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한없이 깊은 어둠 (2)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
각 불가사의가 무엇인지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10년이 훌쩍 넘는 공백기를 가진 나조차도 알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10대 불가사의 퀘스트]라니.
‘이런 건 들어보지 못했다.’
공백기 때문이 아니라.
불과 직전.
[텟퍼른 울타리]가 떠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뭐임??? 텟퍼른이라고??
-드디어 10대 불가사의 떡밥 풀리는 거임???
-레이먼 션 드디어 정신 차렸나봄?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떡밥 회수 시작인가??
그랬다.
10대 불가사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후반부 콘텐츠 취급을 받았으니까. 납득할 수 있었다.
텟퍼른과 마찬가지로, 불가사의들은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틀림없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분명 대형 퀘스트다……!
플레이어라면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는 대형 퀘스트.
물론 내게는, 그랑펠에겐 일희일비란 없었으니.
나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퀘스트창을 정독했다.
[10대 불가사의 퀘스트 : 텟퍼른의 미궁]
아르카나 대륙 10대 불가사의, 텟퍼른.
텟퍼른의 미궁을 파훼하고.
텟퍼른의 실체를 세상에 알려라.
현재까지 밝혀낸 불가사의 : 0개 / 10개
─텟퍼른의 미궁을 목격하라. (진행 중)
과연, 연계 퀘스트였다.
스케일만 생각한다면 월드급 퀘스트에 버금가지 않을까?
하지만 마냥 좋아할 게 아니다, 이거.
누가 봐도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할 게 뻔했으니까.
‘애초에 지금 시점에서 풀리는 퀘스트가 아닐 거야.’
그건 눈앞에 퀘스트가 떠오른 과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불가사의 퀘스트를 가져온 건 어둠의 정령.
그 어둠의 정령은 우연이 맞물려 나타난 녀석이었으니까. [월드 퀘스트 : 세계수의 씨앗]과 마찬가지로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시작된 거겠지.
‘이거, 내 수준에서 진행이 가능하긴 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늘.
역시나 피곤하신 성격.
내게 능력 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으니.
나는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의 뜻을 내가 알아들었다.”
“……그게 정말인가?”
“그러나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둘러대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까진 몰라도 적어도 퀘스트엔 때가 있으니까.
‘여긴 엄연히 [텟퍼른 울타리] 균열이거든.’
최외곽.
텟퍼른의 미궁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물론, 어둠의 정령은 혼란한 상태 같았다.
“그러나 무언가 텟퍼른의 풍경이…….”
균열이 뭔지도 모를 테니까.
말꼬리를 흐리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겠지.
나는 우려하는 어둠의 정령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대가 걱정할 것은 없다.”
“……?”
“내가 그 시기를 알고 있으니.”
“……!”
“때가 되면 내가 그대를 찾을 것이다.”
거창하게 지껄였지만.
그저 생각했던 말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퀘스트 목표가 떠올라야, [텟퍼른 미궁] 균열이라도 떠올라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는 말이 고상해서일까. 오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나를 찾겠다……? 그런 뜻인가. 그렇다면 알겠다.”
어딘가 동요하는 듯한 음성.
그것도 잠깐 진짜로 심상치 않은 말이 이어졌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여. 내가 그대의 부름을 기다리겠다.”
……진심으로.
그놈의 호칭 심상치 않네.
이 순간만큼은 그랑펠의 설정에 감사하자.
아니었으면 수치심에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자라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뭐든 확실하게 해야지.’
나의 수치심과 바꾼 [10대 불가사의 퀘스트]란 말이다.
그 난이도가 어쨌든 놓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일단, 어둠의 정령과 재회하기 위한 다리를 깔아두는 게 우선이겠지.
“하이엘.”
내겐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줄 나의 거울…….
아니, 하이엘이 있다.
나는 하이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하이엘이 곧장 고개를 숙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어둠의 정령.
이질적인 기운은 같은 정령들조차 경계하는 눈치였다.
왜, 마법사들의 계약 정령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페이얀의 상위 정령 파이어 드래이크를 빼면…….’
다들 위축된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그에 반에 하이엘은 멀쩡했다.
멀쩡한 것을 넘어서 그 우아한 자태엔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고유 정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대단하구나.
뻔뻔……. 아니, 듬직하다, 하이엘.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불필요한 소란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내 말뜻을 곧장 알아들은 것인가.
어둠의 정령이 대답했다.
“그대의 말에 따르겠다.”
그와 동시에.
스스스─
거짓말처럼 흩어지기 시작하는 어둠의 정령.
지켜보는 이들의 소란이 들려온다.
“사, 사라지기 시작했어?!”
“……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간 거지?”
“나 살짝 들은 것 같은데. 분명, 텟퍼른의 미궁이라고!”
“혹시 퀘스트일까요?”
