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55화 (87/489)
  • ◈ 155화. 피어난 것은 (2)

    “더없이 훌륭하군.”

    이 감탄사가 300원짜리 고오급 녹차 티백을 향한 게 문제였지만……. 흠,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발언이다.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니까.

    ‘비에 쫄딱 젖고 나서 마시니까 그런가.’

    여태까지 마셨던 녹차 중에 제일 괜찮다.

    딱, 추운 겨울에 오뎅 국물 마시는 기분이랄까.

    물론, 티타임은 길지 않았다.

    그랑펠에겐 몰라도, 내게는 300원짜리 녹차 티백보다 훨씬 중요한 아이템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육망성 브로치 2/6]

    총 여섯 개의 육망성 브로치.

    그중 하나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나였다.

    ……굳이 따지자면 마탑에서 대여한 거지만.

    나는 마탑의 수석이 아니던가? 내가 마탑이고, 마탑이 나라는 말이다. 마탑과 내가 마도구 하나를 장기 대여했다고 틀어질 사이가 아니라는 거지.

    ‘그래도 내가 마탑에 해준 게 얼만데.’

    고작해야 레벨 제한 100레벨.

    가넷 홀에 널린 마도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레벨 제한을 자랑하는 육망성 브로치였으니까. 그러니까 흠칫하는 게 당연하다.

    [등급 : 유니크]

    [제한 : Lv.500]

    [효과 : 모든 물리 공격 피해량 10퍼센트 상승.]

    [설명 : 여섯이 모여 하나가 되는 브로치 중 일부이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 효과가 상당히 손실되었다.]

    갑자기 500레벨 제한이라고?

    상상도 못 한 수치가 튀어나왔다.

    100레벨 그리고 500레벨.

    이건 세트 아이템이라고 묶일 정도의 격차가 아닌데?

    자그마치 500레벨.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세 한탄을 늘어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누구던가?

    아르카나 대륙에서 수백만의 악마를 사냥한 악마 사냥꾼.

    ‘……이것도 따지자면 아이언 캐슬 호가 잡은 거긴 한데.’

    아이언 캐슬 호의 지휘권을 획득한 내가 아니던가? 마탑과 마찬가지로 내가 드워프고, 아이언 캐슬 호라는 것. 그 증거가 이렇게 레벨로 나타나 있었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칭호 : 최후의 모험가, 숭고]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494]

    [능력치]

    근력 : 84 / 민첩 : 92 / 마력 : 421 / 행운 : 10 / 심미 : 下

    [보유 포인트 : 4]

    [던전 : 우울한 비의 도시]에 진입하기 직전, 490레벨.

    던전 균열을 클리어하면서 4레벨이 올랐다. 과거엔 범접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을 500레벨까지 불과 여섯 계단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씀.

    그러니까 내가 놀란 이유는 레벨 제한 때문이 아니었다.

    “훌륭한 세공 솜씨로군. 불완전한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브로치다.”

    ……물론, 브로치가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그랑펠.

    그랬다.

    내가 흠칫한 이유는 두 번째 육망성 브로치의 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첫 번째 육망성 브로치의 효과를 다시금 확인했다.

    [효과 : 마법 사용 시, 소모한 마력 10퍼센트 회복.]

    다시 봐도, 누가 봐도 마법사 아이템 효과였다. 이건.

    그래서 약간은 기대했단 말이다.

    레벨 제한이 다섯 배니까. 효과도 그 다섯 배가 뻥튀기된 게 아닐까. [천적관계]가 없더라도 마력에 시달릴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는.

    [효과 : 모든 물리 공격 피해량 10퍼센트 상승.]

    근데 뭐냐고, 이 뜬금포 터지는 효과는.

    물리 공격 피해량 10퍼센트 상승이라니.

    누가 봐도 마법사를 위한 효과가 아니잖아, 이거?

    ‘그런데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보통 효과가 아니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피해량을 증가시켜 주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은 엄청난 취급을 받았다.

