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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38화 (70/489)

◈ 138화. 나를 믿어라 (2)

오간 안건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원탁회의의 여파는 첫 회차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수석, 선임 마법사가 차례로 크리스탈 홀을 빠져나간 뒤.

남겨진 이들이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숙련 마법사, 지브릴.

화려한 머리 모양에서도 알 수 있듯 지브릴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이호열 수석의 저건, 자신감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혼자서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신다?”

위험성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왜, 균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르카나 대륙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모험가들의 세계 또한 집어삼키기 위해 마수를 뻗쳐오는 악마들이었으니까.

절레절레─

“솔직히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숙련 마법사, 린느의 어깨가 들썩였다.

“수석님이 대단하신 거야 마탑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건 정도를 넘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르카나 대륙이라니, 균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하잖습니까?”

“린느가 재수 없는 소릴 잘하긴 해도. 반박할 수 없네.”

“그렇죠! 제 말이 맞……. 네? 재수 없는 소리라뇨?!”

티격태격.

말싸움 사이에서 지브릴은 턱을 매만졌다.

‘위험하다는 걸 모르고 계실 리도 없을 텐데 말이지.’

오히려 자신들보다 아르카나 대륙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이호열 수석이었다.

그리고 어중간한 실력을 가진 자신들과 다르게, 자신의 능력과 한계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터.

“!”

그렇다면 역시?

지브릴의 눈이 반짝였다.

“크나큰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이유가 있다면?”

촌뜨기 귀족은 이래서 안 된다느니.

교양은 어디에 팔아먹은 거냐느니.

유치한 말싸움에 한창이던 린느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지브릴 양의 말을 놓칠 순 없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지브릴 양?”

“됐어요. 싸우던 거 계속 하세요. 린느.”

“예? 지브릴 양,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와도 같은……!”

린느의 변명 따위.

흥미를 포착한 지브릴의 귀에 들릴 리 없었으니.

지브릴은 어느샌가 크리스탈 홀 입구.

인파에 치이고 있던 클레를 발견했다.

불쑥.

“깜짝이야! 지브릴?”

지브릴은 클레에게 팔짱을 끼며 은근하게 물었다.

“클레 양. 어떻게 대화에 소득은 좀 있으셨나요?”

이호열 수석의 선언에 뒤늦게 크리스탈 홀을 찾아온 벨리에와 마티스 선임 마법사.

당연하게도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어서 찾아온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브릴과 다르게 클레는 거기까지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소득이요? 진짜, 전 아무것도 몰라요!”

지브릴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것도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클레가 억울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아아, 간지러워요! 진짜, 진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

.

.

‘모르겠어. 갑자기 어째서?’

벨리에는 걸음을 서둘렀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 것인가.

원탁회의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떠난 이호열 수석.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격식과 예절.

평상시 약속되지 않는 만남은 절대 가지지 않으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벨리에에겐 절차를 따질 정신이 없었다.

‘분명, 이유가 있으신 거야.’

그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을까?

……맞다면.

벨리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적어도 나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수석의 능력을 떠나서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벨리에는 알고 있었다.

카림제바, 반신이라 불리는 원로 마법사들조차 꼬리를 내린 상위 마왕의 존재를.

상위 마왕의 부활엔 압도적인 제물이 필요하다 했지만, 아르카나 대륙은 이미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아니던가? 제물이야 차고도 넘쳤겠지.

상위 마왕.

혹은 그에 준할 만한 존재가 아르카나 대륙에 나타났을 확률은 충분했다. 아니, 그랬을 테니까 대륙이 악마들의 손아귀에 떨어졌겠지.

‘……내가 도움될 거라 생각하진 않아.’

그런 강적이라면 벨리에, 자신이 합류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나 이건 마음의 문제였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

똑똑.

벨리에가 수석 집무실 문을 두들겼다.

“벨리에 유시아입니다.”

비장한 눈빛.

이내, 원탁회의에서 적잖은 소란을 일으키고서는.

시치미라도 떼는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도 좋다. 벨리에 선임 마법사.”

철컥─

벨리에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 절제된 집무실. 과할 정도로 꼿꼿한 자세로 책상에 앉아있는 호열이었다.

역시나 이호열 수석과 대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벨리에는 각오했다.

다른 것도 아닌 마르셀로와 관련된 일이기에.

“약속드리지 않고 수석님을 찾은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사과를 받아들이겠네.”

“또한 결례를 범하기 위해 찾아온 것에 대해서도 미리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이호열 수석, 수석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호열.

벨리에는 호열과 마주했다.

일희일비.

감정 하나조차 내비치지 않는 얼굴.

그 얼굴과 직면하고 있자니 의문은 더욱 커졌다.

‘정말 내 출탑 신청서 때문에…….’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시는 것일까?

아무것도 몰랐을 땐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여겼겠지.

그러나 벨리에는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었다.

-“세니오스 원로 마법사…….”

누구보다 진지하게 세니오스를 애도하던 호열을.

찰나지만 그 내면을 언뜻이나마 목격했으니까.

벨리에는 용건을 끝마칠 수 있었다.

