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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23화 (55/489)
  • ◈ 123화. 뻣뻣한 게 아니다, 꼿꼿한 것이다

    우물우물.

    긴장한 탓일까.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정령학 선임 마법사, 페이얀 롯.

    그녀는 뒤집어쓴 로브 아래에서 기억을 되짚었다.

    출탑 선배이자 숙련 마법사, 클레 오디아의 말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쏟아지는 시선이 되게 따가우실 거예요!”

    과연, 선배님의 말씀이 옳았다.

    균열 입구부터 쏟아지는 눈빛들이 장난이 아니잖아?

    마탑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을까?’

    페이얀은 싱숭생숭한 기분에 들었다.

    자신의 출탑 신청서가 채택됐을 땐 마냥 좋았거늘.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

    출탑에 인원 제한을 두지 않으시겠다니!

    이런 전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단 말이다.

    이호열 수석께서 자신의 출탑 목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탓일까?

    숙련 마법사, 심지어는 견습 마법사까지.

    별안간 정령학파가 단체로 균열 탐사에 나서게 된 셈이었다.

    ‘긴장해서 그런가, 갈수록 배가 고프네.’

    우물우물에서 우걱우걱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절대 가볍지 않았다.

    자신은 햇병아리, 코흘리개 같은 마법사들의 선임이 아니던가?

    만약, 이곳이 아르카나 대륙이었다면.

    그래도 선임으로서의 체면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나부터도 낯설어서 떨고 있는데. 개뿔.’

    하지만 이곳은 모험가들의 세계였다.

    페이얀, 자신을 챙기기도 급급하단 소리.

    물론, 자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와, 이게 균열이구나.”

    “……낯설다~ 이상해~”

    “근데 어째 사람들 복장이 눈에 익다?”

    “바보야. 모험가들이니까, 그렇지.”

    햇병아리들은 정작 마냥 들뜬 모양이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페이얀은 호열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떠올리는 클레의 조언.

    -“그런데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시선들이 따가울 순 있어도. 막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은 없을 거거든요. 이호열 수석님이 곁에 계신다면 말이에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뭔 개소리야, 그게.’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균열의 진입한 순간.

    페이얀은 클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다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잖아?’

    페이얀은 냉정하게 자신들을 바라봤다.

    제삼자의 처지에서 봐도 이런 구경거리는 흔치 않겠지.

    로브를 뒤집어썼다고는 해도, 소환한 정령까지는 감출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탑의 마법사들이 떼거리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단체로 정령까지 소환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난리가 날 정도의 사건인데.’

    의아하게도.

    ‘목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정도의 거리.’

    균열 안 모험가들은 자신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이어 드래이크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착각하기엔…….

    그 눈빛들이 명백하게 호열을 향해 있었으니까.

    ‘저 많은 모험가가 수석님의 눈치를 보고 있단 말이지?’

    꼴깍─

    페이얀은 마른침을 삼켰다.

    슬쩍, 호열을 흘겨봤다.

    ‘……정말 이쪽 세계에선 엄청 대단하신 귀족이신 건가?’

    햇병아리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대로.

    정말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라든가……?

    그러나 그런 페이얀의 잡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 잠깐. 뭐라고?”

    상위 화염 정령.

    파이어 드래이크가 전해온 아르카나 대륙의 소식 때문에.

    사실 페이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마왕성 균열에 진입.

    마왕 압살에 기여를 했던 그녀였으니까.

    “말도 안 돼!”

    그러나 이건 그 예측을 한참 뛰어넘은 파장이었다.

    다른 정령들이 전해온 소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르카나 대륙 곳곳에서 승전보가 들려왔단다.

    파이어 드래이크가 열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새롭게 태어난 세계수가 모든 생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덕분이겠지.”

    “……!”

    웅성웅성.

    세계수라고?

    그것만으로도 놀란 듯한 햇병아리들의 반응.

    그러나 페이얀은 다른 곳에서 놀라고 말았다.

    페이얀은 그 세계수를 싹 틔운 게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호열 수석……!’

    찰나의 순간.

    핑핑 돌아가는 머리 회전.

    그렇다면 현재 아르카나 대륙의 변화가.

    ‘전부 이호열 수석의 손에서 비롯된 소리란 말이야?’

    왜, 세계수를 싹 틔운 것도.

    마왕을 압살한 것도.

    전부 호열의 계획과 절차 아래에서 진행된 일이었으니까.

    힐끗─

    페이얀은 호열의 눈치를 살폈다.

    ‘엄청난 일을 해내시고도 생색 한 번을 안 내시다니.’

    정작 당사자인 호열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건만.

    왜, 괜히 내 가슴이 들뜨는 걸까?

    꼬르륵─

    덕분에 연비가 좋지 않은 육체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뒤적뒤적.

    로브를 뒤지던 페이얀이 뭐라도 입으로 쑤셔 넣던 순간.

    햇병아리 하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이요? 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구요?”

    “그냥 움직인 게 아니다. 명백히 악마를 사냥하고 있다.”

    “……아, 악마를 사냥해요? 그 기계탑이?”

    “켁켁.”

