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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18화 (218/489)
  • ◈ 218화. 수업 (3)

    사라진 탑주가 날뛰고 있다.

    호열과 마르셀로.

    두 수석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움직였다.

    그럼에도 원로 유그위드를 비롯한 마탑의 선임들이 전원 출탑한 이유는 간단했다. 탑주야말로 마법의 정점과 가장 가까운 존재였으니까.

    호열이 서클을 형성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

    그에 반해 탑주가 서클을 형성한 시점은 아득한 과거였다.

    때문에 유그위드는 판단한 것이었다.

    설령, 기이의 존재가 된 호열이라고 한들.

    경험의 차이를 극복할 순 없으리라고.

    물론, 크나큰 오산이었지만.

    뱅그릿이 말을 더듬었다.

    “지, 지나치게 일방적이에요!”

    호열은 일방적으로 탑주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마치 ‘격’이 다르다는 것처럼.

    탑주가 어떤 초고위 마법을 발현해도.

    호열에게선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그위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오늘만 몇 번을 놀라는지 모르겠군요.”

    이래서야 정말 노파심이 돼버리지 않았는가?

    마법사의 결투는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전사의 싸움과 다르다. 막상막하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력에서 비롯되는 마법이다. 더 강한 마법이 약한 마법을 집어삼키듯 승부가 갈린다는 뜻이다.

    “역시, 탑주님. 저 정도의 화염마법을……!”

    화염마법학 선임, 벤쉬 윌리엄.

    그런 마법의 성질을 무엇보다 잘 드러내는 마법 중 하나가 바로 화염마법이었다.

    벤쉬가 화룡, 카림제바와 맞서길 꺼렸던 이유가 바로 화염이 더 큰 화염에 편승하는 성질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수석님이시라면.’

    카림제바를 제압했던 호열이라면.

    화염마법에 맞서 화염마법을 발현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빙결마법이라뇨?!”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역상성으로 타, 탑주님을 제압하다니?”

    한 번이 아니었다.

    탑주가 특정 마법을 발현할 때마다.

    호열은 오히려 그 마법에 역상성인 마법을 발현해 되받아쳤다.

    그 광경은 마치…….

    정령학 선임, 페이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모습 같지 않나요?”

    “알려주다니, 무엇을요? 페이얀, 선임?”

    “알고 있는 상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처럼요.”

    “……!!!”

    그랬다.

    마법을 발현하는 호열은 정말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그리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들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이었거늘.

    마티스는 알고 있었다.

    호열의 재능은 단순한 마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범접할 수 없는 적합한 마력.

    흑마법에 관한 호열의 재능은 분명 마법적 재능.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인가요, 마티스 선임?”

    “이 순간에도 이 수석께서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을.”

    “……진심인가요?”

    “제가 농담하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왜, 현실에 그런 말이 있다.

    극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다르지 않다고.

    그 말을 여기에다가 가져다 붙일 수도 있겠구나.

    극도로 발달한 마법.

    그 파괴력만큼은 기이와 다르지 않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마법 발현력이다.

    같은 서클이라고 해도, 그 서클을 체화한 시간이 다르다는 거겠지. 내 마법 발현력이 서클의 효과로 1,000퍼센트 상승했다면, 탑주는 적어도 2,000퍼센트 출력으로 마법을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하다, 호열아.

    ‘마법에서 격을 맞춰둬서 망정이지.’

    비약초의 육성법에서 시작해서 영약을 키워내고 강제로 서클을 형성한 것까지. 그 개고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기이로도 저 무지막지한 초고위 마법을 되받아치지 못했을 거다.

    그나저나…….

    “정해진 길이 꼭 답이란 법은 없다.”

    진짜로 수업하듯 말하지 말아줄래, 그랑펠?

    나는 폭주한 탑주의 육체가 쏟아내는 초고위 마법을 모조리 무력화시키면서도, 재잘재잘 입을 열고 있었다. 애초에 탑주는 의식도 없는 상태인데 왜 말을 거는 건데.

