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차는 생략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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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사교 : 의식, 시공간의 사교장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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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평범한 클래스였으면.
무슨 스킬 효과가 뭐 이러냐고 투덜댔을 정도로.
불친절한 것도 모자라 난해한 효과였다.
‘시공간의 사교장이라.’
그러나 나의 클래스가 무엇이던가?
불친절함의 끝판왕, 악마 사냥꾼.
게다가 경험으로 습득한 사전지식까지 있었으니.
단련된 나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이라면, 구마의식이랑 비슷하려나.’
의식이라.
구마의식을 떠올려 보면 딱히 무리가 될 건 없었다.
구마의식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별개로 흘러가니까.
‘구마의식이 악마 사냥꾼과 악마만 진입할 수 있는 의식이라면……. 시공간의 사교장은 초월자만 진입할 수 있는 의식이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뭔가 VIP가 된 것 같고, 그런 느낌?
그러면서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여튼, 뱉은 말은 기어코 실현해 내고 마는구나.’
나는 하르콘에게 허세 가득하게 말했었다.
나를 믿어주겠나, 라고.
말했다시피 해결할 방법이라곤 쥐뿔도 없었으면서 말이야.
그러나 [시공간의 사교]를 습득한 지금.
나는 그 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를 찾은 셈이었다.
시공간의 사교장.
그곳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초월자인 검성.
셰그윈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퀘스트 : 쓸데없는 짓]
셰그윈은 악마 사냥을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다.
셰그윈과 대화를 나누고,
행동의 진위를 파악하라.
─셰그윈과 조우하라. (진행 중)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남긴 퀘스트는 물론.
─안토니움을 수성하라. (진행 중)
어쩌면 메인 퀘스트 목표도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무엇보다 규칙이 있으리란 점을 알고 있어서 더더욱 섣부르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구마의식과 마찬가지로 규칙이 존재할 텐데.’
구마의식의 규칙이야 뭐, 간단하지.
보다 우월한 정신력이 의식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하지만 초월자들만 진입할 수 있는 의식이다.
규칙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겠지.
마음 같아서는 인터넷이라도 뒤져보고 싶었는데…….
관련된 정보가 있을 리가 있나.
“업무보다 중요한 사교는 없다.”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휴직계를 제출한 건 마탑뿐.
유스라 왕국 집무실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는 또 별개라는 그랑펠 님의 말씀이시다.
나는 그렇게 서류를 살피다가 흠칫했다.
‘AAU에서 보내온 자료인가…….’
유달리 눈을 끄는 단어가 있었으니까.
[고인물 커뮤니티].
그 내용을 정독하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시공간의 사교장』을 말하는 거잖아?!
덕분에 알게 됐다는 것이다.
시공간의 사교장.
의식의 규칙을.
그런 내게 망설임은 없었다.
해가 저문 저녁.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스왈린 공작의 애장품]을 착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브로치를 정렬했다. 사교장에 진입한다고 멋이라도 부리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로군.”
……간만에 떠오르는 낯뜨거운 설정.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 과거 사교계에서 그랑펠의 존재는 사막의 오아시스 혹은 신기루와 같았다. 사교 자리를 즐기지 않았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많지 않았거늘. 홀연히 등장하는 날에는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말았으니…….』
진심으로.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서 잘라버리고 싶다……!
너그럽게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인기가 많다고.
간단하게 끝낼 수도 있었던 거잖아?
뭐가 이렇게 구체적이고 디테일이 가득하냐고!
‘자기 자신이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상은 추종자가 다를 정도로 다수의 동경을 받고 있다…….’
질풍노도 시기.
노골적인 욕망이 가득한 설정이 아닐 수 없구나.
나 진짜 거울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수치스럽다.
물론.
그랑펠은 언제나와 같이 뻔뻔했으니.
이내, 나는 태연하게 지껄이고야 말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 법.”
제발 좀.
그러고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디 나의 흑역사가 재현되지 않기를.
*
또각─
홀을 울리는 소리.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낯선 인기척이 누구의 것인지 다들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검성, 셰그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위 마왕을 지옥에 떨어트린 자.’
상위 마왕.
자신조차도.
아니, 이 자리에 모인 초월자들조차 감히 대적할 수 규격 외의 존재. 그랬다. 이 기척의 주인은 그런 상위 마왕을 홀로 지옥에 떨어트린 자였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지.’
새로운 초월자의 자격을 평가하는 이는 이 자리에 모인 기존의 초월자들이었다.
때문에 초월자들은 시공간의 사교장에 오래간만에 도착한 업적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그리고 찬성표를 던졌다.
전례에 없던 만장일치 통과.
‘그런 능력을 갖춘 이가 대륙에 남아있을 줄이야.’
과연, 방대한 아르카나 대륙이라는 것인가?
셰그윈은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보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초월자의 탄생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가 곧바로 사교장을 찾아온 것도 예상 밖이었다.
그에 관해 누군가 입을 열었다.
“누군 진입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는데 말이죠.”
시공간의 사교장.
이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존재 여부를 알아차리는 것도, 접근하는 것도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쉽게 진입할 엄두를 낼 수 없지.’
자신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초월자들이 있는 공간에 발을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물론, 사교장에서 상호 간의 적대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사실 규칙을 떠나서.’
보다시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서로 말을 섞지 않는 초월자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성격도, 능력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분쟁을 벌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각자가 잘 안다.
‘허나,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실을 알 순 없지.’
셰그윈, 자신도 그에 관한 규칙을 알게 된 건 경험 덕분이었다. 시비가 걸려 사교장에서 검을 뽑았다가 그대로 의식 밖으로 쫓겨났던 경험.
