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길을 밝히겠다고 하지 않았나
콜로세움 경기장.
버서커이기에 누구보다 결투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레오니였다.
그래서 더더욱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봐요, 뱀눈 씨.”
“듣고 있습니다.”
“제대로 보고 있냐? 아니, 보이냐?”
도리도리.
남태민의 물음에 히사기는 고개를 저었다.
육체 능력이라면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호열과 검성의 움직임은…….
“차원이 달라.”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
하르콘의 몸놀림을 떠올려 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훈련에서 하르콘과 합을 겨뤄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사자처럼 민첩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눈에 보이기는 했단 말이다.
쌔액─
푸화아악─
언뜻 형태를 포착하기 무섭게.
속도 탓에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찰나의 순간.
챙!
카릉!
챙!
오가는 수십 번의 합.
소리가 한 박자 느리게 귓가에 들려올 정도.
말 그대로 소리보다 빠른 움직임의 증거였다.
“카밀라, 뭐가 보여? 그치, 너한테는 보이겠지?”
관중석 또 다른 곳.
드미트리는 옆자리에 카밀라를 보챘다.
원거리 무투계 랭킹 1위, 카밀라가 아니던가?
그녀의 눈이라면 저런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겠지.
“그래서 누가 이기고 있는데, 응?!”
그러나 카밀라는 한숨을 삼킬 뿐이었다.
“……나도 아직 한참 멀었구나.”
“엥?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도 안 보여. 눈이 따라갈 수가 없다구.”
“!”
록스조차 멈칫할 정도의 대답이었다.
카밀라의 시야야말로 샤이닝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 자신들보다 수백 단계나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카밀라의 눈은 적의 움직임을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
록스는 냉정히 생각했다.
‘사실 놀라운 것도 아니야.’
검성.
동시에 대륙 유일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셰그윈.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최강의 NPC가 누구인가?
떡밥이 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우연치 않게라도 셰그윈과 직접 만났다는 플레이어는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그의 명성은 서적에도, 소문에도, NPC들의 입에서도 끊이질 않았었다.
‘검성이라면 충분히 저럴 수 있어.’
게다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셰그윈은 젊음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르카나 대륙, 검의 정점이라면 저런 무위를 보여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이호열이었다.
록스는 진심을 담아서 중얼거렸다.
“대체…….”
불과 조금 전까지.
호열의 범접할 수 없는 마법적 능력을 체감하고 왔다.
제로 산맥을 뒤덮은 라이트.
그런 라이트를 단번에 움직여 공격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정도의 마법 구현은 플레이어보다는 마탑의 수석에 어울렸으니까. 공동 수석인 이호열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애써 이해했다.
그러나.
“……어디까지 앞서나갈 생각인 거야?”
이제는 검으로 검성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고?
그렇다.
저건 더 이상 아르카나 시스템의 영역이 아니었다.
‘레벨로 설명할 수 없다.’
이호열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거다.
그 사실을 알아본 건 록스뿐만이 아니었다.
“……!”
세컨드 썬의 길드 마스터, 슈레이그.
그는 호열과 함께 던전, [우울한 비의 도시]를 클리어하며 검기를 깨닫고 발산하게 됐다.
그렇게나마 강제적으로 눈을 떴던 덕분에 슈레이그에겐 보이고 있었다.
검성을 몰아붙이는 은빛의 검강이!
합을 겨루는 게 아니었다.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셰그윈이 호열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해하고 있었다.
슈레이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으로 따라갈 순 없었지만 검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결투는 오래가지 않는다.’
아니, 그걸 떠나서 진작 결판이 났어야 할 승부였다.
검기를 발산하게 된 슈레이그.
그렇기에 검기의 유무가 얼마나 큰 격차를 내는지.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검기를 발산하지 못하고 있어.’
보이는 것은 오직 은빛의 검강뿐.
셰그윈의 검기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슈레이그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호열이 셰그윈에게 몇 번씩이나.
아니, 수십 수백 번이나 수를 물러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다.
이 결투는 진작에 셰그윈의 패배로 끝났어야만 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모든 게 보였다.
