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당사자에게 묻도록
탑주가 사라졌다.
마탑, 선임 계급 이상의 마법사 전원은 크리스탈 홀에 신속히 집결했다.
물론, 거기엔 수석인 나도 포함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최초 목격자로서 크리스탈 홀 강단에 섰다.
이런 상황에도 목과 허리는 지나치게 꼿꼿하구나.
꼿꼿한 자세 덕분에 집결한 이들의 면면이 한눈에 보인다.
대다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군.
벤쉬와 뱅그릿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뱅그릿 선임?”
“소식 못 들으셨어요?”
“아니, 그게 정신이 없어서…….”
“손에 들고 계신 그 종이는 또 뭔가요?”
“아, 이거 말입니까?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긴 뭐야, 나에게 불합격을 받은 출탑 신청서지.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건 벤쉬뿐인 것 같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다수는 탑주와 접점이 없을 테니까.’
원로 마법사들과 대면해 본 선임 마법사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보다 더 보기 힘든 탑주와 마주한 이들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물론, 몇 안 되는 이들이야…….
지금도 충분히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르셀로에겐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
“탑주님께서 실종되셨습니다.”
마르셀로는 자리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그 현장을 처음 발견하신 건 이호열 수석이십니다.”
그 말이 더없이 옳다.
그러니까 이렇게 강단에 꼿꼿하게 서 있는 거지.
이내, 유그위드가 마르셀로에게 눈짓하고는 말꼬리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런 이 수석을 제가 발견했지요.”
그것도 맞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네요! 다른 분도 아니고 이호열 수석께서 최초 발견자시라니. 분명, 어떤 사소한 단서라도 찾아내셨을 테니까요!”
……저거, 나를 조리돌리는 건가?
의심할 정도의 발언을 내뱉는 건 벤쉬였다.
출탑 신청서의 복수를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거늘.
벤쉬의 눈치야 경악스러울 정도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자.
사실 벤쉬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나의 똥고집이었으니.
내게 집중되는 시선─
분명, 내가 탑주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물론, 짐작하고 있다.
단서보다도 명확한 퀘스트 목표가 눈앞에 떠오른 상태였거든.
─대마법사들의 음모를 저지하라. (진행 중)
●탑주의 육체와 마주하라. (실패)
●폭주한 탑주의 육체를 처치하라. (진행 중)
……그래, 이렇게 잘 풀릴 리가 없다 생각했다!
분명 육체와 의식을 분리했다는데.
탑주의 육체는 어떻게 손가락을 꿈틀거렸던 걸까.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부터 불안 불안했다는 거다.
사건의 경위는 보이는 퀘스트 목표, 그대로였다.
마력 구체 속에서 부유하던 탑주의 육체가 폭주.
구체를 깨부수고는, 의식은 그대로 고깔모자에 남겨둔 채 마탑에서 가출했다는 것. 탑주의 육체가 어디로 간 건지는 알 수 없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폭주한 탑주의 육체를 처치하라. (진행 중)
절대 호의적으로 나오진 않을 거겠지.
이렇게도 구체적인 사정과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거늘.
말했다시피 내 고집.
아니지, 그랑펠의 똥고집이 문제였다.
“마탑 최상층에 단서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단서는 내 퀘스트창에 있지.
최상층에 있는 게 아니니까.
그치만.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는데, 어째서.’
항상 입으로는 매를 벌고.
말은 씨가 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냐, 그랑펠?
“아앗…….”
나의 단호할 정도의 선언에 벤쉬는 흠칫 당황한 모습이었다.
옆자리의 뱅그릿이 그를 대신해서 입을 연다.
“그렇다면 탑주님의 행방에 대해 짚이시는 바는……?”
그에 관한 내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답하지 않겠다.”
“……!!!”
자기변호를 하자면 이건 단순한 꼬장이 아니었다.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킬 수밖에 없는 긍지 때문이지.
그렇다, 나는 탑주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이 일은 당분간 기밀에 부치겠다.”
