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차디찬 승리
만년설이 녹아내린다.
식어가는 냉기.
서서히 느껴지는 격통.
세니오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극복할 수 없다는 건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세니오스는 강함의 증명이라 답할 수 있었다.
스스로 돌아봐도 참으로 단순무식한 인생이었다.
늙은이가 되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최후를 맞게 될 줄이야.
‘하지만 썩 나쁘지 않았군. 그래.’
극상성.
화룡, 카림제바와 자신의 빙결마법은 극악의 관계였다.
이 순간, 보는 것처럼.
쩌저저저적─!
발현되는 세니오스의 비전 마법.
하늘에서 무수한 고드름이 떨어져 내린다.
고드름 하나하나에 닿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빙결한다.
세니오스가 발현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높은 살상력을 지닌 마법.
“쓸데없는 짓.”
화르르륵─!
허나, 고드름은 카림제바에게 닿지 않았다.
만년설이라고 해도 화염을 얼릴 순 없다는 거겠지.
카림제바의 불꽃과 맞닿은 고드름이 마력을 흩뿌리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하하…….”
문득, 세니오스가 웃음을 뱉었다.
카림제바는 의아해졌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치던 마력도 잠잠해졌다.
스스로도 승기 따윈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드디어 실성한 것인가, 세니오스?”
너는 어째서 웃고 있단 말이냐.
“그래도 최악의 상성치고는 꽤 괜찮지 않았는가?”
“뭐라고?”
“난 애초에 그대를 이길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카림제바.”
세니오스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개안(開眼)하기 전.
그러니까 마탑에 입성한 뒤.
선임 마법사로 활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목표? 화염을 얼리는 것이다.”
세니오스는 빙결마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의 선임 마법사들처럼 자신의 마법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제대로 눈을 뜨고. 마법의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한계란 어쩔 수 없군.”
세니오스는 인정하고 말았다.
모든 마법엔 한계가 존재하며.
자신의 빙결마법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 또한 삶의 과업 아니겠는가?”
한계를 알기에.
애초에 카림제바, 녀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녀석과 함께 죽을 생각은 했어도 말이야.
세니오스가 이죽거렸다.
“화염과 빙결. 최악의 상성을 극복하고 무승부를 이뤄낸다면. 오히려 후대의 평가는 내가 더 높지 않겠는가, 카림제바? 어떤가, 그대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아?”
무승부 같은 소리.
“실성했군.”
카림제바는 세니오스에게서 광기를 느꼈다.
그리고 혀를 찼다.
“심장조차 멎어가는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흐하하. 심장이 멎어가는 게 아니다. 내가 심장이 뛰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게지.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마법에 관한 탐구는 중요한 것이다, 카림제바. 진리에 심취한 나머지, 이를 소홀히 한 모양이군.”
“……!”
심장이 멎어가던 게 아니라.
뛰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고?
의미심장한 말에 카림제바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뚝뚝─
세니오스를 감싸고 있던 얼음 날개는 녹아내린 지 오래전.
땅에서 솟구치던 물줄기도 자신의 겁화로 수증기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단 말이다. 그래, 굳이 하나를 꼽자면. 느껴지는 약간의 한기 정도…….
‘잠깐, 한기가 느껴진다고?’
말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화염으로 육체를 감싸고 있지 않았던가?
육체의 착각인가?
그렇게 생각했거늘.
“!”
아니었다.
후욱─!
정말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카림제바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지막까지 개수작이군. 세니오스.”
그 말은 좀 섭섭한걸.
세니오스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후우─
그렇게 웃는 그의 입가에서도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가차 없구만 그래. 개수작이라니. 이 만년설의 세니오스가 오로지 화룡, 카림제바. 오직 그대만을 위해서 발현해 낸 마법이거늘. 나의 정성을 생각해 줄 순 없는 겐가?”
경지에 올라서고.
이 마법을 고안해 냈을 때.
-“나는 정말 글러 먹었구나.”
세니오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이런 걸 써먹을 날이 오긴 하겠는가?”
카림제바를 쫓아 입성한 마탑.
그러나 자신은 어느덧 카림제바와 같은 원로 마법사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됐다.
서로 결판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의미 없는 마법이나 만들어 낼 줄이야.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래서 마법에 이름조차 붙이지 않았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럴싸한 이름이라도 붙이는 건데.”
카림제바.
그대가 나를.
마탑을.
탑주님을 기만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망설임은 없었다.
세니오스는 최후의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다.
“그대는 빙결마법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후욱─!
가시지 않는 한기.
불쾌함에 카림제바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니오스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아름다움이라 말하지. 빛을 반사하는 얼음의 자태는 보석처럼 화려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틀린 말이네. 빙결마법의 본질은 차가움에 있는 것이니.”
후욱─!
후우우욱─!
카림제바는 굳어가는 손을 쥐었다 폈다.
움직임도 호흡도 점점 가빠져 갔다.
‘들어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카림제바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니오스, 녀석이 어떤 마법을 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장단을 맞춰줄 순 없었다.
