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얼마든지 날뛰어 보도록
『여러분 곁으로 최악의 적이 찾아옵니다.
신규 보스 몬스터, 탑주가 추가됩니다.
출현 지역은 ‘지구 전역’입니다.』
충격적인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건 다름 아닌 AAU였다.
신규 보스 몬스터가 탑주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윤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최악의 적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게 될 거야.”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마법사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레벨과 무관하게 클래스가 마법사 계열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유명 길드에 입단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는 일당백.
능력에 따라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존재들.
그 당시의 귀족 클래스 중 하나로 투자되는 비용을 포함. 육성 난이도는 극악이지만, 육성해 내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보상을 거머쥐는 클래스였다.
“아르카나 설정이 그랬으니까요.”
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드넓은 아르카나 대륙을 일통했다고 봐도 무방한 제국이었거늘. 무수한 병사 숫자와 비교해 제국 소속 마법사의 머릿수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까놓고 밸런스 때문에 만든 설정이었지. 마탑은.”
마법사는 아르카나 대륙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마탑은 그런 마법사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족쇄 역할을 했다.
허나, 아르카나가 현실이 된 지금.
마탑의 마법사들은 NPC가 아니었으니, 설정도 영원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 사실만으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아직도 마탑이 현실에 등장한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완전 초비상이었죠, 저희.”
“마탑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 매일 야근이었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감사해야겠네요.”
위험성만으로는 핵폭탄을 능가하는 마탑.
그런 마탑이 인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줄은 몰랐는데.
모든 게 마탑의 수석, 호열 덕분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업데이트는 더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탑 측에서 들어온 연락은 없나?”
“그렇지 않아도 견습 마법사 자격으로 마탑에 머물던 플레이어들에게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가 사건과 관련해서 의견을 밝힐 거라고요!”
“후우. 일단, 마탑 전원이 돌아선 건 아니란 건가.”
터져 나오는 한숨 속에서.
성현준과 윤수겸은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뻐금거리는 성현준의 입.
“왜, 이번엔 호열 님이 아닌 거죠?”
지금껏 대중에게 마탑의 태도를 밝히던 건 호열이었다.
마탑의 실세, 수석이자 플레이어.
호열만큼 현실과 마탑의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없었으니까.
성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긴급 업데이트도 예상하고 먼저 움직이고 계신다든가?”
“아니, 설마가 아니야.”
“네? 뭐 짚이는 거라도 있으세요, 선배?”
“탑주가 플레이어들의 적으로 돌아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호열 씨라면 분명 그 이유를 알고 계시겠지. 아니, 모를 수가 없어.”
“……같은 마탑 소속이시니까요?”
“그래, 유그위드도 분명 파악하고 있을 거야.”
윤수겸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윤수겸의 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탑의 로비.
취재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원로, 유그위드.
-“설마, 탑주가 적의를 드러내리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녀의 선언에 성현준은 말을 더듬었다
“……끼,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탑주가 가사 상태에 빠져 마력 구체 속을 부유하고 있으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는 AAU였다.
그러나 정확히 예상할 수 없다고는 해도, 비슷하게 추측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예상은 하고 있었던 반응이죠?”
“그래, 담담한 목소리를 보면……. 행방이 묘연해진 것까지는 알아차리고 있었던 눈치야. 젠장, 마탑에 무슨 떡밥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쵸. 어떤 설정이 어떤 식으로 실현됐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동안 수도 없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아르카나 대륙 전기의 밸런스를 해치지 않기 위해 추가했던 몇 줄의 설정들이 ‘실존’하는 부메랑이 되어 현실로 날아들었던 광경을.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의 추측은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절레절레─
생각을 떨쳐낸 윤수겸이 말했다.
“좋아, 당장은 닥친 위기만 생각해 보자고.”
마탑의 사정?
그딴 건 눈앞의 위기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대단하시다는 아르카나 대륙의 마법사들.
그 마법사의 정점, 탑주가.
인류의 적으로 등장한 상황이었으니까.
“젠장, 드래곤이 날아오른 게 얼마 전인데.”
윤수겸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올 정도.
