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그것은 어두운 역사
클라우디 가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인정한다면…….
‘납득이 된다.’
현재 아르카나 대륙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사건을 설명할 수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목격하지 않았던가? 보란 듯 하늘을 활강하는 전설 속의 존재, 용(龍)무리를.
일출의 무사가 입을 열었다.
“……틀림없이 진실이겠지?”
그러자 냉랭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욕이군. 내가 그 이름을 거론하며 거짓을 더할 작자처럼 보이던가? 무지를 이해해 주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네, 동녘의 무사여.”
“그런 뜻은 아니었다. 단지…….”
사교장에 정적이 맴돌았다.
‘폭풍전야란 말인가.’
무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토록 사교장이 텅텅 비어버린 모습은 처음이다.
자신만 하더라도.
클라우디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꽤 긴 시간 사교장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간신히 눈앞의 초월자와 조우했다.
‘그럴 만도 하겠군.’
클라우디를 둘러싼 과거사가 전부 사실이라면.
초월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나?”
“보기보다 호기심이 많군. 좋아, 들어보겠네.”
“그런 위대한 가문이 어째서 자취를 감췄던 거지?”
초월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무지하기 짝이 없기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야.”
그러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그 질문엔 답변해 줄 수 없네. 내게는 그날을 거론할 자격도, 용기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대에게 한 가지 조언 정도는 해주지.”
다짜고짜 조언이라니.
“방금 가졌던 의문은 이 자리에서 잊어버리게나.”
“……잊어버리라니, 어째서지?”
“그 호기심이 자네의 명줄을 앞당길 수도 있으니까.”
의문을 가지는 것만으로 명줄을 앞당길 거라니.
이래서는 조언을 가장한 저주가 아닌가?
무사는 순간적으로 불쾌해졌다.
그러나 이내, 섬뜩한 말이 들려왔다.
“그대는 분명, 저주라고 생각했겠지?”
“……!”
과연, 초월자였다.
속마음을 꿰뚫어보다니.
역시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출의 무사는 착각하고 있었다.
초월자는 진심으로 무사의 무지를 안쓰럽게 여겼으니까.
그러니까 덧붙였다.
“동녘에도 저주란 개념이 있다면 딱히 설명은 하지 않겠네. 저주에 경계할 정도라면 그 위험성 또한 알고 있단 뜻일 테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관심을 끄라는 것이다.”
무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찌 저주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저주 혹은 흑마법.
그건 더없이 이질적인 힘이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일출의 무사, 자신 또한 저주에 당해 며칠 동안 목소리를 빼앗겼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덕분에 이어지는 초월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그것은 클라우디에 지고 만 헤아릴 수 없는 빚.”
“……?”
“단지 엿보는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저주에 시달리게 될 정도로. 아르카나의 어느 누구도 들추고 싶어 하지 않을 더없이 어두운 역사.”
그렇다.
그것이 바로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강자가 날뛰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런 클라우디가 아르카나에 돌아왔으니까.
그 어두운 역사를 클라우디, 스스로 들추기라도 하는 날에는…….
“감히 누구도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테니까.”
“……!!!”
*
칠죄종, 식탐.
칠죄종이란 이름은 무색해진 지 오래였다.
칠죄종은 이제 자신을 포함해서 불과 다섯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지옥에 처박혀 버린 탐욕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질투의 행방은 묘연하기 그지없었다.
한쪽 팔이 잘린 채로 돌아다니던 것도 모자라서는.
이젠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다니.
식탐은 빠득 이를 갈았다.
“도움이라곤 되지 않는 머저리 같은 새끼.”
“……?”
살기가 넘실거리는 혼잣말에 주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쑥대밭이 된 아르카나 대륙이다.
그런 대륙에서 운영 중인 주점이라면 그 수준은 말하지도 않아도 알만했다.
덜그덕─
삐걱─
덜그덕─
조악한 테이블에 깔린 냄새부터 지독한 싸구려 술.
가죽에 양념만 더했다고 하더라도 믿을 정도로 질긴 음식뿐.