“저는 수석께서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시려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출탑 신청서를 보류 처리한 호열이었다.

누구보다 질문의 의도를 잘 알고 있겠지.

벨리에의 예상은 적중했다.

달칵─

“……?”

곧장 뒤따라 들어왔다고 생각했거늘.

찰나의 틈에 언제 손에 찻잔을 쥔 것일까.

찻잔을 내려놓은 호열이 대답했다.

대답은 더없이 명쾌했다.

“시무아르드 가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

단지 산이 그곳에 있기에 산에 오른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

.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벨리에에겐 이유를 말해줄 필요가 있다.

벨리에의 출탑 신청서가 아니었다면 마르셀로가 시한부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와 관련된 퀘스트도 수행할 수 없었을 테니까.

“시무아르드 가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삐뚤어진 입이 문제다, 정말.

멀쩡해도 삐뚤어지게 말하는 주둥이가 결국 일을 냈군.

다시금 다짐한다.

이 세상에 편식해서 읽을 책은 없다고 해도.

‘……명언집만큼은 절대 들춰보지 말자.’

어쨌든, 찾아와 준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벨리에에겐 여러모로 물을 게 있으니까.

마르셀로의 현재 상태는 물론, [시무아르드 가문의 의뢰] 퀘스트에 관해서도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어째 벨리에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하하.”

작게 내뱉는 웃음.

설마, 나의 얄팍한 명언 인용을 알아차린 건가?

제 발에 저리기도 잠깐.

“……죄송하게도 또 한 가지 사과드려야겠습니다.”

“?”

“멋대로 미리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어라 추궁할 새도 없었다.

벨리에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호열 수석님. 저도 아르카나 대륙에 함께 진입하겠습니다.”

마르셀로와 벨리에.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해선 알고 있지도, 알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벨리에가 마르셀로를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출탑 신청서를 제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래. 같이 가서 나쁠 건 없어.’

나도, 벨리에도 마음에 남는 거 없고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말했다시피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벨리에에게 아이템의 효과와 칭호에 관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유감이지만 요청은 거절하겠네.”

“이호열 수석님, 저는……!”

“그대의 심정은 짐작할 수 있네, 벨리에 선임.”

그러니까 또 한 번 나답게 지껄일 수밖에.

“그럼에도 나를 신뢰하게.”

물론, 꼭 동행하는 게 아니더라도 벨리에의 도움은 필요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답변하겠습니다.”

“내겐 시무아르드가의 정보가 필요하네. 정확한 위치를 비롯해 대략적인 가문의 구성원까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무아르드 백작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

내가 묻자 벨리에는 그제야 낙담해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알고 있던 시무아르드가, 시한부의 저주에 관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벨리에는 자각한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웠던 사이라고는 하나, 저도 착각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사자에게 묻는 게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에 관해선 나보다 긍지가 먼저 반응했었다.

마르셀로 시무아르드.

그의 가문에 관한 정보를.

제삼자를 통해 얻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평상시엔 결코 긍지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

그러나 악마가 관련된 이상.

이조차도 악마의 계략일 수 있었다.

악마는 그런 족속이었으니까.

‘시한부의 저주가 악마와 관련된 게 사실이라면.’

마르셀로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될까? 그땐 악마를 향한 마르셀로의 고요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될 수도 있을 터.

‘그런 건 나도 말릴 자신이 없거든.’

막말로 마르셀로가 마도구를 들고 악마를 전멸시키겠다고 나선다면 말릴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악마의 힘이 된다.

그런 복잡한 이유를 나는 한마디로 함축해서 말했다.

“아니.”

“……?”

“그에게 격한 감정변화는 좋지 않다.”

순간, 벨리에의 동공이 움찔거렸다.

마티스도 그렇고.

역시 선임 마법사쯤 되면 말이 잘 통한다.

아, 벤쉬 윌리엄 한 명만 빼고.

그의 출탑 신청서는 스팸 메시지보다 귀찮으니까.

흐르는 정적─

벨리에가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유도, 그렇게 생각하신 뜻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이 이번에는 나를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짐을 혼자 짊어지시는 건……!”

“우려할 것 없다.”

아니, 걱정할 게 없다니까 그러네?

나한테는 [최후의 모험가] 칭호 효과가 있단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나답게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

“본래 살아가는 건 고독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다.”

……부디 흑역사를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마라, 그랑펠.

그 흑역사 속에서 헤엄쳐 살아가는 내가 가엾지도 않은 거냐?

.

.

.

나는 악룡 사냥꾼, 이호열과 대화를 원한다.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스칼의 폭탄선언.

당연하게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비공식 랭킹 1위, 이호열.

공식 랭킹 1위, 스칼의 만남이 성사되는 것인가?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운 건 랭커들이었다.

“뭔가 얽힌 게 있는 거 같지 않아?”

“악룡 사냥꾼. 애초에 스칼, 그 자식은 그게 악룡이란 걸 어떻게 안 걸까? 미궁에 파묻혀 있어서 도마뱀인지, 드래곤인지조차 알 수 없었잖아?”

