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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95화 (27/489)

◈ 95화. 착각은 거기까지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결국, 인간에 불과하지.’

진명(眞名)의 악마, 아캄파탐은 미소를 삼켰다.

카림제바,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화룡(火龍)이라 그랬던가.

뭐, 아르카나 대륙에서의 명성은 잠시 제쳐놓더라도.

그의 육체에서 일렁이는 마력은 정말 심상치 않았으니까.

‘섣불리 입을 놀렸다간 타서 뒈지겠는데.’

그러나 이곳은 아르카나 대륙이 아니었다.

아르카나 대륙과는 전혀 다른 세계.

이쪽 세계에 관해선 카림제바보다는 잘 알고 있기에.

“자네의 말이 옳군. 내가 경솔했네.”

그나마 고개를 굽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요. 나도 말이 과했습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물론, 저런 괴물과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겠지.

아캄파탐은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소파에 마주 앉았다.

‘일단 계산을 좀 해볼까.’

후우─

연초에 불을 붙이고 머리를 굴려봤다.

재벌가의 후계자.

신분을 떼어놓고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육체를 차지했지만.

그래도 이해득실 하나를 따지는 머리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왜, 지금도 보다시피 말이야.

자기 쾌락을 남의 인생보다 우선시하고 있잖아?

‘오히려 나보다도 악랄한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머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거 나로서는 전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닌데.’

상위 마왕?

부활에 성공한다고 한들.

자신에게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손해를 보면 보겠지.

‘모든 악의 기운이 잘나신 마왕님을 향하게 될 테니까.’

보잘것없는 난 지금 생활에도 만족하는데 말이지.

치지지직─!

한마디로 똥 밟고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거다.

담뱃불을 끄는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탑의 소식이 필요하시다. 뭐, 어렵지 않죠. 이 세상도 나름 편리하거든요. 마법까지 갈 필요도 없고,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슥─

스마트폰을 꺼내 들자.

카림제바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촌놈 같기는.

아캄파탐은 피식 웃고는 능청을 부렸다.

“그런데 누구보다 잘 아시다시피 마탑이 워낙 보수적인 집단이지 않습니까? 떠도는 정보라고 해도 죄다 추측밖에 없다는 거죠. 전부 다 부정확한 뇌피셜. 아, 뇌피셜 뜻은 아시죠?”

농담 한마디에 곧장 달라지는 기색.

드드드─

일렁이는 마력에 주변 가구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노친네는 자각이 없나?’

자신이 어떤 마력을 뿜어대고 있는지 말이야.

이거, 밀당 잘못하다가 뒈지겠네.

아캄파탐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다 방법이 있다, 이 말입니다.”

“방법이라. 말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이제 한배를 탄 입장인데.”

그리고 스륵─

연락처를 넘겼다.

“그쪽한테 마왕도 아닌 우리처럼 평범한 악마가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나름대로 머리란 걸 쓰고 있거든요. 저처럼 인간의 탈을 쓰고, 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거죠.”

알고 있다.

카림제바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당연하게도 그 숫자는? 우리 카림제바 님께서 생각하시는 거 그 이상이다. 그 능력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는 몰라도, 이 세계에서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괜찮다.”

“본론을 말하게.”

“본론이야 간단하죠. 현재 마탑엔 아르카나 대륙 출신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카림제바는 곧장 말뜻을 알아차렸다.

“……모험가, 이호열을 말하는 거군.”

“정답! 우리 악마 쪽에서도 그 이호열과 연이 닿은 악마가 하나 있거든요.”

“……!”

이호열과 연이 닿은 악마가 있다……?

카림제바는 악마, 고유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이호열이 수석, 마르셀로가 인정한 재목이라고 한들.

악마의 힘이라면 그의 능력과 무관하게.

‘다른 원로들과 뱅그릿이 그랬던 것처럼.’

그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확실하게 마탑에 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겠군.’

