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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68화 (100/489)

◈ 168화. 제2획

세트 아이템의 효과는 제각각이다.

흔하지 않은 만큼 그 효과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유한 플레이어들의 말에 따르면…….

-“그냥 없으면 살짝 섭섭할 정도?”

-“희귀도 생각하면 그래도 가격 값은 하지.”

-“원래 약간의 차이가 명품을 만드는 법이잖아?”

그러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진심으로.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다니까?

모든 물리 피해량 10퍼센트 증가라는 효과가 있는데, 여섯 개 중 고작 두 개를 모아놓고서는 큰 세트 효과를 기대하는 건 양심에 털 난 거겠지.

[육망성 브로치 2/6]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세트 효과 : 2/6]

[1. 모든 기본 스탯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그런데, 뭐야 이거.

‘모든 기본 스탯이면…….’

[힘], [민첩], [마력], [행운].

네 개의 스탯을 각각 2포인트 상승시켜 준다고?

단순하게 따져도 8레벨이 상승한 것과 같은 효과잖아!

게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레벨 업 요구 경험치를 생각하면…….

내가 들었던 말이랑 다른데, 이거?!

나야 클래스 퀘스트를 통해 스탯을 꾸준하게 향상시키고 있었으니까 체감되지 않는 것뿐이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정말 스탯 하나하나에 목숨을 건다.

‘클래스에 따라 쓸데없는 스탯이 올라가긴 하겠지만.’

내 클래스가 무엇이던가?

무엇하나 특출난 게 없기에.

모든 스탯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육성해야 하는 악마 사냥꾼.

내게는 이보다 반가운 효과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이거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두 개의 브로치를 착용한 덕분에 발동된 효과는 둘이었으니.

나는 곧장 두 번째 효과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읊조렸다.

“나쁘지 않군.”

[2.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모든 피해량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효과다, 이거.

보스 몬스터가 어떤 몬스터들인가?

레벨을 뛰어넘은 강함을 가진 몬스터.

일반 몬스터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레벨의 네임드 몬스터보다도 수십 배까지 강해지는 몬스터였다. 생명력도 무지막지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모든 피해량 10퍼센트 상승?

장담할 수 있었다.

8포인트의 스탯 상승쯤은 우습게 만들 정도의 효과다.

특히나 나한테는 이보다 반가운 효과도 없었다.

온갖 살 구멍,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악마 사냥꾼이라서?

그건 방금 언급했으니까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마왕과 거악.

게다가 마계 서부의 패자, 락시오로스 같은 악마들까지.

당장의 마왕 쟁탈전뿐만 아니었다.

앞으로 성전에서 만나게 될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보스몹일 터.

보스급인 것도 모자라서 무지막지한 레벨까지 자랑하는 놈들에게 이보다 체감이 잘 될 효과도 없지 않을까?

좋아,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끼이이엑!

이내, 달려드는 그리핀 무리.

철컥─

꺼내 든 건 검과 석궁이다.

여유는 부릴 시간은 없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더없이 익숙한 마법보다는 비교적 떨어지는 근접 전투 능력의 향상을 위해 전투에 임하는 게 옳다.

꼬리 어쩌고, 날개, 발톱 저쩌고.

말은 거만하게 지껄였지만 이 녀석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레벨: 544]

[능력치]

근력 : 102 / 민첩 : 112 / 마력 : 455 / 행운 : 12 / 심미 : 中

[보유 포인트 : 0]

세트 아이템 효과로 모든 스탯이 2포인트씩 상승했다고 한들.

아직 근력과 민첩 스탯에는 부족함이 많았으니까.

고작해야 200~250레벨 근접계 플레이어 수준이겠지.

500레벨 대의 몬스터.

그리핀을 육체 능력만으로 상대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랑펠에게는.

레벨을 숫자 따위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이 있었다.

『타고난 마법적 재능은 웬만한 마법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그에 뒤지지 않는 육체의 잠재력까지.』

카림제바와 세니오스.

두 반신(半神)들의 전투를 지켜보고는 『마법의 경지』를.

아르카나 대륙에서 주마등을 목격하고는 『검강(劍罡)』의 반열에 올라선 나였다.

좋은 설정을 다 때려 박은 그랑펠의 설정은 그 어떤 경험에서도, 무언가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그랬다.

