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72화 (104/489)

◈ 172화. 유치한 놀이에 불과하다

목요일.

떠오른 정기 업데이트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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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월드 이벤트, ‘마왕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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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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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균열, ‘69번째 왕좌’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마계의 괴인, 파돈돈 : Lv.777

적발의 마인, 쥬르발 : Lv.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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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균열과 새로운 네임드 몬스터.

그들의 레벨 때문에 놀란 건 아니었다.

800레벨 언저리.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레벨이었지만. [깨진 차원의 틈], [마왕성] 균열에선 그보다 높은 레벨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었으니까.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건 그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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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균열, ‘64번째 왕좌’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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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균열, ‘72번째 왕좌’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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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균열, ‘45번째 왕좌’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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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균열, ‘24번째 왕좌’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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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개의 균열.

균열에 따라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의 숫자는 그 몇 배.

네임드 몬스터 아래에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는 그 몇백 배.

그렇기에 장담할 수 있었다.

“마왕성 균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재앙입니다.”

정기 업데이트 내역이 떠오른 순간.

세상은 공황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균열이 동시에 12개나 생성됐으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뭣하지만……. 만약 균열이 붕괴한다면 인류는 대격변 초창기, 그 이상의 피해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죠.”

그 정도로 충격적인 업데이트 내역이란 말이다.

그러니 위화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고요하지 않은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세상은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심지어는 진작 비상사태가 걸렸어야 할 AAU조차도.

영국, AAU 런던 지부.

베이커는 창밖을 내다봤다.

런던의 기적.

그 상징인 아쿠아리우 떡갈나무들이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출렁거리는 금빛 나뭇잎의 물결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베이커는 입을 열었다.

“저희가 즐겨도 된다는 겁니까? 이 평화로움을.”

대격변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AAU의 방침은 한결같았다.

언제나 최악을 가정한다.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말이겠지만.

그래야만 예상보다 작은 피해를 위안으로 삼아서.

인류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나약하니까요. 인간이란 동물은.”

우려가 되는 게 당연했다.

이호열.

당신은 이 평화를 감당할 수 있으시다는 말씀입니까?

잔잔한 물결에는 작은 파동조차 커지는 법이다.

평화로울수록 약간의 피해에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조금도 휘청거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까?

베이커의 상식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군요.”

그가 짊어지고 있을 무게감과 부담감이.

그러나 베이커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지부장실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봤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스라 왕국의 전경.

베이커가 읊조렸다.

“부디 그의 짐을 덜어주길 바랍니다, 슈레이그.”

*

균열의 위치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아있는 자료가 있었으니.

그동안의 정기 업데이트 업로드 시간과 균열 생성 시간을 비교해 고려해 보면…….

“아무리 늦어도 몇십 분 안에 생성되겠는데?”

유스라 왕국은 플레이어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끝나지 않은 성전(聖戰)]에 참전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월드 이벤트, [마왕 쟁탈전]이라.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순 없었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업데이트 내역에 악마들이 가득하잖아?”

“맞아. 보나 마나 성전의 연장선이라는 거지.”

“그래서, 다들 어떻게 하실 건데요?”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사내.

그에게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졌다.

사내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시비 거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해서요! 솔직히 저희 수준으로는 무리잖아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는요!”

열렬한 시선을 돌리려는 걸까.

사내가 내민 건 스마트폰.

정기 업데이트 내역이었다.

최소 700레벨부터 최대 850레벨까지.

사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 대다수가 베테랑이라고는 하나, 언제까지나 플레이어들 기준이었다.

기껏해야 300레벨 중후반에 불과했고, 400레벨부터는 랭커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악마족 몬스터잖아요. 아무리 버프로 떡칠한다고 하더라도 정신력이 남아나겠어요? 네임드 몬스터를 잡기는커녕 잡몹한테도 쩔쩔맬걸요?”

최상위 플레이어들조차.

저런 균열에 진입하기엔 위험부담이 상당하단 뜻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대답도, 반박도 아닌 웃음이었다.

팽!

여자는 코웃음을 걸고, 사내를 향해 활시위를 튕겼다.

“그런 고민은 애초에 다 끝내지 않았나?”

“……네?”

“아니, 그따위 자아 성찰은 성전에 참전하기 전에 다 끝낸 거 아니었냐고. 그래서야 긍지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니지, 잠깐. 그쪽 애초에 퀘스트 목표를 달성하기나 했어?”

……아니, 궁수는 남 퀘스트창도 볼 수 있나?

어떻게 알았지?

사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럼요! 참 보여드릴 수도 없고…….”

변명하는 도중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긍지가 뭐길래, 목숨까지 걸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사내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근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이 걸렸잖아요, 내 목숨! 이호열 씨부터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막말로 균열도 12개고, 한쪽 균열에 진입한 사이에 다른 균열에서 참사가 날 수도 있잖……!”

쾅!

“아욧!! 깜짝이야!!”

커다란 방패가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게 여기 현실에 있으니까.”

“……네?”

“내 아내가, 자식들이 현실에서 평화롭길 원하니까.”

“!”

“토끼 같은 처자식에게 흉측한 꼴을 보여줄 생각은 죽어도 없으니까. 이유는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필요한 건가?”

플레이어로 각성했다고 사고방식이 달라지진 않는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두렵다고 피하면 계속해서 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한다면 균열은 더욱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들이 그 간단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시절.

유일하게 나섰던 인물, 호열을.

철컥─

중년 사내가 방패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징징거리던 플레이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렵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면 되는 일이지.”

“……?”