화르르륵─!
카림제바는 불꽃을 발현했다.
세니오스를 향해 화염의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목격했다.
‘……뭣?!’
믿지 못할 광경을.
뻗어 나가는 불꽃이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뭐지,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죽거리는 세니오스의 입은 그대로였으니까.
“감각조차 얼어붙게 하는 한기는 어떤가, 카림제바. 알아차린 순간, 이미 그대의 육체와 내부 장기는 반쯤 얼어붙어 있을 걸세.”
카림제바는 믿지 않았다.
그 정도의 마법을 발현할 틈은 주지 않았으니까.
후우우우욱─!
그러나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몸도 화염도 말을 듣지 않았다.
카림제바는 머리를 굴렸다.
‘대체 어느 틈에 이런 마법을.’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리고 이내,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얀 입김을 내뿜는 세니오스를 보고 깨달았다.
‘……숨결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냉각시킨 것이다.
일대의 공기를 구분 없이 냉각시킨 탓.
녀석의 육체도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한데 어째서 녀석은 멀쩡한 속도로 지껄일 수 있는 것인가?
“말했잖은가? 멎어가는 게 아니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감각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
두─근─두─근…….
세니오스의 심장은 그 얼어붙은 감각에 맞춰 뛰고 있는 것이었다.
세니오스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카림제바를 보며 숫자를 셌다.
‘단 1초라도.’
카림제바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면.
녹지 않는 만년설 아래에 화룡을 잠재울 수 있다.
‘물론,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냉기에 얼어붙겠지만.’
그래, 예상했던 대로.
잘해봤자 무승부라는 것이겠지.
‘뭐, 글러 먹은 노인네의 목숨을 바쳐서 무승부라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거래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마탑에 대한 자신의 속죄겠지.
세니오스는 미소를 머금었다.
‘글러 먹었어도 썩 괜찮은 인생이었군. 그래.’
그러나 화룡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대가 목숨을 걸었을 줄이야. 의외로군.”
“……!”
카림제바가 멀쩡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육체는 이미 절반 이상 얼어붙었을 텐데?
흠칫한 세니오스가 카림제바를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허나, 목숨을 건 건 나도 마찬가지다.”
……화염을 삼켰다.
그래서 얼어붙은 육체를, 장기를 녹였구나.
세니오스는 너털웃음을 뱉었다.
“젠장맞을.”
괜히 화룡이라 불린 게 아니었다.
얼어붙은 장기를 녹이기 위해 불을 집어삼키다니.
그런 판단을 내린 것도 경이로운 일이거늘.
그런 짓을 하고도 태연하게 말을 뱉고 있다니.
‘무승부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한계는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다는 건가.
‘빌어먹을.’
서서히 눈이 감겨온다.
감각이 무뎌진다.
세니오스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또각─
얼어붙은 땅으로 내딛는 구두 소리가 있었다.
“세니오스. 그대의 마법은 훌륭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간섭 과정이 아쉽군.”
그리고 자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세니오스는 간신히 대답했다.
“……그런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니오스는 이 당돌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호열 수석이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지.”
당당하게 카림제바의 앞으로 나서는 그의 모습.
그래, 저 뒷모습 또한 본 기억이 있었다.
정기 학회, 뱅그릿 톰 선임 마법사의 발표를 지적하던.
그때와 같이 한결같이 꼿꼿한 자세였다.
“빙결마법의 본질이 냉각에 있다는 탐색은 훌륭했다. 그러나 간섭 과정에 아쉬움이 존재하는군. 대상을 냉각시킨다면 과연, 어디까지 냉각시켜야 하는가. 지금처럼 제한이 없는 추상적인 간섭에는 비효율적인 발현만 뒤따를 뿐이니까.”
카림제바의 불꽃이 일렁거렸다.
‘감히 애송이가 뭐라고 떠드는 것이냐.’
그 꼴이 마치 자신을 앞에 두고 강연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건방진 녀석을 불사르고 싶었지만.
아직 육체의 감각이 온전치 않았다.
얼었다, 타올랐다를 반복한 육체가 멀쩡할 리 없었으니까.
그러나.
‘세니오스는 사실상 끝이다.’
혼자 남은 모험가 애송이를 상대하는 것쯤이야.
온전치 못한 육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카림제바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겠다.”
그러나 호열의 강의는 계속됐다.
카림제바의 일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졌다.
세니오스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늙은이를 배려해 주고 있군. 그래.’
자신의 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말을 끝마치려는 거겠지.
세니오스는 호열의 말에 집중했다.
“간섭 과정에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면 보다 효과적인 발현이 가능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마법의 상성을 극복할 수 없었을 걸세. 그러나 마법이 아닌 [『기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기이』]라니……?
그 개념을 곧바로 이해하는 건.
두 원로 마법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모습을 얌전히 지켜볼 카림제바가 아니었다.
‘……됐다.’
감각이 돌아왔다.
곧바로 애송이 녀석을…….
