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선물 (2)
귀철의 제련까지는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었거늘.
‘날 위한 방어구까지 만들고 있었어?’
하이엘이 그에 관해 드워프들의 말을 전해왔다.
“그들은 산맥의 주인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드래곤의 강함이야, 드워프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
내가 드래곤과 맞서 비명횡사하지 않게 장비를 제련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되는 복장.
그랑펠의 까다로운 심미안을 충족시키며 성능까지 뛰어난 장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대충 마법부여 효과만 추가한 정장을 입고 활동해 왔는데…….
‘나야 완전 고맙지!’
드워프의 방어구라니.
그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장비잖아!
무엇보다 심미안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장비를 검수하는 게 하이엘이라잖아.
분신이라 불러도 될 만큼 그랑펠을 빼다 박은 하이엘의 외관.
그리고…….
‘……패션 센스.’
정령왕을 뺨칠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그랑펠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는 복장이었으니까.
드워프가 제작했으니, 성능은 걱정할 것 없겠고.
문제는 하나겠구나.
‘레벨 제한.’
그렇게 생각하니 제로 산맥의 등장이 고마워진다.
[적정 레벨 : 누구에게도 권장되지 않음]
제로 산맥에서는 능력에 따라서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나도 내 능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는 게 문제였지만.
다시 한번 느낀다, 선행 학습의 폐해를……!
모조리 건너뛰어 버린 중간 과정.
덕분에 나는 검강이고, 서클이고 능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서클은 시스템으로 효과를 알려주기라도 했지.
검강은 정확한 효과를 가늠하기 힘들었으니까.
‘결국, 그랑펠 말이 또 현실이 되는 건가.’
긍지와 제로 산맥.
무엇이 더 높은가, 겨뤄보자고 했던가.
정말 한계까지 부딪혀 가며 주제 파악을 하고, 레벨을 올려야 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
나도 남태민이나 히사기, 레오니 같은 플레이어들과 똑같이 온종일 사냥에 매진할 각오를 해야겠지.
“마지막으로 귀철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철아.
부디 네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이엘의 입에서 이어지는 말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짜로!
어떻게 다들 성격이 그 모양이니.
너희는……?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
월스와일과 아직도 신경전 중이라니.
괜히 에고 장비가 아니라는 거냐?
하이엘이 그랑펠의 외관과 심미안을 빼다 박았다면.
디엔드는 흑역사를.
귀철은 그랑펠의 고집을 빼다 박은 것 같은 느낌이다.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개노답 삼형제야, 뭐야?’
근데, 그 셋을 합친 게 나였으니까.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네.’
그냥 관두자.
그나저나 방금 뭐라고 했니, 하이엘?
하이엘은 귀철의 말을 흉내 내듯 말을 이었다.
“더욱더 예리해져야 한다. 하늘의 별, 마안을 베어야 한다. 땅의 숫돌로는 부족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숫돌, ‘은하수 숫돌’로 나를 벼려내야 한다고…….”
은하수 숫돌?
어째 들어본 적이 있다 했더니만.
그거 셰그윈이 찾던 마도구잖아?
반군에게 힘을 빌려주는 대신, 안토니움 창고에 있는 은하수 숫돌을 챙겨 받기로 했었다고. 셰그윈은 자신의 입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었다.
‘뭔데, 귀철.’
……너 어떻게 그런 고오급 마도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데?
뭐, 그건 차차 묻기로 하고.
이건 눈치가 있다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은하수 숫돌.
괜히 셰그윈이 노린 게 아닐 정도로 대단한 마도구인 것 같다. 하이엘의 말에 따르면 드워프들도 은하수 숫돌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하이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마도구를 요구하니, 월스와일도 난감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주군께서 명만 내려주신다면, 디엔드를 통해 귀철을 설득해 볼 생각입니다. 주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디, 디엔드가 누굴 설득해?!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귀철마저 걔한테 물들까 봐 무섭다.
