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엘프 (1)
정기 업데이트.
새롭게 떠오른 업데이트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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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곁으로 새로운 지역이 찾아옵니다.
신규 지역, ‘전장 : 고통을 먹는 산짐승 vs 엘프’가 추가됩니다.
세력에 합류해 퀘스트 시작 가능.
단, 선택에 따라 특정 세력과의 관계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고통을 먹는 산짐승 우두머리’ : Lv.900
‘고통을 먹는 산짐승 성체’ : Lv.700
‘고통을 먹는 산짐승 새끼’ : Lv.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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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크게 갈리지 않았다.
“간만에 지역 업데이트인데……. 뭐?”
“전장?”
“내가 아는 그 전장 맞아?!”
[미궁], [던전], [전장]까지 현실에 생성됐다고?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플레이어들에게 전장은 횡재나 다름없었다.
“대충 눈치 봐서 이길 것 같은 세력에 붙으면 됐으니까요.”
“전투 기여도에 따라서 퀘스트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일단,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명성이 올라갔었잖아. 그래서 전장만 찾아다니는 플레이어들도 있었지, 아마?”
“맞아요, 특히 용병들!”
전장, 바꿔 말하자면 전리품이 가득한 장소.
말마따나 누구보다 전장에 익숙한 건 용병들이었다.
그러니 최강의 용병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림자 용병단, 그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스라 왕국.
황금 송아지 주점.
쾅!
굉음의 근원지는 이번에도 락키드였다.
“전장이라잖아, 전장!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 아니었어, 다들?”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
덕분에 그림자 용병단에게는 적잖은 시선이 쏠렸다.
아까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테이블에 죽치고 있던 연맹 탐험가부터.
유명 길드의 정보원, 넷튜버 플레이어들까지.
“역시 락키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진짜 고막이 쓰라릴 정도야. 그래도 덕분에…….”
“잠깐! 다들, 쉿!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것 같아.”
주변인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는 듯.
꼴깍─
단장, 키치는 잔을 비워냈다.
그러고는 락키드를 노려봤다.
“야, 말석.”
“……엉?”
“석석석. 이 돌대가리가!!”
“!!!”
결국, 키치가 폭발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후폭풍이 얼마나 거센지는 그림자 용병단 전원이 알고 있었다. 슬금슬금. 알카리를 비롯해서 몇몇은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다.
곧장 돌변한 키치의 눈매가 락키드를 향했다.
“넌,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거니?”
평소의 술주정이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시선에선 명백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단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처럼 날카롭다.
……꿀꺽.
락키드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과연, 이 천하의 락키드 님을 용병단 따위에 발을 붙이게 한 장본인다웠다. 그야말로 천살성. 하늘의 비수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기세로군.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야.’
키치의 손에는 무기 하나 들려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젖에 칼날을 들이댄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생사가 오가는 콜로세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살기.
그러나 락키드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제야 좀 내가 아는 단장답군.”
“지랄은.”
……흥분했어.
키치는 락키드의 능청에 이성을 되찾았다.
젠장,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보는 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키치가 살기를 흩트렸다.
“미안, 신경 쓸 게 많아서 평소처럼 참을 수가 없었네.”
정말로 빌어먹게도 신경 쓸 게 많아서 말이야.
다시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필이면 엮여도 그런 대사건에 엮일 게 뭐람!
‘전장 수준이 아니잖아, 성전은.’
그랬다.
그림자 용병단 또한 성전에 참여하게 됐으니까.
자신들을 잘 아는 누군가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그림자 용병단에게 긍지라니, 그런 게 잘도 남아있겠다고.
맞는 말이었다.
키치가 성전에 참전한 이유는 뭔지도 모르는 긍지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이놈의 입방정!’
언제나 입이 문제였다.
키치는 유스라의 국왕, 하쿠나에게 정식으로 권유를 받았다.
성전에 참전할 의사가 있느냐고.
왕의 물음에 키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었다.
-“용병단 전원, 몸값만 맞춰주신다면야.”
그림자 용병단의 몸값?
웬만한 용병단을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막말로 천 금을 가져와도 내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둘, 셋 정도의 인원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완곡한 거절이었다.
