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설명이 필요하다면 (2)
서열 63위.
마왕, 안드라스.
올빼미 머리의 악마가 부리를 열었다.
“본좌더러 마계의 잡종이라.”
틀림없는 모욕.
그러나 안드라스의 반응은 평소의 모습과 달랐다.
파괴를 일삼는 그답지 않게 눈앞의 대상을 흥미롭게 바라볼 뿐.
그럴 수밖에.
자신과 마주한 것은 거악, 칠죄종 식탐이었으니까.
식탐은 이죽거렸다.
“마왕을 자칭하는 자여.”
“!”
놀란 건 안드라스가 아니었다.
안드라스 휘하의 악마 군단장들이 흠칫했다.
마계의 잡종이란 모욕도 모자라서 왕좌까지 모독하다니.
아무리 거악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그러나 안드라스는 이번에도 노하지 않았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실로 정확한 말이군.”
“……!!!”
저런 망언을 인정하시다니?
악마 군단장들이 혼란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와 반대로 식탐의 입꼬리는 하늘을 향했다.
“주제를 알았나? 그대는 잡종이다. 나와 미련한 형제들처럼 악(惡)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십좌(十座)의 마왕들처럼 막대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은, 반푼이 같은 존재란 의미다.”
안드라스는 침묵을 지켰다.
‘과연, 거악은 거악이로군.’
악크샨의 부활 이후.
안드라스는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르카나 대륙을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은 지금.
자신을 포함한 마왕들은 고작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식탐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허나, 내가 그 잡종의 피를 극복할 방법을 알려주마.”
더없이 혹하는 제안을 가지고서는.
식탐.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는 거악.
악에서 태어난 악, 그 자체였다.
다른 마왕들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을지라도.
저 순수한 악을 꿰뚫어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드라스가 되물었다.
“내가 그대의 말을 신뢰할 것 같은가?”
식탐은 웃었다.
“믿고 말고는 그대의 자유다. 그러나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고 장담하지. 저열한 마계의 피 따위야. 보다 짙은 악을 집어삼키면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짙은 악이라.”
흐르는 피의 묽고 진함은 갈릴지라도.
같은 악마의 피가 흐르기에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정적인 기운에서 힘을 얻는 자신들이 아니던가.
안드라스의 부리가 벌어졌다.
“우스운 이야기군, 거악이여.”
“우습다?”
“본좌는 이 대륙의 모든 것을 죽이고 죽여왔다. 시체로 산을 쌓았으며 피로는 강을 이루었다. 내게 저항한 이들은 갈가리 찢어 짐승의 모이로 던져줬으며 구차하게 살아남은 이들은 유린하다가 죽였다.”
“오호라.”
“그런 내가 행하지 못한 악행이 있단 말인가?”
식탐은 역시나 웃었다.
“당연하다.”
“무엇이지?”
“너는 아직 들춰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들춰보지 못했다?”
“그 ‘과거’를.”
시종일관 히죽거리던 식탐조차 ‘과거’를 언급한 순간.
그 낯빛이 바뀌었다.
안드라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 ‘과거’란 것에.
심상치 않은 것이 묻혀있으리라고.
그러니까 말했다.
“그런가, 그 과거가 나를 찾아온 이유로군.”
“맞다. 나는 그대를 과거를 들춰낼 미끼로 쓸 예정이다.”
“미끼라.”
“과거를 들추기 위해 그대를 내던지겠다는 말이다. 그대가 과거와 마주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대는 진정한 마왕으로 거듭날지도 모르겠지. 알다시피 공석이 생긴 참 아닌가?”
공석, 가미긴의 자리를 말하는 것일 터.
“내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가?”
식탐이 어깨를 으쓱였다.
“잡종이 왜 잡종인 줄 아나?”
“?”
“잡스럽고 차고 넘치기에 잡종이다.”
순수한 악다웠다.
악마의 성질머리를 더없이 잘 알고 있군.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내, 안드라스가 답했다.
“제안에 응하지.”
“올빼미라 그런가, 새대가리도 새대가리 나름이군.”
“그래서 본좌가 들춰야 하는 과거란 무엇이지?”
그토록 대단한 과거라면.
분명, 복잡한 이야깃거리가 얽혀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식탐은 고작 ‘한 단어’를 뱉어냈을 뿐이었으니까.
“클라우디. 그거면 충분하다.”
