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소중한 것을 남겼군 (2)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이 생성됐을 때 나는 기계탑의 구조를 깊게 『탐색』했었다.
왜, 그때 나는 지금처럼 레벨이 높지 않았거든.
록스 같은 고레벨 플레이어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꼼수가 필요했었으니까.
“……정말, 괜찮으신지요?”
하이엘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니, 정말 괜찮다니까 그러네.
역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모양이구나.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신속하게 이뤄지는 탐색 과정.
이호열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랑펠의 재능이었다.
한번 탐색한 대상을 시간이 흘렀다고 잊어버릴 머리가 아니시라는 말씀.
더군다나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 효과가 있다.
모든 광물에 관한 지식이 있었으니까.
곧바로 『간섭』 과정에 돌입했다.
새로운 형태로 발현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전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뿐.
그러니까 더하는 것은 오직 『반전』뿐이다.
이내, 처참하게 박살 난 기계 장치에 마력이 스며들었다.
‘의외인데?’
반전 마법의 최대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마력 효율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거겠지.
그런데 평소와 다르다.
빠져나가는 마력량이 상당하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발동 중이라는 걸 고려하면.
‘뭔가 기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력을 집어삼키고 있잖아?
그럼에도 버틸만하다.
과거, 쥐꼬리만 한 마력에 빌빌대던 내가 아니니까.
이내, 반전 마법 발현.
심장부의 기계 장치가 손상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이엘이 나지막이 말했다.
“과연, 괜한 걱정을 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여튼 그 말투는 멈추거나 고칠 생각이 조금도 없구나.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겠지.
그보다 지금은 하이엘보다 기계 장치에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철커덕─
철컥─
철커덕─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구조.
이내, 맞물린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계 장치 중앙에서 마력이 일렁거렸다.
……이것 때문에 마력을 집어삼키다시피 한 거였나?
내 마력을 마력석 대체 연료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도 잠깐.
눈앞에서 메시지가 점멸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축적된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축적된 명성을 습득합니다.]
적금 만기.
감격할 새도 없었다.
곧장 기계 장치에서 걷잡을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스스스─
은빛 머리카락이 시야에 흔들거리고, 단정하게 정리한 옷매무새 또한 흐트러질 정도의 기세.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내 전신을 휘감아 왔다.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니, 한 번이 아니잖아?
그러나 예상했던 바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악크샨.
악마 사냥꾼의 결전병기라 불리던 퀴른베르크 기계탑이다.
그런 결전병기가 처참하게 부서질 때까지 악마를 사냥했다면, 처치한 악마의 숫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장담할 수 있는 건, 못해도 나 정도는, 그러니까 적어도 수백만은 사냥하지 않았을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점멸하는 메시지.
잦아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심상치 않은 기운.
그쯤에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거 한계치, 50레벨까지 가겠다.
100레벨마다 찾아오는 벽을 가뿐하게 부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경험치량이다, 이건……! 확신하는 순간, 시야에 무언가 일렁거렸다.
메시지, 그런데 레벨 업 알림 메시지가 아니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축적된 기억을 습득합니다.]
잠깐, 축적된 기억이라고?
그 순간, 시야가 뒤바뀌었다.
마치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시야로 바라본 아르카나 대륙의 전경이 눈앞에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쿠궁!
쿵!
쿠궁!
광물로 만들어진 기술력의 집약체.
그러므로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뿐.
-“악크샨의 유산이여, 결전병기로서의 긍지를 다하도록.”
자신을 일깨운 목소리에 따라서.
결전병기로서의 긍지를 지킬 뿐.
최후의 최후까지 악마를 사냥하다가 가동을 멈춘다.
쿵!
쿠궁!
쿵!
천지가 악마로 뒤덮였다.
덕분에 행보에 거침은 없었다.
악마의 습격 아래.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마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시야에 들어온 것은 괴로운 듯 소리치는 사내였다.
얼굴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새까맣게 빛나는 것은 악마의 그것.
“……내 이름은 마테다. 나는!”
악마가 확실하다.
사냥해야만 하는 존재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긍지에 따라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마테! 제발, 정신 차려!!”
인간이 악마에게 다가갔다.
다가간 것도 모자라 악마를 뒤에서 껴안았다.
어째서?
……쿠궁.
기계탑이 순간 가동을 멈췄다.
“……나한테서 떨어져!”
“그럴 순 없어.”
“더 이상은 한계야. 부탁이야, 란샤.”
부들부들.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검을 건넸다.
은으로 만든 검.
은에 맞닿아 타들어 간 사내의 손아귀.
사내가 악마임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로 나를 찔러 죽이거나, 당장 도망쳐.”
그 행동은 악마가 아니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 마!”
“부탁이야, 란샤. 더느으으은……!!”