제발 걔는 그냥 나서지 말라고 전해주라, 하이엘.
하지만 나는 아찔한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뻔뻔하게 읊조릴 뿐.
“우려할 것 없다, 하이엘.”
“……주군?”
“은하수 숫돌, 그 행방은 내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주군!”
역시 그러실 줄 알았다는 것처럼.
감격과 믿음에 찬 눈빛도 보내지 말아주라, 하이엘.
그래도 큰소리를 쳐놓고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왜, 안토니움에서 내 영향력과 관계도는 최대치에 이르렀으니.
마탑에서 그런 것처럼 마도구를 대여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까.
나는 하이엘에게 말했다.
“안토니움에 전하거라.”
“하이엘이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은하수 숫돌의 대여를 정식으로 요청.
이내, 하이엘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갔다.
자, 그럼 나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겠지?
‘최대한 올려놔야 한다.’
새로운 장비가 그림의 떡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레벨, 그보다 커다란 그릇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나타났으니까.
“제로 산맥.”
제로 산맥, 그 넓이는 호주와 비슷.
그 높이는 성층권을 가뿐하게 돌파할 정도. 그런 게 갑자기 솟아났으니, 마탑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구의 80퍼센트가 물에 뒤덮였을 거란 말이 새삼스레 와 닿는다.
“그만큼 높고 광활한 무대라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선 꽤 피곤한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제로 산맥에 진입해서는.
다짜고짜 몬스터들과 부딪히며 사냥을 시작하는 건 말이야.
왜,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르잖아.
‘십 년이 넘는 공백기는 무시할 수 없어.’
최후의 악마 사냥꾼.
덕분에 악마 쪽 지식은 빠삭한 나였지만.
평범한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적절한 체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그랑펠이야, 몬스터를 두고 무슨 동물을 훈육하는 것처럼 쉽게 지껄이고 있었지만. 제로 산맥의 몬스터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천하의 탐험가 연맹조차 제로 산맥의 중턱을 밟아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말 다한 거겠지, 뭐.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아니거든.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고, 검색 결과에 찡찡거리던 이호열이 아니란 말씀. AAU 유스라 지부의 총책임자, 짊어진 무게 덕분에 알게 된 정보가 있다는 말이다.
“십만(十萬) 동굴이라.”
말 그대로 십만 개의 동굴.
설정상 아르카나 대륙 전기 최후반까지 무대가 될 수 있던 제로 산맥이었으니까. 개발 예정된 콘텐츠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했던 모양이었다.
‘십만 개의 동굴.’
[던전], [전장], [미궁], [콜로세움] 등등.
동굴마다 특수한 속성이 존재한다고 했겠다.
십만 개의 콘텐츠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발이 끝나기 전에 대격변이 터져버렸으니까.
AAU에 존재하는 십만 동굴에 관한 정보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극히 일부만 해도 그게 어디냐.’
게다가 과거와는 다르게 내겐 긍지로 뭉친 아군이 있지 않던가?
악마 앞에서는 내가 그들을 이끌었던 것처럼.
일반 몬스터 앞에서는 내가 그들의 뒤를 쫓을 수도 있는 거지.
맞다, 그랑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고받음.
이른바 상부상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AAU의 정보]. 그리고 실현된 『제로 산맥』.”
그랑펠의 의미부여는 나보다 한발 앞서 나갔다.
내가 틀린 말이라면 반박이라도 하겠는데.
지나치게 거창해서 그렇지.
또 맞는 말이라는 게 문제였다.
“결국, 이 또한 기이겠군.”
그래, 이번에도 그놈의 기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긍지다.
나는 곧장 포탈을 발현했다.
좌표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제로 산맥.
나는 포탈에 발을 내디디며 읊조렸다.
“기이에 관해서 나보다 앞서나가는 이는 없겠지.”
또각─
“내가 길을 밝힐 테니, 얼마든지 뒤쫓아도 좋다.”
*
고오오오─
제국 최고위 마법사, 내쉬 윌리엄.