“스칼의 클래스를 생각하면. 역시 용기사 [클래스 퀘스트]와 관련됐을 확률이 높겠지.”

샤이닝.

록스, 카밀라, 드미트리는 간만에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호열과 스칼의 회동. 그것이 가지는 무게를 알고 있었으니까.

드미트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칼의 클래스 퀘스트라니. 듣던 중 소름 돋는 소리네.”

히든 클래스, 용기사.

게다가 신비주의를 고집하던 스칼 덕분에 클래스의 능력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용기사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어디 보자. 옛날 생각나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카밀라는 활시위로 스칼을 겨눈 적이 있었다.

딱히 원한이 있던 건 아니고.

퀘스트에 얽혀서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지.

당시 스칼이 타고 있던 건 용도 아닌 평범한 준마였다.

“근데 한 발도 안 맞았다니까? 나 열 받아서 죽는 줄 리얼.”

쏟아지는 무수한 화살, 마법을 회피하고 전장을 호령하던 스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샤이닝은 결론을 내렸었다.

스칼, 그가 진짜 드래곤을 부리는 [용기사]로 거듭난다면 아르카나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플레이어. 아니, 길드는 없을 것이라고.

드미트리가 억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귀하디귀한 히든 클래스시니까! 엄청난 잠재력? 이해할 수 있어. 게다가 말이 용기사지. 제로 산맥 꼭대기에 있을 드래곤을 어떻게 타고 다닐 수 있겠냐고. 솔직하게 뒤에서 비웃은 적도 있었어. 근데……!”

이호열.

스칼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드미트리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호열이라면 또 모르는 거잖아! 스칼이나 우리가 드래곤을 사냥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에 이호열이 텟퍼른 미궁에서 보여준 활약을 보라고! 뭐랬지?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웬만하면 드미트리에게 딴죽을 걸었을 카밀라.

그러나 카밀라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웃으며 넘어갈 일이 아니었으니까.

“만약에 말이야. 호열 씨가 스칼하고 협력한다면?”

“야, 진짜 그런 끔찍한 소리……!”

“그래서 스칼이 반쪽짜리 용기사에서 탈출하게 된다면?”

“와씨. 듣기만 해도 피곤해.”

“드미트리 넌 됐고. 록스, 넌 어떻게 생각해?”

침묵하던 록스가 입을 열었다.

“용기사. 포텐은 [대마법사]에 버금가겠지.”

“……!”

“록스, 그거 뒤끝?”

대마법사.

그건 제시의 클래스였다.

이젠 샤이닝이란 둥지를 떠난 제시 하인네스 말이다.

“뒤끝이 아니라 냉정한 주제 파악이랄까.”

제시가 남아있었다면 딱히 걱정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이젠 입장이 바뀌었다.

록스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우리도 상황을 주시하는 수밖에 없어.”

세간이 집중하는 것 그 이상으로.

.

.

.

그러나 랭커라고 입장이 전부 같은 건 아니었다.

남태민.

레오니.

히사기.

거대 연합의 세 길드 마스터들.

그 셋은 스칼의 선언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일단, 레오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저, 미친놈 보소?!”

이호열이 제일 싫어하는 거?

예의 없는 거.

그런데 매스컴 앞에서 호열의 이름을 언급하다니.

스칼, 저거 아무래도 은둔생활을 하다 보니까 감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악룡 사냥꾼? 호열과 만나고 싶다고? 뭘 원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저 자식. 저거 이번 생에는 글렀다.”

나는 말이야.

차 한 잔 얻어먹기 위해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보다 더한 협조를 요청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게 맞나?

“쯧쯧.”

혀를 차는 레오니.

그 옆에서 히사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니 씨 말이 맞습니다. 잘못 생각했군요, 스칼은.”

히사기를 비롯한 이나즈마의 길드원들.

그들에겐 경험이 있었다.

유스라 왕국에서 호열에게 문전박대를 당할 뻔했던 경험이.

그러니까 예절 교육의 선배로서 할 말이 있었다.

“자고로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 공손히 머리부터 숙이는 것이 절차인데 말입니다.”

“……말은 잘하네.”

내 평생, 히사기의 말에 긍정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남태민의 생각도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 있어서 호열 씨를 찾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쪽,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

.

.

그랬다.

세 사람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내, 마탑 포탈에 모습을 드러낸 호열.

호열에게 몰려드는 무수한 인파.

꼴깍─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마이크를 들이대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취재진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열의 앞이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격식에 따라 차례를 지켜가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는 기자들.

“플레이어 스칼 씨의 선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칼 씨가 악룡 사냥꾼이란 호칭으로…….”

“혹시 깨워선 안 될 존재가 드래곤이란 사실을…….”

호열은 잠자코 질문을 들었다.

그러나 이상의 친절은 없었다.

수많은 질문 끝.

호열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방해로 간주하겠다.”

“……!!!”

.

.

.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게 많단 말이다.

그런데, 뭐?

악룡 사냥꾼? 그걸 동네방네 소문을 냈어?!

아무래도 우리 인연은 시작도 전에 끝인 것 같다, 스칼.

나는 여느 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켜주지 않겠나? 내게 낭비할 시간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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