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수업 (2)
마르셀로 시무아르드.
시무아르드 가문에 기생하던 마왕조차 탐냈던 재능의 소유자. 천부적인 재능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은 없었으니. 대륙 마도 가문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시무아르드가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라더니…….”
“과연, 가문에 국한될 재능이 아니군요!”
“마탑의 선임 자리를 노려볼만한 재능입니다.”
마도 가문이기에 마탑이 어떤 장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 그런데 마탑에 입성하는 것도 아니고 선임의 자리를 꿰찰 정도라 평가하다니.
누구 하나쯤은 과장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었거늘.
뒷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이런 소년이 모든 주류 분파의 마법을 익히다니요!”
열댓 살 무렵.
마르셀로는 마탑을 지탱하는 스무 개 분파의 마법.
주류 마법을 중급 수준까지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르셀로가 마탑 입성에 발목을 붙잡힐 리는 없었다.
“저 가냘픈 소년이 시무아르드의 아이인가요?”
“오호라.”
“견습을 두고 담소라니, 상당히 낯선 반응들이시군요.”
마탑에서 견습 마법사는 햇병아리 취급이다.
분파에 소속될 수도 없으며 증명할 능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마르셀로는 예외였다. 그는 견습 마법사 때부터 수많은 선임의 눈총을 받았다.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이군.’
‘탐나지만 위험하다.’
‘……오히려 내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을 정도.’
고작 견습 마법사가 선임 마법사의 견제를 받는다?
과거에도, 지금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니, 마탑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었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그와 같은 세대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죠.”
제아무리 출중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마탑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공간이었으니까.
설령 마르셀로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한들.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물론, 그런 안일함은.
“……시무아르드가 사전 검증을 통과했다고?”
“아직 분파도 택하지 않았잖아요?”
“설마, 견습 때 연구를 끝마쳤단 소린가!”
견습에서 숙련.
마치 진급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전 검증을 통과하고 정기 학회에 선 마르셀로 덕분에 사라져 버렸지만.
그 시점부터 마르셀로는 선임들의 경쟁 상대가 되었다.
“그가 어떤 분파를 선택하는지에 달렸네요.”
“우리 중 한 명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겠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러나.
마르셀로는 또 한 번 예측을 뛰어넘었다.
선택하지 않고 창조해 낸 것이다.
『이론마법학』.
마법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받는.
완전히 새로운 분파를.
그 이후부터는 알려진 그대로였다.
이론마법학은 모든 마법을 한 단계 진보시켰으며 마르셀로는 그 공을 인정받아 선임 마법사. 그리고 유력 후보 마티스를 제치고 수석의 자리에 올라섰다.
가장 위대한 업적을 세운 최연소 수석의 탄생이었다.
그날, 마르셀로는 수석의 자격으로 원탁회의에 참가했다.
처음으로 탑주와 조우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흠, 수석의 무게를 견디기엔 한없이 병약해 보이는 꼬맹이로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선임의 자리로 돌아가 그 몸뚱이부터 돌보는 게 어떻겠느냐?”
“……!”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벽, 탑주는 마르셀로에게만 가혹했다.
이론마법학 앞에서도 태도는 한결같았다.
“마법이란 글줄로 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꼬마.”
“그걸 가능케 하는 게 이론마법학입니다. 그리고 성년이 훨씬 넘은 제게 꼬마라는 호칭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그런가. 알겠다, 마르셀로 꼬마 수석.”
“…….”
탑주는 시시콜콜 마르셀로의 꼬투리를 붙잡았다.
탑주를 제외한 마탑의 모두가 마르셀로의 재능을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수석의 자리를 내려놓고 떠날 정도의 모독이었다.
유그위드는 그 모습에 웃음을 삼켰었다.
“탑주께도 저런 삐뚤어진 면이 있으실 줄이야.”
자신을 비롯해.
모든 마법사는 정상의 범주에서 어긋나 있다.
말했다시피 그건 마르셀로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쉽게 말하자면…….
탑주와 마르셀로는 서로에게만 비틀어져 있었다.
“알고 계십니까? 그런 걸 꼬투리라고 합니다.”
“무례하구나, 꼬마 수석.”
“어순을 바꾼다고 담긴 의미가 달라지진 않습니다.”
“알았다, 수석 꼬마.”
“…….”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천하의 마탑.
탑주와 수석 마법사가 최상층에서 이리도 유치한 대화를 나누고 있으리라고는.
그러나 지독하게도 맞닿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평행선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끊겨버리고 말았다.
“……탑주님?”
