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서 (1)
“대륙 절멸의 위기…….”
마르셀로는 침음을 흘렸다.
세계수, 전설처럼 여겨왔던 존재.
그것이 실존한다는 것만 해도 놀랄 소식이었는데.
경께서 그 세계수를 발견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 씨앗까지 싹 틔우고 돌아오셨을 줄이야.
게다가 그 과정에서 정령과 계약을 맺다니.
“경의 행보를 따라가기엔 저조차도 벅차군요.”
그러나 엄살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르셀로는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그러나 훌륭한 판단이셨습니다. 전설 속 세계수는 아르카나 월드를 조율하는 존재. 그 존재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악마들의 세력은 더더욱 강성해지고, 그에 저항하는 이들은 갈수록 힘을 잃었을 테니까요.”
호열이 새로운 세계수를 싹 틔운 것.
아르카나 대륙에 희망의 씨앗을 피워낸 셈이었다.
‘마법의 연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스스로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것을.
호열 경께서는 알고 계시는 것인가?
정말, 아르카나 대륙 모든 이들에게 ‘업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성과를 경께서는 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그걸 뛰어넘어서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마르셀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으신 건가?’
자신이 세운 업적에 만족하기보다도.
오히려 한가로운 티타임에 만족한 듯한 호열의 모습.
마르셀로는 각오했다.
‘설령 수다스럽다는 인상이 박히게 되더라도.’
호열 경께서는.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제대로 알고 계실 필요가 있다.
“그저 말뿐이 아니라 대륙엔 새로운 기류가…….”
결심한 마르셀로가 운을 뗀 순간이었다.
달칵─
호열이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이 옳네, 마르셀로.”
그저 담담하게.
“내가 세계수의 씨앗을 싹 틔움으로써. 아르카나 대륙에는 생명의 기운이 일렁이게 되겠지.”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생명의 기운은 절멸의 위기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걸세. 말뿐이 아니라 생명력과 마력 재생에 영향을 끼치리란 소리지.”
그 어조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새로운 세계수를 목격한 이들 또한 직감적으로 대륙 절멸의 위기를 감지하게 될 터. 세계수를, 대륙을 지키기 위해. 더욱 비장한 각오로 악마에 맞서리라 기대할 수 있겠지.”
동요도, 들뜸도 없다는 말이었다.
‘나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엄청난 업적을 세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업적을 읊조릴 수 있다니.
그것은 마치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한 태도.
“역시 경의 생각은 따라갈 수 없습니다.”
마르셀로는 다시금 호열의 그릇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
.
[새로운 세계수가 아르카나 대륙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르카나 대륙이 세계수의 탄생을 축복합니다.]
[아르카나 대륙 전체에 생명의 기운이 일렁입니다.]
[아르카나 대륙 전체에 생명력 재생 버프가 적용됩니다.]
[아르카나 대륙 전체에 마력 재생 버프가 적용됩니다.]…….
그저 출력됐던 메시지를 읽었을 뿐이었다.
메시지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할 수 있던 거지.
……그러나 마르셀로는 알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방대한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성공한 건지 말이야. 정상적인 길을 외면하고, 꼼수에 꼼수를 부려 지름길로 도달한 꼴이거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다니.
나의 철면피 두께에 경악하고 싶은 심정이다, 진심으로.
물론, 일희일비하지 않는 항상의 자세.
그래도 꺼드럭거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나 그랑펠은 내색하지 않을지라도.
‘잠깐만, 마르셀로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는 말이 이어졌다.
그건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의 이야기.
“출탑에 수뇌부 과반의 승인이 필요치 않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런가, 하고 듣고 넘겼다.
왜, 현재 마탑의 수뇌부는 온전하지 않았으니까.
탑주는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
다섯의 원로 마법사 중 셋이 악마 숭배자로 판별된 상황.
수뇌부라고 해봤자 원로 마법사 둘밖에 남지 않았는데.
과반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 그런 의미인 줄만 알았는데…….
“출탑. 그 전권이 저희에게 주어졌습니다.”
……뭐라고? 그런 뜻이었어?!
깨닫는 순간.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수석의 무게 (반복)▲
●토파즈 홀에서 검증을 진행하라. (성공)
●정기 학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성공)
●마법사들의 출탑을 감독하라. (진행 중)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출탑(出塔)이라니.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더없이 분명했으니까.
“그렇습니다. 경께서 모순의 굴레를 끊어내 주신 덕분에. 비로소 마탑이, 저희가 외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탑에 묶여있던 마법사들이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이날이 오는구나.
이번에도 내색은 못 하지만, 심히 감격스러웠다.
‘내 꿈이 이뤄지는 건가?’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다.