    “괜찮으세요, 페이얀 선임님……?”

    “네, 네. 전 괜찮아요.”

    커흡.

    하마터면 목이 막힐 뻔했다.

    ‘그나저나 뭐?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움직여?’

    페이얀도 상식 수준에선 알고 있었다.

    딱, 드워프들이 세운 기계탑까지라는 것 정도만.

    그런데, 움직였다는 것도 모자라서 악마를 사냥하고 있다니.

    후두둑─

    페이얀은 입술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떼며 생각했다.

    ‘……그래, 아무리 이호열 수석님이 대단하셔도.’

    혼자서 아르카나 대륙의 판세를 뒤흔들 정도로 활약하시는 건 불가능하시겠지. 무엇보다 이쪽 세계와 아르카나 대륙은 단절된 상태가 아니던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가동한 건진 알 수 없어도.’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진격.

    그것도 들려오는 승전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맞아, 이호열 수석님도 사람이시니까.’

    그래, 그것이 페이얀의 상식이었다.

    능력이 아무리 특출 나다고 해도 개인은 개인.

    그 영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물론, 그 상식은 곧장 무너져내렸지만.

    “하이엘.”

    호열이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정령.

    “!!!”

    페이얀을 포함한 모두가 정령학파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렇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페이얀 선임, 저 정령은?”

    작은 몸집.

    그러나 풍기는 기운 절대 작지 않았다.

    그랬다.

    저게 바로 계급을 초월한 {고유 정령}.

    숙련 마법사들의 물음에 페이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고유 정령이에요.”

    “……고유 정령!”

    “이호열 수석님께서 고유 정령의 계약자셨어?”

    어지간히 놀란 나머지.

    쉽사리 짹짹거림을 멈추지 않는 햇병아리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놀라는데.

    하이엘이 세계수를 싹 틔워 {고유 정령}으로 거듭났다는 진실까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경악할까? 허나, 페이얀에게 호열의 행적을 떠들 생각 따윈 없었다.

    으쓱─

    ‘그대들은 알면 다친답니다.’

    ……사실은 내가 수석님에게 찍힐까 봐, 이러는 거지만.

    물론, 페이얀의 우쭐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하이엘이 말을 전해왔으니까.

    “드워프들의 지도자, 체인워커 하드록. 그에게 호열 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체인워커 하드록, 그가 호열 님에게 전해온 전언이 있습니다.”

    하이엘은 정작 전언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거늘.

    페이얀은 소름이 돋았다.

    잠깐, 드워프들의 지도자라고?

    ‘……어째서 하이엘이 드워프들과 함께?’

    드워프.

    퀴른베르크 기계탑.

    하이엘.

    이호열 수석.

    순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맞물려 가는 단어들.

    그와 동시에 페이얀의 얼굴에 떠오르는 느낌표.

    ‘……설마?!’

    이내, 설마가 사람을 잡는 하이엘의 말이 이어졌다.

    “첫째로 체인워커는 맹약을 잊지 않고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가동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둘째로 마왕과 조우한 자신들을 위해 직접 행동하신 것에 대한…….”

    ……자, 잠깐만.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페이얀의 얼굴에 느낌표를 넘어서 경악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은 곧, 이 모든 게 한 사람.

    호열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으니까!

    *

    장관이네, 이거.

    마왕 압살 때는 서로 다른 마왕성 균열에 진입했었으니까.

    페이얀의 파이어 드래이크를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괜히 상위 화염 정령이 아니구나.

    화르륵─

    화물 트럭만큼 거대한 육체.

    저기 날개만 달렸으면 해츨링 드래곤으로 착각할 정도겠는데.

    무엇보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불꽃이 일렁거리는 게.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기분이다.

    그런 파이어 드래이크를 필두로.

    소환된 정령이 대략 스물 남짓.

    각 정령들마다 속성이 달랐으니까.

    주변이 뜨거워졌다가, 싸늘해지고, 눈부시고…….

    하여튼.

    그 요란한 영향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페이얀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전부 정령 무리에서 한 발자국씩 거리를 둔 상태였다.

    물론.

    ‘……피곤하게 산다. 나도 진짜.’

    폼생폼사.

    우리 그랑펠 님께서 정령 군단이라는 멋진 배경 앞에서 물러나실 일은 없었으니. 나는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온기] 버프라도 챙겨서 다행이다, 진짜.

    [온기가 담긴 보석함]에게 또 한 번 감사한다.

    [온기가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줍니다.]

    시베리아 고기압.

    프로스트의 강추위도 막아주는 [온기] 버프.

    행커치프에 달린 화염 속성 친화력 효과.

    덕분에 나는 정령들 사이에서도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어쨌든, 보람이 있었네.’

    과연, 다다익선.

    이 정도의 인원과 함께 균열을 찾은 수고가 있었다.

    나조차도 새로운 아르카나 대륙 소식들이 꽤 있었거든.

    물론, 큰 소식.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들은 전부 하이엘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놀랄 정도의 소식은 없네.’

    자, 그럼 이젠 하이엘의 차례였다.

    나는 하이엘을 소환했다.