아니, 그걸 넘어서 이호열을 이용한다면?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캄파탐이 미소를 드러내고는 말을 이었다.

“표정을 보니까 대충 짐작하신 눈치시네요.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아르카나 대륙 관점에서 봐도. 그리고 이 세계의 관점으로 봐도. 이호열, 그 자식은 보통이 아니니까.”

드르륵─

재벌가의 인맥.

끊임없이 내려가던 스크롤이 드디어 멈췄다.

“그런데도 결국 해낸 녀석이 하나 있단 말이죠.”

“가능하단 소리로군.”

“뭐, 마왕님을 위한 일이라는데 당연히 협조하지 않겠습니까?”

아캄파탐은 일부러 말끝을 꼬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역시나 조금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빌어먹게도 손을 뗄 수도 없고.’

물론,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잿더미가 될 일 있나.’

한마디로 뒈지기 싫으면 할 수밖에 없다는 말.

게다가 악마이기에.

다른 악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거, 답장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용건이 마왕 부활에 관련된 것까지 말한다면.

협조는커녕 차단을 당해도 싸겠지.

그러나.

아까부터 득실을 따지던 머리가 방법을 내놓았다.

‘……결국, 제물이 필요하단 거잖아?’

악마 숭배자들.

놈들의 구체적인 계획까진 알 수 없지만.

마왕, 그것도 상위 마왕을 부활시키는 데엔 엄청난 수의 제물이 필요하다.

아캄파탐의 머리가 비열하게 회전했다.

그렇다면, 그 제물을…….

‘내가 가로챌 수 있다면?’

나도 상위 마왕에 버금가는 힘을 거머쥘 수 있다……!

‘이걸 빌미로 이 녀석을 끌어들일 수도 있겠지.’

마왕을 부활시키는 목적이 아니다.

마왕 부활에 필요한 제물을 가로챌 목적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호열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터.

‘물론, 뒤통수에 뒤통수를 쳐야 하겠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고도 살아남는 것보단 쉬운 일이겠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것이다.

그쯤에서 계산은 끝났다.

“그런데, 저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젠 그 계산서를 교묘하게 속여 내밀기만 하면 될 뿐.

“같은 배를 탄 입장으로서. 제게도 그 계획이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굳이 심기를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동치는 마력이 불편한 기색을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캄파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 단지 실패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 위대하신 카림제바 님이야 한 번의 실패 따윈 문제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저처럼 나약한 악마는 처한 처지가 다르니까요.”

침묵하던 카림제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물론, 아캄파탐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계획을 알게 됐다고 한들.

가로채는 데에도 준비는 필요한 법이니까.

“또한 제가 계획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부디 조용히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

“주제넘은 요청이란 걸 알고 있지만. 지금만 하더라도 카림제바 님의 마력이 워낙 눈에 띄지 않습니까? 은밀하게 계획을 진행하는 건 전문가인 저희 같은 악마에게 맡겨두시죠.”

이렇게 지껄일 수 있는 이유?

간단했다.

카림제바는 아직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지금만큼은 화룡이 아니라 이제 막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에 불과하단 거지.’

스윽─

과연, 카림제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호열에 관한 소식을 기다리지.”

그 말인즉슨,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

아캄파탐은 검은 동공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좋은 소식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텔레포트.

이내, 호텔 객실에서 모습을 감춘 카림제바.

아캄파탐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병신이 제대로 낚였군.”

곧장 메시지를 전송했다.

대어가 걸린 만큼.

빠르게 낚아채야 했으니까.

*

신화 그룹 소속.

신화 길드.

길드 마스터, 백이설은 브리핑을 경청했다.

“신화 길드의 국내 브랜드 선호도는 지난달보다 4.8퍼센트 포인트 상승함으로써. 길드 창립 이후, 최초로 두 달 연속 상승세를 기록…….”

한번 추락한 신뢰는 되돌리기 어려운 법이다.

