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설명이 필요하다면 (1)
마탑.
흐르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저 사실 벌써 걱정이 앞서요…….”
“이번엔 몇 명이나 눈물을 훔칠지.”
“저는 그냥 이번 학회 포기하려고요. 자신이 없어요.”
다가온 정기 학회의 중압감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달랐다.
숙련 마법사들이 두려워하는 건 정기 학회가 아닌.
학회 이전에 거쳐야 하는 토파즈 홀 사전 검증이었으니까.
슥─
마탑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선은 자연스럽게 토파즈 홀을 향하게 된다.
숙련 마법사들은 그곳에서 들려왔던 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그리고 발 없는 말엔 과장이 더해지는 법이었다.
“너희 그거 들었어?”
“뭘 들어?”
“아니, 마탑 괴담 말이야……!”
“괴담? 여기가 학교냐. 또 뭔 이상한 소릴 하려고.”
“아니,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내가 확실히 들었다니까? 왜, 숙련 마법사님들이 하시는 말씀! 정기 학회만 가까워지면 저 토파즈 홀에서 처량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대.”
햇병아리도 과할 정도.
플레이어들은 마탑의 모든 게 낯설었다. 더군다나 견습 마법사는 정기 학회와 큰 관련이 없었으니. 토파즈 홀에서 사전 검증이 이뤄지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괴담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소문이 무색하게도.
괴담의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
부유 정원.
“……잠깐, 그 말 사실인가요?”
“헉헉, 물론입니다!”
가쁜 숨을 내뱉는 숙련 마법사, 린느.
마찬가지로 숙련 마법사인 지브릴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이호열 수석께서 사전 검증에 불참하신다고요? 정말인가요?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저기. 지브릴 양, 잠깐 숨 좀 돌리고…….”
“이건 중대 사항이에요, 린느!”
“사, 사실입니다! 방금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지브릴이 린느를 추궁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브릴이 사전 검증 과정에 지레 겁먹을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호열이기 때문이었다.
“제 상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수석의 무게.
그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는 이호열 수석님이셨다. 중대사가 끊이지 않는 바쁜 일정 중에도 무수한 출탑 신청서에 친히 서명을 해주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그런 이호혈 수석께서 사전 검증에 불참하신다?
“분명, 이유가 있다는 뜻이에요.”
지브릴이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으시길래.”
사전 검증에 불참하신다는 걸까요?
그런 지브릴과 별개로 몇몇 숙련 마법사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마탑에 눈물 바람을 몰고 왔던 이호열 수석이시다. 그런데 이번 사전 검증에 불참하신다니?
“우리 이거 기회 아니야……?”
“……나, 마음 바꿨어. 당장 검증 신청하고 온다.”
“와씨, 깨질 각오하고 사전 검증 신청하길 잘했다.”
그러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호열이 자리를 비웠다는 건.
자신의 빈자리를 채울 안배를 준비해 뒀다는 뜻이었으니까.
토파즈 홀에선 눈물 바람이 아닌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탑 복도에 울리는 음울한 목소리.
“다음, 안단테 루스 숙련 마법사.”
그렇다.
흑마도학 선임 마법사.
마티스 딘 카를.
같은 선임 마법사들(사실, 벤쉬 혼자만이다.)조차 두려워하는 그가.
호열의 빈자리를 대신한 것이었다.
“부디 그대는 나를 실망케 하지 말게나, 안탄테.”
숙련 마법사들에겐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
모순.
지금 내 감정을 그보다 잘 표현할 단어도 없다.
“음.”
반값 할인 중이라 구매한 녹차맛 쿠키.
그 쿠키의 맛이 괜찮은 듯싶으면서도.
흡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수석의 업무 중 하나.
토파즈 홀 사전 검증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탑주가 건넨 퀘스트 덕분에 말이지.
“심히 아쉽군.”
……그보다 주어를 똑바로 해라, 그랑펠.
누가 보면 내가 녹차 쿠키에 아쉬워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 아니야?
