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네게 그럴 자격은 없다
크리스탈 홀.
허공에 떠오른 마왕성의 전경.
호열의 마법에 플레이어들은 기시감을 느꼈다.
“……근데, 약간 영화관 느낌 나지 않아?”
“비슷하긴 한데, 어떤 각도에서 봐도 똑바로 보여.”
“쉽게 말해서 마법으로 스트리밍 중계라는 거겠지……?”
하지만 아르카나인들에게는 아니었다.
성전의 적, 마왕의 출현이었다.
웃음을 뱉을 상황은 아니었건만.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이 마법의 진가가.
마르셀로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현학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복잡한 간섭 과정이다.
원거리에서 마법의 발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마력이 소모될 터. 그것도 모자라 떠오른 시야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시야가 바뀔 때마다 탐색, 간섭, 발현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
‘같은 수석이라 불리기엔 제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마르셀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선임, 숙련 마법사들의 반응은 묘사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출탑의 목적.
반전 마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야외 시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벤쉬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저 건물 위태로워 보이지 않습니까, 뱅그릿 선임?”
“네, 확실히 그러네요.”
“화염마법뿐만 아니라 스무 개의 마법 중 어떤 걸 들이밀어도…….”
무너지는 건물을 완벽하게 보호할 순 없으리라.
양보해서 건물의 붕괴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사람까지 보호할 수 있는 섬세한 마법은 마탑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기존의 마법이 아닌 새로운 마법이라면?
이내, 호열의 모습을 비추는 시야.
어깨에 걸친 재킷이 펄럭이기 무섭게 주변에 마력이 발산한다.
그러자 모든 것이 반전되었다.
무너지던 건물이 바로 서는 것은 물론.
“뭐, 뭐죠? 저 마법은!”
“설마 저게 말씀하신 반전 마법……?”
“잠깐만요, 그냥 똑바로 세워지기만 한 게 아니에요. 깨진 유리창도, 무너진 외벽도 원래대로 복구되고 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요……!”
“꺼졌던 불빛이 다시 들어오고 있어!”
지켜보던 이들의 심정까지도.
크리스탈 홀에는 잔잔한 충격이 흘렀다.
더 이상 우려는 없었다.
성전 연합군이 출격한 것도 모자라서 호열까지 합류한 상황이었다.
고작 마왕 하나가 대적할 순 없을 테니까.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찰나에 얼마나 많은 간섭 과정이 이뤄진 거죠?”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개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
흐르는 충격은 오로지 반전 마법의 시연 때문이었다.
수석, 선임, 숙련, 견습.
마탑의 모든 마법사가 학회의 여운에 빠져있던 순간이었다.
오직 고양이 한 마리.
탑주만이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 꼬리가 바짝 긴장한 듯이 곤두섰다.
‘……클라우디.’
탑주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끊이질 않았다.
내가 고깔모자에서 갇혀있던 시간 동안.
아르카나 대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거지?
감히, 어떻게, 그 이름이 악마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들춰선 안 되는 과거를 어찌하여 악마 따위가……?
탑주가 몸서리를 쳤다.
‘어찌됐든. 가엾을 정도로 미련하구나, 악마여.’
*
정문 개방.
마왕성에서 대군(大軍)이 쏟아져 나온다.
반전 마법으로 복구된 빌딩.
마지막 생존자들까지도 안전하게 대피를 끝마쳤다.
그래,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성전의 시작이었다.
하르콘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총대장이시여, 부디 명령을.”
……공과 사는 확실하구나, 하르콘!
어쨌거나 나는 성전 연합군의 총대장이었으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나를 호열 경이라고, 격식 없이 부를 순 없다는 거겠지. 물론, 듣고 있는 나는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또각─
그러나 과분할 정도의 대접.
온갖 미사여구를 뻔뻔하게 즐기는 그랑펠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망설임 없이 최전방으로 나아갔다.
태연하게도 선언했다는 것이다.
“마왕은 내가 맡도록 하겠다.”
사실 솔직한 심정 같아서는 말이야.
그냥 마법을 쏟아부어서 마왕성이고, 마왕이고 한 방에 날려버리고 싶었다.