    다만, 그런 아이템들은 대부분 양날의 검이었다.

    멀리갈 것도 없이 마탑의 마도구, [돌개바람의 증표]나 [명품-벼락 맞은 나뭇가지 완드]만 봐도 알 수 있겠지.

    고작 단 하나의 마법의 위력을 증가시켜 주면서 24시간짜리 쿨타임을 달고 있다거나.

    피해량을 증가시켜 주는 대신 마력 소모량도 늘어나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고 있었으니까.

    ‘근데, 조건이 없어.’

    그것도 모자라서 범용성이 어마어마했다.

    모든 물리 공격 피해량.

    검을 휘두르는 거나 석궁 볼트를 쏴대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마법으로도 물리 공격 피해를 줄 수 있단 말이다.

    돌벽이나 돌기둥.

    광물을 탐색해 발현하는 마법들이 대표적인 예시겠지.

    “착용하기에 부족함이 없군.”

    아니,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적절한 효과도 없다!

    클래스, 악마 사냥꾼.

    목적은 오직 하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서.

    [근력] [민첩] [마력].

    남들은 하나만 건드려도 모자란 스탯을 세 개씩이나 건드리던 내가 아니던가? 세트 아이템답지 않게 잡스러운 효과가 오히려 득이 될 줄이야.

    과연, 세 개도 모자라서 [행운]에도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란 거지.’

    두 개의 육망성 브로치.

    함께 착용해서 그 세트 아이템 효과가 발동되는 순간.

    추가 효과가 발현될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러니 부족한 건 500레벨까지.

    6레벨이나 뒤처진 내 레벨밖에 없겠군.

    비에 쫄딱 젖었지만 나쁘지 않은 런던 균열 공략이었다.

    칭호, [숭고]의 숨겨진 효과를 알게 된 것부터. 기대와는 달랐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진 두 번째 [육망성 브로치]. 거기에 마지막으로 악마족 몬스터의 위험성까지.

    “허나, 긍지와 오만은 엄연히 다른 것.”

    말 한번 잘했다, 그랑펠.

    알고 있으면서 가만히 손을 놓고 있는 건 긍지 넘치는 게 아니라 오만에 불과하다.

    더욱이 오늘의 런던 사태처럼 무고한 타인이 휘말리게 되는 일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한번 둘러볼 필요가 있겠는데?

    AAU.

    과연, 악마에게 빙의된 게 영국 지부장뿐이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지부장님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주제 파악, 나는 내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달칵─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들의 긍지를 살펴보겠다.”

    아쉬운 처지는 내가 아니란 거지.

    그러니까 이제 격식과 절차에 따라서…….

    옷부터 좀 갈아입자.

    아무리 [온기] 버프가 만능이라고 하더라도 속옷까지 젖은 찝찝함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

    [슈레이그, “이호열은 런던의 구원자.”]

    [목격자 曰, “이호열의 계약 정령이 나무를 자라게 했다.”]

    [유명 식물학자,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나무…….”]

    언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런던, 던전 균열, 그리고 이호열에 관한 소식을 쏟아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대한 역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VBC 보도국.

    타다다다닥─!

    손가락에 불이라도 난 듯 키보드를 두들기는 기자들.

    “어휴. 다들 열심히들 하시네.”

    불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없다고 하던가?

    역시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PD 현용석은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가며 염장을 질렀다.

    “이야. 쉴 틈이 없네. 쉴 틈이.”

    런던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의 대변인이 돼서.

    또 익명의 AAU 관계자가 돼서.

    이호열에 관한 여론을 조성해 가던 언론이었다.

    현용석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개인적인 감정들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면 쓰나.”

    보도국에서 플레이어, 이호열의 악명 아닌 악명이야 유명하다.

    웬만한 질문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격식과 예절을 갖춰 질문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짧디짧은 형식적인 대답뿐.

    -“내부 사정이다.”

    적어도 내숭은 떨어주던 플레이어만 봐오다가 이호열과 마주치니.