    “마법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봤자 저쪽엔 안 들린다니까?

    “마법의 상성? 한계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그런 명언 비슷한 말을 쏟아낸다.

    정말로 말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아르카나인들은 내가 지어낸 말로 속을지도 몰라.’

    왜, 나는 탑주의 마법을 다방면으로 받아치면서 뱉은 말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가, 제시의 동공에서도 느낌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계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제발.

    세상이 모를지라도.

    지껄이고 있는 나는 알고 있단 말이다.

    내가 발현 중인 기이가 얼마나 단순한지를!

    마법에 그냥 기초 과학 수준을 더한 것뿐이라니까?

    그냥 인터넷에 검색해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 개념 몇 가지를 덧붙인 거란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하긴 나도 그랑펠의 설정이 없었다면 마법의 구조는 개뿔.

    마법이 스킬과 다르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근데, 아무리 뻔뻔해도 정도라는 게 있지.

    이런 걸로 우쭐대고 싶진 않단 말이다.

    하지만 나의 절규가 표출될 리가 있나.

    입에선 더욱더 태연한 말이 튀어나온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당연히 대답은 없다.

    “대답이 없다는 건 긍정의 뜻으로 알아듣겠다.”

    정말 한마디, 한마디 지껄일 때마다 수치심에 고통스러워지는구나. 하지만 이 뻔뻔함이 나의 수치심을 고려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나는 재킷을 펄럭이며 말을 이었다.

    “수업을 재개하지.”

    .

    .

    .

    마르셀로는 호열을 바라봤다.

    과연, 경은 나날이 발전하시는군요.

    특히나 기이에 관해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마르셀로는 마법 못지않게 이 세계의 과학을 탐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을 간섭 과정에 더하는 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선 더더욱.

    호열에서 탑주로 옮겨가는 시선.

    압도적.

    탑주에게 승산은 없었다.

    탑주,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출혈량이 심상치 않다.’

    탑주는 몸이 버티지 못할 수준까지.

    마구잡이로 초고위 마법을 발현하고 있었다.

    마르셀로는 이를 악물었다.

    ‘각오는 됐습니다, 경.’

    탑주께서 어째서 저러시는 것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물어도 대답조차 하시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명백하게 위험했다.

    당장만 하더라도 호열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모험가들의 세계는 탑주가 발현한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반파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마탑이 호열에게 진 신세를 생각하면……. 설령 호열이 움직이지 않았어도. 마탑이, 자신이 나서서 탑주를 저지했을 것이다.

    탑주 못지않게 승부의 행방을 잘 알고 있는 건.

    또 하나의 당사자 호열일 터.

    그러나 어째서인가.

    호열은 아까부터 승부에 결착을 짓지 않고 있었다.

    탑주의 마음이 돌아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거늘.

    호열은 자신이 뱉은 말을 오롯이 지키고 있었다.

    “수업을 재개하지.”

    수업.

    말 그대로.

    탑주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것처럼.

    그저 탑주의 마법을 받아칠 뿐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건 탑주가 눈을 뜨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려 왔던 자신조차 엄두 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마르셀로는 탑주를 바라봤다.

    그 외관은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동공뿐.

    언제나 나른함이 깃들었던 눈빛이 더없이 공허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당신은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언제나 냉철함을 잃지 않았던 머리가 어수선했다.

    그런 와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견습 마법사 제시 하인네스였다.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저분이 탑주님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르셀로 수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시는 어째서 탑주가 대답이 없는지.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쏟아붓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대마법사로서, 전대 대마법사인 탑주의 의식이 고깔모자에 깃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고뇌하는 마르셀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대의 말은.”

    마르셀로의 목소리가 거칠게 떨렸다.

    “탑주께서 전대 대마법사였다는 말입니까?”

    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셀로는 그제야 눈치챘다.

    견습 마법사인 제시가 이런 공간에 있던 이유를.

    그리고 떠올렸다.

    탑주가 양피지에 남겼던 서신을.

