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31화 (63/489)

◈ 131화. 거창하구나

[명품-백색(百色)의 겉날개]

[등급 : 유니크]

[제한 : Lv.350]

[효과 : 착용 시, 사용자가 발현하는 속성 마법을 저장.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는 겉날개의 색에 비례하며 저장된 마법을 발현 시, 마력 소모량이 30퍼센트 감소. - 현재 저장된 속성 마법의 수 : 100개]

마왕성 균열 진입을 앞두고 대여했던 마도구.

절차에 죽고 못 사는 내가.

왜 아직까지 아이템을 반납하지 않고 지니고 있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게는 당당한 이유가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다시 빌린 거니까.’

[돌개바람의 증표].

[명품-벼락 맞은 나뭇가지 완드].

[명품-백색(百色)의 겉날개].

나는 마탑, 가넷 홀에서 대여한 아이템을 반납하다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 정도는 보험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고.

주제 파악이라는 내 특기를 발휘한 거지.

‘[천적관계]도 없는데 아이템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해.’

셋 중에서 내가 택한 아이템은 당연하게도 백색의 겉날개.

무엇보다 그 성능이 가히 사기적이었으니까.

다른 아이템들의 효과도 상당했지만.

‘겉날개가 아니었다면…….’

나는 마왕, 플라우로스를 절대 쓰러트릴 수 없었겠지.

‘효과를 보면 유니크 등급인 게 이상할 정도야.’

마도구의 대여를 연장하는 데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낙하산에서 이제는 나름 인정받는 수석 공동 연구자.

물론, 수석의 권한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애초에 [명품-백색(百色)의 겉날개]를 필요로 하는 마법사는 없는 모양이었다.

-“반납된 마도구도 많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시는 게……?”

가넷 홀의 숙련 마법사가 그렇게 권해올 정도로 말이야.

다른 마도구?

좋지.

좋은 수준을 넘어서 나도 제발 좀 써보고 싶다.

근데 하나같이 레벨 제한이 좀 심각하게 높아서 말이야.

펄럭─

결국, 내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

나는 겉날개를 망토처럼 어깨에 얹었다.

겉날개가 살아있는 것처럼 어깻죽지에 달라붙었다.

정말 날개라도 돋아난 듯한 착각이 든다.

그랑펠의 심미안으로도 보아도 더없이 흡족한 자태.

‘……나, 너무 명품만 좋아하는 거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남는 장사다.

나는 스탯창의 변동을 확인했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칭호 : 최후의 모험가]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425]

[능력치]

근력 : 71 / 민첩 : 76 / 마력 : 387 / 행운 : 6 / 심미 : 中

[보유 포인트 : 0]

겉날개를 착용한 덕분에 [심미]가 下에서 中으로 다시 상승했다.

[천적관계]가 없을 땐 사소한 스탯 하나라도 아쉬운 법.

구질구질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챙길 건 챙겨야지.

“저게 마탑의 마도구……!”

물론, 다른 이들이 나의 복잡한 속내를 알아차릴 순 없었으니.

파비앙 일행에겐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들 곧장 정신을 차렸지만.

“……가 아니라 경. 함정을 정면돌파하시겠다니요!”

.

.

.

“텟퍼른은 고대의 도시였다.”

“……!!!”

어둠의 정령의 말은 시작부터 놀라웠다.

연맹 탐험가, 아론과 롬버스는 헛웃음을 뱉었다.

자신들을 포함.

그렇게나 많은 탐험가가 매달렸던 텟퍼른이거늘.

제대로 된 단서 하나 얻지를 못했었던 과거.

“이런 식으로 텟퍼른의 비밀을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꼬리 늘이지 마라, 아론. 나까지 기운 빠지니까.”

“일단 정숙해 보게나, 둘 다.”

사실 파비앙의 심정도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탐험마다 그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이젠 정령의 도움을 받는 탐험이라니.

자신조차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나 파비앙의 두뇌는 냉철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미궁 탐사에 걸리는 시간은 최소 일주일 이상이다.’

그러나 이곳은 평범한 미궁이 아닌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 [텟퍼른 미궁]이다.

못해도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이 소요되겠지.

‘……아니, 우리가 파훼할 수 있긴 할까?’

지금만 하더라도 함정 하나를 해제하는 데 수십 분이 소요됐다.

자신을 포함, 세 명의 탐험가가 달라붙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왜, 시간은 오후에 즐기는 차와 같다고 했었나?

호열 경이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아르카나 대륙이 아닌 균열이니까.’

상승하는 균열 붕괴도까지 고려한다면…….

파비앙은 빠르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겠군.”

그런 의미에서 어둠의 정령의 말은 유심히 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텟퍼른에 관한 정보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테니까.

“그들은 ‘깨워선 안 될 존재’를 깨우고 말았다.”

……그런데 깨워선 안 될 존재라니?

“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

번뜩!

그 말에 파비앙의 직감이 곤두섰다.

텟퍼른 미궁,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느꼈던 위화감.

보물도 명예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궁이 지어진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드디어 머릿속 의문들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파비앙이 작게 중얼거렸다.

