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늪에서 피어나는 (2)
“지랄하고 자빠졌네.”
처음 그 게시글을 봤을 땐.
어그로도 뭐 이딴 하급 어그로가 다 있나 싶었다.
-님들아 이호열 검술도 쓸 줄 안다는데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에휴. 수준 봐라.”
이호열이 누구인가?
그 대단하신 마탑의 수석 마법사와 같은 대접을 받는 플레이어. 그 후광을 빼놓고 보더라도 어떤가? 그동안 호열이 전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마법 스킬을 보고도 저런 소리에 낚인다고?
타다다닥!
한숨과 함께 두들기는 키보드.
주르르륵─
갱신되는 댓글 창.
-뭔 개소리를 진지하게 하고 있어ㅋㅋㅋㅋㅋㅋ
-개소리 아닌데? ㄹㅇ임
-ㄹㅇ같은 소리하네 아르카나 해보긴 해봄? 아알못 티내네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르카나가 어떤 게임인지 알지도 못하는 모양.
아르카나엔 괜히 클래스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니었다.
백 번 양보해서 예를 들어볼까?
만약에.
이호열이 뭐가 아쉽다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 만에 하나 이호열이 검술을 배우고 싶어서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해 보자.
-뭐, 그런다고 검술 스킬이 띠링하고 떠오를 것 같음???
그래, 아무리 연습을 해봤자 헛수고.
스킬도 스탯도 뭣도 안 되는 헛수고라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클래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이 아르카나의 상식.
그러니 게시글이 어그로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냐. 단체로 도배를 한다고?”
이호열이 검을 들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게시판에 끊이질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또 어떤 놈이 알바를 풀었나 싶었겠지.
하지만 알바라니.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이호열이 알바를 풀 이유가 있나?’
대체 뭐가 아쉽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건 홍보나 찬양 같은 게 아니었다.
이호열, 마법사 계열 클래스가 검을 쓴다니.
상식을 벗어난 헛소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머리가 굴러갔다.
“이거 또 어떤 추잡한 놈들이.”
이호열 안티들이 알바를 풀었구나.
커뮤니티 눈팅을 하다 보면 눈치라는 게 생기는 법.
예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우스.
“하여튼 분탕들. 어떤 놈들인지 걸리기만 해봐.”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리면서.
교묘하게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끼워팔 터.
그런데.
“……?”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다른 길드, 플레이어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전부 다 이호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뭘까, 이 상식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
느껴지는 위화감에 더는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그래. 딱 한 번만 속아준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클릭한 넷튜브 링크.
이내,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
거기엔 정말 호열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미친!! 뭔데, 이거?!”
그랬다.
이 순간.
호열과 [맹수 포식자 아나콘다]의 전투는 수십 개의 카메라를 통해 세계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 실시간 영상은 무엇하나 조작되지 않은 현실이라고.
“그냥 아무것도 못 하는데요? 530레벨짜리 몬스터가?”
그 전투를 표현하자면 한 단어로 충분했다.
압살.
호열이 포식자의 늪지대 터줏대감, 아나콘다를 사냥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사냥이라 부르기도 과분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호열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와씨. 진짜 차원이 다르네…….”
“누구는 이렇게 진흙탕에 빠져서 고생인데.”
“천 레벨짜리 균열도 클리어했던 이호열인데. 뭘.”
그 행동이 뜻하는 바를.
누구보다 깊이 깨닫고 있는 건 마찬가지로 균열에서 사냥 중이던 플레이어들이었다.
저런 아나콘다 상대쯤이야.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다는 거겠지.
“하르콘이랑 괜한 친분이 있던 게 아니었어.”
검을 겨눈 자세.
그 자세를 보니까 호열과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관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열은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르콘과 똑같은 자세가 증거였다.
“마탑에서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상 확정적이지. 그것도 보통 자리가 아닐걸?”
“천하의 하르콘이 경이라고 부를 정도니까.”
