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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06화 (38/489)

◈ 106화. 에고(Ego) (1)

반격.

그 선봉장은 당연하게도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이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맹활약을 했다.

방향을 다를지언정 마탑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자랑하던 드워프들.

그런 드워프들이 오로지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제작했던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아니던가?

쿠구우웅─!

기계탑이 대지를 내디디며 내는 지진.

“……저게 뭐지?”

“도, 도망쳐!!”

“으아아아아악!!”

그 울림이 악마들에겐 공포가.

“저 기계가 악마를 쓰러트리고 있어요!”

“신이시여…….”

“이게 대체!”

악마에게 고통받던 이들에겐 희망이 되었다.

물론, 악마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계탑을 멈추기 위해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퀴른베르크 기계탑] 내부에 진입했던 것이다.

위이이이잉─!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에서 확인했다시피 기계탑 내부는 그야말로 함정투성이였으니까. 아니, 악마에겐 함정을 넘어선 지옥과도 같았다.

“은이잖아!! 빌어먹으으으으을!!”

플레이어들을 경쟁 콘텐츠로 착각하게 하였던.

은(銀)으로 만든 함정이 악마의 약점을 파고든 것이었다.

악마는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당하고 나서야 간신히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가동을 중지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기계탑 중 고작 하나를.

“대체 어떤 새끼들이지……?”

악마들의 기세는 오히려 꺾이고 말았다.

상대는 멈추지 않는 기계였으니까.

그것도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서 최후의 최후까지 구마의식을 진행하는 결전병기. 결국, 악마들은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공략하기보다 회피하는 쪽을 택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우리의 등불이다!”

“기계탑을 쫓아라!”

“우리의 뒤엔 기계탑이 있다. 물러서지 마라!”

기계탑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생존자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기계탑을 호위로 삼아 목적지로 나아갔고, 누군가는 기계탑에 용기를 얻어 악마와 맞서 싸웠다.

아르카나 대륙에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일까?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수의 축복이 내려졌다.

악마의 등장 이후.

처음으로 악마의 세력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소식이 대륙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쿠우우웅─!

아득히 먼 곳에서 느껴지는 진동.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움직이며 내는 굉음.

그 떨림이 은신처에 숨어있던 드워프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악크샨에 생존자가 남아있던 것인가?”

그것이 드워프들이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두둥실─!

그들이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르카나 대륙 상공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게 신기할 정도로 거대한 비행정.

드워프 기술력의 집약체가 비행을 시작한 것이었다.

콰콰콰쾅─!

비행정에서 쏟아지는 폭격.

드워프의 비행정은 [퀴른베르크 기계탑]과 더불어 악마들에게 또 하나의 재앙이 되었다.

어째서 아르카나 대륙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격을 하는 이들도.

또 악마도 그 이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고작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아직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

.

.

님프가 전해 온 아르카나 대륙의 소식.

덕분에 조금이나마 체감이 됐다.

……와씨, 나 진짜 엄청난 일을 벌였구나.

‘진짜 유산이라고 호들갑을 떨만했네.’

[퀴른베르크 기계탑].

대악마용 결전병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활약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 내부에서부터 악마 하나는 제대로 사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만.

‘그 악랄한 녀석들이 오히려 피해 갈 정도라니.’

아무래도 상성이 좋은 덕분이겠지.

악마들의 가장 큰 무기는 어디까지나 [상태이상]이었으니까. 왜, 반신이라 불리던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조차 [상태이상]에 휘둘렸을 정도였잖아?

‘기계한테는 먹히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흠칫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악크샨은 그 상성까지 염두에 뒀던 건가?

그렇다면 정말 악마 사냥꾼답군.

‘사고방식부터 악마의 천적답네.’

물론, 그저 감탄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동한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아니던가.

그래, 내게는 정당한 권리가 있단 말이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명성이 축적됩니다.]

[축적된 경험치와 명성에 대한 습득 권한을 획득합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악마를 학살하고 있는 기계탑.

그 기계탑에 축적된 경험치와 명성을 습득할 권한이……!

이거, 솔직히 짐작도 되지 않는데. 명성은 둘째 치더라도 기계탑에 얼마나 많은 경험치가 쌓여있는지 말이야. 방금도 님프가 말했었잖아?

