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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22화 (222/489)

◈ 222화. 설명이 필요한가?

할짝─

혓바닥으로 솜뭉치를 핥는다.

탑주는 크리스탈 홀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원탁회의를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굴러들어온 돌이기에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건가.

“미야옹─”

그것은 흡족하다는 뜻이 담긴 울음이었다.

왜, 다른 건 다 떼어놓고 보더라도.

비로소 이름값은 톡톡히 하는구나.

원형 구조의 크리스탈 홀에서 벌어지는 회의.

실로 원탁회의답다는 뜻이다.

“고양이?”

“혹시, 누가 데려오신 건가요?”

“아뇨! 입장할 때부터 앉아있더라고요.”

“아이, 귀여워라. 이름이 뭐니?”

“클레, 지금 고양이에 한눈이 팔려있을 땐가요?”

본인더러 귀엽다?

폴리모프보다 못한 변신 마법조차 간파하지 못하는 견습, 숙련 마법사들이다. 귀엽다는 건 오히려 자신이 햇병아리들에게 해줄 말이었거늘.

“미야옹.”

그래도 턱을 긁어주는 손길은 썩 나쁘지 않군.

결국, 탑주는 견습 마법사 플레이어의 무르팍에 자리 잡고 원탁회의를 지켜봤다.

모든 계급의 마법사가 한데 모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모험가까지 섞여 있다니.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저 모습도 마찬가지지.’

서로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선임들의 모습.

탑주는 골골 소리를 내며 생각했다.

이호열 수석, 아무리 보아도 그대가 나보다 낫군.

그러다가 문득, 킁킁 코를 찡긋거렸다.

‘바쁜 모양이구나.’

제자, 제시의 냄새는 풍겨오지 않았다.

물론, 제시가 원탁회의에 참가했다고 한들.

먼저 다가갈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야 면목이 없지 않은가.

‘못난 스승은 폐만 끼쳤으니.’

제시, 너라면.

분명 자신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다고 자책을 했겠지.

모든 것은 나의 모자람 때문이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탑주는 제시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은 스승을 찾아서 다행이구나.’

그래, 이호열 수석.

그는 나보다 훨씬 나은 스승일 테니.

제시를 떠올리자 제시와 함께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런 탑주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스마트폰.

툭툭─

탑주가 앞발로 플레이어의 손을 건드렸다.

“왜, 그래?”

“미야옹.”

“놀아달라는 거야? 지금은 안 돼.”

어차피 딴청을 피웠으면서 회의에 집중한 척하기는.

‘이미 얼굴은 기억해 뒀다, 견습 마법사.’

내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지 않으면 탑주의 권한으로 엄벌을 내리리라. 탑주의 치졸한 협박이 전해진 걸까. 플레이어가 스마트폰을 탑주에게 들이댔다.

“자, 이거라도 보고 있을래?”

화면에 떠오른 건 넷튜브 영상.

그 제목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영상]으로.

어항 속 물고기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영상이었다.

탑주는 생각했다.

‘과연, 흥미롭구나.’

……아니지, 이게 아니라.

‘어디, 세상 소식을 확인해 볼까?’

고깔모자 속에서 제시의 감각을 공유했던 탑주다.

플레이어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한 지식까지 섭렵한 마당에 스마트폰 조작쯤이야. 어깨너머로 보았다고 하더라도 숙지하고 있다.

꾹─

탑주가 발바닥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솜방망이를 따라 움직이는 화면.

그러던 중 탑주의 앞발이 멈췄다.

하늘을 수놓은 별똥별 무리.

‘메테오 스트라이크.’

육체에 새겨졌던 기억에 왜곡은 없었다.

‘나는 정말로 발현했던 거야.’

초고위 마법.

현시점에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발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육체밖에 없었을 테니까.

꾹─

탑주는 그 영상에 발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이내.

“먀.”

탄식했다.

자신의 몸이 이 꼴이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런 초고위 마법을 10연속으로 발현하다니.

마력 탈진도 모자라서.

사망에 이르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폭주했었구나, 나의 육체는.

‘무엇이 그리도 억울했던 게냐, 몸뚱아.’

하찮게 야옹거리기도 잠깐,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호열 수석은 어떻게 저걸 막아낸 거지?’

탑주는 자신의 마법적 지식을 전부 되새겨 보았다.

그럼에도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추락시킬 정도의 마법을 발현한다고 한들.

‘하늘에서 그 잔해가 쏟아질 터.’