소란 속에서.
어둠의 정령, 녀석이 마지막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기다리겠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여.”
……내가 그 소리를 왜 안 하나 싶었다, 진짜.
순식간에 내게 쏠리는 시선.
웅성거리는 인파를 보니 실감이 난다.
나더러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니.
그걸 세상이 전부 들었다니.
철면피를 떠나서 나, 이호열의 정신력이.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
나는 페이얀을 바라보며 말했다.
“복귀하지.”
“네? 아, 넵! 이호열 수석님!”
페이얀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균열 밖으로 나서며 진심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마력 탈진에 시달릴 때가 훨씬 나았다고.
*
[텟퍼른 울타리].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적정 레벨, 450레벨.
평범하다면 평범한 균열에서 벌어진 일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이라고.
어디보다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건 넷튜브였다.
스스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어둠의 정령.
그 외형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위축되게 만들었거늘.
영상 속 다급한 목소리가 생생한 분위기를 배가 시켰다.
-“추, 출현 메시지까지 떴습니다! 어둠의 정령이래요!”
이내, 어둠의 정령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순간.
녀석의 앞에 호열이 있었다.
천하통일, 샤이닝은 물론.
호열과 함께 균열에 진입했던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그야말로 균열에 진입한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어둠의 정령이었다.
-“자, 잠시만요.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러나 그런 녀석의 앞에서도 호열은 물러서지 않았다.
항상의 자세.
언제나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운 채.
어둠의 정령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세상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그 대사가 이어졌다.
-“내가 그대에게 복종한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여.”
어둠의 정령을 복종시킨 것도 모자라서.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는 호칭까지.
당연하게도 세상은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걍 미쳤네
-한없이 깊은 어둠ㄷㄷㄷㄷㄷ 포스 오진다
-그냥 딱 듣기만 해도 엄청나 보이지 않음?
-ㄹㅇ 록스가 그냥 했던 말이 아니라니까??
한없이 깊은 어둠.
그 호칭에서 큰 단서라도 잡은 것처럼.
매스컴에선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없이 깊은 어둠이 클래스와 관련된 호칭일지도 모른다. 그런 말씀이신 겁니까?”
“맞습니다. 여태까지 이보다 확실한 증거도 없지 않았었습니까? 커뮤니티에 떠도는 추측이나 뇌피셜밖에 없었지요.”
“전문가님, 비표준어는 조금 삼가해 주시는 게…….”
“아니,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다른 플레이어도 아니고 무려 이호열 플레이어의 클래스에 관한 단서를 얻은 건데요!”
어둠의 정령을 굴복시킨 걸 봤을 때.
역시나 흑마법과 관련된 클래스가 확실하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저는 히든 클래스라고 생각합니다.”
“히든 클래스요?”
“그렇습니다. 흑마법에 관련된 클래스라고 한정하기엔 그동안 이호열 플레이어가 보여준 스킬들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뛰어난 검술을 보여주기도 했었지요.”
“말씀대로 텟퍼른 허수아비를 상대할 때도 다양한 스킬들을 자연스럽게 구사했었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히든 클래스, 한없이 깊은 어둠.
그것이 호열의 클래스일지도 모른다고.
샤이닝의 베이스캠프.
시끄럽게 울리는 TV 소리.
드미트리가 그보다 더 시끄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저거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어둠의 정령을 굴복시킨 것도 모자라서.
뭐, 히든 클래스?
심지어 그 클래스명이 한없이 깊은 어둠?
“재수 없을 정도로. 멋있는 건 자기 혼자……!!”
울분을 토해내는 건 드미트리 뿐만 아니었다.
유스라 왕국.
황금 송아지 주점.
“끄으으으윽! 빌어먹을!”
벌컥벌컥─
끊이지 않는 폭음.
좀처럼 취하지 않는 락키드가 취기에 비틀 거릴 정도.
락키드는 혀가 꼬인 목소리로 주정을 부렸다.
“끄윽. 흐아안없이 깊은 어두우움?”
락키드의 술주정엔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그림자 용병단에 입단하기 전.
명성이 됐든, 악명이 됐든.
하여튼 꽤 이름을 날렸었던 락키드였으니까.
그런 자신을 뒤따르는 호칭들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콜로세움의 무법자.
그래, 그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뇌까지 근육인 사내.
나중에 가서는 인간의 탈을 쓴 오우거라니.
물론, 그 별명들을 아직까지 지껄이는 이들은 없었다.
알아서 입을 닥쳤던 강제로 입을 닥치게 만들었던.
그렇게 잊히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락키드는 부러웠다.
“그 있어 보이는 호칭은 뭐냐고. 끄윽. 저저, 재수 없는…….”
……쿵!
만취한 락키드가 테이블에 엎어지고 나서야 주점엔 평화가 찾아왔다. 드르렁─ 락키드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이제야 입을 여는 이들이 있었다.