손님들 또한 마찬가지다.
“술맛 떨어지게 지랄은.”
“뭐, 동료가 어디서 뒈지기라도 했나? 으하하.”
“거기, 닥치라고 새끼야. 기분 잡치게 하지 말고.”
피에 절은 검과 방어구.
피폐한 눈빛이 저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한다.
버려진 아르카나 대륙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물론, 식탐에게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다.’
무려 수십 년 전의 일.
돌아올 수 있었다면 진작 돌아왔을 것이다.
무언가를 잘못 알고서는 지껄인 말이었을 것이다.
식탐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그딴 개소리를 나더러 믿으라고?”
악(惡)에서 태어난 악, 그 자체.
당연하게도 타인의 말 따윈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찬가지로.
개소리라고 여겼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단 거다.
악크샨의 부활.
개소리라 치부했던 소문.
하지만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가.
가미긴을 지옥에 처박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식탐은 깨달았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는 것을.
식탐이 중얼거렸다.
“……돌아왔다면 누가 돌아왔다는 거지?”
그때였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뒤집어졌다.
“미친 새끼가 내 목소리 안 들려?!”
“?”
“당장 꺼지라고, 이 새끼야! 니 새끼가 들어오자마자 술맛이 싹 달아났으니까. 아까부터 뭐라 뭐라 중얼거리질 않나. 악마라도 씌인 거냐? 엉?”
깨진 그릇.
식탐은 바닥에 널브러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형편없는 음식이지만, 분명 자신의 식사였다.
시선을 옮겨 사내를 바라봤다.
“씐 게 아니라면?”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내가 악마라면 어찌하겠느냐고 묻는 거야.”
“……!!!”
스릉─
감이라는 게 있다.
“역시, 악마 새끼였어!”
어떤 삶을 살아왔든 생사의 갈림길 하나만큼은 셀 수 없이 넘나들었던 사내들이었다. 식탐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곧장 알아차렸단 소리.
사내가 단검을 식탐의 목에 겨눈 채 으르렁거렸다.
“술맛이 달아난 이유가 있었어. 이 빌어먹을 새끼.”
이내, 식탐을 둘러싸는 무리.
대략 스물이 훌쩍 넘어 보였다.
그러나 식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지 중얼거렸다.
“이런 걸로 배를 채우긴 싫은데.”
그리고 모든 게 끝났다.
와그작─
으드득─
우드득─
부서지고 깨지고 씹히는 소리.
“으으…….”
주점의 주인장은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었다.
싸움을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
식탐의 손바닥으로 사내들이 빨려 들어갔다.
와드득─
그리고 끔찍한 소음만이 주점을 가득 채웠다.
손님의 호출이 들려왔다.
식탐이었다.
“주인장.”
“……!”
“미안하지만 물 한 잔만 부탁하지.”
어차피 저항할 힘 따윈 없었다.
사내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물이 담긴 잔을 건넸다.
식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거,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적당히 시비를 걸어야지.”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아, 그래 주겠나? 고맙네.”
이런 주점에서 싸움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평상시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난장판이 된 주점을 정리하고, 수리비를 받아냈겠지만 사내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악마가 있었으니까.
장정을 스물이나 집어삼킨 악마가.
“소문이 진짜든, 가짜든 유효한 해결책을 찾아야 해.”
식탐은 사내가 공포에 떠는 것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간을 스무 명이나 집어삼킨 지금도.
머릿속은 여전히 클라우디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고요해진 주점.
들려오는 건 공포로 뛰는 주인장의 심장 박동뿐.
덕분인가, 머릿속에 썩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나서서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었어.”
좋다.
미끼를 던지겠노라.
클라우디라면 반드시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그 미끼 역할엔 더없이 적합한 놈들이 있었다.
그래, 분수를 모르는 악마들 말이야.
마왕.
마계에서 태어난 잡종 주제에.
악(惡)의 왕을 자처하는 우스운 녀석들.
가미긴처럼 본래부터 존재했던 십좌(十座)의 마왕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었다.
