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텟퍼른 미궁 (2)
[텟퍼른 미궁]
[적정 레벨 : Lv.500~?]
[붕괴도 : 0%]
정기 업데이트로 생성된 [텟퍼른 미궁] 균열.
이호열, 어둠의 정령, 한없이 깊은 어둠, 텟퍼른 미궁까지.
근 일주일간 이어져 온 관심이 드디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던 AAU.
대한민국 지부장, 박민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말이 되는 검색량이냐, 수겸아?”
말 그대로 지붕을 뚫고 치솟아오른 트래픽량.
‘아르카나 미궁’ 키워드의 검색 횟수였다.
타다닥─
두들기는 키보드 자판.
검색량에 기여하던 윤수겸이 대꾸했다.
“퀘스트를 받은 건 우리 호열 씨밖에 없지만, 어째 다들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이것도.”
두 상사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성현준.
그가 적당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니까 말입니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개발진이었던 이들이 10대 불가사의를 모를 순 없었다.
아르카나의 개발자였다면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거대했던 떡밥.
“호들갑 떠는 게 아니라 진짜 월드급 퀘스트니까요.”
그랬다.
10대 불가사의, 하나하나가 아르카나 대륙을 넘어 월드에 영향을 끼칠 정도.
그러니까 현시점에선 공개될 콘텐츠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박민재가 애써 예리하게 뜬 눈을 번뜩였다.
“이호열의 수준이 그쯤에 도달했다는 거겠지.”
“맞습니다. 추정 레벨이 최소 900레벨이니까요.”
“잠깐,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이 끼어들면 안 되는 거 아냐?”
무섭지도 않은 건가?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말이야.
성현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쵸. 어떻게 호열 님이랑 경쟁을 하겠다고.”
“……뭐? 호열 님?”
“저거 나한테는 호멘호멘 하지 말라고 하더니만?”
못 들은 척.
성현준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미궁이니까 희망을 걸어보는 모양이더라고요.”
“맞습니다. 미궁은 평범한 사냥터 같은 게 아니니까요.”
“뭐, 공략 방법만 알면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아르카나에서 미궁을 공략하는 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극과 극.
설치된 모든 함정을 파훼하고 공략, 생채기 하나 없이 미궁을 빠져나올 수도 있었고.
함정을 전부 건드리고,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도 모조리 때려잡고 빠져나오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니까요.”
심지어는 제자리에 멈춰서 대기하는 방법도 있었지.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에도 경험치는 귀중했으니까.
공략을 포기하고 다른 플레이어가 미궁을 공략할 때까지 대기한 뒤 본전이라도 건지는 방법도 있었단 소리였다.
“흐음, 그런 복잡한 계산들이 있었구만?”
하여튼 플레이어들의 사고방식이란.
어째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은 이 기분.
박민재가 혀를 내두르기도 잠깐.
윤수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게다가 적정 레벨이 500레벨이니까요. 플레이어들 평균 수준에 비하면 높기는 해도……. 그동안 봐온 균열들이 워낙 악랄했어야 말이죠.”
“뭣보다 거슬렸던 악마족도 없을 확률이 높고요!”
“……그런가?”
수겸이와 성현준 사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필 걸려도 개발 착수도 안 했던 텟퍼른이 떠오를 게 뭐냐.’
나이를 먹어 노파심만 늘어난 덕분일까?
박민재의 눈에 유달리 거슬리는 정보가 있었다.
바로 [텟퍼른 미궁]의 적정 레벨.
“야, 수겸아.”
“네? 말씀하세요, 지부장님.”
“그……. 미궁은 원래 적정 레벨이 저랬지?”
“물음표요? 원래부터 그렇죠.”
말했다시피 미궁엔 다양한 공략법이 존재한다.
선택지에 따라서 공략 난이도가 널뛰고는 하니까.
과거에도 그 적정 레벨이 물음표로 표기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 단순한 시스템상 표기에 불과했는데…….
‘그냥 미궁이 아니고 10대 불가사의다.’