“그럼 제국 황실하고도 친분이 있다는 소리 아냐……?”
“진짜! 그게 말이 되냐고!!”
대륙 최강의 무력 집단, 마탑.
제국 최강의 기사단, 라이언 하트 기사단.
플레이어가 어떻게 그 두 집단에서 한자리를.
그것도 누가 봐도 보통 자리가 아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된 게 머리를 굴리고 고민을 할 때마다 호열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갔다.
“어떻게 그동안 소문 하나도 안 난 거야?”
지금만 하더라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호열의 존재감.
분명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에도 호열은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저런 상식을 벗어난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그 과거가 심각하게 궁금하다!
지켜보던 이들이 그런 생각을 품는 순간.
털썩─
맹수 포식자 아나콘다.
녀석의 숨이 멎었다.
전투라고 부르기도 뭣한 전투가 끝난 것이었다.
포식자의 늪지대.
전투가 끊이지 않는 콜로세움.
그 치열한 전장의 승자치고.
호열의 모습엔 한 치에 흐트러짐도 없었다.
혼자만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처럼.
아니, 혼자만 장르가 다르다는 것처럼.
그래, 그런 호열의 모습은 더없이 이질적이며 고고했다.
마치 늪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
……정말, 다큐가 따로 없다.
그것도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극한의 리얼 다큐멘터리.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래도 경험치가 위로가 되는구나.
[맹수 포식자 아나콘다].
그 레벨답게 뱉어내는 경험치가 상당했다.
거악이나 마왕처럼 보스 몬스터급의 경험치는 아니었다만.
나는 그런 경험치를 독식한 셈이었으니까.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314]
[능력치]
근력 : 53 / 민첩 : 60 / 마력 : 244 / 행운 : 5 / 심미 : 下
[보유 포인트 : 18]
단번에 18레벨이 상승했다는 말이다.
절대적인 레벨이 낮아서 레벨이 많이 오른 것뿐이지만.
이런 조삼모사라면 환영이다.
무엇보다 아침에 세 개든, 저녁에 네 개든.
‘내가 뭘 가릴 입장은 아니거든.’
조금 전, 아나콘다와의 전투를 복기해도 그렇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쳤었다면.
검을 겨눈 자세가 흐트러졌었다면.
‘곧바로 역습을 허용했겠지.’
[천적관계]가 발동되지 않은 상태.
제아무리 클래스 퀘스트를 통해 끌어올린 근력과 민첩 스탯이 있다고 한들.
나는 레벨업을 통해 획득한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올인. 가끔 행운에 투자해 왔으니까.
‘신체 능력만으로 피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당연하게도 마법을 발현.
피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럼 그때부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지.
예상에 없던 마법 발현 → 절대적인 마력 부족 → 포식자 구역답게 다시 전투 → 다시 예상에 없던 마법 발현 → 다시 절대적인 마력 부족 → 또다시 전투…….
그러니까.
‘나는 진지했다.’
그게 제삼자에겐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 전투에 임했단 소리였다.
그 결과, 경험치에 전리품까지 획득할 수 있었단 말이다.
[두꺼운 아나콘다 가죽] - [등급 : 레어]
[녹아내리는 호박석] - [등급 : 레어]
[독기가 스며든 자작나무] - [등급 : 유니크]
전리품은 무려 셋.
그 등급도 레어, 레어, 유니크였다.
‘괜히 배가 빵빵하게 부풀었던 게 아니었네.’
전부 재료 아이템이었지만.
세 개씩 떨어트린다면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의 효과로 아르카나 대륙 모든 광물과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상태.
“그럭저럭 가치가 있겠구나.”
녹아내린 호박석.
그리고 아나콘다의 독기에 범벅된 자작나무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를 곧장 알아차렸거든.
물론, 녀석의 위장 속에 있던 전리품이기에.
‘약간의 가공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마탑의 기둥을 뽑을 시간이군.’