“자신감이 대단한 신입이군요.”
그렇다.
섣부르게 느껴질 정도로 빠른 진입이야말로 자신감의 표현이겠지.
무엇보다 점차 가까워지는 당당한 발소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또각─
이내, 모두의 관심 속에서.
새로운 초월자가 사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천장의 샹들리에.
그 아래에서 존재감을 잃기는커녕.
되려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은빛 머리칼.
과연, 은발의 사내는 조금도 위축된 기세가 없었다.
‘상황 파악이 빠르다. 과연, 그 업적이 사실이었나.’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았다니.’
‘……그보다 저건 어느 지역의 복장이지?’
대륙에서는 본 적이 없는 복장이었거늘.
그럼에도 이질적이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적당하게 달라붙는 상·하의가 마치 피부처럼 사내에게 잘 어울렸다.
거기에 과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장신구들까지. 사내는 외관만으로도 이미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거늘.
상위 마왕 처치라는, 초월자 중에서도 압도적인 업적까지 보유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일까, 사내의 뒤에선 후광이 비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건.
“……!”
사내의 행동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의식의 공간이라고 해도,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르카나 대륙에선 볼 수 없는 호화스럽고 웅장한 사교장에 시선이 팔릴 법도 했거늘…….
또각─
사내는 그 모든 것에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마치 더없이 익숙하다는 것처럼.
사교장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장소를 익숙하게 느낄 정도라면 귀족 혹은 왕족일 터. 저 정도의 인물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로구나. 얼마나 초월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기에 상위 마왕을 혼자 처치할 수 있었던 거지?’
‘아니, 저건 익숙한 걸 넘어서…….’
……거침이 없지 않은가?
작은 웅성거림은.
점차 의아함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시공간의 사교장, 첫 방문이 분명하거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목적이라도 있다는 듯.
사내는 머뭇거리지 않았으니까.
굴러가던 머리들이 멈칫했다.
‘되도록 피하고 싶군.’
혹시라도 사내의 목적이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절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곳이 아르카나 대륙이었다면 모를까.
‘격차를 가늠해 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사교장의 규칙.
서로 간의 모든 적대적 행위는 금지된다.
그 탓에 이곳에선 상대방의 전력이나 무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아 느낄 수조차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느낄 수 없어도 업적이 있다.’
‘어느 누구도 세우지 못한 수준의 업적.’
‘최초의 만장일치 통과.’
또각─
사내의 행보에는.
관심에 더해 우려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사내가 착석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시공간의 사교장을 찾았단 말인가?
긴장 속에서.
모든 시선이 사내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
.
.
빌어먹게도.
흑역사는 나를 저버리는 일이 없었다.
자칭 사교계에 관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시다는 그랑펠 님께선 아랑곳하지 않고 있으시다만.
나는 쏟아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내가 못산다, 과거의 나야.’
뭐, 사교계의 오아시스이자 신기루?!
이 정도로 관심이 쏟아지는데.
자기는 그걸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진짜!!
또각─
장담하건대.
나에게는 어떤 균열보다 이 사교장이 부담스럽다.
역대급으로 몸에 와닿는 흑역사는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께서 척 봐도 보통 인물들이 아니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거든.
‘다들 장비부터가 고인물이라고 외치고 있어.’
[고인물 커뮤니티].
AAU에서 전달해 온 정보에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아이디어에 불과했기에 임시로 붙인 이름이라는데, 그 컨셉만 보고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인물 커뮤니티 : NPC를 포함. 특정 자격을 갖춘 초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 규칙은 다음과 같다…….]
특정 자격에 ‘초월자’만 끼워 넣으면?
‘시공간의 사교장’과 다를 게 없었거든.
과연, AAU.
그랑펠의 말대로 괜히 창조주의 편린을 탐구하는 자들이 아니구나, 싶다가도…….
‘……왜 사교장인데, 하필.’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어쨌거나, 될 수 있으면 걸음을 멈추지 말자.
그리고 괜히 두리번거리지도 말자.
‘이럴 땐 도움이 되는구나.’
어디서나 꼿꼿한 자세.
덕분에 나는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스러운 의자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현재 주문 가능한 메뉴]
규칙에 따르면.
시공간의 사교장, 모든 시설은 무료였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면, 고인물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대충 넘어갔겠지.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실체가 없으니까.’
의식.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게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공짜로 제공하는 거겠지, 뭐.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나는, 그랑펠은 메시지를 살폈다. 공짜라는 건 청렴결백과 충돌하는 일도 없다는 말씀.
그나저나.
“으음.”
노골적으로 시무룩하지 마라, 그랑펠.
이런 공간에 녹차가.
그것도 티백 녹차가 존재할 리가 있겠냐고.
[주문을 취소하셨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런 상황에 무슨 차냐.
내겐 사교장을 찾은 명확한 목적이 있잖아.
나는 더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
드넓은 사교장.
짙푸른 머리칼.
새파란 눈동자.
검성, 셰그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셰그윈.”
안토니움을 포위.
그것도 모자라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파괴.
그것은 긍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행위.
당연하게도 내 입에서 상냥한 말이 튀어나올 순 없었으니.
“내가 그대에게 묻겠다.”
“……?”
“그대는 그대의 죄를 알고 있는가?”
“……!”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돌직구를 던지다니.
메뉴에 녹차가 없어서 예민해진 게 확실하구나, 그랑펠.
그러나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순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현명하게 생각하고 답하도록.”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답변에 따라 그대의 처분을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