또 한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깨우칠 정도로 충격적인 무언가를.

슥─

순간, 육체가 가속한다.

“끼엑?”

창공에서 먹잇감을 포착하는 독수리의 시력으로도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잘 쳐줘야 250레벨, 내 육체의 수준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아니, 그걸 떠나서.’

이건 ‘인간’의 육체로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래, 내가 모방한 건 드래곤과 같은 취급을 받는 종족.

엘프, 락키드에게 달려들던 엘시도어의 몸놀림이었으니까.

서걱─!

.

.

.

락키드가 부상으로 쓰러진 뒤.

그림자 용병단 단장, 키치는 나를 찾아왔었다.

황금 궁전의 집무실에 들어선 키치는 내게 말했다.

“말씀은 드리지 않았었는데, 저희 그림자 용병단에는 당한 만큼 갚아줘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요. 어디에 있는 건가요? 그 귀 큰 녀석.”

되갚아 주고 싶다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었다.

엘시도어의 싸가지는 정말, 나도 열이 받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가?”

엘시도어는 지나치게 강했다.

설령, 키치라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키치가 긴 흑발을 쓸어넘기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승리까진 아니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죠. 제가 보기보다 뒤끝이 좀 심해서.”

아니, 사실은 내가 찔려서 그렇다.

엘프가 고향, 시슬리에서 뛰쳐나온 원인이 나였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세계수의 축복]의 축복 때문이었지만……. 그랑펠의 긍지가 엘프와 자신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삼자에게 떠넘길 리 없었으니.

나는 키치에게 선언했다.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명심하도록.”

“……?”

“그대들을 책임지는 것은 나다.”

게다가 현재 그림자 용병단은 유스라 왕국에 고용된 상태.

유스라 왕국에서 [권한] 기능을 활성화한 내가.

그랑펠이 그림자 용병단을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는 말이다.

“!”

키치가 멈칫하더니 웃었다.

이번엔 의미심장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울프 말대로 낯서네요, 이런 대접은.”

물론, 그림자 용병단에게도 이번 일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겠지.

심정을 알기에 나는 말을 이었다.

나답게 있는 그대로를.

“또한 그가 목숨보다 값진 것을 뱉어내게 만들겠다.”

“……!”

긍지를 증명해 내지 못하는 이상.

엘시도어에게 자유는 없었으니까.

키치도 그랑펠의 긍지론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걸까.

그제야 눈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그렇다면 믿고 있겠습니다. 이호열 총대장님!”

……이호열 총대장님이라니.

정말이지, 누가 들을까 봐 끔찍한 호칭이다.

영 적응이 되지 않는구나.

.

.

.

아르카나 대륙 최고의 용병단.

그림자 용병단의 말석 락키드를 박살 내고, 단장인 키치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존재.

엘프, 엘시도어.

하지만 그건 기교나 전투력의 격차 때문이 아니었다.

‘엘시도어의 말대로 그저 태생의 격차였지.’

제아무리 그랑펠의 재능이라고 하더라도 태생의 격차는 극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엘프가 그랬던 것처럼 육체를 비정상적으로 가속할 수 있는가?

슥─!

가속하는 육체.

인간의 근육과 관절로는 버틸 수 없어야 하거늘.

나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파열을 거절합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골절을 거절합니다.]

그랬다.

엘프들이 그토록 떠들어 대던 태생의 차이엔 아무래도 [첫 세계수의 축복] 영향이 상당한 모양이었으니까.

쉽게 말해 버프빨로 엘시도어의 움직임을 모방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날개가 무색하게도.”

“끼엑?!”

“한없이 느리구나.”

서걱─!

……버프 덕분이면서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그랑펠.

“몇 번이나 말했듯 내 앞에서 수치는 무의미하다.”

……수치는 몰라도 수치심은 유미의하단 말이다, 그랑펠.

쓰러진 그리핀들.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

과연, 500레벨 제한 값을 한다는 건가?

두 번째 브로치의 모든 물리 피해량 증가 효과도 상당하다.

거기에 엘프의 몸놀림까지 더해지니까.

내 비루한 근력, 민첩 스탯은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았다.

‘체감하니까 더 기대되는데.’

세트 효과, 보스 몬스터 피해량 증가 효과는 어떨까?