내쉬가 마력을 발현하자 굳게 닫혀있던 황궁의 창고가 열렸다.
황실 기사들이 신속히 창고로 진입했다.
“으음.”
잘근─
내쉬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나도 몰랐던 은하수 숫돌의 존재를…….’
보다시피 황궁의 창고엔 보물이 가득하다.
어떤 지역, 어떤 시기의 보물이 창고에 잠들어 있는지는.
그 주인인 황제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였다.
내쉬는 창고의 봉인 마법진을 바라봤다.
‘혹, 저 마법진을 뚫고 투시를 했다거나…….’
그러고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무려 ‘대마법사’가 발현했다는 마법진이다.
제국이 세워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간파된 적이 없던 마법진으로, 설령 제국이 멸망하더라도 창고만큼은 열 수 없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마법이었다.
‘내가 마법진에 간섭할 수 있는 것도 제국과 서약을 맺었기 때문이니까…….’
고민하던 내쉬의 눈빛이 결연하게 빛났다.
‘벤쉬 형님, 아무래도 저도 천성을 숨길 수 없는 마법사인가 봅니다.’
샘솟는 미지에 관한 탐구 욕구.
내쉬는 결심했다.
‘물어봐야겠어.’
한없이 깊은 어둠, 이호열 경이라고 했나.
심지어 그는 모험가가 아니던가?
아르카나 대륙에 머문 시간 또한 짧을 테니까.
사실은 은하수 숫돌이 무엇인지.
그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해야 하는 일이었다.
철컥─
황실 기사들이 은하수 숫돌을 들고 나오자 내쉬는 다시금 창고를 봉인했다. 그러고는 황제를 알현했다. 내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내쉬.”
“다름이 아니라…….”
슥─
내쉬의 시선이 황궁 밖을 향했다.
정확히는 안토니움의 상공을 향했다.
하늘을 부유하는 거대한 선박.
드워프들의 아이언 캐슬 호가 보였다.
내쉬가 말을 이었다.
“폐하께 출궁의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계급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해 보이는 정령, 하이엘. 하이엘을 통해 호열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내쉬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누군가는 묻겠지.
안토니움에 드워프들이 찾아온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으냐고. 맞다, 영웅담에 대한 그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내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확인하고 싶다.’
그래, 이건 마법사로서의 탐구 욕구였다.
무엇보다 호열이 어떻게 은하수 숫돌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지.
어째서 필요로 하는 건지.
드워프들이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이내, 황제의 입이 떨어졌다.
“내쉬.”
“네, 폐하.
“그 출궁 요청은 허락하지 않겠네.”
“……네, 네? 폐하?!”
그러나 제국 최고위 마법사의 자리란 무거운 법.
욕구에 따라 비울 수 없는 자리였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내쉬, 그대는 존재만으로도 안토니움의 백성들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아닌가? 당분간은 자리를 지키는 게 좋겠네.”
반박의 여지가 없는 명답이십니다, 폐하……!
결국, 내쉬는 속으로 한탄하고 말았다.
형님, 저는 아무래도 부족한가 봅니다.
‘……벤쉬 형님이셨다면 분명 폐하와 백성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하시면서도, 자유자재로 출궁하실 수 있었겠지요?’
형님에 비하면 이 아우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
.
.
마탑.
부유 정원.
벤쉬는 뱅그릿과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눴다.
그 주제는 당연하게도 제로 산맥에 관한 것이었다.
벤쉬의 입꼬리가 비뚤어졌다.
“아주 신 나셨습니다, 뱅그릿 선임?”
“아닙니다. 하하.”
“웃음기라도 지우고 말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턱을 괴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벤쉬 윌리엄.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다.
뱅그릿, 이 허당 같은 사내는 어찌 이렇게 운이 좋단 말인가?
‘이 수석과의 접점부터가 특별했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카림제바에게 속아 넘어갔을 텐데.
벤쉬는 도무지가 이해가 되지 않아 투덜거렸다.
