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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34화 (66/489)

◈ 134화. 한 줄기 빛

무너졌던 미궁을 원상복구 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다.

나한테는 『반전 마법』이 있었으니까.

그런 곳에 사용할 마력이 있냐고?

그냥 있는 걸 넘어서 충분하다.

[천적관계]가 발동된 상태.

게다가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이 존재하는 이상.

광물에 간섭하는 마법의 효율은 비정상적으로 향상된다.

콰드드득─!

내가 괜히 당당하게 지껄인 게 아니라는 말이다.

“!”

역재생처럼 되돌아가는 광경.

깨워선 안 될 존재가 다시금 암벽, 미궁 암벽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새삼 무섭다. 그랑펠에겐 잠투정을 받아준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

‘아주 그냥 이불로 꽁꽁 덮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었잖아.’

내 입으로 뱉은 말에 흠칫하기도 잠깐.

분전하는 파비앙 일행이 보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내 편지에 마도구를 챙겨 왔다고 했었나.

과연, 마도구의 수준이 대충 봐도 범상치 않다.

특히나 파비앙이 들고 있는 저 횃불.

‘녹색 불꽃.’

외관을 떠나서 위력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보였다.

횃불, 거기에 파비앙의 클래스를 생각하면 무기로 분류되는 아이템은 아닐 게 분명하거늘.

횃!

치이이이익─!

횃불이 휘둘러진 궤적.

모든 것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단단해 보이던 녀석의 가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은 공격 성공, 파비앙이 다급하게 물러나며 말했다.

“어떠냐. 그게 바로 지옥의 불이다.”

[지옥의 불]이라.

이름만 들어도 뭔가 굉장히 대단해 보인다.

횃불에 관해선 추후에 파비왕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청렴결백, 물질적인 욕심에 흥미가 가는 게 아니라 파비앙은 분명 ‘지옥’이라고 했으니까.

악마와 지옥.

그리고 악마 사냥꾼.

관계를 생각하면 관심을 둬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물론, 잡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가슴 속 무거운 긍지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지금 잡은 기회의 끈을 놓칠 수 없었으니까.

시야를 넓게 보자.

‘프로스트 탈환 때의 경험.’

비교하기엔 하르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플레이어들을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장 녀석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한 플레이어들을 보조할 필요가 있겠지.

콰드드득!

솟구치는 지반.

근접 계열 클래스 플레이어들을 위한 발판이었다.

암벽 이불 속에 녀석을 가둬뒀다고 해도 접근전의 위험 부담은 상당하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진동, 지진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단?”

“잠깐만, 계단이라면?!”

“일단, 이거라면 자유롭게 치고 빠질 수 있겠는데?”

보는 것처럼.

밟고 뛰어오를 수 있는 발판이 있다면.

공격에도 회피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슥!

스와악!

푹!

깨워선 안 될 존재.

공포를 비롯한 온갖 상태이상에 시달리고 있는 녀석이었다. 평상시라면 생채기도 나지 않았을 플레이어들의 공격에 녀석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방금 메시지 떴어! 치명타!”

“좋아. 먹혀든다.”

“몰아붙여!”

곳곳에서 들려오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증거.

‘보조하는 데엔 마력도 신경도 크게 필요하지 않아.’

물론, 그를 가능하게 한 건 역시 백색의 겉날개 덕분이었다.

흩날리는 겉날개.

깃털처럼 나부끼며 발현되는 일백(一百) 개의 속성 마법.

저장해 둔 마법을 발현하는 형식이라, 탐색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덕분이겠지. 거기에 속성 마법마다 적용되는 [흡혈귀 백작의 오브]의 추가 피해 효과까지.

그러나 어떤 이유보다도, 텟퍼른이 있었다.

살아 숨 쉬던 과거에도.

원념밖에 남지 않는 현재도.

아르카나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녀석을 붙들고 있는 텟퍼른의 긍지는 무엇도 대신할 수 없겠지.

그랑펠의 긍지를 떠나서 말이야.

나도 그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거든.