“……?”
“그 한 단어가 세상을 요동치게 할 테니까.”
*
크리스탈 홀.
마탑의 공간답게 그 구조는 심히 판타지적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게 화려한 원형의 공간처럼 보였거늘.
문으로 연결된 이면(異面)에는 특수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다.
대기 공간.
쉽게 말해 다음 발표자를 위한 대기실이다.
물론, 평범한 대기실이었다면.
“나쁘지 않군.”
그랑펠 입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겠지.
특수한 구조라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을 거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크리스탈 홀의 전경.
분명, 크리스탈 홀에 딸린 문을 열고 입장한 대기실이었는데.
나는 크리스탈 홀을 천장에서 내려다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순수하게 감탄하면 될 텐데.’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지.
“환각마법은 아니군.”
탐색, 간섭, 발현의 과정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내겐 더없이 익숙하다.”
그야 익숙할 수밖에 없겠지.
프로젝터랑 유사한 간섭 과정의 마법이었으니까.
아르카나 식으로 말하자면…….
마탑 버전 [마안의 망원경]이라고나 하면 되려나.
‘다만 크리스탈 홀에서만 유효하지만.’
이름부터가 괜히 크리스탈 홀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마력석 중에서도 귀한 축에 속하는 ‘마력 크리스탈’로 지어진 공간. 사방의 마력 크리스탈이 마력을 증폭시켜 이런 사치스러운 마법 발현이 가능한 거겠지.
‘그나저나…….’
슬슬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탈 홀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아니던가.
덕분에 홀에 가득한 기대감이 피부로 와 닿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긴장했냐고?
그럴 리가 있나.
오히려 뻔뻔하게 즐기고 있다면 모를까!
『반전 마법』
새로운 학파 창시를 알릴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그랑펠의 철면피 두께는 감히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두껍다는 사실을.
“그대들이라면 능히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 한마디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이해를 못 해도.
내 잘못이 아니다.
이해를 못 한 그대들의 잘못이다.
‘아주 그냥 긍지가 철철 넘치십니다, 우리 그랑펠 님……!’
나는 다시금 크리스탈 홀을 내려다봤다.
그랑펠의 심보를 알고 나서 기대 중인 마법사들을 보니.
마음이 편하려야 편할 수가 없다.
‘저 기대감이 공포로 바뀌는 것도 머지않았구나.’
오늘은 또 어떤 언행으로.
마탑에 어떤 파란을 불러일으킬지.
나조차도 짐작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최선을 다 해봐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포장했거든.
최대한 그럴싸해 보이게.
‘사실…….’
이게 또 적성에 맞기는 했다.
왜, 별것도 아닌 걸 포장하는 거.
그거 그랑펠의 주특기잖아?
노가다나 다름없는 육체 단련?
한계에 도전하는 숭고한 도전.
티백 녹차?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차.
단순한 웹서핑?
이 또한 기이를 향한 탐구.
‘……늘어놓고 보니 심히 부끄럽기는 하다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이 포장 실력 덕분에.
발표 시간을 채우지 못할 걱정 하나는 덜어냈으니까.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빙결마법학 선임, 커튼 레블의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나의 순서가 오고야 말았단 것이다.
당당하게 기립.
또각─
나는 항상의 자세로 크리스탈 홀.
강단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여명의 재킷은 언제나처럼 어깨에 걸친 채.
평소였다면 자괴감을 호소했을 차림새이지만…….
‘차마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지금 내 머릿속엔 반전 마법의 발표를.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우선, 나는 크리스탈 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유그위드부터 뱅그릿까지.
원로부터 선임 마법사들은 전원 참석.
‘……기지개 켜는 거 얄밉네.’
쭈욱─
내가 나타나자마자 고양이 몸을 늘리는 탑주의 모습도 보인다.
다들 모였으니, 질질 끌 것도 없겠지.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오오─
마력을 끌어올리자 크리스탈 홀을 장식한 마력 크리스탈이 감응해 반짝거린다. 마력 크리스탈을 투과한 마력이 마치 거대한 도화지를 펼치듯 허공에 흩뿌려진다.
‘이제 보니까 시스템창 비슷하기도 하고.’
곧 마력의 입자들이 허공에 활자를 새겨넣는다.
손가락을 까딱일 필요조차 없다.
머릿속에 활자를 되뇌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허공에 떠오른 단어.