개발진이었던 자신들조차.
상세한 설정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득히 먼 훗날의 콘텐츠.
박민재는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적정 레벨 : Lv.500~?]
저 물음표의 최대치는 얼마쯤 될까?
이호열,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되는 거냐?’
박민재, 그가 나름의 고민에 빠진 와중.
성현준의 들뜬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어라? 잠시만요. 호열 님이랑 탐험가 연맹이랑 이야기가 잘 끝난 모양인데요? 탐험가 연맹이 움직이기 시작했대요! 근데, 그냥 연맹 탐험가가 아니라 파비앙이 직접 나섰다는데요?!”
……뭐라고 파비앙?!
그 파비앙이 움직여?
내가 알고 있는 그 파비앙 들롱을 말하는 게 맞나?
박민재가 흠칫해서 되물었다.
“전설의 탐험가이자 탐험가 연맹장 파비앙 들롱?”
“네! 그 파비앙이 맞습니다!”
“……이런 미친.”
파비앙 들롱!
일명, 전설의 탐험가.
10대 불가사의를 포함.
아르카나 대륙에 숨겨진 떡밥들에 누구보다 가까운 사내.
그렇기에 마탑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적인 이유로.
탐험가 연맹장이란 자리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던 그였다.
그런 파비방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그것도 이호열과 함께 텟퍼른 미궁을 공략하기 위해서.
박민재가 헛웃음을 뱉었다.
“이래서야 진짜 노파심이었는데, 그래?”
.
.
.
연맹장, 파비앙을 포함한 3인의 연맹 탐험가.
그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보는 건.
역시나 같은 연맹 소속의 탐험가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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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퀴처럼 끈질긴 중계! 떴다 텟퍼른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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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라 왕국.
탐험가 연맹 본대 앞.
“잘 보이시나요?”
박휘강의 카메라가 파비앙을 비롯한 탐험가들의 모습을 담았다.
시청자들이 무어라 반응을 하기도 전, 박휘강의 흥분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파비앙 연맹장님이 움직이시다니요! 저도 탐험가 연맹에 발을 들이고 나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인데요. 연맹장님도 모자라서 아론, 롬버스 씨까지!”
아론과 롬버스.
그동안 활동하지 않았던 파비앙을 제외.
탐험가 연맹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했던 두 탐험가.
-뭐임?? 대단한 사람들임???
-아니 딱 보면 모르냐? 당연히 대단하신 양반들이겠지
-일단 장비 생긴 것부터 심상치 않음ㅋㅋ
-ㄹㅇ 뭐냐 탐험가 장비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직 텟퍼른 미궁엔 진입조차 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들썩거리는 채팅창.
박휘강은 눈치껏 한 줄로 요약을 끝마쳤다.
“한마디로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
탐험가 연맹 최정예 전력들이 [텟퍼른 미궁] 균열을 공략하기 위해 나섰다!
그건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미치겠네. 파비앙이 움직일 수도 있는 캐릭터였어?”
“우리랑은 얼굴도 맞대지 않는 양반이 저런 자세로 나온다고?”
“아니. 파비앙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 두 사람!”
랭커들에게도 파비앙은 미지의 존재였으니.
자연스레 화살이 향하는 쪽은 두 사람.
아론과 롬버스 방향이었다.
“둘 다 몸값으로 악명 높잖아?”
탐험가 연맹의 간부이자 실적 또한 한두 손가락에 손꼽히는 두 사내.
그래, 저들의 비싼 몸값이야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몸값을 떠나서 저 두 사람. 보통 싸가지가 아니니까.”
혀를 내두르는 이는 길드 랭킹 5위, 보헤미안.
길드 마스터, 가이버였다.
성지, 뮤온 사건의 여파로 길드 랭킹이 한 단계 추락.
그 순위가 이나즈마와 뒤바뀐 보헤미안이었거늘.
가이버는 그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다.
랭킹보다 중요한 건 주제 파악이다.