    기자들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이번 일은 엄연히 선을 넘었다.

    쯧쯧, 현용석이 혀를 찼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말이야.”

    “……야이씨, 현용석! 부채질을 해라. 부채질을.”

    “아, 계셨어요? 정 선배?”

    “이 자식아, 팀 꾸려서 보도국에서 빠져나갔다고 하더라도 꼭 이렇게 염장을 질러야 되겠냐? 네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 아니, 됐다. 말하기도 싫다. 꺼져.”

    지그시 눈을 감는 정 선배, 정이삭.

    하지만 현용석이 누구던가?

    VBC 내부에서는 좋게는 방송에 미친.

    나쁘게는 그냥 미친 자로 통하는 그였다.

    울상인 선배의 표정에 현용석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에휴, 답답할 텐데. 제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씩 쫙 돌리고 싶어도. 하필이면 오늘따라 지갑을 집에다가 두고 왔네? 어떻게 탕비실에서 시원한 냉수라도 한 잔씩 뽑아 드릴까?”

    “저, 저 자식이 근데……!!”

    결국, 폭발한 정 선배가 눈을 부릅뜬 순간.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또 여기 계셨어요? 씁, 내 발가락.”

    깨끔발.

    운동화를 부여잡은 사내는 다름 아닌 투데이 아르카나 총괄 카메라 감독, 윤종진이었다. 주섬주섬. 간식부터 챙기는 윤종진을 보고 정이삭이 울분을 삼켰다.

    “……저것들 아주 그냥 쌍으로 지랄을!”

    우물우물.

    과자를 입에 넣은 윤종진이 말을 이었다.

    “핸드폰은 어디다 두고 진짜 사람 찾게 만들어요?”

    “왜, 또 호들갑인데. 런던 출장 가고 싶어서 그래?”

    “제발 끔찍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확인하셨어요, 영상?”

    “영상?”

    뜬금없이 뭔 영상을 말하는 건데…….

    중얼거리던 현용석이 흠칫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면 당연하게도.

    “……종진아, 설마 내가 말했던 그거냐?”

    “네! 그거예요.”

    “뜨자. 여긴 보는 눈들이 너무 많다.”

    “야씨, 뭔데?! 떠들었으면 뭐라도 흘리고 가야지!”

    정이삭의 애원을 외면한 채.

    두 사내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윤종진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CCTV 녹화본에 찍힌 모양이에요. 이호열 전투씬!”

    기이의 공간, 균열.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이 절반씩 섞인 탓일까.

    균열 내부에서도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비롯한 현대의 물건은 멀쩡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생각히 닿았던 게 바로 런던 거리의 CCTV.

    “젠장, 미치도록 부럽다. 영국 방송국 놈들!”

    지금쯤 확보된 CCTV를 샅샅이 돌려보고 있겠지.

    비안개에 둘러싸인 균열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또 누구보다 빠르게 이호열의 활약을 세계에 보도하기 위해서 말이야.

    “흐흐.”

    “……근데 뭐가 좋다고 웃냐? 비행기 타게?”

    “저 영국 유학파인 거 아시죠?”

    “기초 회화도 못 하면서 유학파는 개뿔이.”

    “아니, 꼭 말을 해도 그렇게 사람 무안하게.”

    윤종진이 쩝 입맛을 다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라 낙담은 길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만큼은 할 말이 있었으니까.

    “제가 영어 회화는 몰라도 유학생들끼리. 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졌거든요. 그 인맥 덕분에 이렇게, 동영상도 하나 받았고요.”

    “……뭔 동영상?!”

    “런던 거리에서 펍 운영하는 현지인 친구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 펍 CCTV 녹화본이에요. 저도 아직 확인 안 했는데. 펍 외부 CCTV에 이호열이 찍혔다고…….”

    “!”

    샥─

    눈보다 빠른 손.

    현용석이 스마트폰을 낚아채고는 곧장 동영상을 재생했다.

    이내, 떠오르는 런던의 전경.

