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30화 (62/489)

◈ 130화. 텟퍼른 미궁 (3)

[10대 불가사의 퀘스트 : 텟퍼른의 미궁]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 텟퍼른.

텟퍼른의 미궁을 파훼하고.

텟퍼른의 실체를 세상에 알려라.

현재까지 밝혀낸 불가사의 : 0개 / 10개

─텟퍼른의 미궁을 목격하라. (성공)

─미궁 심층부에 도달하라. (진행 중)

갱신된 목표는 미궁 심층부에 도달하는 것.

뭐, 예상하지 못한 목표는 아니군.

미궁에 진입한 이상, 미궁을 파훼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심층부에 도달해야만 했으니까.

겸사겸사 퀘스트도 수행하는 느낌이려나.

“……저게 정령인가?”

처음 보면 놀랄 만도 하지.

그 외관이 워낙 심미적이시니까.

하이엘과 어둠의 정령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던 탐험가들.

“경, 지금부턴 저희에게 맡겨주시겠습니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파비앙이었다.

‘그놈의 호칭.’

초면부터 호열 경이라니.

실례가 아닌 듯하면서도 내게는 실례인 호칭이었거늘.

이해할 수 있었다.

‘탐험가 연맹은 유스라 왕국 소속이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또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유스라 왕국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유스라 왕국 소속인 연맹 탐험가들이 내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단 말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너그럽게 대꾸했다.

“그대들의 활약을 지켜보겠네.”

파비앙과 두 사내가 앞으로 나아갔다.

살포시─

손을 뻗어서 높게 솟아오른 벽면을 살피는 이들.

함정을 탐색하는 거겠지.

그래도 경험이 있다고, 나도 알아볼 순 있다.

함정이라면 혓바닥을 대는 정도로 맛을 봤었으니까.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에서 말이지.

‘물론, 그때랑은 느낌부터 다르긴 하다.’

기계탑의 함정은 오직 악마를 사냥하기 위한 함정들.

그 은제 함정과 비교했을 때.

이곳, 텟퍼른 미궁의 함정은…….

‘아직 보진 못했지만, 훨씬 악랄하겠지.’

일단, 경고 메시지부터 심상치 않았었다.

[텟퍼른 미궁에 진입한 어리석은 자여.]

[이곳에 부귀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이곳을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근데, 원래 없다고 하면 있는 법이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거든.

이런 메시지가 내게만 떠오른 건 아니겠지.

‘진입한 플레이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걸?’

분명, 텟퍼른 미궁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시작부터 메시지가 떠오른 걸 보니까.

보통 전리품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초입부터 호들갑을 떨고 있겠지들.

‘나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청렴결백의 화신.

그랑펠의 피곤한 성격.

그리고 어둠의 정령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말이야.

“파비앙 씨, 함정의 수준이 보통이 아닙니다.”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군. 마력이 깃들어 있어.”

“……마력이지만 보통 마력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마도구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말입니다.”

“과연, 불가사의라는 건가.”

“까다로워. 과연, 연맹의 보물을 챙겨오길 잘했군.”

힐끗─

함정을 발견한 파비앙이 나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거냐고 눈치를 주는 건가?

괜히 찔렸지만 나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야 이미 철면피를 깔고서는 선언했으니까.

그대들의 활약을 지켜보겠다고.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했잖아. 내가.’

나랑 함께하기 위해선.

나의 거품을 감당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친절하게 서신까지 적어서 전달했거늘.

‘그래도 양심상 마냥 날로 먹을 순 없겠지.’

과대평가를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내는 피곤한 성격……!

남에게 오롯이 의존하는 성격은 더더욱 못됐으니.

만반의 준비라는 거.

이쪽도 나름대로 했다는 뜻이다.

‘체력이 초인 수준이 돼서 망정이지.’

그런 의미에서 마탑에 미궁 관련 서적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천만다행이었다.

미궁에 관한 지식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을 여유는 또 없었으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준비를 떠올렸다.

‘미궁이나 함정에 관한 지식은 없지만.’

[텟퍼른 미궁]에 관한 정보를 얻어낼 순 있었거든.

나는 어둠의 정령을 바라봤다.

.

.

.

“내가 그대들을 초대한 이유는 간단하네.”

마탑의 수석 집무실.

달칵─

나는 찻잔을 세팅하며 말했다.

“어둠의 정령에 관한 두 선임의 의견을 듣기 위함이네.”

밝혀진 바가 지극히 적은 어둠의 정령.

어떤 서적을 뒤져보아도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볼 필요도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일반 정령에 관해서도 아는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초대한 두 선임, 마티스와 페이얀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네, 저도 영광인데……. 저, 먼저 목 좀 축여봐도 될까요?”

“들지.”

곧장, 찻잔을 드는 페이얀.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

대부분의 비약초는 사람이 먹을 맛이 못 된다.

애초에 차보다는 약에 가까운 식물들이었으니까.

나야 비루한 스탯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만…….

괴물 같은 선임 마법사들에게 비약초 따윈 필요하지 않겠지.

접객용으로 비약초 차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준비한 차였다.