근데, 아무리 기밀이라도 그렇지.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조금은 돌려서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나의 뻔뻔한 선언에 크리스탈 홀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유그위드가 입을 연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탑의 최상층을 찾았는지, 이유 정도는 물어도 되겠습니까? 마탑의 수석에겐 최상층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곤 하지만. 이 수석은 평상시, 최상층에 출입하는 일이 없지 않았나요?”
왜긴요, 당연히 퀘스트 때문이지.
그러나 애초에 탑주로부터 시작된 퀘스트였다.
뱉은 말에 따라서.
유그위드의 질문에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으니.
이번에도 내가 뱉은 말은 한결같았다.
“답하지 않겠다.”
진심, 공포의 주둥아리가 따로 없구나.
내가 이렇게 수상한 사람이다.
광고하다시피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거늘.
그럼에도 나를 향한 눈초리가 의심으로 바뀌진 않았다.
‘이런 반응은 좀 감동이네.’
물론, 의심받지 않는다고 끝난 건 아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르셀로의 시선.
누가 봐도 공허해진 눈빛이 나를 향했다.
“……경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데에는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 부디 이번만큼은 제 심정을 헤아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한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마법사는.
그중에서도 마탑의 마법사들은 절대 성인(聖人)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는 마탑의 일화에 관해서는 멀게는 소문으로, 가깝게는 예시카를 통해서도 전해 듣지 않았던가?
‘단순하게 방해가 된다고 일대를 날려버렸다니까.’
그런 마법사들이 누가 봐도 수상한 나를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체감하고 싶지는 않았건만.
확실히 마탑이 변했다는 게 느껴지는군.
그러나.
“유감이네. 마르셀로 수석.”
“……경?”
“그럼에도 그대의 부탁에 응할 수는 없겠군.”
내가 쓸데없는 의심을 사가면서까지 대답하지 않는 건 전부 마르셀로 때문이었으니까. 그래, 나는 마르셀로가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애타게 기다리는 탑주는 이미 죽었으니까.’
육체와 의식이 분리된 시점에서 탑주는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시에게 대마법사 클래스를 계승할 순 없었을 테니까.
그게 바로 내가 당황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 또한 탑주의 계획 일부겠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만.
퀘스트 목표에 떠오른 대로.
탑주, 자신의 육체가 사망해야지만 이뤄지는 계획.
그렇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르셀로에게만은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경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나에게 실망한다고 하더라도.
.
.
.
벨리에는 흑마도학 선임, 마티스를 바라봤다.
마티스는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추궁이 아닌 절차에 불과했거늘.
그럼에도 최초 목격자란 이유로, 이호열 수석께서 단상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조차 보기 싫으시다는 거겠지. 사실 벨리에의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같은 심정일 거야.’
숙련, 견습 마법사는 모를지라도.
이곳에 모인 선임 이상의 마법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모험가였던 이호열 수석, 그가 마탑을 위해 짊어졌던 짐들을.
마탑의 과오.
카림제바를 비롯한 원로 마법사들이 악마 숭배자로 밝혀졌던 순간, 이호열 수석께서는 쏟아지는 세상의 관심과 화살을 전부 자신에게 돌리셨었다.
뿐만 아니다.
휘청거리던 마탑이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새로운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의 바람을 이끈 것도 이호열 수석이었다.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런 표정들이겠지.’
그런 이호열 수석이기에.
이 자리의 모두는 신뢰하고 있는 것이었다.
탑주의 행방불명에 관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더라도.
수석님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질답에 이의는 없습니다.”
“저 또한 남은 의문은 없습니다.”
“슬슬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순수마력학, 뱅그릿 톰.
대지마법학, 마이아 데이안.
마법부여학, 키코 아르민.
정령마법학, 페이얀 롯…….
“동의합니다.”
끝으로 자신과 마티스 선임 마법사까지.
계급과는 무관했다.
원로, 유그위드도 선임들의 선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크리스탈 홀에서 의견을 밝히지 않은 건 마르셀로가 유일했다.
‘마르셀로…….’
벨리에는 마르셀로에게 탑주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가끔은 마르셀로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정도였으니까.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아.’
벨리에는 마르셀로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탑주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탑주가 사라졌다.