    “!!”

    얼마 가지 않아 두 사내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현용석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특종과 단독기사에 미친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도저히 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CCTV 녹화본 하나만 믿고 보도하기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 속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으니까.

    현용석이 어이가 없어서 스스로 되물었다.

    “세, 세상에 우산으로 몬스터 때려잡는 사람이 어딨어?!”

    .

    .

    .

    누군가 커뮤니티에 던진 질문이었다.

    ──────

    제목 : 근데 아무리 이호열이라고 해도 무리지 않냐?

    내용 : 아르카나 대륙이 악마한테 쫄딱 망한 거잖아. 생각해보셈. 아르카나에 네임드 NPC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거기에다가 각 지역에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보스몹들도 있고. 근데 걔들도 못 막은 악마를 우리가 어떻게 막냐고.

    ──────

    이호열?

    물론, 대단하다.

    추정 레벨 최소 900레벨.

    마탑의 수석.

    그것도 모자라서 고대 왕국 유스라 왕국을 재건하고, 프로스트를 구해내고, 여신교단과도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림자 용병단에 탐험가 연맹까지.

    하여튼, 엄청난 세력들이 다 이호열 측에 붙었단 뜻이다.

    “거기에 우리. 플레이어들까지 퀘스트로 참전했잖아.”

    “그렇다고 치더라도 성전은 우리가 훨씬 불리한 싸움이지.”

    “아니, 그래서 손가락만 빨고 있겠다고?”

    “그게 아니라 그냥 우려가 된다는 거지.”

    [퀘스트 : 끝나지 않은 성전(聖戰)].

    퀘스트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아르카나인, 거대 길드, 심지어는 초신성들까지.

    수많은 플레이어가 모인 이상,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섞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이호열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구심점이 흔들리면 판이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마왕을 압살하면서 평화의 상징이 된 이호열.

    런던 사태까지 완벽하게 클리어한 지금.

    흔들리는 이호열의 모습이라.

    쉽게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낙관적으로 바라보기엔 이호열이 짊어진 게 너무 많아.”

    이호열의 어깨는 무거워도 심하게 무거웠다.

    세상이 이호열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말 그대로 초인(超人)의 잣대였으니까.

    사람이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대단하면서도 가끔은 좀 안쓰럽달까.”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쾅─!

    주점에 굉음이 울렸다.

    “으아아아악!!”

    그보다 더한 괴성이 이어졌다.

    유스라 왕국.

    황금 송아지 주점의 명물이 된 락키드였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부숴버리다니.

    언제나처럼 술주정을 부리는구나.

    그 술주정이 오늘따라 심하구나.

    플레이어들이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저 영상 뭐냐? 이호열 아냐, 저거?”

    스크린 위에 떠오른 뉴스 속보.

    재생되는 런던 거리의 CCTV.

    거기엔 600레벨짜리 몬스터.

    [우울한 도시의 망령]과 마주 서서 우산을 치켜든 호열이 있었다.

    꼿꼿하지만 절대 뻣뻣하지 않은 동작.

    호열이 우산을 휘두르자 망령들이 물처럼 거리에 흩어졌다.

    락키드가 이를 악물었다.

    ‘저건 검기가 아니다.’

    검기의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다.

    그 짧은 시간에.

    나조차도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서다니.

    락키드는 속에서 울분이 끓어올랐다.

    “술맛 떨어지는 소리 할 거면 꺼지는 게 어떠냐, 다들. 엉?!”

    아까부터 재잘거리던 플레이어들을 향해서 고함을 질렀다.

    “저 괴물 같은 게 안쓰럽다고오오?! 말도 안 되는 소릴!!”

    .

    .

    .

    나는 화면 속에서 우산 격투를 벌이는 나를 바라봤다.

    ……정말, 폼 하나는 제대로 잡는구나.

    게다가 세상에 흑역사를 광고라도 하는 것인가.

    하필이면 검은색 장우산이라니.

    세상에 나처럼 불쌍한 사람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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