그동안의 행적으로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신화 길드가 그랬다.

하지만 그래프로 보다시피 신화 길드의 이미지가 반등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달라진 오너의 태도…….”

모든 건 유스라 왕국.

그래, 호열 덕분이었다.

자료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엔 정말…….’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이었지.

호열이 제시했던 조건은 정말이지.

신화 길드 입장에선 흙을 파서 장사하라는 소리와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호열에겐 크게 빚을 졌으니까.

백이설은 과감하게 계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신화 길드. 그리고 신화 그룹 차원에서도 과감한 투자한 투자였지만, 오히려 그 과감한 투자가 대중의 반향을 이끌어 냈다고 보입니다.”

이호열 효과가 이렇게 클 줄이야.

투자를 결정할 때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신화 길드가 돈으로도, 뇌물로도, 인맥으로도.

살 수 없던 신뢰를 되찾아 가고 있었으니까.

모든 브리핑이 끝나자 백이설이 입을 열었다.

“이젠 어디 가서 신화 묻었단 소리 안 들을 수 있겠죠?”

“어유, 그래야죠.”

“솔직히 아직 부족하긴 한데.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오가는 너스레.

작게 터져 나오는 웃음.

경직되지 않은 회의실 분위기.

달라진 신화 길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달칵─

백이설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놓인 오늘 자 신문.

그 첫 면엔 역시나 호열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었다.

-세계수의 등장…… 이호열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AAU측, “우리도 당혹스럽다. 이호열과 대화 원해…….”

-가온, 이나즈마, 버서커…… 최강의 길드 연합 탄생하나?

자연스럽게 신문으로 향하는 손.

“흠.”

백이설은 신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호열의 기사 사진을 바라봤다.

회의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어떻게 된 게 굴욕 사진 하나가 없지?”

포털사이트에 ‘백이설’만 입력해도 완성되는 자동 검색어.

[백이설 굴욕]

“완벽하셔라.”

문전박대를 박하던 자신의 모습은 영원히 인터넷에 떠돌게 됐는데 말이다.

물론, 그보다 수치스러운 흑역사는 따로 있었다.

연예계, 정치계 가리지 않고 흩날리던 염문설.

더 나아가서는 팜므파탈이다, 뭐다.

지금은 가린 손 틈 사이로 봐도 아찔한 복장들까지.

“……물론, 그 꼴을 떠올리면 평생 감사드려야겠지만.”

그래, 굴욕 사진을 박제시켰든 어쨌든.

백이설에게 호열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호열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저런 꼴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진심.”

오소소.

백이설은 닭살이 돋아난 팔뚝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또 한 번 호열의 사진을 바라봤다.

“…….”

은발의 머리카락.

고고한 시선.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

그 표정이 한결같아서일까?

위아래, 어느 각도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백이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이 실물은 못 따라가네.”

단정한 블라우스와 스커트.

신문을 응시하는 심각한 표정까지.

누가 봐도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CEO처럼 보이는 백이설.

“사진으론 그 기품과 격식을 표현할 수 없지.”

괜히 호멘호멘 말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녀 또한 호열교의 신자였다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백이설은 단지 중요한 일과를 수행 중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눈치가 있다면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이잉─

그러나 눈치가 없게도.

백이설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하니 메시지였다.

발신인을 확인한 백이설은 흠칫했다.

“장현도……?”

장선 그룹 후계자, 장현도.

자신과 같은 재계의 인물이기에.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만.

“글쎄요.”

그와는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간단하다.

기억이 흐릿한 시기.

악마, 서큐버스에게 빙의된 시점에 쌓은 인연이라는 거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그 뒷수습 때문에 꽤나 고생했었지.

서큐버스가 사라지면서 음몽의 상태이상 효과도.

각자의 기억도 사라졌지만.

피해자들에겐 증거가 남아있었다.