    “……그때부터 모든 게 계획된 것이었습니까?”

    언제나 나른했던 그 얼굴.

    낯빛 아래 숨겨진 목적이 있으셨던 거였군요.

    하지만 어리석습니다, 탑주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목적이라니.”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그런 건 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호열을 지켜보며.

    마르셀로는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탑주를 향해 소리칠 수 있었다.

    “진정으로 이것이 당신이 원한 결말이었습니까!”

    탑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호열과 마법을 주고받을 뿐.

    그럼에도 마르셀로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외쳤다.

    “정말로 당신은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매 순간 후회했습니다. 어째서 당신께서 깨어있을 땐 나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했는지. 이제야 당신의 앞에서 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탑주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저를 이런 식으로 기만하셨어야 했습니까!”

    마르셀로의 외침이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제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연이었지만.

    마치 모든 게 대마법사인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으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

    마탑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그중에서 벨리에는 지그시 주먹을 쥐었다.

    마르셀로가 느낄 상실감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한결같은 건 오직 호열뿐이었다.

    마르셀로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탑주와 쉴 새 없이 마법을 주고받는다.

    무엇 하나 알아듣지 못하는 탑주의 육체를.

    정말로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그래, 누군가에게 그것은 미련하게.

    또 누군가에겐 냉랭하게.

    다른 누군가에겐 꺾이지 않는 긍지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시스템이 바라보기엔 언제나와 같았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가장 험한 길을 걷게 되더라도.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숭고].

    그런 숭고함은 변화를 일으키는 법이었다.

    [숭고의 효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탑주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이런 마지막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늦었군.”

    호열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허나, 이제라도 깨달았다면 되었다.”

    .

    .

    .

    그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됐잖아?

    마법으로 비유하자면 탐색 과정부터 잘못됐다는 거야.

    애초에 기이에 접근하는데, 목숨이 왜 필요한 건데?

    무엇보다 그랑펠이 목숨을 담보로 기이의 영역에 진입한 이들을 두고 보고 있을 것 같아? 그래, 대마법사 양반들. 그쪽을 말하는 거야.

    나는 점멸하는 퀘스트 목표를 바라봤다.

    ●폭주한 탑주의 육체를 처치하라. (진행 중)

    탑주.

    내가 그쪽의 계획에 얌전히 따를 거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나는 퀘스트 목표가 제시하는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의 존재를 알게 된 참이거든.

    흩날리는 무수한 마력 입자들.

    “……어라?”

    그 마력의 입자들이 실이 되어 제시의 고깔모자를 휘감는다.

    그래, 저 길이야말로 또 다른 길.

    上에 도달한 [심미]가 제시하는 결말이다.

    원래 배운 건 제때 써먹어야 잊어버리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제시의 고깔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툭─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고깔모자를 탐색한다.

    육체와 의식을 강제로 분리하는 마법이라고 했겠다.

    자연스레 고깔모자에 스며들었을 탑주의 마력흔을 헤아렸다.

    마력흔에서 마법의 구조를 파악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시 하인네스.”

    “……네! 고개는 들지 못하지만, 듣고 있습니다!”

    ……너무 세게 고깔모자를 짚었나, 미안한 일이지만 사과를 건넬 새는 없었다. 절차에 따라서 그 당사자의 의견을 구하기도 빠듯했거든.

    “그대에게서 스승을 돌려받아도 되겠는가.”

    “스승이라면, 탑주님의 의식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렇다.”

    곧바로 화답이 들려왔다.

    “물론이죠! 그게 올바른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누가 가르쳤는지 예의 하나는 바르다.

    두 당사자와 신속한 합의를 마쳤으니.

    나는 곧장 마력을 끌어올렸다.

    반전 마법을 발현했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점멸했다.

    ●폭주한 탑주의 육체를 처치하라. (실패)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많이 컸구나, 마르셀로 꼬마 수석.”

    “……!”

    “그리고 거하게 신세를 졌군. 이호열 수석.”

    탑주의 의식이 육체로 돌아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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