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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25화 (225/489)

◈ 225화. 뇌리에 새겨주겠다

『여러분 곁으로 새로운 지역이 찾아옵니다.

신규 지역, ‘갈등의 마왕성’이 추가됩니다.

신규 보스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마왕, 안드라스 : Lv.888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악마 군단장, 파나룬 : Lv.600

악마 군단장, 유가르 : Lv.600…….』

마왕의 출현.

업데이트 내역은 빠르게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제로 산맥에서 몬스터를 사냥 중이던 플레이어들은 물론.

유스라, 뮤온, 프로스트.

각 지역에서 훈련을 멈추지 않던 아르카나인들도 소식을 접했다.

망설임이란 없었다.

아니, 망설임을 넘어서 모두가 집결했다.

그래, 성전(聖戰) 아래 그들은 하나였으니까.

마왕과의 전투야말로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사건.

애초에 이날을 위해서.

사냥과 훈련을 반복해 오던 이들이 아니었던가?

프로스트.

라이언 하트 기사단.

단장, 하르콘은 투구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얄궂게도 하필이면 정기 학회 날이군.”

소식이 호열 경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면 좋으련만.

“방해되지 않도록 우리 선에서 신속히 끝내야겠지.”

유스라 왕국.

그림자 용병단.

부단장, 울프는 키치를 바라봤다.

낮부터 술에 진탕 취해서는 기절이시군, 우리 단장님.

‘귀찮지만 어쩔 수 없나.’

울프가 단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나타난 마왕성은 하나. 따라서 움직여야 할 인원은 나를 포함해서 셋이다. 보자, 낮잠 중이신 우리 단장님 빼면 전부 모인 것 같은데…….”

“나! 나! 나!!!”

우당탕!

고함을 치며 울프에게 달려온 건 말석, 락키드였다.

락키드의 근육은 벌써부터 성이 잔뜩 나 있었다.

그런 주제에 얼굴은 또 해맑았다.

9석, 드쉐브가 이죽거렸다.

“성전에선 열심히 해도 포상 같은 거 없다니까?”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의욕적인 거야? 지켜보는 내가 귀찮아질 정도로.”

“으흐흐. 소문을 들었거든.”

“……소문? 뭔 소문?”

“친해지면 찻잔을 맞댈 수 있다는 소문!”

……술잔도 아니고 찻잔을 맞대?

심지어 술잔조차 사용하지 않는 락키드였다.

애초에 술이란 술은 전부 통째로 들이켜댄 그였으니까. 그런 락키드가 작디작은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지만…….

그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꾹 참았다.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떨군 울프.

락키드가 그런 울프에게 애원했다.

“울프. 아니, 부단장!”

키치를 제외하고 용병단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락키드였다.

그럼에도 부단장이라는.

깍듯한 호칭을 붙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 귀 큰 놈에게 수모를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찝찝한 뒤끝 때문이었다.

엘프, 엘시도어.

녀석에게 빚을 갚아주기 위해 황천을 헤엄쳐서 빠져나왔건만.

그 빌어먹을 자식은 어느샌가 아군이 되어있었다.

그걸 넘어서 생명의 은인, 호열의 화원을 가꾸고 있었다.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락키드가 이를 갈았다.

“찻잔을 부딪치며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낼 생각이거든.”

그렇다, 찻잔을 부딪칠 상대는 바로 호열.

“그 귀 큰 놈과의 결투 승인을!”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나니 그림자 용병단원들도 딱히 말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당하면 되돌려준다. 그림자 용병단의 철칙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울프가 말을 이었다.

“그럼 나머지 한 명 지원받겠습니다.”

흐르는 정적.

슥─

한 차례 단원을 둘러본 울프가 말을 이었다.

“그럼, 핌비로 당첨.”

“……네? 왜 하필 전가요!”

“덩치에 활잡이. 남은 하나는 마법사가 적당하니까?”

“으으.”

4석, 핌비는 투덜거리면서도 반발하지 않았다.

단장, 키치가 부재중일 때는 부단장 울프의 명령이 절대적이다.

“으하하. 다들 잘 해보자고. 내 발목 붙잡진 말고.”

점점 멀어지는 락키드의 시끄러운 목소리.

세 사람이 빠져나가자 아지트엔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6석, 이자벨마를이었다.

네크로멘서.

죽은 자를 다루는 만큼.

그녀는 숨결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이자벨마를이 키치를 바라봤다.

“어째서 잠든 척을 하신 건가요, 단장.”

어떻게 알았느냐니.

들켰다느니.

