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용과 같이 (1)
집무실 앞에는 선임 마법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코 아르민, 벨리에 유시아, 뱅그릿 톰, 마티스 딘 카를, 나스로우……. 심지어는 접점이 없는 몇몇 선임들까지.
‘갑자기 뭔데.’
한데, 그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짚이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아르카나 대륙에 관한 건은 아닐 거야?
규율에 따라 처분할 거라는 걸.
조금 전 크리스탈 홀에서 발표하고 왔던 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그건가?’
죽을 때까지 마도구를 대여하겠다는 그거?!
특히나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온 것 같은.
키코 선임을 보면 추측에 더욱 신빙성이 생긴다.
이렇게 많은 선임이 찾아온 것도 이해가 간다.
‘내가 당신네들 학파 마도구를 왕창 빌려 와서 그런 거지?’
빙결마법학 선임, 커튼 레블까지 온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군. 그래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순간이었다.
키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호열 수석님.”
아니, 죄송할 게 뭐 있어.
조율도 안 하고 결전용 마도구를 열 하고도 두 점이나 더 대여한 내가 더 잘못했지.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뻔뻔하게 입을 연다.
“내게 사죄할 것 없다.”
“……아닙니다.”
“용건이 있어 나를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이야기해 볼까.
어차피 최상층까지.
혼자 계단을 올라가기 적적하던 참이었다…….
……또각─
마탑 최상층 목전.
나는 걸음을 멈췄다.
……무슨 용건이 있나 했더니만, 뭐야.
‘내가 죽어? 죽긴, 왜 죽어 내가?!’
문제의 근원은 지나치게 직설적인 이놈의 화법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키코를 비롯한 선임 마법사들은 완벽하게 오해한 것이었다……!
“이렇게 수석님을 떠나보낼 순 없습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아르카나 대륙으로 진입한다고!
내 행적을 되돌아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런 과잉반응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일단, 덩그러니 접속기를 내놓은 것부터가.
뭐랄까, 유산을 남겨놓는 느낌 같기는 했지?
‘내가 없어도 잘 부탁한다는, 그런 뉘앙스.’
결전용 마도구를 바리바리 대여해가는 것도 그렇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는.
비장한 출사표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대여기간을 명시한 것까지.
‘결국, 이것도 스스로 불러온 일이었구나.’
당연하게도 오해는 바로잡아야겠지.
사실 [최후의 모험가]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싶은데. 플레이어들이 마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선임 마법사들도 시스템이란 개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터.
결국, 나답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대들의 우려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군.”
“……!”
“허나 이 역시도 걱정할 것 없다.”
그야 나는 멀쩡하게 살아 돌아올 거니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한 번 죽을 것 같기도 하다만…….
어쨌거나 다시 마탑으로 돌아올 거다.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나는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
“믿어라. 돌아오겠다.”
굳이 안 붙여도 될 사족까지 덧붙인다.
“그대들의 서류를 심사하기 위해서라도.”
하여튼, 과할 정도로 업무에 충실하다니까?
“!!!”
선임들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이나마 밝아졌지만.
마티스만큼은 여전히 우려스러운 눈빛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걱정할 것 없다, 마티스.
이게 설명하기는 뭣해도 진짜로 안심해도 된다니까?
그런 눈빛을 보내자 마티스가 고개를 숙였다.
“이 수석님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일 필요까진 없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탑 최상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자.
규율도 오해도 바로잡았겠다.
드디어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쿵!
마티스는 집무실의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다.
‘수석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켜내셨습니다.’
여태껏 봐온 게 있었기에 이번에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께서는 분명 마탑으로 돌아오시겠지.
그러나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켜내는 경이기에.
가슴을 찌르는 말이 있었다.
“……사망하는 순간까지.”
최상층으로 향하는 계단 담화에서 마티스는 호열과 타 선임 마법사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그 대화 속에서도 호열은 끝까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티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경께서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계신 겁니까?”