당연하게도 이 감정은 사전 검증을 향한 아쉬움이었다.
이놈의 책임감.
어쨌든, 이토록 막중한 수석의 업무다.
당연히 아무에게나 떠넘기지 않았다.
“그대라면 잘 감당하리라 믿는다.”
나는 마티스에게 내 빈자리를 맡겼다.
마르셀로야 지금도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마르셀로 이전 유력한 수석 마법사 후보였던 마티스라면.
내 공백쯤이야 채우고도 남겠지.
-“경의 신뢰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래도 대외 활동을 잘 가지지 않는 마티스였거늘.
내 부탁에 생전 처음 사전 검증을 떠맡게 된 꼴이군.
그런 의미에서 마티스에겐 차 한잔 대접해야겠지.
나는 읊조렸다.
“마탑엔 여전히 불필요한 절차가 많구나.”
아무리 퀘스트가 걸려있다고 한들.
그랑펠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남에게 자신의 짐을 떠맡길 위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티스에게 사전 검증을 부탁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마탑의 규율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준수하지.”
그래. 준수해야지 별수 있겠냐, 그랑펠.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정기 학회 참여자가 사전 검증까지 담당하는 건.
‘그건 오지랖 수준을 넘어선 거라고.’
그나저나 정기 학회 참여라니.
진짜, 내 팔자야.
나는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퀘스트 : 학파 창시]
고고한 마법적 성취를 이룩한 그대여.
정기 학회에서 그대의 성취를 증명하고.
새로운 마법의 창시를 알려라.
─정기 학회에서 ‘반전 마법’을 발표하라. (진행 중)
다짜고짜 고양이로 변했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탑주는 정말로 능글맞았다.
조삼모사를 아주 잘 써먹는다고나 할까.
학파 창시도 만만치 않게 꺼려지는 일인데.
‘아무리 그래도 차기 탑주보다는 낫겠지…….’
나도 모르게.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 팔자에 무슨 학회 발표냐고.
‘그것도 정말 대단한 성취를 이룬 거면 또 몰라.’
반전 마법.
그건 말 그대로.
그냥 거꾸로 하니까 된 건데.
‘무슨 학파를 창시하고 발표까지 하냐고…….’
그러나 탑주는 물론이요.
마르셀로도 더없이 진심이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마르셀로의 한껏 상기된 목소리.
-“규율에 따르면 탑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성취를 증명해 마탑에 기여해야 합니다. 경의 반전 마법이라면 기여치를 채우고도 충분하겠지요. 그건 제가 창시한 이론마법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의 마법이니 말입니다.”
아니, 나는 승진 욕심 같은 거 조금도 없다니까 마르셀로?
심정 같아서는 이딴 퀘스트 따위 포기하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마르셀로의 말을 듣고 나자, 나도 모르게 혹하고 말았다.
‘……기여치라.’
그거 [관계도]랑 [영향력]을 말하는 거겠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웬만하면 전부 최대치를 찍고 싶은 욕구.
그와 동시에 솟구치는 나, 이호열의 물욕까지.
‘최대치에 도달하고 [권한] 기능을 활성화하면…….’
말 그대로 마탑을 주물럭거릴 수 있는 건가?
문득, 마탑에 발을 들였을 때의 각오가 떠오른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마탑에 쌓인 마도구를 마음대로 사용하겠노라.
다짐했었지, 아마.
물론, 이놈의 긍지가 사리사욕으로 마탑의 뿌리를 뽑는 걸 용납할 리가 없었지만……. 유스라에서도 그렇고, 뮤온에서도 그렇고 겪어봐서 알고 있잖아?
관계도와 영향력이 높아서 손해 볼 일은 없다는걸.
‘좋아, 해보자.’
사실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도 한참 전 일이었다.
문제는 마음을 먹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어떻게 발표해야 한단 말인가?