“……깨워선 안 될 존재를 봉인하기 위해서였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설계자조차 파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함정도.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구조도.

미궁에 울리던 음울한 목소리까지도.

-당장 이곳을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파비앙이 쓰게 웃었다.

“경고가 아니라 다정한 우려였단 말인가?”

과연, 전설의 탐험가.

파비앙의 직감은 정확했다. 어둠의 정령이 말을 이어나가자, 아론과 롬버스가 침음을 삼켰다. 그러고는 함정이 숨어있는 벽면을 바라봤다.

“단순하게 엿먹일라고 마법을 걸어둔 게 아니었어.”

“마법도 보통 마법이 아니지. 흑마법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유지되는 것은 흑마법밖에 없으니까.”

어떤 마도구를 사용한다고 해도.

마력에서 발현되는 마법은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적합한 마력’에서 발현되는 흑마법은 다르다.

적합한 마력은 과거와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

파비앙이 감상을 뱉어냈다.

“비극이군.”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깨워선 안 될 존재를 깨운 텟퍼른.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아르카나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미궁을 만들어 깨워선 안 될 존재를 봉인하고, 자신들을 희생해서 지금까지. 미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흑마법의 제물이 된 것이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론.

그가 미궁의 벽에 손을 얹었다.

“그럼 벽 안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텟퍼른의 주민들이란 말이었다.

불가사의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다니.

침묵─

생각에 빠진 파비앙 일행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호열의 폭탄선언 덕분에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가 아니라 경. 함정을 정면돌파하시겠다니요!”

호열과 어둠의 정령이 나눈 대화였다.

곁에서 엿들었던 자신들도 알아들은 텟퍼른의 진실이었다. 경께서 오해하셨을 리가 없었거늘……. 허나 누가 봐도 빈말이 아닌 듯한 행동이 이어졌다.

또각─

호열이 날개를 흩날리며 걸음을 옮겼으니까.

“텟퍼른의 긍지를 내가 잇겠다는 소리라네, 파비앙.”

“……긍지라 하시면?”

깨워선 안 될 존재를 미궁에 봉인한 것?

‘그렇다면 이 봉인을 더욱 견고히 하시겠다는 뜻인가?’

그러나 호열의 대답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으니.

“깨워선 안 될 존재. 그 원흉을 제거하면 되는 일이다.”

“……!!!”

.

.

.

깨워선 안 될 존재.

어째 이름부터 상당히 박력이 넘치시는데?

다시금 균열의 정보를 떠올려 본다.

[적정 레벨 : Lv.500~?]

이제야 적정 레벨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월드급 퀘스트인 10대 불가사의에 얽힌 녀석이니까.

최소 네임드, 최대 보스몹쯤 되지 않을까.

‘젠장, 내 팔자야.’

그런 의미에서 정말이지, 이놈의 긍지가 원망스럽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든 것을 자애롭게 살피지 않고는 못 배기시는.

그랑펠의 귀족적인 긍지가 말하고 있었다.

“텟퍼른은 이제껏 그들의 책무를 다했으니.”

고대의 도시, 텟퍼른이 온전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흑마법의 숙주이자 제물이 되어 잠들지 못한 채 미궁을 지켰던 텟퍼른의 생존자들. 그대들에겐 편히 잠들 수 있는 자격이 있노라고.

나의 빌어먹게 피곤한 긍지에 시스템도 감동했다는 건가?

퀘스트창이 점멸하고 있었다.

새로운 퀘스트 목표가 갱신됐다.

─텟퍼른의 미궁을 목격하라. (성공)

─미궁 심층부에 도달하라. (보류)

─심층부에 잠든 ‘깨워선 안 될 존재’를 처치하라. (진행 중)

하다 하다 시스템도 감동하는 긍지라니.

……개뿔.

나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균열이 생성된 이상. 만나게 되는 건 필연적이었을 거야.’

‘깨워선 안 될 존재’.

녀석은 심층부에 봉인되어 있을 테니까.

녀석을 처치하지 않는다면 균열은 어차피 클리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둠의 정령과 나눈 대화가 무의미했던 건 절대 아니다.

‘뭐랄까. 매를 맞게 될 사실을 먼저 알게 된 거지.’

그래도 대비할 여유가 생겼다고 좋아해야 했건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거.’

일반몹과 네임드몹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 네임드몹과 보스몹은 또 한 차원이 다르다.

최소 네임드, 최대 보스몹일 게 뻔한 ‘깨워선 안 될 존재’를 처치해야만 하다니.

[천적관계]가 켜지지 않은 지금, 내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미궁 저편을 향해 나아갔다.

파비앙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 벽이 무너질 겁니다. 흑마법의 제물이 된 텟퍼른의 주민들이……!!”

가라앉지 않고는 못사는 무거운 긍지 때문에?

아니면 고아하게 흩날리는 백색의 겉날개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하이엘, 그리고 어둠의 정령이 곁에 있어서?

아니, 핵심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어둠은 더욱 짙은 어둠에 종속된다.’

흑마법의 성질을.