교훈 덕분에 상황을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다들 기억하지? 한창 세컨드 썬이랑 던전 공략 경쟁 붙었을 때 말이야. 우리도, 세컨드 썬도. 적자를 무릅쓰고 저 두 사람을 영입했었잖아.”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대격변 전 얘기잖아, 그거.”
“어떻게 잊겠냐. 내가.”
그날의 치욕을!
아론과 롬버스는 능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했다.
보헤미안과 세컨드 썬이 경쟁이 붙었던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도 경쟁이 붙었었다는 이야기.
덕분에 두 탐험가 사이에서 휘둘리던 두 길드였다.
“내가 그날 깨달았지. 내가 다시 탐험가 연맹에 손을 벌리면 그때는 사람 새끼가 아니라 개자식이라고. 대격변 이전의 일이라 망정이지. 만약 이후였다면…….”
두 탐험가들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사망, 강제로 로그아웃 당했던 양측의 길드원들이 몇 명이었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이버였으니까.
치를 떠는 한편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자발적으로. 무급 선언까지 하고 나선 건 좋은데 말이야.”
……이호열, 정말 괜찮을까?
말했다시피.
탐험 앞에서 탐험가들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게다가 탐험가들은 두뇌 회전이 빠르다.
던전이나 미궁처럼.
자신이 갑인 위치에선 권한을 멋대로 휘두른단 뜻이다.
‘그런 피곤한 족속을 셋이나 통제할 수 있을까?’
호열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도리도리.
가이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누가 붙여준다고 해도 거절한다.”
탐험가들한테 떠밀려서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하겠지.
“……가이버, 진심이야?”
“응? 진심이지. 당연히.”
“솔직하게 부러워하셔도 이해합니다. 마스터.”
“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친 건 팔인데. 머리라도 다친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릴.”
“아니, 잠깐만. 말이 심하네. 너?”
그러나 가이버의 영양가 없는 해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
이내, [텟퍼른 미궁] 균열 앞에서 마주친 호열과 세 명의 탐험가.
그들의 첫 만남이 넷튜버들의 전파를 타고 세상에 중계됐으니까.
호열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론과 롬버스.
그리고 연맹장, 파비앙까지.
“……실화냐?”
그 광경이 가이버에겐 다시금 주제 파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동시에 [텟퍼른 미궁] 균열 앞에서 진입을 망설이던 플레이어들에겐 용기가 됐다.
“그래. 정 빡세면 우리 가만히 있자, 그냥.”
“그치? 우리가 못 깨도 이호열이 클리어해 줄 거니까.”
“어허. 이호열이 뭐냐. 하여튼 말버릇. 호열 님이시지.”
웅성웅성─
[텟퍼른 미궁] 균열 목전.
수많은 인파,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관심.
간만에 탐험이라 그런가.
아니면 지나친 관심 때문일까.
파비앙은 무거워진 어깨를 가볍게 풀었다.
‘새삼 느끼지만 피곤한 세상에 살고들 있군. 모험가들은.’
자유가 없는 세상이라니, 질색이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옮겼다.
호열에게로.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이명(異名)과 업적.
대체 어떤 사내일까?
놀라움과 별개로 이날만을 기다려온 파비앙이었거늘.
과연, 그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저 복장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르카나 대륙의 것도, 그렇다고 모험가들의 차림새도 아니었다.
미궁 진입을 앞둔 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격식과 품격이 넘치는 차림새.
그보다 놀라운 건 태도였다.
“안부는 서신으로 충분히 나눴으니 생략하도록 하지.”
탐험가 연맹장인 자신을 편히 대하는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유스라 왕국에서만큼은 국왕, 하쿠나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유스라에 자리를 잡은 탐험가 연맹이니 저런 태도야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유스라 왕국에서 탐험가 연맹이 받고 있는 배려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하대라고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지.’
그러니 파비앙이 놀란 건 사소한 말투 때문이 아니었다.
‘……대단하군.’
부담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시선과 자세.
파비앙은 주변의 기류를 다시금 살폈다.