“간섭 과정에서 『마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더한다.”
쩌저저저적─!
“?!”
순간, 그대로 멈춰버린 카림제바의 육체.
카림제바는 직감할 수 있었다.
세니오스의 마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저항할 수 없다……?!’
세니오스의 마법이 육체의 감각을 고장 나게 하는 데 그쳤다면, 이건 정말로 육체가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마력의 흐름까지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력조차 흐름을 멈추게 하는 마법이라니.
카림제바는 역시나 머리를 굴렸다.
‘말 속에 이 마법을 극복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세니오스의 마법을 간파한 것처럼.
그런데 아무리 호열의 말을 되새겨 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 그것이 바로 [『기이』].”
이건 마법이 아닌 [『기이』]라는 것.
“구체적인 목표, 절대영도까지 간섭 대상을 냉각시킨 기이의 발현이라네.”
절대영도.
그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세니오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절대영도, 그 마법의 이름으로 하지. 울림이 좋군.”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세니오스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그래.’
이호열 수석.
그는 마르셀로가 인정한 사내가 아니었던가?
세니오스는 마르셀로가 어떤 심정으로 호열을 추천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부족한 건 빙결마법이 아니라 나였구만.’
보다시피 호열이 발현한 기이에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화염도 모자라 화룡을 그대로 얼려버렸군.
세니오스가 말을 이었다.
“나보다 그대가 더 잘 해내겠지만.”
그건 글러 먹은 원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노파심이었다.
“그럼에도 마탑을 잘 부탁하겠네. 이호열 수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생애 마지막 강의는 더없이 훌륭했네.”
.
.
.
세니오스가 죽었다.
카림제바는 호열을 바라봤다.
‘……어떻게 나를?’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느껴지는 마력은 자신은 물론, 세니오스와 비교해도 형편없는 수준이란 말이다.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화염에도 멀쩡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서 녀석은 분명 악마를 상대하고 있었단 말이다. 카림제바는 악마가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강함을 떠나 악마와 접촉하는 자는 그 정신력이 피폐해진다.
‘온전할 수 없어야 한단 말이다.’
원로 마법사들이 그동안 자신들에게 휘둘린 것처럼.
그러나 호열은 멀쩡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태연했다.
마법의 구조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 댈 정도로.
‘잠깐.’
그 순간, 카림제바는 위화감을 느꼈다.
‘녀석은 어떻게 빙의한 아캄파탐을 알아본 거지?’
자신과 같은 악마 숭배자가 아닌 이상.
무언가에 빙의한 악마를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마법사치고는 터무니없이 낮은 마력까지…….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대는 악마 사냥꾼인가?”
또각─
그 말에 호열이 등을 돌려 자신을 바라봤다.
카림제바는 확신했다.
맞다, 이 녀석은 악마 사냥꾼이다.
카림제바는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빌어먹을 마법. 아니, 기이란 것에서 말이야.
카림제바는 입을 열었다.
“악마 사냥꾼이여.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진리를 목격하는 것이다. 악마는 그저 수단에 불과할 뿐. 그대라면 알고 있지 않은가? 아르카나 대륙에 필요한 건 진정한 진리라는 것을!”
그래, 다른 이들도 아니고 악마 사냥꾼이라면.
진정한 진리를 이해할 수밖에 없으리라.
카림제바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호열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차가운 시선에는 마치 한기가 서린 듯했다.
악마 사냥꾼이라면.
악크샨의 최후를 생각하면.
절대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없을 터.
카림제바가 설마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는 ‘성전(聖戰)’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
.
.
성전(聖戰).
그게, 뭔데.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에 벌어진 일인가?
뭐가 됐든지, 당연하게도 나는 모르는 사건이다.
나한테는 10년 하고도 수년의 공백이 존재했으니까.
카림제바가 주절거렸다.
“나를 풀어준다면 모든 것을 말해주겠네. 성전에 대해서도 진정한 진리에 대해서도! 악마 사냥꾼인 그대라면 내 뜻을 분명 헤아릴 수 있을 게야. 화룡, 카림제바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성전, 그건 악마 사냥꾼.
그리고 악크샨과 관련된 일이겠거니, 하고.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순간, 내게.
그랑펠에게 카림제바는 악마와 다름없었으니까.
말했잖아.
나는 사냥감과 대화하지 않았으니까.
진정한 진리는 개뿔. 무슨 놈의 진리가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마왕까지 부활시켜야 한다는 말이냐. 물론, 성전 같은 떡밥 따위에 멈칫할 이유도 없었다.
성전.
카림제바가 그 단어를 입에서 꺼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의 절멸]
그래.
그러니까 나는 곧장 마법을.
아니, [『기이』]를 발현했다.
절대영도.
분자조차 움직임을 멈추는 극한의 온도.
“나느으으은……!!”
이내, 카림제바가 긍지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추악한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깨진 차원의 틈 : ה 균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도주한 악마 숭배자를 처분하라. (성공)
●상위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