그게 바로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초고위 마법이자 종말을 불러오는 마법으로 불리는 이유였다.

그 해답이 이 영상에 담겨있다는 것이냐. 탑주가 극도로 집중해서 액정을 노려보았다.

“뭐야? 영상이 넘어갔네? 다시 틀어줄…….”

“하악!”

“깜짝아! 알겠어. 안 만질게.”

털까지 곤두세우며 그날의 전말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하늘을 거슬러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탑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초초초고위 마법이란 말인가, 이호열 수석……?

*

마탑.

마르셀로의 집무실.

“역시, 제가 찾아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우려할 것 없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달칵─

나는 마르셀로가 내려놓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에 잠긴 티백.

말할 것도 없이 녹차였다.

‘여러 생각이 드는데.’

말하지 않아도 내 취향을 고려해 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얼마나 녹차에 집착했길래.

마탑에서도 티백 녹차를 대접받는 사실에 민망해해야 하는 건가?

‘……일단, 적시자.’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건 심적 안정이었으니까.

“향이 좋군.”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마르셀로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고양이가, 탑주가 있었다.

탑주가 능청스럽게 말한다.

“우리 차기 탑주님께 직접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뭐래, 진짜!

내가 그놈의 차기 탑주 소리 때문에 심장이 철렁해서 달려왔구만.

게다가 찾아오긴 어딜 찾아오려고.

내가 괜히 마르셀로의 집무실을 빌린 줄 알아?

“유감이지만, 그런 친절은 사양하지.”

나, 이호열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데에 큰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랑펠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데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렇다.

옷매무새.

브로치의 각도에도 극도로 집착하는 그랑펠이다.

그런데, 고양이 털을 참을 수 있겠냐고.

심란한 나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르셀로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나저나 호열 경께서 차기 탑주라니. 저는 물론 찬성입니다만……. 갑자기 무슨 이유 때문이십니까? 앞으로 탑주님의 결정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들어야겠습니다.”

……이유를 묻는 건 좋은데.

당사자인 내 의견도 묻지 않은.

탑주의 독단적인 결정에 찬성부터 하지 말아주라, 마르셀로.

‘그보다 이유나 좀 들어보자.’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탑주의 자리를 떠맡을 생각은 죽어도 없다.

수석의 무게.

심지어는 마르셀로랑 나눠 든 수석의 무게만 하더라도 무거워서 가라앉을 것 같단 말이다. 게다가 그랑펠의 오지랖이 어디 보통 오지랖이야?

‘탑주의 무게를 짊어졌다간 나, 진짜 죽는다.’

그걸 떠나서도.

저 고양이가 얄미워서라도 탑주 자리를 떠맡을 생각 따윈 없다. 무단결근하다가 복귀하자마자 사직서라니. 대체 사회생활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나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탑주는 느긋하게 운을 떼었다.

“나는 원탁회의 도중 알아차리고 말았네. 이호열 수석, 그대가 내 육체가 발현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어떻게 막아냈는지를 말이야.”

원탁회의 도중 그걸 알아차렸다고?

어떻게?

의문이 들어서 집중했더니만.

“스마트폰. 모험가들의 마도구를 통해서 말이지.”

그거였구나.

어쩐지.

플레이어 무르팍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더라.

마르셀로가 말을 덧붙였다.

“아, 그거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호열 경께서 분명, 그거 하나면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문 앞으로 소환하실 수 있다고 하셨죠.”

내가?

언제?

하여튼 이놈의 입방정!

놀라서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아, 로켓 배송.’

마탑에 로켓 배송을 요구할 때 그때가 분명하다.

이 또한 기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마탑에다가 배달 기사의 출입 허가를 받아냈었지.

“그렇다.”

덕분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뻔뻔하게 대꾸.

그러고는 일단, 침묵을 지켰다.

이제부터는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진짜 탑주 자리를 떠맡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상사에게 불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나는 이어지는 탑주의 말을 더더욱 경청했다.

“이호열 수석, 그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다행인 건.

고양이의 몸으로는 아무리 무게를 잡아도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한껏 치솟은 꼬리가 탑주가 더없이 진심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대체 무엇이었나? 그 마법은.”

“말씀 중에 실례지만, 그 마법이라면?”

마르셀로의 조심스러운 말에 탑주가 답했다.

“나의 육체가 발현했던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어떻게 하늘로 되돌려 보낼 수 있던 것이지? 마치 아무런 마법도 발현되지 않았던 것처럼. 본래의 상태로 그대로. 설령, 기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되는 마법이 있을 터.”