그래도 눈치는 있다는 건가.

그리핀들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뭐, 좋게좋게 넘어가자.

나도 사냥 목적으로 균열에 진입한 게 아니거든.

“비로소 기본적인 예의를 갖췄군.”

강제적 예절 주입.

주변이 잠잠해지자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이엘, 그리고 디엔드를 통해 아르카나 대륙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내, 허공에서 하이엘과 디엔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너희 쌍으로 뭐 하냐.

“하이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한없이 깊은 어둠, 나의 주군이시여.”

언제나처럼 고상한 인사를 건네오는 하이엘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디엔드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주군이라니.

너, 원래 그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이내, 하이엘이 당당하게 말했다.

“디엔드와 기본적인 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과연, 나의 분신이구나.

그래, 중요하지 예절 교육.

듣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것 같구나, 하이엘.

그럼에도 상당히 벅차구나.

무거워서 뺨이 달아오르는 착각이 들 정도구나.

두 정령을 소환하는 무게감이 이런 거였구나, 싶다.

‘……되도록 하나하나씩 소환하자.’

특히 디엔드, 너와는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구나. 물론, 나의 속내는 드러나지 않았으니. 나는 너그럽게 읊조렸다.

“그대들의 노고를 내가 알고 있다.”

“아닙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주군이시여.”

……제발, 둘 다 가만히 듣고 있어주면 안 될까?

허나, 내 마음속 절규가 무색하게도.

디엔드는 충직하게도 업무 보고를 잊지 않았다.

“주군의 명에 따라 드레드센의 생존자들은 아이언 캐슬 호에 피신한 상태입니다. 생존자라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스물 남짓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확실히 현시점에서 아르카나 대륙에 아이언 캐슬 호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겠지.

아이언 캐슬 호의 규모를 생각한다면야, 드레드센 주민을 수용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체인워커의 말에 따라 드워프들은 드레드센 생존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인간과 드워프. 두 종족 사이엔 교류가 없다시피 했기에 융화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아는구나, 하이엘.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였다.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인 나야 드워프들과의 관계도가 처음부터 최대치였지만, 다른 이들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체인워커가 나서줘서 걱정을 덜었다.

“또한 악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듣고 있다, 디엔드.”

“흩어졌던 세력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슬슬 때가 온 모양이구나, [마왕 쟁탈전].

보자, 아르카나 대륙과 현실의 시간 흐름 차이를 고려하면…….

이르면 다음 정기 업데이트 내역에 쟁탈전 관련 내역이 떠오를 수도 있겠는데?

물론.

“경고했거늘. 열등한 족속답게 알아듣지를 못하는군.”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했을 때부터 대비하고 있었던 바다.

게다가 이번엔 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지 않았거든.

유스라, 프로스트, 뮤온, 마탑, 플레이어 연합…….

아르카나 대륙에서, 또 현실에서 손꼽히는 든든한 아군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비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신할 수 있었다.

“마왕 압살 때의 굴욕을 감사히 여기게 만들어 주겠다.”

내뱉은 말을 반드시 실현해 내는 그랑펠의 설정까지 추가다.

물론, 그 뒷감당은 나 이호열의 몫이었으니까.

그때까지 준비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준비해보자.

나는 하이엘에게 물었다.

“귀철의 제련 상황은 어떠한가, 하이엘.”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 월스와일.

그가 귀철의 제련을 맡았다고 했었지.

분명, 뭐라도 진척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째 하이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에 관련하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

아이언 캐슬 호.

화르륵─!

초고순도 마력석으로 가열되는 초고열 용광로.

귀철은 완전히 녹아내린 상태에서 소리쳤다.

“부족하다. 나의 주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귀철은 모든 것을 목격했다.

“그는. 한없이 깊은 어둠.”

“아니,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그와 동시에 악룡을 사냥한 자.”

모든 것을 목격했기에.

뒷말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어 캐슬 호가 귀철의 고함으로 가득 찼다.

“또 다른 세계의 구원자이자, 그 세계를 구원한 것도 모자라 자신과는 상관없는 아르카나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발버둥 치는 숭고한 자.”

“그렇기에 나는 그에 걸맞은 무기로 태어나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

귀철이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 월스와일을 도발했다.

“이까짓 담금질은 그가 마시는 찻물보다 미지근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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