팟!
사내가 여자를 거칠게 밀쳐냈다.
“마테!”
바닥에 쓰러진 여자가 다시금 사내에게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하늘에 마안(魔眼)이 떠올랐다.
악마의 눈이 사내와 불타는 마을을 응시했다.
“도망쳐어어어어어!!”
콰직!
새까만 동공도 모자라 어깨에 돋아난 흉측한 날개.
사내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긍지에 따라 악마로 타락해 버린 인간을 사냥해야만 했거늘.
기계탑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안의 시야 공유.
마을 사람들이 채 대피하기도 전에 무수한 악마가 마을로 들이닥쳤다.
저런 속도라면 모두가 악마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꺼져라! 빌어먹을 새끼들!”
악마가 악마를 공격했다.
정확히는 악마로 타락한 사내가 악마를 공격한 것이었다.
악마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때까지.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떠날 때까지.
악마는 악마를 공격했다.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처참한 몰골로 짓밟혀 죽었다.
쿠궁!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다시금 가동했다.
몰려드는 악마를 쉴 새 없이 사냥했다.
하지만 악크샨의 결전병기라고 한들.
물리적인 손상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철컥!
쏟아진 악마의 피가 톱니바퀴를 뻑뻑하게 만들었다.
그 여파가 하나둘 기계탑에 나타났다.
천천히, 기계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무너져 가는 기계탑.
시야에 담긴 건 사내였던 악마와 도망치는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최후의 최후. 순간, 기계탑은 자신을 일깨웠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결전병기로서의 긍지를 다하도록.”
과연, 나는 결전병기로서의 긍지를 다한 게 맞는가?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기억 장치 속에 의문을 새겨넣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악크샨의 결전병기답게.
기억 장치에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퀘스트 : 깨어난 결전병기의 의뢰]
악크샨의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
의문에 대한 대답 대신 선택한 것은 긍지였다.
기계 장치의 기억은 남겨진 생존자들을 지키길 원한다.
─드레드센 마을 생존자를 구원하라. (진행 중)
.
.
.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고맙다.”
그동안 아르카나 대륙의 모습을 마왕의 전리품으로, 또 한 번에 불과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아르카나인들의 모습과 육성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기계 장치를 응시했다.
“덕분에 더없이 귀중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참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참상이다.
고작 균열에 위협받고 있는 현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기억 장치에서 목격한 아르카나 대륙은 악마들의 땅, 마계와 다를 것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현시점에서 성전의 승산은 몇 퍼센트나 될까?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없겠지.
단순한 계산이다.
유스라 왕국, 프로스트, 뮤온, 마탑,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들까지.
현재 성전에 참전한 모든 세력의 힘을 합쳐봤자 아르카나 대륙에 가득한 악마와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랑펠은 악마 앞에서 머리로 움직이지 않겠지.
언제나 우선시되는 것은 가슴 속.
그 어떤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긍지였으니까.
“설령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다고 한들.”
천적, 악마 사낭꾼이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내는 악마에게 빙의 당했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행이다.
“인간의 긍지는 꺾이지 않는다.”
처참한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인간의 긍지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걸. 나는 기계탑의 기억 장치를 통해서 확인한 참이었으니까.
악마에게 몸과 정신을 빼앗겼으면서도.
사내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악마들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빙의에 거스르다니, 새삼스럽게 긍지의 힘을 깨닫게 된다.
나는 기계 장치를 바라봤다.
기억을 재생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는 것인가.
회전하던 톱니바퀴가 천천히 멈췄다.
경험치와 명성도 획득했겠다, 굳이 마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기계 장치를 향해 말했다.
“악크샨의 결전병기로서 더없이 명예로운 최후였다.”
……하다 하다가 기계 장치에 말을 걸다니.
민망할 법도 했거늘.
하긴 용 이빨한테도 말을 걸었었구나.
어쨌거나, 나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철컥─
기계 장치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기계 장치는 멈췄어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야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으니까.
[퀘스트 : 깨어난 결전병기의 의뢰]
악크샨의 전통.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이 해결하지 못한 의뢰는 다른 악마 사냥꾼이 이어서 수행한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 또한 악크샨의 일원이었으니까.
좋으나 싫으나.
최후의 악마 사냥꾼으로서.
퀘스트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드레드센 마을 생존자를 구원하라. (진행 중)
“또한 그대들의 긍지는 내가 이어받겠다.”
물론, 그랑펠의 긍지론적 관점과도 충돌할 일이 없었으니.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드레드센이라, 처음 들어보는데.’
어쩔 수 없는 10년 하고도 수년의 공백 탓.
아르카나 대륙 어디에 있는지도.
또 안다고 찾아갈 방법도 없었지만.