키치는 평소처럼 능청조차 떨지 않고 작게 중얼거렸다.

“……외면하고 싶은 이름을 들어서 말이야.”

*

성전 연합군.

거대 연합을 비롯.

천하통일을 제외한 대다수의 길드가 집결했다.

거기에 라이언 하트 기사단, 뮤온의 성기사단까지.

이전과는 다르다.

악마의 상태이상에 속수무책이던 과거와는 다르다.

악마 앞에서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사기가 치솟을 정도.

하르콘이 비장하게 읊조렸다.

“고대하던 순간이로군.”

냉정하게 전력을 비교해도 우위였다.

호열과 마탑이 합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전력만으로 마왕성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다는 뜻.

그러나.

“문제는 마왕성이 균열이 아닌 지역으로 출현했다는 겁니다.”

언제나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던 남철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대도심.

빌딩 숲 사이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마왕성.

대다수의 시민은 대피한 상태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듯 나타난 마왕성의 여파.

“쉽게 말해서 굴러들어 온 마왕성이 박혀있던 빌딩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왕성의 영지가 함께 묻어온 덕분에 지반마저 위태로워졌고. 그 바람에…….”

남철민의 손가락이 향한 건 크게 기울어진 빌딩.

인접한 빌딩이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남태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저 빌딩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히사기가 입을 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건물의 붕괴를 가속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안에서 구조대를 기다린 모양입니다. 구조대가 빠르게 움직인 모양이지만 늦었습니다.”

전황을 파악한 하르콘이 말했다.

“우리가 진입하면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겠는가?”

히사기가 실눈을 뜨고 대답했다.

“전부를 구해낼 순 없을 겁니다. 더욱 냉정하게 말하자면, 진입하는 순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겠지요.”

마왕성이 출현한 순간부터.

채 탈출할 새도 없이 가파르게 기울던 빌딩.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건만.

“젠장.”

그럼에도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학으로는 마천루를 세울 수는 있어도.

그런 마천루의 붕괴를 막을 순 없었으니까.

여신교단 성기사단장, 탈림 에베르.

그가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너진 뒤를 생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탈림 경?”

“여신교단 사제들의 기도라면 일대의 생명력을 한시적이지만 극도로 높일 수 있으니까요. 설령 심장이 파괴되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하더라도, 숨은 붙어있을 겁니다.”

“……!!!”

극단적인 선택지.

그러나 그마저도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마법에 생각이 닿았다.

“과학도, 기도도 안 된다면……. 마법은 어떨까요?”

물리 법칙에 구애되지 않는 마법이라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컨드 썬, 슈레이그가 고개를 저었다.

“세컨드 썬 소속 마법사는 전원 정기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거대 연합도 마찬가집니다.”

“저희도…….”

샤이닝의 카밀라가 끝으로 손을 들었다.

“유감이지만 우리도 없어.”

샤이닝까지 전멸.

그랬다, 이 자리에 마법사는 오직 한 명.

그림자 용병단원, 핌비밖에 없었다.

그러나 핌비조차도 고개를 내저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건 어떤 식으로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건 어떤 마법으로도 불가능해요. 정 최선의 방법을 찾자면…….”

까딱까딱.

핌비가 자신과 빌딩을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포탈을 연속으로 발현해서 구출하는 거려나?”

포탈이라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생존자들을 구출할 수 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좌표를 수정하며 포탈을 연속 발현하는 건.

핌비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또한.

“그나저나 보고만 계실 건가요, 저거……?”

언제까지고 빌딩에 집중할 수만도 없었다.

이 순간에도 마왕성에서 풍겨오는 악기(惡氣)는 점점 거세졌으니까.

마왕성에서 끔찍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레오니가 인상을 구겼다.

“……대체 클라우디가 뭔데 저러는 거야?”

“랭커 중에 그런 플레이어가 있었나?”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클라우디라는.

정체 모를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진퇴양난이었다.

누구보다 이해득실에 확실한 용병.

그렇기에 울프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핌비, 상황을 봐서 합류하도록 해.”

“몇 명이나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네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모든 생명을 구할 순 없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법도 있는 법이지.

들려오는 대화에 남태민은 이를 악물었다.

‘결국, 이번에도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불공평하다.

“……치사하잖아.”

아르카나의 범람.

간신히 반격을 시작했다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모든 걸 완벽히 지켜낼 순 없었다.

무엇을 내어줘야 피해가 작을지 매 순간 저울질해야만 했다.

빠득─

이가 갈릴 정도로 억울하다.

그럼에도 머뭇거릴 순 없었다.

