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파멸의 주둥아리 (2)
이상한 일이었다.
“……뭐야?”
코스모 재직 시절의 업무용 계정이었다.
박민재조차도 알림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 정도로. 코스모가 AAU로 개편된 현재는 흔한 스팸 메일조차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답장? 누가?”
그러나 그 발신인을 확인하는 순간.
“!”
박민재는 떠올렸다.
과거의 기억을.
이 계정이었다.
바로 이 계정으로 CEO였던 레이먼 션에게 아르카나와 코스모의 운영 구조에 관한 지적을 잔뜩 적어서 전송했을 터. 이건 그 메일에 관한 답장이었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이런 미친 새끼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레이먼 션.
그가 행방불명된 이후, 대격변이 시작되었다.
대격변과 균열에 휘말려 사망한 이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거기엔 개인적인 감정도 포함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지금은 지난 일이 되었다고 해도.
대격변 초창기.
코스모의 직원들은 레이먼 션과 공범으로 취급되어 온갖 조사를 받았었다.
오해라고 하더라도 그때의 기분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아직도 덜어내지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박민재는 이를 악물었다.
“당신, 실수한 거야.”
현재, 레이먼 션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수배령이 내려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범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초인적인 능력을 생각해 보면, 레이먼 션 그 또한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
하지만 과학을 무시하지 마라.
답장을 보내온 신호를 역추적하면 발신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일 터. 대격변 이후 처음으로 레이먼 션의 행적을 뒤쫓을 기회였다.
그러나.
“……!”
메일의 내용을 확인한 박민재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적은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박민재가 중얼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빌어먹게 능글맞으시네.”
그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
나는 이호열 플레이어와 만나고 싶습니다.
──────
정말로 능구렁이 같다.
“제길.”
박민재는 고뇌했다.
만약, 자신이 레이먼 션에게 휘둘리지 않고 곧장 AAU에 이 사실을 보고한다면? 전 세계는 곧바로 레이먼 션의 위치를 추적하려고 들겠지.
‘……그걸 레이먼이 보고만 있을까?’
지금만 하더라도 레이먼 션의 행적을 좇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과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레이먼에게 다시금 모습을 감추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르는 일.
“하하. 빌어 처먹을 새끼.”
박민재는 웃음을 뱉었다.
괜히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구만?
이 자식은.
“내 반골 기질을 건드리고 있어.”
상대가 자신의 보스라고 하더라도.
설령 AAU의 규율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쪽으로 들이받는 성질머리를.
박민재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 이번에도 들이받아 주지.”
곧장 전화를 걸려다가…….
“역시, 갑작스러운 통화는 격식에 어긋나겠지?”
중얼거리곤 허겁지겁 문자를 작성했다.
당연하게도.
수신인은 AAU가 아닌 호열이었다.
“후우─”
전송완료.
긴장감이 풀린 박민재가 한숨을 뱉던 순간이었다.
띠링!
곧바로 호열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버, 벌써?”
호열의 일과에 대해 얼추 알고 있는 박민재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숨돌릴 시간도 부족하실 텐데…….
이 정도면 칼답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답장을 확인하는 박민재.
“……엥?”
이내, 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답장은 고작 네 글자였지만.
-짐작했다.
“지, 짐작하셨다고요? 이걸 어떻게?”
더없이 충격적이었으니까.
*
확실히 마음의 준비를 하니까 충격이 덜하다.
미리미리 입방정을 떨어둔 덕분에.
실로 충격적인 소식에도 머리는 팽팽하게 돌아갔다.
“레이먼 션.”
아마도 대격변의 원흉.
지구상에 레이먼 션을 달가워할 이가 누가 있겠느냐만.
나는 레이먼 션, 그쪽을 증오하고 있거든!
왜냐니, 당신만 아니었어도 내가…….
‘흑역사를, 수치사를 걱정할 일은 없을 거 아냐!’
물론, 그랑펠에게도 마찬가지겠지.
“말했다시피.”
왜, 검성 셰그윈과의 결투가 끝난 뒤.