나는 [포식자의 늪지대]에서 지원군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미리미리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덕분에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나,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세계수의 씨앗을 싹 틔울 수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마탑의 마법사들?
아군으로 그들보다 든든한 존재가 또 없었다.
더욱이 월드 퀘스트를 수행하게 된 나였다.
앞으로는 갈수록 더한 퀘스트 목표가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런데, 마탑이 아군이 되어준다면.
지름길로 가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예 고속도로를 뚫어버리는 거지!’
그런데, 잠깐만.
어째 점멸하는 퀘스트 목표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출탑을 승인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하라고?
“출탑의 목적은 다양할 겁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균열을 향하게 되겠지요. 허나, 경께서도 뱅그릿 선임 때의 경험으로 알고 계시듯. 균열엔 악마의 마수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랬다.
[깨진 차원의 틈].
균열에서 ‘???’.
그 이름 모를 악마는 뱅그릿을 노렸다.
물론, 그건 악마 숭배자였던 원로 마법사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악마 사냥꾼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악마들이 갈수록 교묘하게 현실에 침범하리란 걸.
악마란 강할수록 비열해지는 족속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르셀로는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저는 저희의 힘이 온전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마탑의 수석 마법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마르셀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나도 제발 그러길 바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뱅그릿이 악마에게 빙의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진짜……!
악마를 앞에 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내가 아니던가? 울며 겨자 먹기로 뱅그릿에게 덤볐다가, 지금쯤 무거운 긍지에 가라앉아 황천에 익사하고도 남았겠지.
그러니까.
“과연, 그 말대로 감독의 필요성이 있겠군.”
나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나는 마탑 마법사들의 출탑을.
정확히는 그들과 균열에 동행하며 그들을 감독할 필요가 있단 말이었다. 그러나 감독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나, 그랑펠의 기준.
“그 절차는 간단할 것이네.”
물론, 언제나 그 절차가 우선이었다.
마르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막힘없이 입을 열었다.
“출탑을 희망하는 마법사는 출탑의 목적을 상세히 적시하여 내게 전달한다. 그 목적에 당위성이 있는가에 관한 판단은 오로지 나의 몫. 당연하게도 나의 판단에 출탑 희망자의 직위는 고려되지 않는다.”
남에게 휘둘려 귀찮은 일을 감수한다?
그랑펠의 무거운 긍지가 남에게 잘도 휘둘리겠다.
그런 내가, 그랑펠이 출탑을 감독하게 된 이상.
‘맞추는 건 내가 아니라 마법사들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또한 모든 출탑 일정은 내가 결정하며 진행한다.”
또 하나 배운다.
사회에서 약속이란 건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지금도 봐라.
괜히 전권을 넘겨준 덕분에.
“제가 선임 마법사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이런 불공정한 절차가 곧장 통과됐잖아?
그러나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다.
나는 줄곧 선언하지 않았던가.
‘꼬우면 처음부터 시키지 말든가.’
수석의 무게를 짊어진 만큼.
나는 누려 할 것을 전부 누려야 한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게다가.
‘당장 신경 써야 할 곳은 따로 있으니까.’
그래, 마탑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지금.
가장 큰 위협 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마탑의 사정에 대해서도.
악마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전과까지 존재하는 그 위협 요소를.
[퀘스트 : 마탑의 재건]
마법사의 탑에 존재하던 모순의 실체.
진리 추구라는 마탑의 목적조차 불순해진 지금.
마탑을 그 기반부터 바로 세워라.
─탑주와 조우하라. (진행 중)
─도주한 악마 숭배자를 처분하라. (진행 중)
─진정한 진리를 찾아라. (진행 중)
출탑의 감독 또한 정기 학회와 마찬가지로.
수석으로서의 긍지가 걸려있는 업무.
당연하게도.
내가 감독하는 출탑에서는.
단 하나의 돌발 행동도 용납될 수 없다.
‘처분해야지. 위협 요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간의 죄수들을 심문할 시간이군.”
마르셀로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바로 가시는 겁니까?”
“그렇다.”
“……경께서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신 겁니까?”
무간(無間).
천부적인 마력을 지니고 태어난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에게 무간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양.
마르셀로는 물론, 능구렁이 같던 원로 마법사들도 무간에서만큼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말하지 않았던가?
『그랑펠이 차기 가주로서 가장 먼저 몸에 익힌 건 사사로운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클라우디 가문의 가주의 자리는 조금의 동요도 용납되지 않는 그런 자리였다.』
끔찍한 무간이야말로 나의 안방.
그러나 낯뜨거운 과거는 죽어도 말할 수 없으니.
나는 나답게 덧붙일 뿐이었다.