“……씁, 뭔가 오묘한 풍미네요? 홍차랑은 다른 게.”

많이 먹어본 사람이 잘 안다는 건가?

대식가인 페이얀은 바로 알아맞힌 모양이었다.

‘그래, 오묘한 맛이겠지.’

그거 개당 300원짜리 고급 녹차 티백이거든.

어째서 티백 녹차를, 그것도 고급으로 대접했는가.

거슬러 올라가자면 새벽 배송에서 할인 쿠폰까지 설명해야 했으니.

나는 미간을 찌푸리는 페이얀을 뒤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대들은 텟퍼른에 어둠의 정령이 출현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뜨뜨─

먼저 입을 연 건 차를 원샷하려던 페이얀이었다.

페이얀이 황급히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까다로운 어둠의 정령 출현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관해선 역시나 드릴 말씀이…….”

“책망하고자 그대를 부른 게 아니라네, 페이얀 롯.”

“……네?”

그때도 말했지만,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지.

어둠의 정령이 출현한 건.

그저 우연이 겹쳤을 뿐.

마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얀 선임. 이호열 수석께서는 텟퍼른이 어째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이라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 말이었다.

마티스, 역시 흑마법학 선임답다.

흑역사로 시커메진 내 속내를 잘도 알아보는구나.

“아, 그런 말씀이셨다면…….”

페이얀은 멋쩍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무계약 상태의 정령은 자신이 눈을 뜬 장소에 머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질적인 어둠의 정령이지만……. 그 기본 성질까지 다르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둠의 정령이 아마도 텟퍼른에서 태어난 정령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티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제 생각도 페이얀 선임과 같습니다.”

흑마법학의 창시자.

마티스가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았다.

“무계약 상태의 정령이 자연에서 필요한 마력을 충당하듯. 어둠의 정령 또한 자연에서 적합한 마력을 수급해야만 할 겁니다.”

“그렇죠. 어쨌거나 정령이니까요.”

“텟퍼른이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는 것이겠지요.”

쉽게 말하자면.

텟퍼른에 적합한 마력이 넘실거릴 거란 말이군.

마티스의 추측에 나는 탄식을 삼켰다.

……이거 괜히 불가사의 퀘스트가 아니었구나.

‘적합한 마력은 과거와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

분명, 텟퍼른과 얽힌 사연이 있을 거란 얘기겠지.

마티스가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어둠의 정령과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이 적합한 마력의 근원을 알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연이 얽혀있다고 한들. 경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나를 과하게 신뢰하고 있구나, 마티스 선임.

그러나 마티스가 마냥 착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 흑마법과 적합한 마력의 성질.

‘어둠은 더욱 짙은 어둠에 파묻힌다.’

마티스는 나의 적합한 마력을 심히 고평가하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텟퍼른이라고 해도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하는 거겠지.

‘결국, 어둠의 정령과 대화를 나눠보는 게 최선이겠군.’

대화는 그쯤에서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선임.

마티스의 뒤를 따라 집무실을 빠져나가던 페이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이호열 수석님.”

“?”

“혹시 아까 그 차, 어떻게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페이얀은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뭔가 오묘한 맛이라서 한 잔만 더 마셔보고 싶어서요.”

대식가라서 300원짜리 녹차도 맛있게 느끼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몇 개라도 내어주고 싶었건만.

그 타이밍이 애석하게도.

“유감스럽게도 그럴 순 없겠군.”

티백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거든.

그러나 이놈의 긍지와 격식께서.

솔직하게 내가 마실 예정이라 내어줄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카페인 과다 섭취는 수면에 방해가 된다.”

“……네? 카페인? 무슨 폐인이요?”

.

.

.

누가 들으면 내가 카페인 과다 섭취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줄 알겠군. 다시 떠올려 봐도 뻔뻔함에 혀가 내둘러지는 대화. 그러나 그 또한 만반의 준비였다.

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텟퍼른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다.”

텟퍼른.

그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어둠의 정령이 답했다.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여.”

과연, 마티스의 말대로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로군.

나는 함정 해제에 집중한 파비앙 일행을 바라봤다.

‘저쪽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정보겠지.’

같은 배를 탄 마당에 숨길만 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텟퍼른의 과거를 알고 싶다, 어둠의 정령이여.”

*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

미궁에 메아리치듯 울리는 목소리.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이 대화를 나눴다.

“다들 들었지?”

“뭐가 없다고. 당장 떠나라고 하는 거 보니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지! 역시 진입하길 잘했는데?”

많게는 길드와 파티.

적게는 혼자서 진입한 플레이어들.

길드나 파티 단위로 진입한 플레이어들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홀로 진입한 플레이어들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 대부분은 넷튜버 플레이어들이었다.

“아니, 형님들. 저 혼자라니까요? 인간적으로 어떻게 전력질주를 합니까! 어떤 함정이 어디서 튀어나올 줄 모르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파티라도 하나 구하는 건데……!”

“이게 미궁은 그 스타트 지점이 각자 다르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저 혼자는 아니겠죠? 저처럼 혼자 진입한 플레이어도 있겠죠?”

그들과 마찬가지로 넷튜버 플레이어.