『반전 마법』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그랑펠이 좀 까칠하긴 해도 괴팍하진 않다.
소란스럽다고 윽박지르는 성격파탄자는 아니란 거지.
“……반전 마법? 그게 뭐야?”
플레이어들은 물론.
“반전 마법……. 혹시 무언가 알고 있나요, 클레 양?!”
“네? 그걸 왜 제게……?”
숙련 마법사.
“배, 뱅그릿 선임 혹시 뭔지 알고 있습니까?”
“아뇨. 저도 처음 듣는데요……!”
“잠자코 집중하는 게 어떻겠나, 벤쉬 윌리엄 선임.”
“흐억.”
마티스와 벤쉬를 비롯한 선임 마법사 전원.
“이런,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걸요.”
심지어는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까지.
다들 쉽사리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현재 크리스탈 홀에 반전 마법에 관해 알고 있는 건.
나와 마르셀로, 저 능글맞은 고양이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반전 마법, 그 창시자는 나다.”
첫 마디부터 직구.
내가 던진 말이었지만, 직구도 이렇게 정직한 직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같은 말도 누가 어떻게 내뱉느냐에 따라서 다른 법이지.
쏟아지는 집중 속에서 나는 말을 이었다.
“반전 마법. 원리는 실로 간결하다. 탐색, 간섭, 발현. 마법의 구조를 그저 역순으로 나열한 것뿐. 그렇다. 반전 마법의 탐색 대상은 이미 발현된 마법이며 그 간섭 과정에 역으로 간섭, 본래의 상태로 반전시키는 것이다.”
웅성거림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진다.
“……이, 이 수석님께선 아주 쉽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런 발현이 정말 가능한 건가요?”
“아니, 저건 마법 발현력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 발현력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금칠하면서.
나도 인지를 하게 됐거든.
‘그랑펠의 재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수준인지를.’
반전 마법의 창시자로서 단언하겠다.
내가 반전 마법을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하고, 덕분에 그 구조를 이해한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반전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반전 마법은 오직 그랑펠만을 위한 마법이란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태연하게도 말했다.
“그대들이 발현할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겠다.”
어째 어감이 약을 올리는 것 같기도 한데, 진심이거든.
“그대들은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까지 말했어도.
분위기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마법 관련 지식에 정통할수록.
반전 마법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랑펠이 너그러워진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 그랑펠의 인자함이 때론 이상한 방향으로 발현되기도 하는 법. 서론부터 충격과 공포에 빠진 청중을, 우리 인자하신 그랑펠 님께서 외면하실 리가 없었으니.
나는 선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하지 말도록.”
“……?”
“그대들이 반전 마법을 이해할 때까지.”
“……!”
“정기 학회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잠깐만.
이해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수업이라고……?
그게 정말 청중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랑펠?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랑펠, 넌 절대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은 하면 안 되겠다.
전국 교수 협회도 경악을 금치 못할.
끔찍한 선언을 한 거라고, 너는 지금!
‘그보다.’
나는 어쩌라고……?
빌어먹을 팔자야.
간신히 수치사를 피했더니, 과로사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러나 착각이었다.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뭐야, 이거?”
이어 크리스탈 홀에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음─
아는 만큼 보였기에.
플레이어들은 내 반전 마법 설명에 집중할 수 없었겠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까.
‘뱉은 말은 지킨다. 내가.’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말했었으니까.
학회 도중 스마트폰 알림 확인 정도야 이해하겠다.
그런데, 어째 들려오는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긴급 업데이트라는데?”
“……마, 마왕이라고? 뜬금없이?!”
“아니, 잠깐만. 균열이 아니라 지역 추가라고?”
긴급 업데이트.
마왕.
균열이 아닌 지역 추가.
괜히 일제히 진동이 울린 게 아니라는 거였나.
그래도 거기까지는.
사고가 따라갈 수 있었다.
악마가 어떤 족속들인데.
악크샨의 부활.
가미긴 처치의 약빨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깨닫고 말았다.
수치사를 피하긴 개뿔……!
“마왕이 누굴 찾고 있다는데?”
“찾는다고? 플레이어? 아니면 아르카나인?”
“잠깐만, 분명…….”
고막을 파고드는 한 단어.
“클라우디! 클라우디라고 했어!”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크으으을라아아우우우디?!
내 이름…….
아니,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