뭐,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내게는 더없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까.
나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하이엘보다 적응이 안 되는 이름이다.’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읊조렸다.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숲속.
산짐승을 쫓기 위해선 불씨가 필요했거늘.
“그럼 끌게요.”
치직─
드레드센 마을 생존자들은 애써 켜둔 횃불을 꺼버렸다.
란샤가 횃불을 꺼버리자 누군가 치맛자락을 붙잡아 왔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작은 눈망울이 글썽거렸다.
“란샤 언니야, 무섭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게 아니라 저 별이 무섭다.”
짧고 통통한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마안이 있었다.
자신들을 찾기 위해서 눈알을 굴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란샤는 꼬마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단단하게 일러뒀다.
“쳐다보지 마.”
“……알았다.”
“그리고 세상에 저렇게 못생기고 흉측한 별은 없어.”
“그건 그렇다. 히히.”
아이와 노인들을 보살피고 나니 밤은 더욱더 깊었다.
란샤를 비롯한 주민들은 산 아래를 바라봤다.
대륙은 언제나처럼 불타고 있었다.
란샤는 검을 바라봤다.
마음이 약해질 때면 마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건넨 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살 거야.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뭐, 뭔가 심상치 않네!”
은퇴한 용병, 가드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들어서 잠잠하던 악마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악마 병사.
쉴 새 없이 병장기를 나르는 작은 악마들까지.
그 모습이 마치…….
“저건 ‘전쟁’을 앞둔 이들의 움직임일세!”
전쟁이라니?
란샤는 억울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가드너를 붙잡고 물었다.
“어제도. 지금도 전쟁 중이잖아요, 가드너 씨! 이미 우리 마을을, 드레드센을, 그이를 앗아가 버렸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우리에게 또 무엇을 빼앗아 가려고!”
“마음은 이해한다, 란샤. 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드레드센뿐만 아니었다.
근방에 온전한 마을,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대규모 전쟁 준비라니.
한낱 용병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드너가 흠칫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
“모두, 서둘러. 이 산을 떠나야 하네!”
전쟁이 시작되면 빠른 속도로 물자를 소모하게 된다.
부족한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악마는 산이란 산.
광산이란 광산은 전부 뒤져댈 게 분명했다.
“설명은 나중에. 아이들부터 깨우게, 란샤!”
가드너가 다급하게 외친 순간이었다.
“……!!!”
산 아래에서 악마들이 보였다.
가드너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내려가는 길에!”
“다들 전투 준비!”
“아이랑 노인들부터 대피시켜!”
고작 임프와 비슷한 힘을 가진 하급 악마들이었지만, 드레드센은 작은 마을이었다. 병사는커녕 악마와 맞서 싸울만한 힘을 가진 이들은 이미 전사했다.
척─
란샤가 은검을 치켜들었다.
가드너의 곁에 나란히 섰다.
“란샤, 뭐 하고 있는 겐가!”
“저도 같이 맞서 싸우겠어요!”
“아니, 자네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야!”
“아니요. 전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란샤는 마테를 떠올렸다.
너라면 분명 이런 걸 바라지 않았겠지?
그러나 란샤는 쓰게 웃었다.
‘……그럼 나한테 이 검을 건네주지 말았어야지.’
설령 악마에게 목숨을 잃을지라도.
란샤는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처럼.
가드너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제길. 내 나약함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때가 없구나, 란샤!”
모두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뜻을 모은 이들이 무기를 들고 악마들 앞에 섰다.
끼긱!
가드너가 팽팽하게 당겼던 활시위를 놨다.
푹!
명중이었다.
“젠장.”
하지만 악마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드너와 란샤를 비롯한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치맛자락에 남아있는 작디작은 무게감.
그래, 각자가 짊어진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것이야말로 시련조차 꺾을 수 없는 긍지.
긍지는 변화는 일으키고.
그런 변화는 기적을 가져오는 법이었다.
고오오오─
허공에서 일렁이는 기운.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 형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검다.
“……가드너 씨, 저게 뭐죠?”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란샤?”
깊은 밤에 파묻혀.
형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
그건 과거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어둠.
그러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디엔드 크리시아드 이터널 다크니스.”
“……?!!”
“주군, 한없이 깊은 어둠에 따라 드레드센을 구원하겠다.”
.
.
.
『정령학 선임 마법사, 페이얀 롯.
고유 정령은 계약 관계를 초월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하이엘이 고유 정령으로 거듭난 순간, 기존의 정령 계약은 파기된 상태겠죠! 그러니까 이론상 하이엘과 무관하게 새로운 정령과 새로운 계약을 맺으실 수 있으시단 거죠! 앗, 혹시나 제가 주제넘게 참견한 거라면, 죄송하다는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