-‘악마와의 성전? 그런 건 만 금을 준대도 안 한다. 진짜.’
그러나 키치는 간과하고 말았다.
유스라.
이 고대 왕국이 어째서 보물섬으로 불렸는지를.
“진짜아아아.”
그것은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액수였다.
만 금으로 부족하면 십만 금을, 그로도 부족하면 백만 금을. 유스라 왕국의 재력은 키치의 예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아득하게! 키치는 자신의 주둥이를 두들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억만 금이라고 불러라도 보는 건데……!”
우려가 될 정도로 급격한 감정 변화.
“……키치, 취했나?”
“방금 이야기는 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술주정이었나 봐요.”
“대낮부터 달리더니, 벌써 필름 끊긴 거야?”
지켜보는 모두가 술주정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락키드는 알고 있었다.
방금 전, 단장의 살기는 분명 진심이었다는걸.
그럼에도 물러설 수 없었다.
“성전에 앞서서 몸풀기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몸풀기?”
“구경만 하고 온다고, 단장. 그것보다 다들 솔직해지는 게 어때? 솔직하게 궁금하잖아?”
“?”
“엘프가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말이야.”
“……!”
키치는 락키드의 눈을 바라봤다.
반짝반짝한 게 포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네, 저거.
게다가 락키드의 말이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엘프라.’
드워프가 희귀한 종족이라면, 엘프는 전설 속의 존재였다.
갖가지 의뢰가 몰려드는 그림자 용병단의 의뢰서 중에서도, 엘프와 관련된 의뢰서는 단 한 장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대로 내려오는 의뢰서에서도 말이다.
그것만 봐도 엘프가 얼마나 신비한 종족인지 짐작이 됐다.
‘뭐, 갑자기 튀어나온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흐음, 용병단에게 정보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니까.
락키드의 말에 키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 대신 싸움은 절대 금지야.”
“……뭐?! 전장에서 싸움 금지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단장, 혹시 내 걱정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좀 감동인데!”
“감동은 지랄. 선금받은 게 있단 말이야! 어디 지금 네 몸이 네 건 줄 알아?! 혹시라도 다쳐서 성전에서 빠지기라도 해봐. 네가 의뢰비 대신 토해낼 거냐구!”
*
마탑.
유일한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가 입을 열었다.
“엘프라, 우리 이호열 수석의 말이 아니었다면 믿지 못할 정도의 소식이로군요. 그래서 문제는, 그 싸가지 없는 족속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느냐는 건데…….”
……싸가지? 원로께서 시작부터 비속어라니요.
나는 속내를 감춘 채 유그위드를 바라봤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유그위드는 온화한 외관과 다르게 입이 걸걸했다. 이쯤 되면 확신할 수 있었다.
세니오스도 그렇고, 마법사들은 절대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존재들이라는 걸.
‘첫인상을 믿지 말자.’
다만, 마르셀로는 예외다.
깡마른 몸은 여전했구나.
하지만 전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는 아니군.
개고생을 끝에 시한부의 저주를 해주한 보람이 있구나.
“현시점에서 엘프는 큰 변수입니다.”
듬직하다, 마르셀로.
말 한번 잘한다, 마르셀로.
과연, 낙하산인 나와는 다르다.
마탑의 수석에 걸맞은 지식과 경험.
마르셀로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갔다.
“하필이면 성전이 벌어진 지금. 그들의 고향 시슬리에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모습을 드러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잠깐만, 이거.
눈깜짝할 사이에 고급 정보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잖아?
엘프.
사실 업데이트 내역에서 그 두 글자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빌어먹을 10년 하고도 수년의 공백이 또 발목을 붙잡겠구나, 싶었거든.
그러나 문명의 이기.
인터넷을 열고 엘프에 대해 검색을 해본 결과.
10년 하고도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엘프에 관해서는 밝혀진 게 없었다.
심지어는 엘프가 전설에 불과한지, 실존하는지조차 플레이어들은 알아내지 못했단 뜻이었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족속인 것도 모자라서. 엘프의 고향이 시슬리라고?’
마르셀로와 유그위드의 입에서.
어떤 플레이어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가 술술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머릿속에 고이 새겨넣었다.
물론, 놀란 내색은 없었으니.