나와 셰그윈의 콜로세움 결투가 아르카나 공식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박제된 순간. 말로 설명하기도 복잡한 사정이 얽힌 결투를, 단순한 구경거리로 만든 그 순간부터.
“그대의 행보에선 긍지가 보이지 않는군.”
그쪽은 그랑펠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상태였으니까.
또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지껄였던 말이 떠오르는군.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겠다.”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어쨌든, 여러모로 이번 만남이 기대되는데.’
뱉은 말은 실현하고야 마는 그랑펠이라면, 만남을 실현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지 모를 테니까.
“부디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말도록.”
서늘하게 읊조리기도 잠깐.
나는 포탈을 발현했다.
좌표는 AAU 대한민국 지부다.
레이먼 션의 소식을 전해온 게 대한민국 지부장, 박민재였으니까.
그와 먼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고오오─
걷혀가는 포탈의 빛 무리 속에서.
박민재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를 붙잡고 한창 이야기 중인 것 같은데.
대화 중 한 단어가 유달리 선명히 내 귀에 박혀왔다.
“……그래서 ‘꼰대’냐고 아니냐고.”
잠깐만, 꼰대……?
혹시 내 이야기 하고 있던 건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뭐, 그런 상황인가?
그러나 그랑펠은 도둑보다는.
제 말 하면 나타나는 호랑이에 가까웠으니.
나는 박민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또각─
“어, 어어어어?!”
박민재와 대화를 나누던 사내가 눈만 깜빡인다.
“……갑자기 왜 그래애애애액?!”
뒤늦게 뒤를 돌아본 박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정말로 호랑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로군.
아무래도 진짜 내 뒷담화를 하던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러나 이해한다.
‘꼰대라, 사실 그렇게 보이고도 남겠지.’
그동안의 전적을 생각해 봐라.
-“격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군.”
-“그러므로.”
-“질문은 받지 않겠다.”
과거, 기자들은 물론이요.
-“순서가 잘못되었군.”
아르카나의 랭커들에게도 격식을 주입하던 나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랑펠이 뒷담화를 했다고 누군가를 추궁할 정도로 치졸한 성격은 아니다.
……다만, 여러 의미로 상상을 초월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문제겠지. 그렇다. 나는 이번에도 파멸의 주둥아리를 놀리고 말았으니.
다짜고짜 냉랭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서류는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하길 바란다.”
“……네, 네? 어떤 서류를?”
“……박 지부장님이 총책임자님께 서류를?”
박민재는 되물었고, 사내는 눈알을 굴렸다.
유스라 총책임자인 내가.
AAU 대한민국 지부의 비선 실세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표정이군. 그러나 서류란, 방금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뜻하는 그랑펠의 고상한 표현일뿐.
‘이젠 하다 하다가.’
문자에서도 격식을 따지는구나, 그랑펠.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니 참작하겠다.”
박민재가 넙죽 답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시정하겠습니다!”
그랑펠의 똥고집이니 시정할 필요 없습니다, 박 지부장님.
그것보다 다음부터 시정하겠다니.
다음이 없기를 바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육하원칙에 따라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부장실.
나는 그곳에서 박민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 내 주변에는…….
‘죄다 심상치 않은 사람들밖에 없는 거 같냐?’
CEO를 들이받았어?
간이 얼마나 큰 거야!
사회인 시절, 이호열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니지, 상상은 해봤구나.’
왜, 플레이어로 각성한 직후.
이대로 출근하면 우리 부장님 얼굴에 커피를 끼얹는 건 아닐까, 상상하다가 일찌감치 사직서를 제출했던 나였으니까. 그런 공감대가 있어서인가.
“그대의 긍지를 내가 이해했다.”
소시민인 나만 빼고 두 사람 말이 잘 통하는군.
“감사합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레이먼 션을 못마땅해하는 그랑펠이다.
그런 레이먼 션이 본색을 드러내기도 전에 들이받았다니.
너그러운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네.
‘그나저나.’
유스라 지부 총책임자이자 AAU의 일원.
무엇을 떠맡으면 설령 가라앉더라도 대충 짊어지지 않는 나였다.