    빠져나가는 마력.

    그래도 이제 엄살을 부릴 정도는 아니네.

    [마력] 스탯이 400에 가까워진 덕분이겠지.

    이내, 정령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이엘.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외관 하나만큼은 튀는구나.

    그것도 굉장히.

    이제 막 {고유 정령}으로 거듭난 것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은 관뒀다. 뭐 묻은 개가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였으니까.

    ‘그나저나.’

    지도자, 체인워커 하드록.

    그를 포함한 드워프들도 나름대로 악마에 맞서고 있었구나.

    하이엘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들이 몰아낸 악마의 수가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이엘의 진지한 눈빛이 나와 마주쳤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예상하신 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 예상하긴 했는데.

    그 정도까지 모든 걸 상세하게 예상하진 않았거든?

    너 대체 어떤 텔레파시를 받은 거냐, 하이엘.

    물론, 부정 따윈 할 수 없다.

    “……켁켁.”

    하이엘에 말에 놀라 가슴팍을 두들기는 페이얀.

    한술 더 떠서.

    “예, 예상하셨다고? 모든 걸?!”

    “야, 조용히 해.”

    “……쉿!”

    그녀보다 더욱 놀란 표정을 짓는 숙련, 견습 마법사들.

    정말로, 빌어먹게 피곤한 성격 탓…….

    나는 이 부담스러운 과대평가를 부정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군.”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뻔뻔함의 극치구만.

    그 와중에 불현듯 엄습하는 불안감.

    ‘……하이엘, 너 설마.’

    드워프들한테도 똑같이 말한 거니?

    나는 하이엘을 바라봤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는 듯.

    꼿꼿하게 세운 목과 허리.

    고고하게 빛나는 눈빛.

    파이어 드래이크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깡다구.

    저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자태는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아니, 됐다.

    이제 와서 달라질 것도 없겠지.

    하이엘이 드워프들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놨든 상관없었다.

    몸이 녹초가 되는 것을 넘어서.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랑펠은.

    쏟아지는 과대평가를 실현하고 말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텟퍼른 울타리]

    [적정 레벨 : Lv.450]

    [붕괴도 : 3.8%]

    이런 균열을 그냥 지나치는 건 아쉬운 일이겠지.

    나는 페이얀과 정령학파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다들 계약 정령과는 간만의 재회겠지.

    “혼자서 고생 많았어요, 닉스.”

    “노움, 너 어째 몸집이 더 커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없어서 편했나 봐? 부려 먹는 사람도 없고, 그치? 너 사실대로 말해!”

    “……실피드. 아무리 반가워도 바람으로 머리카락 헝클어트리는 건 그만해 주겠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정령학 서적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정령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정령과의 교감 능력이다. 정령 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그 본질부터 다르다. 정령 마법은 마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정령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출탑의 목적은 달성했다.

    절차에 충실한 그랑펠의 성격상.

    당장 마탑으로의 복귀를 지시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

    그러나.

    나는 퀘스트창을 바라봤다.

    ─수석의 무게 (반복)▲

    ●출탑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반복)…….

    저들이 정령 마법사로서의 본질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

    그 또한 성공적인 출탑의 목표이자 수석의 무게겠지.

    나는 페이얀에게 말했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복귀는 잠시 미루겠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페이얀은 영문은 몰라도 내심 반가운 눈치였다.

    파이어 드래이크를 소환하는 건 처음이 아니라 해도.

    제대로 교감할 여유가 주어진 건 이 순간이 처음일 테니까.

    ‘……교감이라.’

    나는 하이엘을 바라봤다.

    말했다시피.

    지금도 거울을 보는 것 같단 말이다……!

    우리 사이에 더 깊은 교감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하이엘에게 말했다.

    “가지, 하이엘.”

    “뜻에 따르겠습니다.”

    우린 교감 말고도 해야 할 게 산더미 같이 쌓였단 말이다.

    하이엘의 {자연} 능력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이』}]에 대한 가능성 탐구부터.

    [천적관계]가 발동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력 파악까지.

    ‘부지런히 우물을 판 결과를 확인할 시간이다.’

    그 상대로 [텟퍼른 울타리]의 등장 몬스터.

    [텟퍼른 허수아비]만큼 적절한 상대도 없겠지.

    그럼 바로 시작하자.

    챙─

    나는 곧장 검을 치켜들었다.

    .

    .

    .

    챙─

    페이얀은 자신이 헛것을 봤나 싶었다.

    ……뭐지?

    이호열 수석께서 검을 뽑으셨다?

    마법사가 검이라니……?

    처음엔 그저 검의 형태를 띤 마도구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 날렵한 몸놀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언제나 꼿꼿하게 척추를 세우고 계셨기에.

    당연히 뻣뻣하실 것이라 생각한 게 착각이었나?

    스르륵─

    물 흐르는 듯 유연한 움직임.

    스와악─

    빠르고, 단호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날.

    털썩─

    그와 동시에 쓰러지는 텟퍼른의 허수아비.

    ……어라라?

    페이얀의 입술에서 외마디 음절이 늘어져 나왔다.

    “……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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