[천적관계] 효과로 전투력이 몇 배나 상승한 지금이라면, 초고위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도 발현할 자신이 있었거든.
하지만.
“마왕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대들에게 맡기겠다.”
말했다시피 나는 자각하고 있다.
성전 연합군의 총대장이라는 나의 위치를.
아군의 능력을 파악하고 신뢰하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돕는 것 또한 총대장으로서의 업무라면 업무일 터.
‘……어째 어딜 가도 업무가 끊이질 않냐?’
순간적으로 한숨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는다.
게다가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날려버리면 안 되겠지.
‘클라우디.’
내 이름…….
아니, 그 이름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어서 알고 있는 건지.
나는 집요하게 추궁해야만 했으니까!
악마와는 말을 섞지 않는 주의라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나의 목숨이, 수치사가 걸린 일이란 말이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척─
“전원 돌격 준비!”
하르콘이 검을 들고 외치자 연합군의 기세가 한껏 치솟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래도 그동안 헛수고를 한 건 아닌 것 같네.
‘옛날에 비하면야.’
플레이어가 악마에게 속수무책이던 가장 큰 이유는 상태이상 때문이었다.
[공포]는 상태이상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왕 앞에서도 플레이어들이 공포에 질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공포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감정이.
저들의 가슴 속엔 존재했으니까.
[숭고의 효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비로소 우리의 긍지를 증명할 순간이다!”
그래, 긍지다.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기어코 전부 물들여 버렸구나, 그랑펠.
‘그런 의미에서 막중한 책임을 져야겠지.’
나는 지체하지 않고 포탈을 발현했다.
좌표는 마왕성의 주인, 마왕 안드라스의 코앞.
어떻게 구체적인 좌표를 특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클래스를 들이밀어 주겠노라.
[악마 사냥꾼]
좌표를 알고 있어서 가능한 게 아니다.
그저 냄새를 쫓을 뿐.
겁도 없이 내 흑역사를 떠벌린 사냥감의 냄새를 말이야.
나는 발현된 포탈로 나아갔다.
그 입방정에 책임을 질 시간이다, 안드라스.
.
.
.
마왕, 안드라스.
안드라스는 낯선 풍경을 바라봤다.
올빼미의 부리가 움직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군, 거악이여.”
아르카나 대륙도 마계도 아니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완벽하게 다른 세계.
짐작할 수 있었다.
“본좌가 균열에 휘말렸다는 것인가?”
제로 산맥이 하룻밤 새 아르카나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마왕성 또한 균열에 휘말린 모양이겠지.
악크샨의 부활에서 절대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던가?
단순한 우연이라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클라우디…….”
거악, 식탐이 알려줬던 그 이름.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낸 순간.
과거를 들춘 순간.
시야가 뒤바뀐 것이었다.
안드라스는 실감했다.
대체 이름에 얽힌 과거가 무엇이길래.
언급한 것만으로 이런 파문을 일으킨단 말인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얽혀있는 모양이군.”
직각으로 비틀어지는 올빼미의 머리.
“그렇기에 틀림없이 진실이겠지.”
클라우디의 진실과 직면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십좌의 마왕에 준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안드라스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본좌는 자신이 있도다.”
63번째 마왕.
그러나 서열은 숫자에 불과하다.
식탐에게도 말했듯 안드라스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한계치까지 강해졌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 역시 말했듯.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강을 흐르게 했던 본좌였으니.
그 증거가 식탐과의 직면이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거악 앞에서 제대로 된 말조차 내뱉지 못했을 터. 그러나 현재의 자신은 식탐과 거래를 맺을 정도였다. 천하의 거악과 동등한 위치에 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는다면.’
안드라스의 동공이 번뜩였다.
식탐.
그 시건방진 녀석을 도륙 낼 힘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안드라스가 음험하게 미소 지었다.
“날뛰어라. 외쳐라. 과거를 들추어라.”
클라우디.
그 이름을 향해 욕망을 불태워라.
본좌의 병사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이끄리라.”
안드라스가 철퇴를 들고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고오오─
허공에서 빛 무리가 일렁였다.