“기계탑 하나를 정지시키기 위해 수십만의 악마가 달려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기계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수십만에 가까운 악마를 처치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대충 따져도 경험치가 얼마야, 이게!

탐욕이 샘솟았거늘.

그건 어디까지나 내색할 수 없는 나의 속사정.

“당장 대륙으로 향하고 싶군.”

그러나 이번만큼은 뜻이 통했다.

그랑펠이 그저 긍지에 따라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아르카나 대륙을 밟고 싶은 거라면.

나는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축적된 경험치를 습득하기 위해서라도 아르카나 대륙을 밟고 싶었다……!

“수십? 아니, 수억의 악마가 가로막는다 한들 상관없다.”

나한테는 칭호가 있으니까.

[최후의 모험가 : 아르카나 대륙에서 사망하지 않습니다. 사망 시, 즉시 현실로 귀환하며 일정 시간 동안 아르카나 대륙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 쿨타임 : 24시간]

현실이나 균열에서는 몰라도 말이야.

적어도 아르카나 대륙에서 비명횡사, 긍지에 가라앉아서 익사할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아르카나 대륙에 접근할 방법만 찾아낸다면……!

‘복권 당첨이라는 거지.’

그런 불순한 뜻으로 지껄인 나였거늘.

나의 말에서 오히려 비장함이라도 느낀 것인가.

님프가 입을 열었다.

“그 마음을 저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당분간 큰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기계탑과 더불어 드워프들이 나선 덕분에 악마들은 큰 혼란에 빠진 모양입니다.”

아차, 드워프들도 빼놓을 수 없겠구나.

나는 머리를 굴려봤다.

가만히 있던 드워프들이 어째서 움직인 걸까?

굳이 이유를 꼽자면 역시나 [퀴른베르크 기계탑]이겠지.

그에 얽힌 구체적인 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다.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예상할 수 있는 건 그저.

드워프들이 [악크샨의 절멸]에 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 물론, 지금 고민할 건 아니었다. 뭐, 관련이 있다면 알아서 퀘스트 목표에 떠오를 테니까.

‘다만, 여신교처럼 구린내가 나지는 않아.’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서.

대륙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드워프들에게 사정은 있을지라도.

긍지가 없는 족속은 아니라고.

가슴 속의 긍지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때가 되면 그들과도 만날 날이 오겠군.”

님프의 보고는 그쯤에서 정리.

나는 말이 나온 김에 님프에게 물었다.

혹시 여신교의 행적에 관해 아는 바가 있느냐고.

님프는 우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과거에도 근래에도. 그들의 행적에 대해선 들은 바는 없습니다.”

님프는 숲의 정령.

숲의 정령은 나무와 대화할 수 있어 아르카나 대륙 소식에 밝았다.

그런 님프조차 근래에도 과거에도 여신교의 행적에 관한 소식은 들은 게 없다라…….

‘정말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모양이군.’

심판의 날인가.

뭔가 하는 날만 기다리면서 말이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구리다.’

신성모독이고 뭐고.

여신교는 한번 뒤집을 필요가 있겠는데?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

무엇보다 여신교는 거대 세력이었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커뮤니티에서 소란이 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뮤온에 대기 중인 성기사만 하더라도 십만에 육박한다고 했겠다……. 그것도 모자라 같은 여신교단 플레이어들의 접근조차 불허했다고 하니까.

‘성지, 뮤온은 난공불락의 요새란 셈이지.’

나는 그런 뮤온에서 성녀도 아니고,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성자와 조우해야 했다. 벌써부터 막막하지만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세력에 맞서려면 나 또한 거대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균열에 진입했다면 레벨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론, 한 우물만 팔 생각은 없다.

나는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클레에게 말했다.

“숙련 마법사, 클레 오디아.”

“네, 네?! 저,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아니, 들었어도 끝까지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그게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게 아니라……!”

“알고 있다.”

기계탑, 세계수, 드워프까지.

사실상, 내 자랑이나 다름없잖아.

성격상, 당당하게 드러내면 드러냈지 숨길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당사자가 아닌 이가 남의 이야기를 섣부르게 떠벌리는 것 또한.

“그대는 그저 격식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일이다.”

격식에 어긋나는 일.