불현듯 호열의 이질적인 마력이 떠오른다.
갈등의 마왕성에 넘실거리던.
헤아릴 수 없는 이질적인 마력이.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는 것 또한 경의 과거와 관련된 것입니까…….’
흑마도학의 창시자로서 대륙을 떠돌며 수많은 흑마법을 지켜봤던 마티스였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보다 아르카나의 음지(陰地)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 즐비한 음지 말이다. 허나, 죽음이 가까운 것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마티스는 장담할 수 있었다.
‘경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 저리도 꼿꼿할 순 없으리라고.
그러니까 더더욱 가늠할 수 없었다.
경께서 어떤 과거를 품고 계시는지를.
다만, 한 가지만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클라우디…….”
그 뜻 모를 단어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만.
*
어나더 스페이스 호.
“아차, 소식 들으셨어요?”
“소식? 한눈팔 새가 있어야지.”
“쓰읍,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있다가도 사라지는데요? 제가 한눈파는 사람 같잖아요.”
제로 산맥.
최정상에서 드래곤이 포착됐던 그날 이후.
사내는 제로 산맥에서 관심을 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원을 찢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드래곤이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진짜 안 궁금하세요?”
“무슨 소식인데, 호들갑이야?”
“이거 진짜 빅뉴스라고요, 선배!”
빅뉴스 아니기만 해봐라.
“나 대신 이 자리에 앉혀버릴 테니까.”
사내는 그제야 산맥에서 눈을 뗐다.
그러고는 후배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액정에는 AAU 측에서 전해온 지구의 소식이 떠올라 있었다.
“……뭐야, 이거?”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오늘 만우절 아니지?”
“아니, 선배. 지구랑 여기가 시차가 아무리 심해도 그렇지. 만우절은 너무 앞서가셨어요. 그보다 이제 제가 왜 그렇게 질척댔는지 아시겠죠?”
빅뉴스.
레이먼 션이 월드 퀘스트의 방아쇠를 당겼고.
그로 인해 아르카나 대륙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단다.
그 매개체는 다름 아닌 아르카나 대륙 전기의 접속기였고.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냥 기뻐할 소식이 아니잖아, 이거.”
분명, 크나큰 파장을 가져올 터.
젠장,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사내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지구와 우주의 시차 덕분이었다.
“서, 선배?”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
사내는 반사적으로 계기판을 바라봤다.
그러자 드래곤이 차원을 찢고 활강하던 그때처럼.
“!!”
계기판이 최대치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로 산맥에 드래곤이 돌아왔다는 것.
타다닥!
레버를 조작하자 어나더 스페이스 호의 렌즈가 이동한다.
이내, 모니터에 떠오르는 제로 산맥의 풍경.
그런데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안개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때처럼 블랙홀이 포착되지 않았다.
뜻하지 않던 상황.
당황한 사내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선배, 그쪽이 아니라 위쪽이요……!!”
“위쪽이라고?”
사내는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지구상에 제로 산맥 최상층보다 높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위쪽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태평양에 위치한 제로 산맥.
그 위도상의 위쪽.
정확하게는 북위 37도 동경 126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서울의 상공에 블랙홀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저게 왜 서울에……!!”
경악도 잠깐.
다급하게 전환되는 렌즈의 시야.
어나더 스페이스는 곧, 그 정확한 위치를 특정해 냈다.
사내가 말을 입을 열었다.
“마탑…….”
말꼬리를 흐렸다.
“설마, 이호열 총책임자님께서……?”
.
.
.
잘했다, 이호열.
아무리 생각해도.
마탑 최상층에서 기이의 포탈을 발현한 건 잘한 짓이었다.
그냥 포탈과는 다르다.
정말로 차원을 찢는다는 표현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었다.
콰지지지직!
균열이 나타나듯.
허공이 찢어지고.
찢어진 차원의 틈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간다.