자신의 연락처를 비롯해 나눴던 메시지가 남아있었다는 뜻.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벌써부터…….”

꿈에서 당신을 봤다.

아무래도 우린 인연인 것 같다.

혹시 우리가 그렇고 그런 관계였냐.

하필이면 빙의가 돼도 서큐버스였을까?

백이설이 탄식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내, 그런 백이설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서큐버스. 구미가 당길 제안을 하지. 마왕과 관련된 일이다.

“……서큐버스?”

장현도가 자신을 서큐버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장현도는 서큐버스의 피해자가 아니다.

장현도는 악마 혹은 과거 자신과 같은 악마 빙의자다.

그것도 모자라서 마왕과 관련된 일이라니……?

백이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악마, 마왕.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장현도에게 모종의 계획이 있다는 것.

그 계획이 마왕과 관련됐고,

다른 악마를 끌어들여야 할 정도로 큰 계획이라는 것까지.

그러나 장현도, 악마에겐 한 가지 부족했다.

눈치가.

백이설은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호열에게 곧장 전화를…….

“……아.”

걸려다가 우선, 문자를 남겼다.

그래,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예절을 지켜야 하니까.

*

장선 그룹 후계자, 장현도.

그리고 마왕.

두 단어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찾았다.’

악마 숭배자, 그리고 악마.

너희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구나?

재벌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다니.

적어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군.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이쪽 세계에 적응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이 나라에서 태어난 나보다 잘 알 수 있을까?’

아르카나 대륙이면 몰라도.

현실에선 나도 먹어온 짬밥이 있는데 말이야.

“당장 좌표로 통하는 포탈을 열겠습니다.”

마르셀로가 비장하게 말했다.

그 심정은 알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악마가 장현도의 몸을 차지한 이유는 간단했으니까.

‘믿고 있는 거지.’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백이설, 그리고 마에다였던가.

일본의 정치인에게 빙의했던 악마도 똑같았으니까.

‘사회라는 울타리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플레이어가 됐든, 아르카나인이 됐든.

자신은 장현도의 탈을 뒤집어쓴 상황.

장현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신을 건드리는 것?

누구에게나 부담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써먹는 것이다.

“내부 사정을 외부에 떠벌릴 필요는 없겠지.”

게다가 이건 마탑 내부 사정이었다.

그것도 마탑의 모순과 관련된 내부 사정.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건 조금도 없겠지.

‘예전 같았으면 골치 좀 썩었겠는데.’

악마가 갈수록 영악해진다고 징징댔을지도 몰라.

그러나.

‘지금의 나한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거든.’

그랬다.

그저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장현도를 데려다 놓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고오오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뱅그릿 톰을 추적하던 마르셀로처럼 일대를 탐색했다.

물론, 내 하찮은 마력으로는 마르셀로처럼 지구 전체를 탐색하는 것은 역부족. 그러나 그 범위를 서울로 한정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장현도는 서울에 있는 게 확실하니까.’

간섭과 발현 또한 크게 특별할 것 없다.

데려다 놓는다고 생각하면 거창하지만.

오고 가는 통로.

그저 포탈을 발현한다고 생각하면 되거든.

쉽게 말하자면 장현도에 발밑에 포탈을 발현한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으, 으아아악! 씨발. 깜짝이야. 뭐, 뭐야?!”

나는 바닥을 나뒹구는 장현도를 바라봤다.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그래, 이곳은 마탑.

그중에서도 토파즈 홀.

정기 학회에 앞서 독립된 면담이 이뤄지는.

마탑에서도 지극히 폐쇄적인 장소.

보는 눈도.

CCTV도.

재벌가란 울타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문에 이보다 적합한 장소도 없다는 말이다.

“심문을 시작하지, 마르셀로.”

“시, 심문이라니! 갑자기 뭔 개소리를?!”

“직접 묻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르셀로의 물음에 나는 긍지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사냥감과 말을 섞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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