내 말에 클레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하죠! 모든 건 격식과 절차에 따라서……. 저는 제 목적인 비약초 채집에 집중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불러주세요!”

허둥지둥─

클레는 늘어진 로브에서 손을 빼내고 동굴에 자라난 잎에 손을 뻗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풀잎. 누가 봐도 귀한 비약초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클레 오디아.”

“……네, 네!”

“비약초를 채집하는 데에도 절차는 존재한다.”

“……네?”

“주변을 살펴라.”

“?!”

[모스파이크 용병의 원혼 : Lv.560]

[모스파이크 용병의 원혼 : Lv.560]

[모스파이크 용병의 원혼 : Lv.560]…….

순식간이었다.

클레가 비약초에 손을 뻗는 순간.

스스스스─

유령들이 클레를 둘러쌌다.

“으, 으앗!”

마치 클레가 비약초를 꺾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동굴 벽면에 숨어서 머리만 내놓은 채 클레를 응시하고 있던 것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수석님……!”

클레가 기겁해서는 비약초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내게 물어왔다.

“혹시 수석님께서는 저 비약초에 관해 알고 계신 건가요?”

알다마다.

나에게는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있었으니까.

그 지식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비약초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귀생초.”

“귀생초? 역시, 제 좁은 식견에서는 처음 듣는…….”

“무지한 게 당연하다. 클레 오디아.”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귀생초는 절대 흔한 비약초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효과를 읊었다.

“귀생초에는 혼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강령술사, 네크로멘서의 비약 재료가 되기도 하지. 그러나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겐 그저 유령을 불러들이는 불길한 식물에 불과하다.”

클레는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네크로멘서…….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군요.”

아르카나 대륙에서 네크로멘서는 흔치 않았으니까.

플레이어 중에서도 네크로멘서 클래스는 극히 드물었다.

그 전직 조건이 알려지지 않기 전까진. 히든 클래스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귀생초가 알려지지 않은 데엔.

‘꼭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원혼들을 바라봤다.

아쉬움을 나로 달래려는 걸까.

이내, 벽면에서 빠져나온 놈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근데, 너희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어도 말이야.

이래 봬도 마법사거든.

그것도 마탑의 수석 마법사.

‘낙하산이긴 하지만.’

악마 사냥꾼과 악마가 천적관계인 것처럼.

마법사와 유령도 그에 못지않은 천적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질문이다. 클레 오디아.”

“……질문? 넵,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그대는 그런 특이한 효과를 지닌 귀생초가 어떤 곳에서든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으음, 아닙니다! 비약초는 환경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 식물이니까요!”

“클레 님은 비약초에 관해 조예가 깊으시군요.”

“아, 아닙니다! 정령님께서 그리 칭찬해 주실 수준은……!!”

님프의 말대로 정답.

[포식자의 늪지대]에서 채취했던 사색 겨우살이만 하더라도. 적게나마 세계수 씨앗에 영향을 받아 평범한 겨우살이에서 귀하신 비약초로 자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귀생초가 어떤 요소에 영향을 받아서 이곳, 만트라 광산에 자라났다고 생각하는가?”

“음, 그거는…….”

클레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물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나 또한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으로 획득한 모든 식물, 광물에 관한 지식이 아니었다면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을 테니까.

‘귀생초는 귀철(鬼鐵)이 묻힌 곳에서만 자라난다.’

희귀하기로만 따지자면.

한 손가락에 꼽히는 그 광물이.

폐쇄된 만트라 광산에 묻혀 있다고는.

으스스스스─!

내게 달려드는 모스파이크 용병의 원혼들.

그래, 귀철이라면 이해가 된다.

저 용병들 또한 값진 귀철을 노리고 만트라 광산에 발을 들였던 거겠지. 그러나 귀철은 쉽게 채취할 수도, 쉽게 제련할 수도 없다.

물론,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채취?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이 있었으니까.

제련?

귀철을 포함.

그 어떤 광물이라도 제련할 수 있는.

드워프에 관한 소식을.

나는 조금 전 님프에게 전해 들은 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건 너희밖에 없다는 소리다.’

신속하게 이뤄지는 탐색과 간섭.

나는 마법을 발현했다.

쩌저저저적─!

“!!!”

원혼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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