그만큼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탑주는 균열에 등장한 게 아니었다.
그저 마탑에서 출탑.
곧바로 현실로 뛰쳐나왔단 것이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듯.
업데이트 내역에도 똑똑히 명시되어 있다.
출현 지역이 ‘지구 전역’이라고.
“탑주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싸울 생각인 걸까요?”
“그런 기동력을 따라갈 수 있는 건…….”
“플레이어 중엔 호열 씨밖에 없겠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는 AAU.
그러나 시작부터 틀렸다.
탑주에게는 포탈을 타고 동에서.
서에서 나타날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위이잉─
요란한 경고음.
자동으로 전환되는 전면 모니터 화면.
갑작스러운 경고음이었지만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
최근 이것과 똑같은 경고음을 들었으니까.
그랬다.
제로 산맥 최정상에서 드래곤이 날아올랐던 그 순간에.
지부장, 박민재가 입을 열었다.
“빌어먹게도, 어나더 스페이스 호에서 도착한 교신이다.”
그의 목소리가 낯설게 떨렸다.
“소행성 군집이 지구로 낙하 중.”
“……네?”
“정황상 탑주가 발현한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추정된다.”
“!!!”
초월자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
아주 성대하게 날뛰어 주시는구나, 우리 보스!
마법 서적을 탐독하는 것 또한.
하루도 빼놓지 않은 일과 중 하나였다.
덕분에 잘 알고 있지.
반짝─
하늘에서 쏟아지는 저 유성우가 어떤 마법인지를.
‘미친, 메테오 스트라이크 10연발이라니.’
아무리 계획 일부라고 하더라도.
지구를 날려버리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메테오 스트라이크.
웬만한 마법사는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는 마법이었다.
발현 과정만 살펴보더라도 눈치챌 수 있을걸?
무려 하늘도 아니고, 우주에 떠있는 소행성에 탐색. 낙하시킬 정도의 마력을 쏟아부어서 간섭하고, 발현 과정에 도달해야 하는 마법이란 뜻이다.
그 정도 마법 발현력을 갖춘 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장담하겠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발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서클’이 필요하다고.
나는 입을 열었다.
“탈출을 자축하는 것인가.”
그 대단한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대한 감상평을 뱉었다.
“그러나 폭죽의 방향이 잘못됐군, 탑주여.”
저런 핵폭탄이 폭죽이라니.
허세 진짜…….
그러나 지키지 못할 말은 내뱉지 않는다.
『반전 마법』 발현.
나는 역행하는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바라봤다.
그래, 반대로, 하늘로 쭉쭉 뻗어져 나가는 게.
그랑펠 말대로 이제야 폭죽놀이 같긴 하네.
문득,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운석들이 거꾸로?!”
“잠깐. 이, 이호열이다!”
“뭐라고?! 어디?!”
“엄마, 별똥별이 아니라 폭죽놀이였나 봐요!”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시민들.
보다시피 이곳은 인구가 밀집한 도심지였다.
말은 태연하게 내뱉고 있지만, 진심으로 아찔해진다.
‘내가 진짜 온 힘을 다해서 발버둥을 치고, 온갖 우물이란 우물은 다 파고 다니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영약까지 직접 키워서 먹고 서클을 형성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발버둥 치다가 다리에 쥐라도 났었다면?
이 순간, 나는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탐색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발현했다면 또 모를까.
타인이 발현한 낯선 마법이었으니까.
‘일반적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 또한 초월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초월자 : 그대의 초월적인 경지는 초월자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 현재 도달한 성취 : 서클 (모든 마법 발현력 1,000% 상승) / 미완성 쾌검술 / 없음 / 없음…….]
발현력이란 마법에 관련된 모든 능력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거기엔 탐색 능력도, 간섭 능력도 포함.
그렇지 않아도 낯뜨거운 설정 덕분에 경이로운 수준이었던 그랑펠의 시야가 1,000퍼센트 더 밝아졌다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와 그랑펠은 기이,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군.
『설정』과 [시스템].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을 알뜰하게도 써먹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나저나.