‘마르셀로, 심지어 탑주도 이해를 못 했는데.’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정기 학회에 참석한 마법사들이 그걸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아는 그랑펠이라면 거기서 한술을 더 뜰 게 분명했으니.
“이보다 직관적인 마법도 없거늘.”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되려 면박을 줄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지.
“허나, 이해하겠다.”
더군다나 마탑은 과거의 폐쇄적인 마탑이 아니다.
이전보다 많은 플레이어가 마법사로서 정기 학회에 참여할 터. 덕분에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플레이어들의 손가락을 타고 세계로 퍼져 나가겠지.
‘……제발 낯뜨거운 짓만 하지 말자.’
그나저나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실상은 별거 없는 반전 마법이거늘.
그걸로 마탑에서 학파를 창시하게 되다니.
그 이름을 거품 학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않을까.
지금도 민망해질 지경인데.
스스슥─
이제부터는 그 거품을 최대한 그럴싸하게 포장해야 했다.
드넓은 크리스탈 홀 청중 앞에서.
내 거품에, 금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깃털펜을 휘갈기며 침음을 삼켰다.
……녹차 쿠키가 유달리 씁쓸하구나.
*
정기 학회 당일.
학회 일정을 확인한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마, 마지막 순서가……?”
“이호열 수석님의 발표?!”
“이래서 사전 검증에 불참하셨던 거였나!”
“뭐라고? 이호열 수석께서 발표를?!”
지브릴과 클레를 비롯한 숙련 마법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탑의 수석 말고도, 워낙 맡은 직책이 많은 이호열 수석이 아니시던가?
클레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로 대단하세요. 존경심이 들 정도예요.”
비약초의 육성법.
정기 학회 발표를 준비하며 그 중압감을 경험했던 클레였다. 사전 검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크리스탈 홀, 강단에 서는 그 순간까지 머릿속은 더없이 복잡했었다.
“저는 먹을 때도 잘 때도. 머릿속에서 연구 생각이 떠나질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호열 수석님께서는 다른 일정을 수행하시면서 학회 발표를 준비하신 거잖아요?”
잠자코 있던 린느가 꼬투리를 잡았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면 그건 아니죠, 클레 양.”
“……네?”
“왜, 이 수석께서는 이번 사전 검증에 참여하지 않으셨으니까요옷?! 지, 지브릴 양?! 가, 갑자기 제 팔뚝은 왜 꼬집으시는 건가요?”
지브릴이 경멸 가득한 눈빛을 린느에게 쏟아냈다.
“숙련 마법사 정도 됐으면 마탑의 규율 정도는 숙지하는 게 좋겠군요, 린느. 상식적으로 학회 발표자가 타인의 연구를 사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
“이번 발언은 좀 성급하셨네요, 린느 씨.”
얼마나 망한 망언이었으면 클레까지.
린느에게 한마디를 덧붙였을까.
린느가 입을 다물자 지브릴의 낯빛이 다시금 진지해졌다.
“분명 엄청난 발표를 하실 거예요, 수석님이시라면요!”
견습 마법사.
플레이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기 학회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거늘.
플레이어 커뮤니티엔 학회 관련 게시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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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오피셜 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화냐? 이호열 수석 발표라고 ㄷㄷ
마지막에 큰 거 오냐???
피날레 확실하게 장식할듯 ㄹㅇㅋㅋ
그저 호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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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근질거렸지만,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말했다시피 개회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건만.
어째서인가, 선임 마법사 전원이 크리스탈 홀에 착석해 있었으니까.
누군가 속삭였다.
“……진짜 보통 발표가 아니긴 한가 봐요.”
심지어는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까지도.
덕분에 정기 학회는.
거품처럼 잔뜩 부푼 기대감 속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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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번 정기 학회의 파급력은 가히 역대 최고였다.
마법적 성취는 물론.
마탑을 넘어서 대중적으로도.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반전 마법』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니까.
그렇다.
그 시작은 작은 소란으로부터였다.
마지막 순서.
호열이 강단에 선 그 순간.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클라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