상대는 무려 900레벨의 보스 몬스터.

[텟퍼른 5,321인의 흑의 계약자]

[텟퍼른 4,119인의 흑의 계약자]

[텟퍼른 2,847인의 흑의 계약자]…….

희생이 없다면 쓰러트릴 수 없는 적이 분명했으니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텟퍼른 흑의 계약자.

그들을 우습게만 봤던 플레이어들도 점차 그들의 희생을, 긍지를 알아차리게 됐다.

지이이잉─

녀석의 안광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력.

공격에 휩쓸릴 뻔한 플레이어들을 대신해 몸을 던져 가로막는 텟퍼른 흑의 계약자들.

“……뭐야?”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몬스터가 몸을 던졌어……?”

“뭔진 모르겠지만, 몸을 내던지면서 싸우고 있는 거야, 다들.”

그건 전황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를 계기로 전장에 깃든 비장감.

더 이상 불필요한 대화는 없었다.

나를 포함, 이 자리의 모두가.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투는 길어지지 않았다.

“크롸아아아아!”

마지막 유언인가.

깨워선 안 될 존재.

녀석이 흉포한 비명을 뱉었다.

그러고는 발악을 멈췄다.

시야가 점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전리품.

[10대 불가사의 퀘스트 : 텟퍼른의 미궁]

[월드 퀘스트 : 악룡(惡龍) 사냥꾼]

퀘스트.

끊임없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메시지 중.

내 시선을 끈 건 오직 하나의 메시지였다.

그래, 모든 것엔 우선순위가 있었으니까.

[텟퍼른 1인의 흑의 계약자]

나는 마지막 텟퍼른 흑의 계약자를 바라봤다.

남은 건은 오직 원념뿐.

시야조차 온전하지 않을 텐데.

적합한 마력으로 내 존재를 알아차린 것인가.

검은 형체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물었다.

“……우리는 과오를 씻었는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대들의 과오는 청산된 지 오래전이다.”

말했다시피 여태까지 저런 괴물을 묶어둔 것만 해도 텟퍼른은 책임을 다한 거겠지.

그러니까 나는 너그럽게 말을 이었다.

“이 자리 모두가 텟퍼른의 희생과 긍지를 깨달았으니.”

“……!”

“그대는 편하게 눈을 감아도 좋다.”

“……그런가.”

스스스─

나의 말에 최후의 텟퍼른 흑의 계약자가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텟퍼른 미궁] 균열이 클리어됐다는 거겠지.

‘오늘도 가라앉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안도의 한숨을 뱉고 싶다.

그러나 내색할 수 없는 피곤한 성격.

거기에다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으니.

다음 절차를 수행할 시간이다.

나는 플레이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펄럭─

흩날리던 겉날개를 접고 걸음을 옮겼다.

“거기였군.”

찾았다, 주제 파악 못 하는 악마.

*

초신성, 브레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텟퍼른 미궁].

균열에 진입했을 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균열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함정 하나에 잘못 걸려도 목숨이 간당간당할 정도로.

‘좋아. 좋아.’

목숨이 위험한데 오히려 좋아하는 이유?

기쁜 게 당연하지!

브레드, 아니 브레드의 육체에 빙의한 진명의 악마 ‘데스퀴’.

그에게 플레이어들의 부정적인 감정은 오히려 힘이 됐으니까.

데스퀴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난 마왕들과 달라. 무식하지 않다는 거지.’

영악하게 머리를 굴렸다.

‘언제까지나 목표는 이호열이야.’

균열에 진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목표는 그저 이호열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잘난 마왕님들을 셋이나 짓밟아 버리다니.

악마로서 순수하게 그 강함이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이거 잘만하면……?’

이런 미궁이라면.

이호열, 그도 여유롭지 않지 않을까?

혼잡한 상황을 틈타 그의 육체를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저도 파티에 참가하겠습니다.”

같잖은 인간 놈들을 연기하고 기회를 노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데스퀴는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

‘역시, 나는 영리해!’

타고나기를 강하게 태어났다고 설쳐대는 마왕들.