아, 가미긴이 지옥에 떨어진 지금. 이제 진정한 마왕은 아홉밖에 남지 않았나.
“이거, 잘하면 여러모로 적합한 디너쇼가 될지도?”
좋아, 머뭇거려선 안 되겠지.
드래곤, 엘프, 초월자까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클라우디의 소식을 듣지 않았던가?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계산하지.”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은 거 맞나?”
“정말로 받지 않겠습니다.”
“그래?”
주머니를 뒤지는 것처럼.
식탐은 아가리를 벌린 손바닥 속을 뒤졌다.
설령 금은보화라고 해도 그런 곳에서 나온 걸 받을 순 없었다.
이내, 식탐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여신이시여.’
이름 모를 악마에게서.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내가 믿지도 않던 신을 찾던 그때였다.
문득, 식탐이 사내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말이야.”
“?!”
“술은 몰라도 음식 장사는 그만두는 게 좋겠어.”
바닥에 널브러진 음식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내 뱃속에 있는 사내에게 감사하는 게 좋을 거야. 저따위 음식을 입에 댔다면 그대를 먼저 집어삼켰을 것 같거든. 인간보다 맛없는 음식을 내놓은 죄로 말이지.”
사악한 미소.
덜덜덜─
사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고생하게, 주인장.”
식탐이 완전히 주점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신의 보살핌 같은 게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남은 건 단순하게 악마의 변덕 때문이었다고.
*
하여튼 쉴 수 있는 날이 없구나.
나는 원탁회의를 마치자마자 집무실로 복귀했다.
원탁회의에서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원탁회의 이전에.
탑주가 나서서 자신이 벌였던 민폐에 관해 사과의 뜻을 밝혔었거든.
‘……그거랑 별개로 묘하게 얄밉다.’
알다시피 원탁회의는 변화했다.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회의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마탑의 우두머리인 탑주가 빠져선 안 되는 법.
그런데, 설마 고양이의 모습으로 참석할 줄이야!
‘아주 뻔뻔한 게 그랑펠 이상이야.’
견습, 숙련 마법사들이 탑주의 변신을 간파할 순 없었다.
하지만 탑주, 그쪽은 당사자잖아?
인간이면서 태연하게 고양이인 척하는 건 또 뭔데?
배를 만져도 가만히 있더니, 나중엔 아주 골골 소리까지 내더라?
‘거, 팔자 좋으시네.’
누구는 방금까지 제로 산맥에서 사냥과 고뇌를 반복하다가 왔는데.
저렇게 태평하다니.
아무리 요양 중이라고 하더라도.
심보가 뒤틀리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위안거리를 찾자면…….
‘다음 주부터 정기 학회였나?’
나는 다짐했다.
이번 학회에선 탑주를 제대로 부려 먹겠노라고!
명분은 충분하다.
그랑펠의 긍지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게 있거든.
자리에 요구되는 책임.
높은 자리에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지, 우리 탑주님.
달칵─
물론, 나도 그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나처럼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출탑 신청서.
보자, 찻잔을 내려놓고.
벤쉬의 출탑 신청서에 불합격을 휘갈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본능에 따라 양피지로 시선이 옮겨갔다.
처음 보는 낯선 필체가 떠올라 있다.
나서기 좋아하는 이놈의 오지랖.
덕분에 마탑 전원의 출탑 신청서를 꼼꼼하게 살펴봤던 나였다.
그럼에도 낯선 필체라는 건 그 작자의 서신이라는 거겠지.
‘탑주.’
크게 찍힌 도장이 필체의 주인을 확정 짓는다.
‘뭔데, 이거.’
고양이 발바닥 직인.
그렇다.
확실히 탑주가 보내온 서신이었다.
‘왠, 직인?’
글씨를 썼으면 서명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뜬금없이 발바닥 도장은 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건만.
읽고 보니 확실히 직인이 필요한 사항이긴 했다.
그런데…….
──────
현 탑주로서 차기 탑주로 이호열 수석, 그대를 추천하겠다.
──────
뭐어어어어?
나더러 탑주?
아니, 어딜 도망가려고 개수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