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27화 (59/489)

◈ 127화. 한없이 깊은 어둠 (3)

탐험가 연맹.

드높은 명성과 위상은 아르카나 대륙에서부터.

대격변 이후, 현재까지도 유효했다.

그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엔 AAU의 영향이 컸다.

“아르카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정보를 통해 변수를 예측할 필요가 있죠. 그런 면에서 연맹 탐험가들은 전문가. 그들이 현실에 나타난 게 어쩌면 인류에겐 큰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탐험가 연맹은 AAU를 비롯해 인류에게 많은 협조를 했다.

오직 자신들만 알고 있는 아르카나 대륙의 정보들을 인류에게 전달했으니까.

물론, 맨입은 아니었다.

탐험에 미쳤다고 한들.

이해관계 따지는 것 하나만큼은 투철한 그들.

그 대가로 많은 것을 받아 챙겼지만 말이다.

덕분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악명 아닌 악명이 퍼질 수밖에.

“탐험가? 당연히 있으면 좋지. 그런데 애매한 탐험가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수준이고, 연맹 탐험가 중에서도 상위권은 돼야 데리고 다닐 의미가 있는데……. 그분들 몸값이 장난이 아니시잖아?”

돈을 쓸어담다시피 하는 랭커들도 치를 떨 정도!

덕분에 상위 길드들은 아예 탐험가 클래스를 보유한 플레이어들을 찾아내, 뒤늦게라도 그들을 육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라리 그게 싸게 먹히겠다는 견적이 나온 탓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탐험가 연맹,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텟퍼른 탐사뿐…… 보수는 필요하지 않다.”]

천하의 탐험가 연맹이 무급 선언을 한 것이었다.

[탐험가 연맹장 파비앙 들롱, “이호열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것도 모자라 아주 공손한 자세로 나선 것이었다.

누구보다 황당한 반응을 보인 건 탐험가 연맹과 접점이 있었던 랭커 플레이어들이었다.

무언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 플레이어들.

“이, 이걸 통쾌하다고 해야 해? 씁쓸하다고 해야 해?”

이건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연맹장, 파비앙 들롱.

그 콧대 높은 곱슬머리 왕재수가 저런 공손한 말을 할 줄도 알았다니! 그러나 마냥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그야 파비앙의 상대는 호열이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파비앙 저러는 거 약간 이해됨 ㅇㅇ

-그니깐 쌓아둔 명성치가 차원이 다를 텐데

-그냥 이호열이 한 일만 봐도 견적 나오지ㅋㅋㅋㅋ

-ㄹㅇㅋㅋ막말로 이호열이 텟퍼른 퀘스트 받은 지금이 탐험가 연맹한테는 절호의 기회일걸?? 그래서 저렇게 저자세로 나가는 거지ㅋㅋㅋ

-……그럼 저것들 설마 버스 타려고 저러는 건가???

그 시각, 유스라 왕국.

탐험가 연맹 본대.

고위 연맹 탐험가들이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오가는 시선 속에 흐르는 미묘한 신경전.

‘텟퍼른 미궁 탐사에 참가하는 건 나다.’

‘분명, 견제하려고 들겠지.’

‘설령 얻을 게 없다고 해도 실적이 필요하다.’

연맹장, 파비앙은 그 눈빛들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다들 꿍꿍이가 있군. 그중엔 내 자리를 노리는 자도 있고.’

코앞으로 다가온 차기 연맹장 선거.

감투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파비앙은 자신의 자리를 쉽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야 파비앙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두득─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파비앙.

“참고로 나 또한 텟퍼른 미궁 탐사에 참가할 생각이네.”

“……!!!”

파비앙의 선언에 동공이 휘둥그레지는 연맹 탐험가들.

그럴 만도 했다.

파비앙이 외부 활동에 나서는 건 정말 간만이었으니까.

누군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지신 모양입니다?”

명백한 도발.

그러나 파비앙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급하기는. 몇 년을 쉬었어도 나는 아직도 내가 최고의 탐험가라고 자신하네만? 다만, 표를 쥐고 계신 그대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나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이라네.”

꼴깍─

마른침을 삼키는 탐험가들.

