과 : 착용 시, 방대한 음악적 지식을 습득하며 그 음악적 지식과 동일한 효과의 버프를 착용자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 것에게 부여한다.]
[설명 : 고상한 외관만큼이나 고상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점차 꺼져가는 유낙서스의 심장 박동을.
임시방편이지만 빠르게 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구질구질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조금만 더 그럴싸했어도.’
회복의 기이를 발현해서 멋지게 유낙서스를 구해낼 수 있었겠지.
꼭 회복마법을 들먹이는 게 아니더라도 반전마법에 조금 더 능숙했더라면. 어쩌면 유낙서스를 상처 입기 전으로 반전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특기는 주제 파악이다.
덕분에 나는 그게 얼마나 아득한 경지인지를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실천할 뿐.’
다르게 말하자면.
항상의 자세로 발버둥 치겠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해해라, 유낙서스.
그런 나의 방식은…….
지나치게 오글거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 단어를 또 내뱉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지휘봉을 간결하게 휘저었다.
“비바체(Vivace).”
예상대로 효과는 유효했다.
아무리 황당하다고 해도 눈치는 잊지 않았거든.
덕분에 유낙서스의 말에서 짐작했다.
-“노룡, 유낙서스가 클라우디를 뵙습니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클라우디와 유낙서스는 관련이 있다는 걸.
그것도 천하의 유낙서스가 극존칭을 쓸 정도로.
굉장히 진하게 엮여있다는 걸 말이야……!
쿠구궁!
유낙서스가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어떻게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건 서로가 잘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니까.’
그 심장이 언제 멈출지는 나도, 유낙서스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곧바로 본론을 꺼낸다.
그래,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계수의 뜻이 대체 무엇인지부터.
‘사실 제일 궁금한 건 이쪽이다……!’
클라우디.
그 빌어먹을 이름이 아르카나 대륙에 존재하는 이유까지.
그러나 모든 일엔 절차가 있는 법.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감히 누가 엘더 드래곤.
유낙서스.
그대를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다.
나는 유낙서스에게 물었다.
“전룡소집의 경과를 알고 싶군.”
“……!”
흠칫하는 게.
내가 어떻게 전룡소집에 관해 알고 있는지 놀란 모양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만.
이렇게 촉박한 때에 스칼이 누구이며.
클래스 퀘스트는 또 무엇인지까지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철면피를 유지한 채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나는 전룡소집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동족, 드래곤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단 거잖아?!
‘괜히 죽음에 내몰린 게 아니었어.’
진짜 이놈의 세계수 족보.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또 없구나.
나는 진심으로 지껄였다.
“오만하기 그지없군.”
뭐가 만물의 왕이냐 이놈들.
엄마 말을 안 듣는 것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효자인 맏형, 유낙서스의 뒤통수를 쳤겠다?
그 집안 꼬라지를.
그랑펠의 꼰대 정신이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런 의미에서 묻겠다.
“유낙서스.”
그래서 뒤통수의 얼얼함은 어떠한가?
정말로 이대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겠냐고 묻는 거다.
왜, 아무리 [최후의 모험가] 효과가 있다고 해도.
나 혼자 드래곤 패거리에 달려드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런 속뜻을 그랑펠식 화법으로 전달했다.
“그대는 훈육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참고로 말하자면.”
더없이 뻔뻔하게도.
“나는 체벌에 찬성하는 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