마치 번데기 속에 웅크린 애벌레처럼.
탑주가 마력 구체에 갇히고 말았으니까.
누구의 소행도 아니었다.
“확실하게도 탑주님의 마력흔이네.”
탑주, 스스로 행한 일이었다.
마르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을 가로막았던 유일한 벽, 탑주.
그 벽을 자신의 힘으로 무너트릴 수 없게 된 꼴이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세월이 흐르고 마르셀로는 끝내 인정했다.
“제가 무지했습니다.”
탑주는 자신과 이론마법학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알아봤다는 사실을.
마르셀로는 탑주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론마법학을 더욱 발전시켰다. 언젠가 탑주와 다시 만날 날을, 탑주에게 자신을 증명할 날을 기다리며…….
.
.
.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마법사들은 죄다 나사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어!’
마르셀로는 단순히 탑주를 존경한 게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탑주를 꺾어도 자신의 손으로 꺾겠다는 뒤틀린 감성.
그것조차 한 단어로 줄여보자면 ‘애증’이라는 것이었다……!
“말씀드리지 않고 뒤쫓아 송구합니다. 경.”
송구할 것 없다, 마르셀로.
언제나 말하지만, 지원군은 언제나 다다익선이다.
다만, 양심상 끌고 올 수 있는 지원군이 많지 않을 뿐이지. 발버둥 치는 도중 잔뜩 끼어버린 거품 탓에 지독한 난이도에 휘말리는 내가 아니던가?
‘사실 마음 같아선 총출동 명령이라도 내리고 싶다.’
거대 연합부터 라이언 하트 기사단까지.
든든한 지원군의 덕을 보고 싶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만 하더라도 몇몇을 제외하면 탑주와 마주해서 무사할 수가 없겠지.
특히 플레이어 쪽은 전멸이다.
‘물론, 제시는 예외지만.’
탑주의 제자이자 편애를 받는 제시는 깍두기 취급이니 제외.
거기에 마르셀로가 합류하긴 했다만.
마르셀로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능력을 떠나서 나, 처음 봤거든.
“이에 관한 책임은 복귀 후 절차를 거쳐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방금 전해드린 사연 말입니다.”
저렇게 의욕적인 마르셀로의 모습은.
오죽했으면 텔레파시에서도 감정이 느껴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겠네, 마르셀로.”
마르셀로까지 합류한 이상.
이건 더 이상 제시만을 위한 수업이 아니게 됐다.
어깨너머로 대마법사의 마법을 습득할 나는 물론.
탑주에게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르셀로까지.
각자의 사연이 얽힌 전장이라는 거지.
“제시 하인네스 견습 마법사.”
“네! 듣고 있습니다, 마르셀로 수석님!”
“그대에게도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아, 네! 괜찮습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나는 대마법사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제시는 그저 마르셀로가 대마법사와 연이 있다고 짐작하는 모양이군.
물론, 마르셀로도 같은 처지다.
‘탑주가 무의식 상태라는 걸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어.’
……아니, 애초에 탑주가 대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한 건가? 탑주 이전, 전대 대마법사들의 정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만 봐도 가능성은 낮았다.
제시는 모험가였기에 대마법사란 게 알려진 특이한 경우였으니까.
‘꼬여도 단단히 꼬였어.’
나는 일단, 한숨을 삼켰다.
‘이거, 또 나만 마음이 무거운 거잖아.’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이보다 와닿을 수 없다……!
“와아, 이게 다 환각마법이었다니요!”
제시는 정말로 수업인 줄만 알고 있고.
“오랜만에 재회인데, 답조차 없으시군요.”
마르셀로는 탑주의 껍데기에 말을 걸고 있다.
얽히고설킨 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나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란 것이다.
그러나 내색할 순 없었다.
그랑펠의 긍지를 떠나서.
애초에 그럴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탑주의 육체가 출현합니다.]
“!”
출현 메시지.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지금까지는 예고에 불과했다는 것.
환각마법이 발현해 낸 풍경이 서서히 걷혀가기 시작했다.
이내, 순수한 마력으로 전환.
그 상태에서 곧장 발화(發火)했다.
마르셀로가 이를 갈았다.
“정말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계시는군요, 당신은.”
이론마법학의 창시자.
모든 주류 마법을 이론으로 정립했던 마르셀로였다.
당연하게도 먹고 먹히는 마법의 상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뜻.
마르셀로가 곧장 물의 방벽을 펼쳤다.
“불에는 물……!”
제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저건.
간섭 과정에 들어간 수고를 따지면.