그 현장을 처음으로 발견한 건.
불행 중 다행으로 이호열 수석.
마르셀로는 누구보다 마음을 놓았었겠지.
이호열 수석이라면 틀림없이 탑주가 남긴 흔적에서 무언가를 포착했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정작 이 수석께서는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모른다도 아니고, 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복잡한 마음이라는 걸 알아.’
마르셀로, 네 성격이라면.
감히 이 수석님을 원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그러나 벨리에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호열 수석의 심정도 마르셀로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벨리에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
‘이 수석님…….’
호열이 단신으로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했던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수백만의 악마가 달려드는 와중에도 시무아르드가(家) 시한부의 저주를 해주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때문에 피투성이로 마탑에 복귀했던 광경까지 목격했던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진실을 말한다면 마르셀로는…….’
분명, 이 수석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지.
하지만 덕분에 마르셀로가 더 큰 자책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수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에게 격한 감정변화는 좋지 않다.”
당부가 있었기에 여태껏 그날의 진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던 벨리에였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벨리에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거라 믿습니다.’
벨리에는 호열을 바라봤다.
크리스탈 홀을 빠져나가는 그 뒷모습을.
문득, 호열이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이 수석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었지.
-“본래 살아가는 건 고독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다.”
“……이번에도 혼자서 짊어지시는 건가요?”
벨리에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 무게를 견디실 수 있는 거죠?”
.
.
.
하여튼, 이놈의 흑역사가 여러 사람 헷갈리게 한다!
그냥 속 시원하게 모든 게 탑주의 계획이라고, 탑주가 제 발로 마력 구체를 깨고 마탑을 벗어난 거라고. 까버린다고 어디 덧이라도 나는 거냐고, 진짜.
‘미안하다.’
특히나 마르셀로에겐 면목이 없다.
내가 마르셀로에게 여태까지 받아온 게 얼만데!
아무리 마르셀로를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이에 쉬쉬해야 할 일이 생길 줄이야.
‘아니,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나의 자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내뱉는 입.
“멋대로구나. 탑주여.”
그거 대체 누가 할 소리냐, 그랑펠.
‘내가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크리스탈 홀에서도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 플레이어에게 장비는 생명과도 같은 거니까. 게다가 여명 세트는 평상시 입고 다니던 정장과 큰 차이도 없었으니까.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펄럭─
근데, 이놈의 재킷을 일상에서도 어깨에 걸쳐두는 건 좀 심하지 않냐? 날 쳐다보는 시선이 괜히 차림새 때문에 그런 것 같고, 피해의식이 생긴단 말이다.
“제멋대로인 행동에 정식으로 책임을 묻겠다.”
나도 네게 수치심에 관한 책임을 정식으로 묻고 싶구나, 그랑펠.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이제부터 나는.
검성, 셰그윈과 마찬가지로.
초월자, 그와 동시에 전대 대마법사인 탑주를 처치해야만 했으니까.
정확하게는 탑주가 아닌, ‘탑주의 육체’지만 말이야.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
나는 태연하게도 읊조렸다.
크리스탈 홀에서의 뒤끝을 더해서 말이야.
“마르셀로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탑주, 그대이지. 내가 아니다.”
제발.
이번에도 그 말을 실현할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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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대륙 전기 공식 홈페이지】
※긴급 업데이트 공지
『여러분 곁으로 최악의 적이 찾아옵니다.
신규 보스 몬스터, 탑주가 추가됩니다.
출현 지역은 ‘지구 전역’입니다.』
그날 인류는 깨달았다.
아르카나 대륙의 초월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개의 운석.
“엄마!”
“저기, 하늘에서 별똥별이 엄청나게 떨어져요!”
“흐흐흑, 신이시여. 제발……!!”
절망 속에서 목격했다.
“유감스럽게도.”
마치 되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나는 신도, 미신도 믿지 않는다.”
밤하늘로, 우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운석 무리.
“그럼에도 소원을 비는 중이었다면.”
그런 초월자조차 능가하는 기이의 존재를.
“내가 대신하여 이루어 내겠다.”
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