“텟퍼른에서 저런 대형사건이 일어날 줄이야.”
탐험가 연맹의 연맹 탐험가들이었다.
그중엔 박휘강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휘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맹에서도 텟퍼른에 대해선 딱히 알아낸 게 없죠?”
“그렇죠? 울타리 근처에서 맴돌던 게 끝이었을 거예요. 텟퍼른 안쪽에서 출몰하는 놈들은 진짜 장난이 아니거든요. 허수아비랑은 비교도 안 되죠.”
“역시, 괜히 10대 불가사의가 아니네요!”
넷튜버 플레이어의 첫 번째 필수 덕목, 눈치.
박휘강은 눈치껏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나눴다.
그야 이런 자리는 쉽게 오지 않는 자리였으니까.
‘탐험가 연맹 최상위 탐험가들……!’
플레이어, 아르카나인을 불문하고 다들 탐험가로선 명성이 드높은 이들이었다.
평소라면 한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어려웠겠지.
‘따지고보면 이것도 호열 님 덕분 아닐까?’
박휘강은 호열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넷튜버 플레이어로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엔 호열의 모습을 처음으로 중계했다는, 업적 아닌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성지순례 왔습니다
-여기가 이호열 처음 중계했다는 그 방송임??
-어허 예의를 갖추세요 이호열이 아니라 호열 님입니다
-그저 호멘
호멘이라니.
호열이 알게 된다면 기절초풍할 게 분명한 호멘이라는 단어도 그의 방송에서 처음 나왔었으니까.
그러니까 박휘강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텟퍼른의 미궁이라고 했겠다……. 분명 텟퍼른과 관련된 퀘스트를 받으신 거겠지.’
박휘강은 호열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퀘스트가 됐든 가뿐하게 해내시겠지.
마왕을 압살하셨던 것처럼 말이야.
그러나 텟퍼른은, 10대 불가사의는 약간 궤가 다르다.
이어지는 탐험가들의 이야기.
“불가사의가 괜히 불가사의가 아니니까요.”
“일단, 위험요소가 너무 많죠?”
“까놓고 어둠의 정령도 이호열 플레이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보물섬이라 불렸던 유스라 제도처럼 확실한 보상이라도 걸려있으면 모를까. 불가사의를 밝혀낸다고 해도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미궁이었다.
함정은 물론이요.
복잡한 구조까지.
탐험가 연맹이 밝혀내지 못한 지역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텟퍼른의 미궁에 탐험가도 없이 진입한다?
능력을 떠나서 피곤한 일에 시달리실 게 뻔했다.
물론, 그 사실을 탐험가들 스스로도 알기에.
분위기는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박휘강, 그는 이름처럼 끈질겼다.
“맞습니다. 불가사의가 괜히 불가사의가 아니겠죠. 하지만 달라진 게 있습니다. 호열 님에게도 텟퍼른에 관한 목적이 생기셨다는 거죠.”
“……!”
그 말에 멈칫하는 탐험가들.
연맹 탐험가 중에서도 최상위 탐험가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만약,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텟퍼른을 탐험에 성공한다면……?
‘다음 탐험가 연맹장 선거에서 높은 득표를……!’
‘경험치가 뭐야. 레벨이 몇 단계나 오를 지도 모른다.’
‘잠깐만, 이거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지 않나?!’
침묵 속 서로 간에 오가는 눈빛들.
박휘강은 속으로 미소를 흘렸다.
“무려 마왕을 셋이나 압살하신 호열 님이 말이죠. 이보다 든든한 지원군은 또 없을 텐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이건 못 먹어도 연맹 차원에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
유스라 왕국.
오랜만에 들린 나의 집무실.
나는 책상에 위에 놓인 서신 하나를 발견했다.
……뭔놈의 종이가 이렇게 휘황찬란하냐?
금박으로 장식된 건가.
나는 서신을 살폈다.
“우수한 품질이군. 허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충돌하는 심미안과 청렴결백.
그러나 그 내적갈등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나는 펼친 서신 그 첫줄부터 기겁하고 말았다.
──────
친애하는 한없이 깊은 어둠에게.
──────
……누군지 몰라도 나를 엿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이거!
설마 3호, 웬수, 이예림인가?
아니, 톡을 보내면 보냈지. 이런 짓을 하진 않을 텐데.
간신히 억눌렀던 수치심이 끓어오른다.
당장에라도 서신을 찢어발기고 싶었지만.
“!”
그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
탐험가 연맹 연맹장, 파비앙 들롱
──────
탐험가 연맹.
그들이 내게 서신을 보내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읊조렸다.
“절차에 따라 그대들의 제안을 검토하겠다.”
물론.
나를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 부른 것까지 감안.
최대한 공명정대하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