“시시한 출탑 목적이 뭐가 마음에 드신다고…….”
크고, 화려하고, 뜨거운 출탑 목적!
위대한 마탑을 나서기 위해서는 위대한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벤쉬는 출탑 신청서에 불허가 떨어질 때마다 그 목적을 더더욱 부풀렸다.
『상급 마도구를 대여, 악마를 태워버리기 위함.』
『상급 마도구를 대여, 악마와 그 주둔지를 태워버리기 위함.』
『상급 마도구를 대여, 균열을 몽땅 태워버리기 위함.』…….
어째 그 방향성이 심히 잘못되었거늘.
“정 그러시다면 제가 한번 봐 드릴까요?”
“뭐요? 됐거든요, 뱅그릿 선임.”
“그렇게 싫으시다면야 별수 없고요.”
벤쉬의 드높은 자존심이 불허를 받은 출탑 신청서를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 리 있으랴.
결국,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벤쉬는 고심 끝에 출탑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상급 마도구를 대여, 제로 산맥을 불사르기 위함.』
그래도 다행인 건 그 표정이 밝다는 것.
“제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도 오늘로 끝일 겁니다, 뱅그릿 선임. 이번에야말로 제 출탑 신청서가 통과될 테니 말입니다.”
제로 산맥의 등장.
그건 곧 마탑의 역할이 늘어났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왜, 산맥의 최정상에는 마탑의 숙적.
드래곤이 잠들어있지 않던가?
혹시라도 그 잠룡들이 깨어나기라도 해봐라.
그 화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마탑밖에 없을 테니까.
우쭐─
어느샌가 팔짱을 낀 벤쉬가 말을 이었다.
“벤쉬 윌리엄에게 이보다 적격인 무대도 없겠죠.”
화에는 화(火)로.
더욱이 마탑의 역할이 늘어난 만큼.
출탑 인원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벤쉬는 진심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양피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 어째서!”
──────
제로 산맥에서 마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들. 모든 선임이 마탑에서 그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따라서 벤쉬 윌리엄, 그대의 출탑 신청서는 불허하겠다.
──────
벤쉬가 절규했다.
“왜, 하필 남아있는 선임이 저랍니까?! 이 수석님!!”
*
제로 산맥.
가장 먼저 산맥을 밟는 건 우리다.
천하통일의 길드 마스터.
류오쥔춘은 주먹을 쥐었다.
“비로소 나의 차례가 왔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샤이닝과 거대 연합.
그들이 마왕 쟁탈전이라는 턱없이 높은 벽에 부딪힐 때 천하통일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플레이어적인 면에서도, 현실적인 면에서도.
인터넷에 흔히 떠돌던 질문.
만약,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불만을 가지고.
국가와 대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류오쥔춘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척─
류오쥔춘을 향해 경례하는 이들.
“주군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다.
폐쇄된 조국에서 류오쥔춘은 모든 실권을 차지했다.
공포를 앞세운 통치든,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클래스, [군주]의 능력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으니까.
태평양을 가르는 붉은 함대.
류오쥔춘은 솟아난 제로 산맥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의 찬양을 마음껏 즐기거라, 이호열.”
제로 산맥이라는 거대한 무대가 펼쳐진 이상.
네놈이 꽃밭에 물을 주는 여유를 부린 이상.
내가 너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니 말이다.
그렇게 다짐한 류오쥔춘은 제로 산맥에 진입했다.
“……!”
그리고 위화감을 느꼈다.
반짝─
허공에서 빛을 발하는 구체.
누군가 발현한 마법.
라이트가 제로 산맥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니까.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누군가 자신들보다 먼저 제로 산맥을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누구냐?”
류오쥔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나밖에 없을 거다.
-“내가 길을 밝힐 테니, 얼마든지 뒤쫓아도 좋다.”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
이 정도로 개고생을 하는 인간은.
시스템이라도 이 서러움을 알아줘서 다행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역시, 뭐든 최초가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