더욱더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끄럽게도 탑주인 나조차도 그대의 마법이 무엇인지 간파할 수 없었네.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탑주의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호열 수석, 그대의 마법적 능력은 나를 아득히 넘어선 게 분명하니까.”

……잠깐만, 그게 이유였어?

역시, 아무리 봐도 나한테 떠넘기려는 게 확실하다.

나는 내 입장에서 한마디라도 거들어 주려나, 싶어서 마르셀로를 바라봤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마르셀로 수석?

“반전 마법입니다.”

“오호라, 반전 마법. 알고 있던 건가, 마르셀로?”

“그렇습니다. 저 또한 의문을 가졌으니까요.”

부디 탑주와 진지하게 말을 섞지 마라, 마르셀로.

인정할 건 인정하는 나였지만.

오해는 제대로 바로잡아야겠지.

‘기이라면 또 모를까.’

반전 마법은 그렇게 대단한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탐색 → 간섭 → 발현.

마법의 구조를 단순하게 역발현하는 것.

그게 반전 마법이었으니까.

“……네?”

마르셀로가 멍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시한부의 저주가 사라져서인가.’

최근 들어 마르셀로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 같은데…….

이해하기가 힘들었나, 싶어서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친절하게 비유까지 덧붙였다.

“발현된 마법을 탐색. 마치 묶인 매듭을 차례로 풀어내듯. 간섭 과정을 역으로 수행하고 발현하면 그것이 바로 반전 마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설명했지만 참 명확하군.

그래, 묶인 매듭을 푸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반전 마법에 들어가는 수고로움이었으니까.

물론, 남의 마법에 간섭하는 건 나한테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간섭하는 건 서클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시도조차 못 해봤을걸?

그런데, 내 친절한 설명이 무색해지게도.

탑주는 코웃음을 뱉었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 이호열 수석?”

“그렇다.”

그렇다니까요.

뭐, 대단한 게 있는 줄 아셨습니까?

그러니까 반전 마법을 핑계로 삼아서는.

얼렁뚱땅 탑주 자리를 떠넘길 생각은 그만두시죠.

“하하하. 경께서는 정말이지.”

탑주만 코웃음을 뱉었다면 가뿐하게 무시했을 텐데.

마르셀로까지 웃고 있었다.

문득, 불안감이 느껴졌다.

‘……나 뭐 말실수라도 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있는 걸 그대로 말한 것뿐인데!

언제나처럼 당당히 고개를 세운 내게 탑주가 말했다.

“그랬군. 이제야 이해가 됐네. 그대에게는 메테오 스트라이크의 간섭 과정이 단순한 매듭처럼 보였던 거야. 그러니까 그걸 역순으로 발현할 수 있던 거였고.”

“그렇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나, 싶었는데…….

어째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었기에 그쯤에서 알아차렸다.

……혹시, 그 매듭을 푸는 게 정말로 거창하고 대단한 거였나?

탑주와 마르셀로.

두 사람의 마법적 재능은 마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다.

왜냐니.

나부터도 그냥 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알고 계십니까, 경? 저와 같은 범재들은 일반적인 간섭 과정에서도 꽤나 애를 먹습니다. 경께서는 매듭이라 표현하신 그 일련의 과정이 더없이 복잡한 난제 풀이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탑주가 마르셀로의 말을 거들었다.

“그런데, 그 간섭 과정을 역으로 거슬러 파악하는 것도 모자라서는 발현까지 다다른다고? 정말로 찬란한 재능이 아닐 수 없군, 이호열 수석.”

아무래도 반전 마법은.

날로 먹는 마법, 그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고맙군.”

이런 분위기에서 우쭐거리지 마라, 그랑펠.

이러다가 정말로 나한테 탑주 자리를 떠넘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물론, 너는 잘 해내겠지.

쏟아지는 과대평가를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낼 테니까.

하지만 덕분에 고생하는 건 나란 말이다.

“탑주이기 전에 마법사로서 넘어갈 수 없는 일이군.”

탑주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잇는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

마르셀로가 무게를 더한다.

“그러니 탑주로서 그대에게 정식으로 권유하겠네.”

……아니, 잠깐만.

칭찬이 분명한데,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탑주의 꼬리가 살랑거림과 동시에.

시야가 점멸했으니까.

어허, 누구 마음대로 퀘스트를 들이미는 거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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