챙!
셰그윈이 막아낸 것이 아니다.
그가 막을 수 있도록.
호열이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검기를 깨달은 슈레이그조차 간신히 진실을 알아차렸거늘.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곳곳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성과 대등하게 맞서고 계셔!!”
“말이 되는 일이냐고, 이게.”
“이러다가 정말 이기시는 거 아니야?!”
승부는 결정됐다.
그러니 슈레이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이 있으신 겁니까?’
그때였다.
서걱─
소리와 함께 셰그윈이 무릎을 꿇었다.
허나, 호열은 단지 똑같이 검을 휘둘렀을 뿐.
셰그윈의 육체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었다.
“미친……!!”
승기를 잡은 호열.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함성 속에서.
슈레이그는 생각했다.
‘받아낼 수 있게 공격하고, 쓰러지면 기다린다…….’
“……!”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셰그윈과 같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우산을 든 호열의 모습.
-“지금부터 그대가 할 일은 간단하다. 지켜보는 것.”
-“정확히는 검기를 목격하는 것이다.”
-“그대를 믿는 나를 믿어라.”
슈레이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검성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
.
.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셰그윈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 귀철에게 몸을 맡긴 것도 모자라 검강까지 발산했으니.
시종일관 압도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더군다나.
‘……보인다.’
그랑펠의 무지막지한 재능이 있었다.
셰그윈의 쾌검에 실시간으로 적응해 가다니.
양심에 찔릴 정도로 잘났구나, 그랑펠.
그 결과, 나는 셰그윈에게 유효타를 먹였다.
서걱─
셰그윈의 왼팔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몰아붙인 것 같았거늘.
공격이 적중한 건 처음인가.
역시 괴물이구나, 검성은.
그런데 들려온 말이 예상 밖이었다.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냐?”
……갑자기 뭔 소리래?
원하는 거야 당연히 승리다.
시공간의 결투에서 패배해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대에게는 수백, 수천 번이나 나의 숨통을 끊일 기회가 있었다. 어째서지? 악마보다 못한 내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그대의 뜻대로 됐지 않았는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셰그윈.
“막으라고 휘두른 공격조차 받아칠 수 없을 정도로. 내 육체는 한계에 다다랐으니 말이다.”
……실화냐?
나한테 진짜 그런 기회가 있었다고?
흠칫한 나를 대신해서 귀철이 답했다.
-애송이가 아직도 주인의 뜻을 깨닫지 못했나.
……넌 또 왜 급발진을 하는 건데?
당연하게도 나, 이호열에게 별 뜻은 없었다.
내가 아니니, 그랑펠의 뜻이라는 건데…….
나도 의외일 수밖에.
그랑펠이 누구던가?
악마와는 불필요한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그랑펠은 악마에게 쓸데없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타락한 셰그윈에게도 그랑펠은 동정심 따윈 품진 않았을 터.
“검을 들어라.”
내 생각을 증명하듯.
그랑펠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말처럼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인가.
셰그윈이 삐걱거리는 몸을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웃음을 뱉었다.
“단순한 악취미인가?”
그랑펠은 답하지 않았다.
물론, 답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다.
그랑펠에게 악마는 취미조차 되지 못하는.
수고를 들일 가치가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서걱─
“……큭.”
서걱─
“으윽.”
어째서 그랑펠은 셰그윈과의 결투를 끝맺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래, 그 심오한 의문에 대한 답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겠지.
‘……역시 꽃밭이구나, 그랑펠.’
현실에서 때가 묻은 나, 이호열과 그랑펠은 다르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변하기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랑펠은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랑펠은 인간이란 동물을 과대평가해도 너무 과대평가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곳.
제로 산맥에서도 마찬가지였지.
-“내가 길을 밝힐 테니, 얼마든지 뒤쫓아도 좋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긍지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불구덩이 속에 뛰어든 행보가 그 증거다.
그 순간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때 묻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거든.
지금이야 나를 평화의 상징이자 인류의 영웅이라 떠받들고 있지만, 언제 어떤 유혹에 등을 돌릴지 모르는 게 인간이란 생물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검을 들어라.”