‘허세가 아니다.’

나이로는 중년을 넘어선 파비앙이었지만, 외모를 비롯해 그의 육체는 여전히 최전성기에 머물러 있었다.

가볍게 몸을 푸는데 드러나는 근육들이 증거겠지.

“또한 텟퍼른 미궁 탐사엔 연맹의 명예가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마탑과 라이언 하트 기사단, 뮤온까지. 그들이 자신들의 건재함을 보여줬던 것처럼. 탐험가 연맹도 나설 필요가 있다는 말이네.”

흐르는 침묵.

모두가 파비앙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몇몇은 아예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최정예로 나서겠다는 소리잖아?’

‘우리까지 순서가 돌아올 일은 없겠군.’

‘……젠장, 이호열 버스 좀 타보나 싶었는데.’

‘빌어먹을 레벨아.’

자신의 참전 선언으로 끝난 회의.

원탁에 홀로 남은 파비앙은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신인들은 패기가 없어요. 패기가.”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탐험가가 언제부터 연맹에 의존했다고.”

파비앙에겐 신념이 있었다.

자고로 탐험가란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굽혀지지 않는 고집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선 그 신념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야 적성에도 안 맞는 짓을 또 하게 생겼군.”

이곳이 아르카나 대륙이었다면.

파비앙은 연맹장 자리를 미련 없이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모험가들의 세계.

저런 못 미더운 이들에게 탐험가 연맹의 미래를 맡길 순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대단하시군.”

모험가, 이호열.

어둠의 정령을 통해 텟퍼른에 미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했던가?

미궁이라,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정보일지 몰라도 파비앙에겐 더없이 큰 정보였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공략한 미궁만 하더라도 수백 개.

파비앙에겐 미궁의 전문가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경험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호열, 그가 누구인가?

“적어도 늙은이 목숨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악마들의 왕, 마왕 압살을 이뤄낸 사내.

그와 동시에 마탑의 수석 마법사이자 유스라 왕국의 실세. 그것도 모자라 성지, 뮤온의 구원자이며 세계수의 씨앗을 싹 틔우고…….

“……마지막으로 한없이 깊은 어둠이란 이명까지.”

이 모든 게 정녕 한 사람이 해낸 업적이 맞단 말인가?

파비앙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10대 불가사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기대됐다.

과연, 이호열은 어떤 사내일까?

그러나 그런 파비앙의 기대는.

“파비앙 연맹장님.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답신이라면?”

“이호열 경께서 보내오신 서신입니다.”

“오오, 고맙네.”

호열에게서 되돌아온 서신을 받아든 순간, 무너져 내렸다.

휘황찬란한 금박 장식 종이.

이건 자신이 보냈던 그 서신이었다.

“……음?”

보냈던 서신이 그대로 되돌아왔다?

불길한 예감.

파비앙이 흠칫하며 서신을 펼쳤다가 경악했다.

“!”

그야말로 고상한 필체.

자신이 보냈던 서신 아래에.

호열의 답신이 적혀있었으니까.

──────

절차에 따라서 보다 상세한 목적을 제시하도록.

──────

“……절차? 목적?”

단 한 줄.

아니, 추신까지 합쳐도 고작 두 줄.

──────

추신. 불필요한 사치는 좋지 않다.

──────

“사, 사치?”

격식을 더없이 중시하는 호열.

취향에 맞춰 값비싼 금박 용지를 택했건만.

사치를 지적받을 줄이야.

아니, 그걸 넘어서 구체적인 목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파비앙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쉽지 않군, 이거.”

간만에 느끼는 긴장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파비앙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

“불합격. 그 목적이 불분명하다.”

사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마탑을 비롯해 다른 아르카나 세력들이 활약하고 있는 현재.

탐험가 연맹 쪽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느낀 거겠지. [텟퍼른 미궁]이라면 적성에도 맞겠다, 적절한 기회라고 판단한 건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서.

뭐든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거지.

나중에 딴소리를 할 수 없도록.

하다못해 출탑 신청서도 목적을 분명히 해야 했으니까 말이야.

“벤쉬 윌리엄. 그대는 지겹지도 않은 모양이군.”

불합격.