“왜, 그쪽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에도 적혀있지 않았었나? 보상도, 전리품도 없다. 남은 건 오직 가슴 속 긍지뿐일 거라고. 그러니까…….”

중년 사내는 말을 이었다.

“누구도 그쪽한테, 우리한테 강요하지 않았단 말이지. 그러니 그쪽을 비판할 사람은 아무도 없네.”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그에 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거겠지.

플레이어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탑에서 받은 도움만 하더라도 얼만데.”

“내 팔자에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랑 같이 훈련을 받게 될 줄은 또 몰랐다. 물론, 우리 때문에 기사들이 좀 고생을 했지만…….”

“민폐야, 훈련에서 끝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성전을 준비하며 아르카나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균열 안에서까지 그들의 도움을 바라는 것?

양심이 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

“우리보다 큰일을 하실 분들인데 말이야.”

객관적으로 아르카나인들의 수준은 플레이어보다 높았다.

그것도 훨씬.

왜, 수만에 이르는 뮤온의 성기사들만 하더라도 웬만한 랭커들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높거나 엇비슷했으니까.

라이언 하트 기사단, 그림자 용병단, 마탑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 아까운 전력을 우리 지키는 데 쓰는 건 말도 안 되지.”

“맞지. 그 시간에 악마 하나를 더 잡는 게 이득이야.”

“우리끼리 알아서 잘 싸워보자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준비를 다할 때였다.

반짝─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새로운 퀘스트 목표가 갱신된 것이었다.

[퀘스트 : 끝나지 않은 성전(聖戰)]

아르카나 대륙에서 현실로.

악마와의 성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쟁의 끝엔 보상도, 전리품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오직 긍지뿐.

스스로의 긍지를 증명하라.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성공)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본대에 합류하라. (진행 중)

“……엥?”

해당 지역은 유스라, 프로스트, 뮤온, 마탑으로 플레이어마다 서로 달랐다.

그보다 본대라니?

그 단어가 뜻하는 말은 간단했다.

“……우리한테 소속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기에.

자신의 목숨을 책임지는 것도 자신들이다.

그렇기에 각오를 다지던 플레이어들이었다.

본대에 합류하라는 퀘스트 목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탑의 포탈을 경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하르콘 단장……. 라이언 하트 기사단?”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님?”

“탈림, 그리고 사제님들?”

성전에 참전, 마왕 쟁탈전이 시작될 때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함께했던 아르카나인들이었다.

“모험가들이여.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르콘의 목소리에 플레이어들은 흠칫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어째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짐밖에 안 될 텐데.”

비관적인 말이지만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레벨 차이 최소 두 배였다.

그런 악마족 네임드 몬스터들이 날뛰는 균열에서 자신들이 활약을 해봐야 미비한 수준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꼬집듯 하르콘이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수준은 누구보다 그대들을 훈련시킨 우리가 잘 알고 있네. 그대들이 아르카나 대륙을 파멸로 몰고 간 악마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르콘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인자한 미소였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는 우리들에게 기대게나.”

“……!!!”

“우리를 믿고 의존하게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

그것은 멀쩡한 청각을 의심할 정도의 선언이었다.

기대라니, 의존하라니,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무능력한 우리를 짊어지고 가겠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하르콘뿐만 아니었다.

마탑, 마르셀로가 말을 잇는다.

“첫걸음을 내딛는 그대들은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왕 쟁탈전에서의 경험이 그대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양분이 될 테니까요.”

뮤온, 탈림이 외친다.

“여신의 가호가, 성기사의 방패가 그대들을 보호할 것이다.”

그 말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듯.

메시지까지 떠올랐다.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본대에 합류하라. (성공)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예상 밖의 전개에 플레이어, 모두가 얼어붙었다.

거기엔 산전수전 다 겪은 랭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샤이닝.

카밀라가 생긋 입꼬리를 올렸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르카나인들이 원래 저런 캐릭터였어? 아니, 백번 양보해서 다른 쪽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마탑은 왜 저러는 거야?!”

“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제시를 보면 알잖아, 마법사들 변덕 장난 아닌 거~ 안 그래, 록스?”

록스는 침묵했다.

자신의 아르카나 경험, 지식을 전부 뒤져보았다.

하지만 아르카나인들이 플레이어들을 위해서.

희생을 자처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또한 새로운 변화란 건가?’

이호열.

최소 900레벨.

상상을 초월하는 명성.

수많은 세력과 쌓은 관계도, 영향력이 맞물려서 찾아온 변화란 뜻인가? 아니, 이건 그런 것들로도 불가능했다.

이건 말 그대로 아르카나의 시스템을 초월한 변화였으니까.

결국, 록스는 너털웃음을 뱉었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

.

.

간단하다.

플레이어들이 긍지를 깨달았듯.

아르카인들의 가슴 속에도 긍지가 존재했으니까.

그래, 모든 것은 긍지에 따라서.

나 또한.

가슴 속 무거운 긍지에 휘둘려서 입을 열었단 것이다.

“유치한 왕 놀음에 우리가 짊어질 희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랑펠의 긍지에 마왕 쟁탈전?

악마들의 소꿉놀이 따위, 성전 축에도 끼지 못하겠지.

그깟 소꿉놀이에 아군의 희생 또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르카나인이 됐든, 플레이어가 됐든.

단 한 명의 희생도.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해 주겠다.

“마왕 쟁탈전은 우리에게 그저 양분이 될 뿐이다.”

나는 몰라도.

우리 그랑펠 님께서는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현하게 하는 ‘설정’이라서 말이야.

“오만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어리석은 악마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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