마침내 마왕성의 성문이 열렸으니까.

이 순간에도 저울질은 계속됐다.

결국,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겠지.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마왕성에 진입해야만.

도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남태민이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핌비 씨.”

“……네?”

“구조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한 놈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남태민을 비롯한 성전 연합군.

그들이 마왕성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그 순간이었다.

펄럭─

무언가가 나부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모두의 시선.

포탈의 역광 속에서 드러나는 실루엣.

짙은 쪽빛의 제복.

제복을 배경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휘장.

은빛의 머리칼.

그것은 진퇴양난 가운데 비추는 한 줄기의 빛.

“우려할 것 없다.”

그 여명이 말했다.

“내가 왔으니.”

.

.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말은 참 잘한다……!

정작, 그런 말을 내뱉은 나는 걱정돼서 죽을 것 같단 말이다.

왜, 지금 이 순간에도.

마왕성 쪽에선 끔찍한 이름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진짜, 뭔데.’

정기 학회, 그것도 나의 발표 도중이었다.

그럼에도 달려오지 않고 견딜 수 없었다.

클라우디라니!

대체.

어째서.

그 이름이 악마들 입에서 나오는 건데?!

‘……혹시, 악마들이 알고 있는 건가?’

내 이름을……?

악마 사냥꾼인 내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악마들이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다.

악마란 무엇인가?

상황에 따라서는 입이 가벼워도 그렇게 가벼운 족속들이 또 없다는 말이다. 만에 하나. 정말로, 악마들이 나의 이름을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로 알고 있는 거라면…….

‘세상에 퍼지는 건 시간문제야!’

수치사를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 확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목숨이 걱정돼서라도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수석의 무게는 어떻게 하고 학회를 내팽개치고 달려온 거냐고?

걱정도 팔자다.

그랑펠이 누군데?

그랑펠 사전에 저울질이란 없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도 없다.

그것이 그랑펠의 무거운 긍지니까.

남태민이 입을 연다.

근데, 어째…….

심란한 표정이군.

“……반가워하면 안 되는데. 이런 마왕성쯤은 호열 씨가 계시지 않아도 공략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 솔직히 마음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대들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위로하려고 건네는 빈말이 아니거든.

‘클라우디란, 이름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나는 지금처럼 이곳에 포탈을 열고 나타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누군데.

이래 봬도 그 잘나신 총대장님 아니시던가?

덕분에 연합군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대들은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

“……!!!”

무려 세 개의 마왕성을 압살했던 성전 연합군이다.

그때보다 다들 훨씬 성장했는데, 고작 마왕성 하나?

걱정한다면 그거야말로 아군을 향한 불신이겠지.

히사기가 말을 덧붙였다.

“그보다 학회는 어찌하시고 이곳에…….”

말했다시피.

나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학회의 발표도 포기하지 않았지.

크리스탈 홀을 뛰쳐나온 나의 출탑은.

『반전 마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야외 수업의 일원이었으니까.

“그 또한 우려할 것 없다.”

그렇다.

지금쯤 크리스탈 홀에는 이곳의 전경이 떠올라 있을 거다.

왜, 크리스탈 홀 대기실에서 유심히 봐뒀었거든.

크리스탈 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투영하던 마법의 구조를.

쉽게 말해서.

마법을 발현.

크리스탈 홀에 실시간 중계 영상을 띄우고 왔다는 뜻이다.

마력 소모는 어떻게 하냐고?

그것 또한 우려할 것 없다.

[첫 세계수의 축복]만 하더라도 이제는 마르셀로, 탑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나였다. (마력의 절대량은 아직 부족하지만, 마력 재생력이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악마를 만났잖아?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성전 연합군.

마탑의 마법사들.

그리고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을 카메라.

고오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반전 마법』

그러자 붕괴하던 빌딩이 바로 서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진 유리창도.

구부러진 철근도.

무너진 외벽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그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지금껏 처절하게 발버둥을 쳐왔던 나다.

무엇 하나 포기하지도.

희생하지도 않는 게 정말 가능하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래?

그렇다면 이해할 필요가 없도록.

친히 뇌리에 새겨주겠다.

반전 마법도.

“이 엄청난 마력량은 대체……?”

악마 사냥꾼과 악마의 천적 관계도.

“호열 씨!”

마지막으로 긍지도.

그러니까.

그 입 좀 다물고.

좋게 말할 때 튀어나와라, 마왕.

그래, 그 빌어먹을 클라우디.

네가 그토록 찾는 클라우디가, 내가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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