나는 벤쉬의 출탑 신청서를 재껴 버리곤 생각했다.

그래도 목적만 제대로 제시한다면…….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게 좋겠지.’

미궁.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콘텐츠.

온갖 악랄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물론.

등장하는 몬스터들도 네임드몹 수준으로 까다로웠다.

경우에 따라선 비슷한 적정 레벨의 [던전]보다 난이도가 빡세다고 했겠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악마족의 활동이 줄어든 지금.

[천적관계]가 발동될 확률도 낮았으니까.

‘자신이 없다. 자신이.’

그런 의미에서 탐험가 연맹보다 우수한 지원군은 없으리라.

물론, 마탑의 마법사를 우르르 끌고 간다면야.

미궁 따윈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겠다만.

“혼자서도 충분하다.”

……충분하긴 개뿔. 입만 살아서는.

하여튼, 보다시피.

이 드높은 긍지께서 사적인 용도로 마탑의 마법사들을 움직이는 걸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일단, 텟퍼른과 탐험가 연맹에 관한 생각은 그쯤에서 접어뒀다.

‘더 이상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탐험가 연맹 쪽에 답신은 전달했고.

[텟퍼른 미궁] 균열은 아직 떠오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당장은.

─수석의 무게 (반복)▼

내가 짊어진 무게에 충실하자.

나는 퀘스트 목표를 확인했다.

수많은 목표 중 새롭게 떠오른 목표.

●원탁 회의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진행 중)

원탁 회의.

탑주와 원로 마법사.

그리고 수석 마법사만이 참석했던 과거의 원탁 회의가 아니다.

애초에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지, 그건.

탑주는 사정상 부재중.

원로 마법사도 다섯 중 달랑 한 명만 남아있었으니까.

그랬다.

과거의 원탁 회의가 아닌.

새로운 원탁 회의라는 것이다.

마탑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변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읊조렸다.

“시간은 오후에 즐기는 차와도 같다.”

쉽게 말해서 시간은 금이란 뜻인데…….

……평범하게 말하면 어디 덧이라도 나는 건지.

어쨌든 내 사전에 지각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걸음을 옮겼다.

원탁 회의가 열리는 크리스탈 홀을 향해.

*

웅성웅성─

크리스탈 홀엔 좀처럼 소란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자리는, 행사는 모두에게 처음이었으니까.

마탑의 햇병아리, 견습 마법사들.

정말 병아리가 주위를 둘러보는 것처럼 그들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견습 마법사를 대표해 이 자리에 참석했건만. 얼마 되지 않는 체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와, 저게 벨리에 선임 마법사님!”

“나 처음이야. 선임 마법사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건!”

“진짜 다들 되게 멋지시다아!”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

전원이 크리스탈 홀에 착석해 있었으니까.

이런 건 정기 학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진짜 다른 애들이 엄청 부러워하겠지?”

“그니깐!”

“부러울 게 뭐 있어? 다음 회의 때 참석하면 되는데.”

“아아, 그랬지! 쉽게 적응이 안 되네.”

새로운 원탁 회의엔 견습, 숙련, 선임, 수석, 원로.

마탑의 모든 마법사가 계급에 관계없이 참석할 수 있었다.

견습 마법사들과 다르게.

마탑의 물을 조금이라도 더 마신 숙련 마법사들.

가늘게 뜬 눈.

지브릴은 크리스탈 홀의 공기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음에 몇몇 숙련 마법사들이 나서서 대꾸했다.

“확실히 오늘도 아리따우시군요. 지브릴 양…….”

“아니, 그런 아부는 됐고. 원탁 회의에 관해서요.”

“아앗, 죄송합니다.”

마탑의 모든 마법사가 한곳에 모이는 회의라니.

폐쇄의 상징.

과거의 마탑에선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브릴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출탑도 그렇고. 확실히 마탑이 변하고 있어요.”

물론, 반겼으면 반겼지.

싫어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이 변화의 계기가 궁금하다는 것뿐.

지브릴이 잠자코 있던 클레의 팔뚝을 찔렀다.

쿡─

“지, 지브릴?”

“역시, 이것도 그분의 영향이겠죠? 클레 양?”