박휘강은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역시나 탐험가의 지식이 빛을 발했다.

“미궁에 출구는 하나여도 입구는 여러 개니까요! 저를 포함해서 플레이어들이 각자 떨어진 위치가 다르단 거죠! 네? 호열 님은 못 보는 거냐고요? 아뇨! 또 미궁 심층부부터는 결국 다 만나게 되어있어서요.”

-그럼 심층부까지 가야 된다는 거임???

-휘강이 혼자서 가능하냐??

-안 될 것 같으면 걍 포기하자 ㅇㅇ

-ㄹㅇ 호열 님이 클리어하실 때까지 버티는 것도 방법임

시청자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맞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박휘강은 다짐했었다.

이번만큼은 조금 노력이란 걸 해보기로 말이다.

‘호열 님의 업적을 세상에 알릴 기회야.’

내가 한 일을 세상이 모르게 하라!

마치 그런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 온 호열이었다.

간단한 인터뷰에서도, 기자 회견에서도 호열은 자신의 업적을 뽐내거나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심지어는 마왕성 균열을 클리어하셨을 때도…….’

클리어도 평범한 클리어가 아니었다.

무려 세 개의 마왕성 균열을 ‘압살’했다 부를 정도로.

겨우 10분 만에 클리어했던 호열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박휘강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세상은 조금 더 호열 님의 수고를 알 필요가 있다.’

그저 호멘.

속으로 주문을 외운 박휘강이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외쳤다.

“저기 혹시 저랑 파티 맺으실 분 계신가요?”

“……어? 보세요, 형님들. 저 혼자 아니라니까요.”

“제 클래스는 탐험가입니다! 미궁에선 도움이 될 겁니다!”

“……탐험가? 와씨, 다행이다!!”

“저도! 저도 끼워주세요!”

순식간에 모여든 플레이어들.

하나같이 제각각이었다.

박휘강처럼 넷튜버 플레이어도 있었고, 혼자서 진입할 만한 실력을 갖춘 고레벨 플레이어도, 심지어는 초신성으로 얼굴이 알려진 이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출신이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이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힘을 합쳐서 심층부까지 나아가 보자구요!”

물론, 보통 미궁도 아니고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텟퍼른 미궁].

당연하게도 그 첫걸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박휘강의 파티를 포함, 미궁 곳곳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뭐, 뭐야? 미궁 벽에 금이 가고 있는데?”

“저기요오? 휘강 씨. 이거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잠깐만요, 형님들! 벽 안에 뭔가 있는데요?”

“으아아아악! 벽 안에서 뭔가 움직인다!!”

.

.

.

웅성웅성─

텟퍼른 미궁에 존재하는 수많은 스타팅 지점.

그러나 침묵이 흐르는 유일한 지점은 호열과 파비앙 일행이 진입한 장소뿐이었다.

파비앙이 누구던가? 아르카나 대륙 최고의 미궁 전문가이자 살아있는 탐험가의 전설.

“후우……. 함정은 해제했습니다.”

간만에 실전이었지만 육체에 새겨진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물론, 만반의 준비 덕을 많이 보긴 했다.

마도구가 아니었다면 호열 경 앞에서 체면을 제대로 구길 뻔했으니까.

‘평범한 미궁 수준이 아니야.’

누군가 전리품을 숨겨둔 장소, 미궁.

그 전리품을 회수할 때의 동선도 계산하여 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함정으로부터 안전한 지름길이 숨겨져 있다든가.

함정을 쉽게 해체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든가.

그래, 그것이 일반적인 미궁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텟퍼른 미궁에 그런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로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모든 함정이 해체하기 벅찰 정도로 정교했다.

‘……어쩌면 그 목소리가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부귀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이곳을 떠나라.

죽고 싶지 않다면…….

낌새를 알아차린 건 파비앙뿐만이 아니었다.

“아론, 어떻게 생각하냐?”

“……파비앙 씨, 당신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나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네.”

파비앙은 의문에 휩싸였다.

부귀영화를 보관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텟퍼른은 어째서 이런 미궁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불가사의.”

상식선에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둠의 정령이 풀어내기 시작했으니까.

“텟퍼른은 지키고자 했었다. 모든 것을.”

그래, 텟퍼른의 진실을.

“……!!!”

이야기를 경청하던 파비앙, 아론, 롬버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 그래, 이 순간 침묵이 흐르는 이유는 바로 그 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호열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이내, 호열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긍지를 내가 알게 되었다. 텟퍼른이여.”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파비앙, 지금부터 나는 함정을 정면돌파하겠다.”

“……?”

“그대들은 그대들의 긍지에 따라 행동하게나.”

……갑자기?

함정을 정면돌파?

게다가 긍지라니?

송글송글.

파비앙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경,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

.

무슨 말이긴.

한 줄로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텟퍼른은 아르카나 대륙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다.’

덕분에 죽고 못 사는 긍지께서 발동이 걸렸단 말이지.

역시 쉽게 가는 법이 없구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직 반납하지 않은 마도구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여유를 부릴 새는 없었다.

나는 곧장 마탑 가넷 홀에서 대여한 마도구를 착용했다.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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