그들에게 자신의 악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신성의 육체를 차지해 이용하는 것부터.

완벽하게 인간을 연기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까지.

‘봐라. 미궁의 심층부가 머지않았다!’

그리고 저기엔 이호열이 있다.

마왕들은 제대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존재.

다른 악마들은 두려워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나, 데스퀴가 이호열 앞에 당당히 섰다.

‘어디냐. 이호열.’

불쾌할 정도로 위로 올라가는 데스퀴의 입꼬리.

점차 밝아지는 시야.

그가 미궁 심층부의 풍경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두근!

“……!”

……뭐지?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

데스퀴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뭔 눈동자가 저렇게 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저 거대한 동공에 놀란 건가?

아니, 아니었다.

저 뱀 같은 놈이 강적이면 어쨌단 말이냐?

애초에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호열. 데스퀴에겐 놈과 제대로 맞서 싸울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저런 걸 보고 놀랄 이유는 없는데…….

두근!

두근!

심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불쾌한 고동이었다.

그런 데스퀴의 눈에 표적이 들어왔다.

“……!”

느긋하게 찻잔을 손에 쥐고 있는 호열이.

데스퀴는 애써 헛웃음을 뱉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뭐 하는 놈인가 했더니만…….’

오만하기 짝이 없는 족속이었구나.

데스퀴는 알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약한 녀석들은 약한 대로.

강한 녀석들은 강한 대로.

그 정신력엔 취약점이 생기기 마련이었으니까.

‘그 오만함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쿠구구궁─!

그리고 시작된 텟퍼른 미궁 전투.

전황은 데스퀴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전개로 흘러갔다.

데스퀴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나약한 인간, 혼자서,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이호열의 강함은 짐작하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마왕을, 무려 셋이나 압살한 그였으니까.

“물러서지 마!”

“형님들, 쪽팔리게 죽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전방은 물러나고 대열 교대해요!”

그랬다.

데스퀴가 두려워하는 건 변화였다.

나약했던 인간들의 감정 변화.

“……이해할 수 없어.”

분명 공포에 휩싸인 인간들이었다.

그 부정적인 감정 덕분에 자신의 힘이 끓어 넘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호열,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데스퀴가 중얼거렸다.

“……최악의 상성.”

데스퀴는 그제야 주제 파악을 했다.

이호열,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어째서 몇이나 되는 마왕들이 이호열의 손에 죽어 나갔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녀석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악마로 태어난 이상.

이호열, 그는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다.

데스퀴는 이 소식을 다른 악마들에게 전할 생각이었다.

녀석들의 목숨 따위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쌓아둔 관계가 사라지는 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이겼다!”

클리어인가?

터져 나오는 함성과 동시에 무너져 가는 균열.

데스퀴는 다짐했다.

다시는 주제넘은 짓을 하지 않겠노라.

‘……현재에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아직도 터질 듯이 뛰고 있는 거지?

“……?!”

당황한 데스퀴.

그의 시야에 빛이 보였다.

무너져 가는 균열의 빛.

그런 빛을 후광처럼 등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림자.

펄럭─

데스퀴는 그제야 심장이 두근대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래, 착각 때문이었어.

저 날개를 보고 내가 멋대로 착각한 거야.

지레 겁을 먹어서는…….

‘……아니.’

아니다.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호열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거지?

점차 강해지는 빛 속에서 데스퀴는 호열과 눈이 마주쳤다.

“!”

더없이 냉랭한 시선과 마주했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이호열은 내 정체를 알고 있다.

내가 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클리어된 균열.

데스퀴는 인파 사이를 다급하게 헤치고 도망쳤다.

그러나 모든 것은 헛수고에 불과했으니.

그런 데스퀴의 발밑에 마력이 일렁거렸다.

포탈.

“!”

데스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들어온 건 고풍스러운 집무실이었다.

집무실에서 꼿꼿하게 선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호열이었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무미건조한 목소리.

“이곳을 밟은 악마는 네가 두 번째다.”