“무력감 또한 감각의 일부.”
“……!”
“그조차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법이네. 마르셀로.”
방금까지 시달리던.
마력 탈진의 경험담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
“……자네 거기 있는가?”
허공에 물어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젠장!”
이젠 청각마저 고장이 난 것인가?
아니면 정말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건가.
마탑의 원로 마법사.
아니, 악마 숭배자.
아니, 이젠 그것도 아니었다.
무간 속에서 신음하는 건 그저 무력한 인간에 불과했다.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난 것이냐.’
머리가 혼탁하다.
기억이 흐릿하다.
이대로는 무간에서 풀려나도 문제였다.
이래서야 마법 하나 제대로 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고민조차 희망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째서 나는 이 빌어먹을 장소에 갇혀있는 거지?
설마, 모든 계획이 백지장이 돼버린 것인가?
고개를 저어서 생각을 떨쳐내 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간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구해낼 수 있으면서도.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역시, 우리는 쓰다 버리는 패에 불과했단 말인가?
“젠장……!”
더욱더 큰 의심과 불신이 사고를 지배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
끼익─
무간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다가온 것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이곳에서 내보내 준다면 얼마든지 애원할 수 있었다.
“누구인가? 나를, 우리를 꺼내주려고 온 것인가?!”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 어둠 속에서 들려온 것은.
또각─
어째서인가.
혼란한 기억 속에서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구두 소리뿐.
이내, 악마 숭배자에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너, 너는……?”
흐릿한 기억 탓에 가뜩이나 낯선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은발의 머리카락.
더없이 오만한 얼굴.
그 외관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마르셀로, 그 녀석이 공동 수석 자리에 앉힌 모험가였다.
그가 다시 무간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간단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계획은, 진정한 진리에 도달하는 건.
아직도 멀었단 말인가?
다시금 느껴지는 절망감.
그러나 진정한 절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사내가 의자에 착석.
그러고는 말 한마디 없이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흐릿한 시야 탓.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건 책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 들고 있는 건…….
‘……잔?’
맞았다.
정확히는 찻잔이었다.
부유 정원이 아니다.
이곳은 무간(無間).
시간의 흐름도.
육체의 감각도.
모든 것이 항상에 수렴하는 공간.
발을 들이는 순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무간에서 책을 펼친 것도 모자라 차를 음미할 수 있다고……?
‘저러고도 정신이 온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깨닫고 말았으니까.
스륵─
책장을 넘기는 소리.
달칵─
찻잔이 움직이는 소리.
“!!”
그 행동들이 시계의 초침 소리가 됐다.
망가졌던 시간 감각을 일깨워 줬단 소리였다.
그건 감각 일부가 돌아왔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사내가 책을 펼친 지도.
족히 며칠은 지난 것 같았거늘.
‘이제야 책장 한 페이지가 넘어갔을 뿐이라고……?’
마찬가지로.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거늘.
찻잔에서 피오르는 김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분명, 마법으로 눈속임을…….
그렇게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이곳은 마력이 존재할 수 없는 무간이란 사실을.
‘그렇다면 내가 버텨온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겨우 몇 주.
아니, 고작 며칠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서 썩어야 한다는 거지?’
지금까지 느낀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절망이 느껴졌다.
달랑 책 한 권과 찻잔 하나 때문에.
.
.
.
자고로 자투리 시간조차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왜, 학창 시절에도 말이야.’
공부 잘하는 애들은 쉬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었지.
게다가 나는 아쉬운 입장.
살 구멍을, 우물을 많이 파둬야 한단 말이다.
‘심문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지.’
고작 악마 숭배자 따위를 심문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
그것이 바로 무간에 마법 서적과 찻잔을 챙겨서 입장한 이유.
물론,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줄 의무 따윈 내게 없다.
『마법부여학 심화 이론』.
스륵─
가져온 서적은 마법부여학 심화 과정.
수석의 권리를 내세워 무료로 누릴 수 있는 마탑의 서비스엔 마법부여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마탑의 공짜 서비스를 놔두고 내 손으로 마법부여를 시도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마법부여도 누가 손을 대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물, 아이템의 효과가 달라졌으니까.
마력이 부족한 내 똥손으론 뭘 제대로 하지도 못하겠지.
그러나 남의 손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주문하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이건 한번 습득하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내가 독서에 집중하던 차였다.
문득,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겠다. 도주한 원로 마법사, 그 녀석이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모든 걸 말하겠단 말이다……!!”
……갑자기 뭔데.
심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어쨌거나 수고를 덜었군.
그러나.
모든 일엔 그 절차가 존재하는 법.
나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기다려라.”
“……?”
독서 중엔 정숙.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