그 박력이 오죽했으면.
잠자코 지켜보던 두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도 흠칫했을까.
꼬리를 바짝 세운 탑주가 내게 말한다.
“이 수석, 혹시라도 생각이 달라졌으면 언제든 말만 하도록.”
하여튼, 저저 고양이 수작 봐라.
틈만 나면 탑주 자리를 떠넘기려고……!
당연하게도 가뿐하게 무시한다.
“수뇌부의 찬성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수석.”
이젠 유그위드까지 거드는 게 정말로 환장할 노릇이구나.
그래도 마르셀로만큼은 확실하게 내 편이었다.
말보다는 그저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사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말이야.’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악마 사냥꾼 클래스 퀘스트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대형 퀘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퀘스트를 성공하고, 수행 중인 나였지만.
마르셀로의 연구 퀘스트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었다.
‘그야 목표가 말도 안 되니까.’
기이를 탐구해 아르카나 대륙으로 되돌아가겠노라!
그 창대한 목표가 무색하게도.
레이먼 션이 접속기라는 답안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먼 훗날에서야 지금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을 테니까.
마르셀로도 그 점을 알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거고.
그러나 그랑펠의 긍지를 간과하지 마라, 마르셀로.
‘당장은 몰라도.’
남이, 그것도 레이먼 션이, 사냥감이 떠먹여 준 답에 그랑펠이 만족하겠어? 왜, 지금만 하더라도 훨씬 편리한 접속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게다가.
‘접속기는 고작해야 10개다.’
그런 접속기의 구조를 모방한 기이로는 나 혼자 대륙을 오갈 수 있는 포탈을 발현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지금 발현한 포탈을 그랑펠 식으로 평가하자면…….
“그대가 보기에도 비효율적이지 않나, 마르셀로?”
더없이 형편없는 구조라는 거겠지.
“……!”
놀란 마르셀로에게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머릿속 생각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실시간으로 잡아먹는 마력량이 장난이 아니었으니……!
‘이러다가 진입하기도 전에 마력 탈진이다.’
역시나 한마디로 함축해서 전달하는 게 최선이었다.
“복귀 후에 기이에 관한 연구를 속행하지.”
과연, 마르셀로였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내 속뜻을 알아차린 건지.
곧장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마르셀로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 말씀을 명심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경.”
그 배웅을 받으며 나는 기이의 포탈로 나아갔다.
그냥 포탈에선 빛이 쏟아졌다면.
기이의 포탈에선 짙은 어둠이 쏟아졌다.
그러나 내 이명(異名)이 무엇이던가.
‘내 입으로는 언급하기도 싫지만…….’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는 말이다.
이깟 어둠에 지레 겁을 먹기에는.
내 흑역사가 더 어둡고, 두렵다는 것이다…….
.
.
.
어둠 속에서 눈을 떠본다.
왔구나.
아르카나 대륙.
낯설지 않은 메시지가 나를 반겨준다.
[멸망을 향해가는,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셨습니다.]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가겠노라.
이번에도 역시나 내뱉은 말은 지키고 말았구나, 그랑펠.
그런 의미에서 [만물과 통하는 지도]를 통해 아르카나 대륙을 밟았던 때가 떠오르는군.
빈사 상태에서.
아이언 캐슬 호의 마력포와 함께 수백만 악마와 산화하기 직전.
나는 분명 그렇게 지껄였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악마 사냥꾼.”
-“내가 바로 너희의 천적이자 공포다.”
그렇다.
그 말도 빠짐없이 지켜야 하지 않겠어?
지금의 이호열을.
그때의 이호열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나는 냉랭하게 읊조렸다.
“말하지 않았나. 수백만은 시작에 불과했다고.”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계의 현자, 샤힌파쿰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잔혹한 사기꾼, 러셀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시체 청소부, 데몬 웜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살가죽 갑옷의 카피스크림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수천만 개의 메시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