“……아, 악마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 가증스러운 변명을 듣는 것도 두 번째다.”

두 번째라고?

마왕, 놈들이 이곳을 찾진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설마?

‘내가 처음이 아니란 말인가?’

……빙의한 악마를 알아차린 게 처음이 아니라는 뜻인가!

말뜻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사냥감과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

호열이 뱉은 말은 대화가 아닌.

그저 스스로의 다짐이었으니까.

“그러나 세 번째는 없다.”

“뭐, 뭣?”

“내가 친히 열등한 너희를 처분하러 갈 것이다.”

“……!!”

서걱─

*

대파장!

텟퍼른 미궁 균열은 클리어됐거늘.

박휘강을 비롯한 넷튜버 플레이어들의 실시간 중계, 생생한 영상이 남은 덕분일까?

텟퍼른 미궁에 관한 관심은 식지 않고 있었다.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건.

호열과 함께 미궁에 진입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처음 진입했을 땐 큰일 났다 싶었죠.”

“어째서요?”

“일단, 이호열 플레이어랑 떨어져서요? 하하, 농담이고요.”

각 방송사.

플레이어들과 진행되는 인터뷰.

플레이어마다 할 말은 각기 다른 모양이었지만.

그들의 소감을 요약하면 결국 하나로 일치했다.

“이호열, 아니지. 호열 님이 없었다면 끔찍합니다.”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제가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올라탔던 그 계단을 올라타게 될 줄은……!”

“솔직하게 감동받았습니다. 저희들까지 신경 쓰고 계실 줄은 몰랐거든요.”

생생한 증언과 함께 재생되는 자료 화면.

거기엔 맹활약하는 호열의 모습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지켜보시는 여러분들은 와 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저희는 알 수 있었거든요.”

“사실상 저희를 위해 호열 님께서 기다려 주신 거죠.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나 할까?”

“다들 보셨잖아요? 티타임을 가지실 정도로 여유가 넘치셨던 거.”

모든 플레이어가 미궁 심층부에 진입할 때까지.

느긋하게 차를 즐기던 호열이었다.

게다가 900레벨의 보스 몬스터, ‘깨워선 안 될 존재’ 앞에서도 한 치의 굽힘도 없던 꼿꼿한 태도까지.

다른 이들은 몰라도 함께했던 플레이어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빚을 졌죠. 그것도 엄청나게 큰 빚을요.”

다른 말은 할 수 없겠지.

호열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깨워선 안 될 존재’ 처치에 기여, 처치 기여도를 인정받았고, 덕분에 경험치를 획득했고, 그와 관련된 퀘스트까지 받게 됐으니까.

[퀘스트 : 드래곤의 흔적]

그것도 보통 퀘스트가 아닌 드래곤과 관련된 퀘스트를.

그를 통해 확실해진 정보가 있었다.

깨워선 안 될 존재, 녀석이 드래곤족 몬스터였다는 것.

그러니까 텟퍼른 미궁 균열 클리어에 관한 평가는 갈리지 않았다.

마왕을 압살.

악마족 몬스터의 활동을 억제한 것도 모자라서.

직접 나서서 플레이어의 수준을 강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호열에 대한 평가가 다시 내려져야 한다.

그는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게 아니니까.

“한없이 깊은 어둠, 그보다는…….”

그런 호열에게 현재의 이명(異名)은 어울리지 않겠지.

어둠에 파묻혀 있던 텟퍼른 미궁.

그 어둠 속에서 고고한 존재감을 내뿜던 호열이 아니던가?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

.

.

나는 두렵다.

뭐어, 이젠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저 빌어먹을 호칭이 어디까지 길어지게 될지 말이다……!

“타인의 평가는 중요치 않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괴로워할 때가 아니다.

레벨, 퀘스트, 전리품.

마지막으로 정화된 마왕의 전리품까지.

“업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네, 아무렴요. 아주 그냥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루 만에 쌓인 수석으로서의 업무까지.

확인할 게 산더미 같았으니까.

우선, 점멸하는 메시지부터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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