상위 마법 세 개를 동시에 발현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치지지직─!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다.
물이 불에게 우위라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떨어질 때의 이야기지. 모든 걸 집어삼키는 겁화는 물조차도 증발시켜 버리는 법이니까.
“칫.”
마르셀로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진짜로 흔한 광경이 아니네.
그나저나 언제까지 팔짱을 끼고 참관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이걸로 확실하게 깨달았거든.
탑주의 육체는 명백하게 폭주하고 있단 사실을.
“도가 지나치군.”
분리된 의식과 육체에서 오는 괴리겠지.
‘그 간섭 과정이 짐작조차 안 되니까.’
탑주조차 완벽하게 발현할 수 없었던 거겠지.
의식이 안배를 남겨뒀던 것과 무관하게.
육체는 그저 날뛸 뿐이라는 것.
그러니 이제부터는 더 이상 수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뱉을 말은 정해져 있었다.
“수석으로서 승인할 수 없는 수업이군.”
……패기롭게 입을 떼긴 했는데.
상성을 앞세운 마르셀로의 마법조차 압살을 당할 정도였지. [첫 세계수의 축복]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마법만으론 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쪽도 나와 마찬가지로 서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결국, 시작부터 진심으로 갈 수밖에 없겠군.
나는 곧장 기이 발현을 준비했다.
역시나 가장 효율이 좋은 건 반전 마법이겠지.
그러나 속성 마법을 반전시키면 순수한 마력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탑주는 그 마력에 다시 간섭할 터.’
제아무리 탑주라고 하더라도 마력이 무한하지는 않다.
이만한 마력을 소모했다면 분명 육체에 부담이 올 수밖에 없겠지.
환각에 화염마법이라니.
마력 소모량으론 최상위를 다투는 마법 중 하나였으니까.
‘그쪽 좋은 일을 해줄 것 같아?’
대마법사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치밀해야 한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발동 중인 나의 마력 재생력은 최대치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마력의 우위를 앞세우겠단 것이다.
그런데.
“……!”
“……어?”
마르셀로와 제시가 멈칫거렸다.
아무런 감정변화도, 의식조차 느껴지지 않는 탑주의 육체에서 이상이 포착됐으니까. 탑주의 입가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험했다고 알아차린 건가.
제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건 분명, 마력 탈진이겠죠……?”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환각에 화염 마법까지.
연속으로 발현해 놓고선.
몸이 멀쩡할 거로 생각하면 양심이 없는 거지.
이쯤에서 냉정하게 선언하겠다.
탑주, 그쪽의 계획은.
아무래도 대차게 실패한 것 같다고.
“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비틀어진 동경.
그러나 마르셀로는 분명 탑주를 존경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꿰뚫어 본 건 탑주가 유일했으니까.
“대체 무슨 이유로……?”
마르셀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비로소 그런 탑주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탑주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탑주가 아니었을 테니.
나는 입을 열었다.
“제시 하인네스.”
“네, 듣고 있습니다!”
“유감스러운 소식을 전해야겠군.”
“……아, 저도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고깔모자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제시는 말을 전해왔다.
직감할 수 있었다.
고깔모자 속에서도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괜찮다.
모두에게 상처뿐인 수업은 여기서 끝이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그대의 수업은 이쯤에서 끝내겠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집중하도록.”
“……네?”
“이 수업은 수석인 내가 책임을 지고 끝마칠 테니.”
메테오 스트라이크.
환각마법.
그리고 지금의 화염마법까지.
나는 탑주가 발현하는 최상위 마법들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는 내 입으로 지껄였던 것처럼.
감히 ‘초월자의 경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이의 경지’에 올라선 것 같다고.
그 말인즉.
“그대의 발현에서 배울 것은 없었다.”
“…….”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변했다고.”
이런 화염마법 따위야.
역상성인 빙결의 기이.
[『절대영도』]로도 상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쩌저저적!
순식간.
입김이 쏟아져나올 정도로 냉각된 일대.
나는 탑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시간부로 나의 수업을 시작하겠다.”
“수업 도중 질문은 받지 않겠다.”
“대답하는 건 내가 아닌 탑주, 그대니까.”
거참 뒤끝 한번 길구나, 그랑펠.
그런 의미에서 각오해라, 탑주.
사전 검증만으로도 마탑을 눈물로 적셨던 나였다.
그런 나의 첫 수업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
.
.
.
요동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뒤늦게 도착한 원로, 유그위드.
그리고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 전원은 목격했다.
“정말이지, 이 수석 그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