그랑펠은 인간을 믿는 것이다.
설령 악마에게 육신을 팔아넘겼다고 한들.
긍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결국, 모든 고생이 나의 업보 때문이라는 거구나…….’
이 험난한 세상에.
네 고집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그랑펠?
나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나는 쭉 그래 왔던 것처럼.
발버둥 칠 수 있을 때까지 발버둥 쳐주겠다.
다짐하는데.
“……?”
간과하고 있었다.
사람은 없더라도.
시스템이 있었다는 것을.
[숭고의 효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셰그윈에게서.
.
.
.
천천히 눈이 감겨온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가 쉬고 싶다고 소리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한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나.’
시작부터 잘못된 길이었거늘.
어찌 그리도 멈추지 않으려, 꼬꾸라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달려왔단 말이냐, 셰그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아틀라스.
‘모든 게 끝이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검로가 아닌 잘못된 길에 들어선 내가 아니던가?
더 나아가 봤자 추악한 행보만을 보였겠지.
나를 멈춰 세운 사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셰그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용서는 바라지 않겠다.’
전해지지 않을 사과 또한 건네지 않겠다.
그저 나의 죄를 안고 지옥에서 죗값을 치르겠다.
그래, 그것이 인간을 저버린.
악마에게 걸맞은 최후일 테니까.
이젠 육체를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조차도.
“……?”
그래.
눈을 감았기에.
무엇하나 보이지 말아야 할 텐데.
어째서인가.
무언가 보였다.
정확하게는 한 갈래의 길이 보였다.
“이게 주마등이라면…….”
셰그윈은 웃고 말았다.
“정말이지, 단순한 인생이었구나.”
이것이 내가 택한 헛된 검로(劍路)라는 것이겠지.
과연, 그 추측이 맞는 듯싶었다.
길은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으니까.
“…….”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동시에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책임을 지고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셰그윈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검을 들어라.
“……?”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게 끝나서까지.
나를 꾸짖는 것인가, 그대는.
“……뭐, 좋을 대로 해라.”
그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겠지.
셰그윈이 씁쓸하게 고개를 떨군 순간이었다.
어째서인가,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였다.
잘못 들어선 검로.
그렇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신의 검.
아틀라스가 손에 쥐어있었다.
아틀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제 말을 들어주시는군요.
“……!!”
-고래고래 소리치느라 목이 다 쉬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어째서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 겁니까?
아틀라스가 말을 이었다.
-당신과 함께는 길, 그것이 저의 검로이니까요.
셰그윈은 입을 다물었다.
손끝에서 아틀라스의 고동이 전해져 왔다.
그런가.
그렇단 말이냐.
너는 잊지 않고 있었구나.
셰그윈은 애써 입을 열었다.
“……험한 길이 될 것이다.”
-여태까지는 험하지 않았나요?
“영영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좋다고 되돌아오겠습니까?
“……이 길이 잘못된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러냐.”
마지막 말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검로.
“……!”
어째서인가.
그 어둠 속에 한 줄기의 빛이 드리웠으니까.
그건 숭고하게 빛나는 은빛의 섬광.
“쓸데없이 다정하구나. 그대라는 사내는.”
셰그윈은 결국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울다가 웃으면 큰일이 난다고 하던데요.
“다물어라, 아틀라스. 너도 울지 않았느냐.”
-누가 그랬습니까? 저는 검입니다. 검은 울 수 없습니다.
“그 코맹맹이 소리나 좀 어떻게 하고 말하는 게 어떠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이건 소리를 지르느라…….
길을 나아갔다.
.
.
.
회광반조.
셰그윈은 더없이 푸른 검강을 발산하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틀라스를 품에 안은 채로.
어느샌가 노인으로 돌아온 얼굴.
입가에는 아련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귓가에 함성이 들려왔다.
“믿고 있었습니다, 호열 씨이이이!!”
“이겼어! 이호열이 검성을 이겼다아아아!!”
“이래서 전설 업적이 떠오른 건가?!”
“그치, 이게 새로운 전설이 아니면 뭐냐고!”
이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공간의 결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