언제까지고 탑주에게 휘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탑주의 마력흔을 추적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탐색하며 마력을 특정했으니, 어렵지 않게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그 좌표를 향해 곧장 포탈을 발현했다.
“……파이팅!!”
문득, 뒤통수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뱉은 말.
그 목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내게 응원이 쏟아졌다.
“흐흑, 감사합니다……. 정말로……!”
“부디 이겨주세요, 호열 님!”
“긍지를 담아서 응원하겠습니다!”
……저런 소릴 직접 듣는 건 처음인데.
하긴, 플레이어들과는 많이 부딪혔던 나였지만.
일반인들하곤 마주할 일이 없었지.
그 사실을 의식해서일까, 어깨가 심히 부담스럽군.
부담감 때문이냐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뻔뻔하게 읊조렸다.
“실로 소박한 소원들이구나.”
그렇다.
이놈의 긍지가 부담감을 느낄 리 없었으니.
어깨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당연히.
이 와중에도 펄럭거리는 재킷 때문이라는 것이다…….
.
.
.
그나저나 상도덕이라는 게 없군, 레이먼 션.
아무리 긴급 업데이트라고 하더라도 내역에 레벨 정도는 공지해주는 게 국룰 아니냐고. 물론, 초월자부터야 레벨의 의미가 퇴색되는 경지라고는 하더라도.
‘그래도 짐작은 할 수 있을 거 아냐?’
포탈에서 빠져나온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서클의 능력을 찍먹한 거나 다름없었다는 걸.
탑주에게는 전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전장을 창조할 수 있었으니까.
육안으로는 평범한 하늘, 땅, 산, 숲처럼 보였거늘.
일대에는 짙은 마력이 넘실거린다.
곧 눈치챌 수 있었다.
‘실체가 아니야.’
모든 게 ‘마력 덩어리’라는 것을.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게 전부 환각마법이었다.
진심으로 경이로울 정도의 마법 구현력이다.
‘나스로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환각마법학 선임 나스로우.
그의 환각마법과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차원이 다르다.
보통의 환각마법이 대상을 속이는 것이라면, 이건 세상을 속이려 드는 수준. 실제로 나는 두 다리로 마력 덩어리를 땅처럼 딛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환각마법인가?”
내가, 그랑펠이 누군데?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기껏해야 100레벨 언저리였던 그 시절.
초청장도 없이 정기 학회가 열리는 마탑에 또각거리며 들어가서는. 탑주의 환각 마법을 간파했던 나란 말이다.
그러니까 태연하게 지껄일 수 있단 거지.
“탑주, 뜻밖에도 그대는 발전이 없군.”
이런 깽판을 벌인 탑주에겐 무슨 속셈이 있는 건지.
나야 알지 못한다.
하지만 탑주.
정확히는 탑주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적의는.
메테오 스트라이크 10연발에서 확실하게 파악했다.
그러니 나도 진심일 수밖에 없다.
정렬하는 육망성 브로치의 방향.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발동 중인 버프를 확인한다.
[천적관계]는 발동되지 않았지만.
업데이트 내역에 적혀있던 대로.
탑주의 육체는 보스 몬스터 판정이다.
[육망성 브로치 2/6]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세트 효과 : 2/6]
[1. 모든 기본 스탯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2.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모든 피해량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천적관계]가 없는 상태에선 10퍼센트의 전력상승도 소중하지. 물론, 탑주와 비교하자면 보잘것없는 나의 마력량을 뒷받침해 주는 [첫 세계수의 축복]도 빠트릴 수 없다.
게다가 탑주의 육체.
그쪽은 나처럼 이런 마도구 하나도 없잖아?
마력 구체에선 맨몸으로 빠져나왔을 테니까 말이야.
펄럭거리는 여명의 재킷은 제쳐놓더라도.
나는 마탑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에픽 등급 아이템으로 둘둘 도배했단 말이다.
마지막으로.
본의 아니게 상위 마왕 덕분에 체감하게 된 기이의 위대함까지.
탑주라는 최악의 적을 상대로.
혼자서 나선 데에는 합리적이면서도 복잡한 계산이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득, 허공에 일렁이는 마력.
서서히 발현되는 포탈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