“경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마르셀로의 물음에 나는 뻔뻔하게도 답했다.
“과연, 그들의 의도가 불분명하군.”
엘프가 어째서 악마와 맞붙었는지.
나로서는 사연을 알 방법이 없다.
[마안의 망원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과 재사용 대기시간을 생각하면……. 엘프가 얻어걸려 보이길 바라는 게 양심이 없는 거겠지.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러나 악마들의 의도는 알 수 있겠지.”
그렇다.
그랑펠의 고귀하신 긍지에 중요한 건 엘프가 아닌 악마라는 것.
그나저나, 레벨 한번 살벌하군.
900레벨이라니.
아르카나 대륙에서 봤던 거대 악마족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이잖아?
물론, 레벨이 전부는 아니다.
950레벨 몬스터라고 해도 네임드 몬스터, 진명의 악마에 불과했으니까. 마왕이나 거악 같은 보스 몬스터와는 체급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겸손하게 생각해도…….’
검강이라는 새로운 경지.
거기에다가 [첫 세계수의 축복]이 지속 중인 지금이라면.
‘나, 혼자서도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럼, 사전에 합의한 대로 움직이면 되겠군요?”
유그위드가 묻자 마르셀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탑에선 마티스 선임, 그가 나설 차례입니다.”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서.
마탑을 비롯해서 유스라 왕국, 프로스트, 뮤온, 그림자 용병단까지. 이미 사전 합의에 따라서, 균열에 진입할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유그위드가 나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우리 이 수석께서는 쉬는 날이 없네요?”
쉬는 날이 없다.
만약, 직장 상사가 저런 말을 했다면.
약 올리는 건가, 진짜 한 판 뜨자는 건가, 싶었겠지만.
이 또한 내 입방정이 자초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깍두기였다.
나는 절차나 정해진 순서와는 무관하게 균열에 진입할 ‘권한’을 보장받았다는 소리다. 악마라면 두고 볼 수 없는, 긍지가 이렇게 피곤하다, 진짜.
그러나 처량한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복귀한 후 원탁회의에서 나누도록 하지.”
그래,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깍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자, 호열아.
그나저나 균열에 진입하기 전에 확실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어째서 두 세력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 거지?’
엘프가 시슬리에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최근에 벌어진 일이겠지. 그런 엘프들에게 악마가 먼저 시비를 걸진 않았을 것이다.
악마들은 [마왕 쟁탈전]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도 바쁜데.
엘프를 건드릴 명분이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엘프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거잖아?’
기승전긍지.
그랑펠이 그랬던 것처럼.
엘프가 아르카나 대륙이 마수에 쑥대밭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움직였다고 보기에는, 타이밍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분명 싸가지 없는 족속이랬지?’
유그위드의 말이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줄이야.
그런 의미에서 동행하는 선임이 마티스라서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선임, 그중에서도 벤쉬였어 봐라.
‘잔소리하느라 균열 공략이 끝나도 모를걸?’
나는 집무실로 향했다.
곧장 찻물을 끓였다.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길 목적이 아니라 비약초 도핑 때문이다.
엘프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지금.
준비는 철저할수록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달칵─
그러나 이내,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았다.
스마트폰에 떠오른 메시지.
속보 때문에.
[속보 : 신규 지역, 전장 전투가 종료된 것으로 보여……!]
[플레이어 曰, “떠올랐던 퀘스트가 클리어됐다.”]
[전장 퀘스트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없는 것으로 확인…….]
플레이어들이 전장에 뛰어들기도 전투가 끝나버렸단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엘프와 악마.
두 세력의 전투가 예상보다 빠르게 결판이 났다는 것.
“차 한잔 즐길 시간도 주지 않는다니. 성급하군.”
그 승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엘프와 악마.
둘 중 하나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리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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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키드는 전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주했다.
길게 솟은 귀.
조각과도 같은 외모.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기운.
저 녀석이 바로 엘프다.
기척을 알아차린 걸까.
엘프가 락키드를 바라봤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축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축복? 갑자기 뭔 개소리를.”
“미련하게도, 축복이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그러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역시, 악마고 인간이고.”
“……?”
“상대할 가치도 없구나.”
“……!”
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