호열이 등장하는 순간.
그에게 집중된 인파들의 관심과 시선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했지만…….
아르카나 최고의 탐험가인 자신이 받았던 관심보다도 몇 배는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카메라라고 했었지.’
게다가 저 작은 기계, 카메라가 세상 모든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이곳 상황을 전달한다고 했었나.
말 그대로 세계가 호열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거늘.
‘대단하단 말로 부족할 정도로 대단해.’
막대한 관심 속에서도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것이 그가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것 같다고 느껴진 이유겠지.
파비앙은 헛웃음을 뱉었다.
‘이거 철저한 준비가 무색해지는군.’
미궁의 전문가는 자신이었거늘.
오히려 호열과 함께 해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는 꼴이라니.
이러면 안 되겠지.
파비앙이 정신을 다잡던 순간.
“진입하지.”
“……!”
이내, 평가에 화답하듯 호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덕─
서로서로 눈빛을 교환.
파비앙을 비롯한 연맹 탐험가들이 걸음을 옮겼다.
파비앙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결정에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
다행이다.
우리만 미궁에 진입하는 건 아닌가 보네.
역시, 돕고 사는 현대 사회다.
‘마왕을 잡는 것도 아니고 달랑 넷이선 조금 그렇지.’
마왕성과 미궁.
적정 레벨은 마왕성 균열 쪽이 300레벨이나 위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텟퍼른 미궁] 쪽이 훨씬 부담스러운 균열이란 말이다……. [천적관계]의 발동 유무가 그 이상으로 중요했으니까.
‘그래도 안심이 되네.’
그런 의미에서 든든하다, 탐험가 연맹.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나의 노파심 섞인 서신을 대충 읽지 않았다는 건가?
일단, 착용한 장비들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그랑펠의 심미안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
그 장비들의 수준이 최소 [명품]급은 된다는 거겠지.
물론, 우려됐다고 해도.
지금처럼 내색할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나는 더욱 당당하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진입하지.”
[텟퍼른 미궁]
[적정 레벨 : Lv.500~?]
[붕괴도 : 0.1%]
발을 들이는 동시에.
순식간에 뒤바뀌는 풍경.
한 가지 다행이라면 [텟퍼른 균열]이 생성된 장소가 허허벌판이라는 것.
균열은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이 절반씩 섞인 [『기이』]의 공간이니까.
‘예를 들어 환승역에 생성됐어 봐.’
가뜩이나 복잡한 미궁에 지옥철 환승역이 뒤섞인 풍경?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진다, 진심으로.
그런데…….
아무래도 안도하기는 한참 일렀던 모양인데?
서서히 밝아지는 시야.
드러나는 텟퍼른 미궁의 풍경.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와 스산한 음성.
[텟퍼른 미궁에 진입한 어리석은 자여.]
[이곳에 부귀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이곳을 떠나라.]
“……목소리!”
“파비앙 씨,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시작부터 쉽지 않구만, 이거.”
반응을 보니까 미궁에서도 흔한 연출은 아닌 모양이다.
파비앙, 아론, 롬버스가 흠칫하기도 잠깐.
마지막 메시지가 들려왔다.
[죽고 싶지 않다면.]
……꼴깍!
파비앙 일행이 침 넘기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다.
시작부터 경고라니.
애써 억누른 노파심이 다시금 샘솟는다, 이거.
그러나 내색은 없다.
성격을 떠나서 내게는 아직 ‘믿을 구석’이 있었으니까.
나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엘.”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하이엘.
그런 하이엘의 곁에서 일렁이는 검은 형체, 어둠의 정령.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여. 그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뭐고 다 좋은데.
“한없이 깊은 어둠……!!”
듣는 사람도 있는데.
미궁에서라도 그 호칭만은 어떻게 좀 안 될까?
가슴 속에서 애원이 메아리치기도 잠깐.
곧 시야가 점멸했다.
[10대 불가사의 퀘스트 : 텟퍼른의 미궁]
새로운 퀘스트 목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