흑마도학.

선임 마법사, 마티스 딘 카를이 현대에 들어서야 개념을 정립한 이질적인 마법. 그 역사가 짧은 흑마법이지만, 그에 관한 나의 지식은 충분하다.

마티스가 누구인가?

마르셀로가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 누구보다 수석의 자리에 가까웠던 마법사.

그 말이 뜻하는바.

그의 능력은.

그가 집필한 흑마도학 서적엔 부족한 바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마탑에 존재하는 그런 흑마도학 서적을 단 한 권도 빠짐없이 독파했단 말이다.

콰직─

거침없이 발을 내디딘 탓이겠지.

발동된 함정.

무너져 내리는 벽을 보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미궁 전체에 『흑관』을 발현한 것인가? 그렇군. 단순한 미궁으로 녀석을 봉인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거겠지. 그대들이 무엇을 우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급 흑마법, 흑관.

효과는 대상의 오감(五感) 중 일부를 앗아가는 것. 텟퍼른 미궁에 발현되어 있는 흑관은 오직 하나의 대상, 깨워선 안 될 존재를 향하고 있었다.

이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형상.

“그 흑관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적합한 마력이 요구됐겠지. 그를 충당하기 위해 그대들의 육체를 제물로 『흑의 계약』을 맺은 것일 터.”

상급 흑마법, 흑의 계약.

쉽게 설명하자면 강령술의 일종.

다른 것이 있다면 마력과 적합한 마력의 차이. 그리고 네크로멘서의 강령술과 다르게 흑의 계약은 살아있는 대상에게도 발현할 수 있다는 것 정도.

내 말에 파비앙이 머뭇거렸다.

“경, 그 말씀은……. 텟퍼른의 주민들이 이 미궁에 갇힌 녀석을 영원히 봉인해 두기 위해서. 자신들의 육체를 흑마법의 제물로 바쳤다는 소리십니까?”

끄덕─

하이엘이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텟퍼른.

불가사의답게 그 사연 한번 우중충하시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초래했건. 그들이 아르카나 대륙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으니까.

이놈의 긍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납득한 지금.

더 이상의 징징거림은 없었다.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떠나라.”

남아있는 것은 오직 생전의 원념뿐.

『흑의 계약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머릿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떠나라.”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떠나라.”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떠나라.”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저들의 긍지를 알고 있다.

저들의 원념 또한 알고 있다.

“내가 그대들의 마음을 알았다.”

깨워선 안 될 존재라고 했겠다.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그 호칭부터 거창하니 대단한 녀석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쪽도 호칭 하나만큼은 뒤지지 않을 만큼 거창해서 말이지.

한없이 깊은 어둠.

……뒤지고 싶을 정도로 거창해서 문제거든, 오히려.

고오오─

나는 그 이명에 걸맞게 적합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둠의 정령과 감응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텟퍼른 미궁, 전체가 나의 적합한 마력에 감응하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미궁에 울리는 진동.

파비앙 일행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 파비앙 연맹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러나 경청할 여유는 내게 없다.

흑역사 때문인가, 아니면 그랑펠의 우울한 배경 설정 때문인가. 그 근원은 알 수 없지만,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솟구치는 적합한 마력.

이걸 제어하는 데만 하더라도 벅차단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내게 동요는 없었으니.

이내, 나를 향해 다가오던 흑의 계약자들이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텟퍼른 흑의 계약자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들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말을 뱉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과오를 바로 잡을 기회가 왔도다.”

*

쿠구구궁─!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진동하는 텟퍼른 미궁.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의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흔들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미궁 벽에서 몹이 튀어나올 거라고!”

“미친! 어떤 자식이야? 트롤한 새끼 빨리 튀어나와라!”

각자 미궁에 떨어진 위치는 달랐지만, 모두가 전투태세를 취했다.

클래스 탐험가, 변변찮은 전투 능력을 자랑하는 박휘강도 호신용 단검을 치켜들었다.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송출이 고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미궁이 아니다.

직감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역시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라는 건가? 임시로 뭉친 파티원들도 각자 소감을 뱉어냈다.

“한두 마리 튀어나왔을 때도 진땀을 뺐는데.”

“……백 마리도 넘겠죠?”

“백 마리만 되겠어요? 아주 그냥 미궁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데.”

“형님, 누님들. 오늘이 제 제삿날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승길 노잣돈이라도 후원 좀…….”

“아니, 거기 진짜 재수 없는 소리 할 거예요?!”

“뭐요? 그쪽이 나한테 육개장 값이라도 보태줬습니까?”

쿠구궁!

말다툼이 과열되려던 찰나.

적절한 타이밍에 무너진 미궁.

그러나 삼켜 넘겼던 마른침이 무색하게도.

“……어라?”

[텟퍼른 흑의 계약자].

생김새부터 음울한 몬스터들이 달려들지 않았다.

아니, 적대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몸을 돌린 채 반대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쪽은……?”

미궁의 심층부.

깨워선 안 될 존재가 봉인된 곳.

그리고 ‘한없이 깊은 어둠’이 발을 들인 그곳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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