덕분에 AAU의 규율은 하나도 빠짐없이 숙지하고 있다는 것.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내게 먼저 알린 거야.’
박민재 또한 그에 관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레이먼, 그가 이호열 총책임자님과 만나고 싶어하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짐작하셨다는 총책임자님의 문자를 받고 실수하지 않았구나, 안도했습니다.”
……사실 그 짐작이 이 짐작이 아니기는 한데.
어쨌거나 맞부딪혀서라도 알아낼 거.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끝으로 레이먼은 사전에 만남을 약속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약속을 잡고 만나겠다라.
레이먼, 그쪽도 내 소문을 들었나 보구만.
하긴 모르면 간첩이지.
특히 백이설.
아니, 서큐버스를 십고초려하게 만들었을 때는.
정말 갖가지 기사가 끊이지 않았었으니까.
‘오죽했으면 큰누나가 전화를 다 했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려고 노력했구나, 레이먼 션.
나는 현재 마탑과 유스라 왕국에 휴직계를 제출한 상황이 아니던가.
약속을 잡기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잡았겠지.’
시간도 심지어는 장소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포탈을 발현하는 내게 거리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약속 상대가 레이먼 션이란 거겠지.
나는 입을 열었다.
“그대의 배려는 이해했다.”
“배려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허나, 지금부터는 규율을 준수하기를 바란다.”
“……네, 규율이라시면?”
레이먼 션,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순순히 당신 요청에 따라 움직일 것 같냐.
누누이 말하지만.
나와 그랑펠은 무엇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긍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당신과의 약속을 위해서.
정해진 규율과 타협하는 일 따윈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 시간부로 AAU의 규율에 따라서.”
“……듣고 있습니다.”
“레이먼 션의 위치를 특정하도록.”
“!”
박민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저도 고려를 해봤습니다만……. 혹시라도 레이먼 션이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치를 특정한다고 하더라도 레이먼 또한 역추적을 파악하는 건 시간문제라……. 현실적으로 레이먼을 붙잡기엔 무리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
박민재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
그런 박민재가 간신히 헛웃음을 뱉었다.
“바보 같았습니다. 뭘 고민하고 있던 건지……!”
그래, 이제야 생각이 닿은 모양이다.
또각─
존재감 하나만큼은 어떤 소리보다 큰 나의 구두 소리다.
그런 구두 소리를 멀리서부터가 아닌.
등 바로 뒤에서 들렸던 이유가 뭐겠어?
비현실적인 등장.
포탈 발현.
『마법』때문이라는 거지.
꾸벅─
별안간 박민재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속으로 충분히 잘난 체를 하고 있었거늘.
대놓고 이런 인사를 받으니 굉장히 민망하구만.
그러나 양심 없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말씀대로 규율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그보다 어째 신이 난 기색이 역력하잖아?
고민이 해결된 탓이려나.
지부장으로서 규율을 어겼다고 여러모로 고뇌했었을 테니까.
‘역시, 직장은 관두길 잘했다.’
사회인의 무게란 막중하다.
연민을 느끼던 도중.
작디작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드디어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수 있겠어.”
……아니, 그냥 레이먼 션한테 갚아주는 게 신난 거였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끼리끼리라 그런가.
어떻게 이런 인물들만 주변에 모여드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레이먼 션, 너는 잘못 건드렸어.’
인류를, 아르카나 대륙을, 내 과거를.
건드린 대가는 더없이 막중하리라는 것.
어떻게 숨을 자신이 있어서 연락해 온 것 같은데.
“발신지, 포착했습니다!”
나를 우습게 보면 곤란하지.
메시지의 발신지를 추적하는 [과학].
그리고 그 발신지를 좌표로 발현하는 『마법, 포탈』.
고오오─
[『기이』]에서 도망칠 생각은 관두란 말이다.
흩날리는 빛 무리.
밝아지는 시야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어떠한 형태의 환대도 거절하겠다.”
설령 개당 300원짜리 티백 녹차를 대접한다고 하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할 기세로.
나는 포탈 너머로 나아갔다.
아, ‘거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