틀림없이 마력이었다.
안드라스의 올빼미 머리가 다시금 직각으로 꺾였다.
“의아한 일이구나.”
이 세계 또한 마력이 존재하는 세계였나?
그것이 아니라면 나와 마찬가지로 아르카나 대륙에서 넘어온 존재란 말인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본좌의 앞에 나타났다면 틀림없이 용건이 있을 터.
안드라스가 부리를 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그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소소─
본능적으로 올빼미 머리의 깃털이 곤두섰으니까.
‘……어떤 놈이냐.’
마계에서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
안드라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답게 자각한 것이었다.
자신이 느낀 낯선 감각이 ‘공포’라는 것을.
‘거악의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본좌다.’
그런 본좌가 공포에 떨고 있다고……?
안드라스는 깨달았다.
자신에게 공포를 느끼게 할 존재는 하나뿐이었으니까.
“……악마 사냥꾼.”
녀석은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가 분명하다.
안드라스는 곧장 철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다시금 되새겼다.
‘본좌의 목적은 클라우디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안드라스, 나는 갈등의 마왕이다.
분란과 선동에 있어선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
안드라스가 소리쳤다.
“어리석구나.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여. 다짜고짜 본좌를 사냥하려고 들다니. 설령 그대가 나를 사냥한다고 하더라도 이 싸움은 나의 승리다.”
마왕성 정문 개방.
악마 군단장들에게 진격을 명령한 게 한참 전의 일이다.
지금쯤이면 근방을 학살하기 시작했을 터.
그것도 모자라 악마 군단장을 비롯한.
모든 악마가 클라우디를 부르짖고 있을 터였다.
“네게도 들리지 않느냐?”
클라우디─
이 순간에도 어렴풋이 괴성이 들려왔으니까.
안드라스는 끝까지 버텨내리라 다짐했다.
클라우디, 그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 다른 세계에 도달했다.
또 한 번 격동이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째서냐?’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 할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곧이어 마왕성에 심상치 않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정적이라고?’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과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병사들이 클라우디의 이름을 부르짖으리라고.
과거를 들추리라고.
그런데 어째서인가.
고요했다.
아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무려 칠만(七萬)이다.’
그 칠만의 병사가 전부 무수한 실전에서 살아남은 정예병이란 말이다.
그들조차 당해낼 수 없는 막강한 적과 마주한 것인가?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그랬다.
마치 모두가 입을 다문 것처럼.
꿀꺽─
안드라스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던 순간이었다.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가 입을 열었다.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열등한 족속에게 격식을 운운할 생각은 없다.”
“……?”
“그대들은 배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존재들이니까.”
……갑자기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안드라스는 눈알을 굴리며 고심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그런가. 본좌가 방해가 됐다는 것인가.’
무엇에 방해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기회였다.
대화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안드라스가 부리를 열어보려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묵인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
안드라스의 부리가 그대로 멈췄다.
이어지는 말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안드라스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마왕성이 갑작스러운 침묵에 휩싸였던 이유를.
‘찰나에 칠만의 목소리를 앗아갔다……?’
녀석의 짓이다.
깨닫는 순간, 목격했다.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그에게서 넘실거리는 이질적인 기운을.
그리고 경악했다.
“!”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왕인 자신조차 질식시킬 것 같은 저 기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잠식될 것만 같은 어둠.
그동안 마왕으로서 쌓아온 모든 부정적인 기운조차도.
저 한없이 깊은 어둠 앞에서는 사막의 모래알조차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놀라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이어지는 호열의 말에 안드라스는 깨달았으니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
“감히 그 이름을 함부로 내뱉지 마라.”
“……!”
“잡종.”
……허락하지 않았다고?
‘서, 서, 설마……!!’
역시나 지혜로운 올빼미이기에 알아차렸다.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그가 바로 클라우디였다는 사실을……!
.
.
.
눈치를 보아하니 알아차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유감이군.
다른 건 몰라도 그 진실만큼은 누구에게도 들킬 생각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시간부로 처분을 시작하겠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란 뜻이다, 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