“하하, 그렇지 않을까요?”

“확실히 보통이 아니시군요.”

왜,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었다.

불과 직전에 있던 출탑에서 벌어진 일만 하더라도.

마탑을 뒤흔들기엔 충분했으니까.

“어둠의 정령을 복종시키시다니.”

선임, 페이얀을 포함.

정령학파 숙련, 견습 마법사들이 단체로 나섰던 출탑.

다양한 계급의 마법사들이 출탑에 나섰기에.

그날 [텟퍼른 울타리]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마탑의 모두가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그러니까 소란 속에서.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고…….”

“정령이 그렇게 부를 정도면 대단한 거지?”

“한없이 깊은 어둠……. 왠지 어울리신다. 그치?”

“심지어 검까지 되게 잘 다루셨다고 들었어.”

한없이 깊은 어둠.

호열의 이명(異名)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임 마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마다 페이얀을 보고 한마디씩 건네는 선임 마법사들.

“선임 중에서 가장 먼저 출탑에 나선 것도 모자라서 좋은 구경까지 하고 오셨군요, 페이얀 선임.”

“출탑 목적 달성에 더불어 어둠의 정령에 관한 정보도 얻으셨으니. 다음 정기 학회에 관한 걱정은 덜어내셨겠군요? 부러워요.”

여러모로 이 수석님의 덕을 크게 봤으니까.

페이얀은 입을 우물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하.”

화염마법학 선임, 벤쉬 윌리엄.

그는 아예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하기도 했다.

“대체 출탑 목적서를 어떻게 작성하신 겁니까, 페이얀 선임? 저는 사실 좀 억울합니다. 저보다 간절하게 출탑을 바라는 선임이 또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작성한 출탑 신청서만 하더라도 벌써 수십 장……!”

물론, 그 수다는 오래가지 못했으니.

천적, 마티스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벤쉬 윌리엄, 그대는 침묵을 배울 필요가 있겠군.”

“…….”

발동이 걸렸다 싶으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 벤쉬의 신세 한탄.

페이얀은 마티스에게 감사의 눈짓을 전했다.

마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둠의 정령이라.’

흑마도학과 정령학의 유일한 교집합.

그러나 페이얀과 마찬가지로.

설령 흑마도학을 정립한 마티스라고 해도 어둠의 정령에 관한 지식은 많지 않았다.

다만, 호열이 녀석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둠은 더욱 깊은 어둠에 잠식된다.’

흑마법의 성질에 관해 나눴던 대화.

아마도 수석께서는 그 대화를 기억하고 계셨던 거겠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흑마법에 관한 이호열 수석의 잠재력은 측정할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적합한 마력량’.

대체 어떤 과거를 지니고 계시길래.

그런 적합한 마력을 보유하시게 된 것인가.

마티스는 한때, 그 점을 우려하기도 했었다.

말했다시피.

어둠은 더욱 깊은 어둠에 잠식된다는.

흑마법의 성질을 마티스는 누구보다 알고 있었으니까.

‘……흑화(黑化).’

만약, 호열의 적합한 마력이 폭주한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마티스에게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그야 목격하지 않았던가?

-“세니오스 원로 마법사…….”

『만년설이 잠든 곳』.

그곳에서 세니오스를 애도하던 호열의 모습을.

그래, 이호열 수석은 누구보다 무게추를 잘 잡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그 증거겠지.

마티스가 생각을 끝마치던 순간.

또각─

크리스탈 홀에 청아한 구두 소리가 울렸다.

호열과 마르셀로.

마지막으로 두 수석이 원탁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 등장만으로 잦아드는 소란.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꼴깍─

그런데 어째서인가.

호열의 눈매가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차분한 것을 넘어서 냉랭하게 보일 정도로.

.

.

.

……이제 와서 조용히 해도 소용없다.

밖에서부터 다 들렸던 말이다.

나더러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 소곤대던 소리가!

진지하게 우려가 된다.

나, 쪽팔려서라도 제 명에 못 살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속내가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마르셀로에게 태연히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시작하지.”

즐기기에는.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는 호칭이 내게는 너무 버겁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면 최대한 빨리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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