마탑의 서비스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그 또한 정정당당한 수석의 권한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쉴 틈이 없잖아?
포식자 구역이라는 거.
부시럭─
한 마리를 쓰러트리기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뱀, 그다음에는 쥐냐? 물론 그 생김새부터 평범한 쥐는 아니었다.
[잔혹한 청소부 : Lv.550]
그 크기는 사람과 비슷하군.
크기를 넘어서 뒷발로 걷고 앞발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석궁에 도끼에 방패까지.
장비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과연, 쥐라고 다 같은 쥐가 아니라는 거겠지.
녀석의 기다란 꼬리가 움찔거렸다.
아직 손에 검을 쥐고 있어서 그런가.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는군.
‘그럼, 우선.’
포인트 투자부터 하자.
아쉬운 나로서는 스탯 포인트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보유 포인트는 18포인트.
나는 전부 마력에 투자하려다가 1포인트를 남겨뒀다.
……그래,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는 법.
마력에 1포인트를 더 투자한다고 한들.
이곳은 적정 레벨 500레벨의 균열이 아니던가?
1포인트의 마력으로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것이 옳다.
나는 행운에 1포인트를 투자했다.
[행운 : 6]
……그런데 왜 하필이면 6이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분명, 사(死) 포인트를 피한다고 2포인트를 투자했었지.
결국 악마의 숫자 6을 거쳐 갈 수밖에 없거늘.
이거, 다른 게 조삼모사가 아니었잖아?
그러나 이젠 투자할 포인트도 남아있지 않을뿐더러.
“미신은 미신에 불과하다.”
어째 운에 투자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만.
그래, 언제까지 미신을 의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악마의 숫자라면.
‘오히려 나쁘지 않다.’
아니, 차라리 악마가 나타나 준다면 나로서는 감사한 일.
다 필요 없고 [천적관계]만 발동된다면.
이런 연잎을 타고 다닐 필요도.
나 혼자 다큐멘터리 장르를 찍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
영양가 없는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우지끈─!
뭔 소리야. 이건 또.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본다.
늪지대 곳곳에 솟아오른 거목.
녀석이 그 거목의 밑동을 이빨로 갉아대고 있었다.
우지지지직─!
이빨이 커서 그런가.
거목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순식간에 기울어져 갔다.
녀석의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전장을 자신하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생각이겠지.’
거목이 쓰러지는 순간.
늪지대가 한순간 출렁일 테니까.
그 틈을 노리려는 거겠지.
‘역시, 만만치 않아.’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의 용어로 말하자면…….
패턴이 지랄 맞다고 할 수 있겠군.
보스몹도 아니고 고작 네임드몹 수준에 불과한 녀석들이.
하나같이 상대하기 까다롭잖아.
허나 그 수고가 무색하게도.
까드득─!
탐색 과정을 생략할 정도로.
나는 아르카나의 모든 식물을 훤히 꿰뚫고 있단 말이다.
당연하게도 녀석이 이빨로 갉아대던 거목.
[츄키라 나무]에도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까드드득득─?
탐색은 생략.
간섭은 경도의 강화.
이윽고 발현.
드드득─?!
아무리 애를 써도 거목을 무너트릴 순 없다는 소리다.
나는 당황한 거대 쥐, [잔혹한 청소부]를 응시했다.
불필요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검을 겨눈 상태로 마법을 발현.
굳어버린 적을 상대로는 [심미]를 가미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고려할 것은 오직 마력 가성비.
녀석에게 쏟아붓는 수많은 마법 중.
[잔혹한 청소부에게 ‘동상’이 발생합니다.]
녀석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마법을 찾아내는 것.
무식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내 수준보다 훨씬 강한 적을 연이어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엔 없단 말이다.
‘이유 따윈 알아낼 수도, 알고 싶지도 않거든.’
그저 효과가 있다는 것만 알면 될 뿐.
‘동상이면 냉기가 약점이군.’
나는 상급 빙결 마법 『서리』를 발현했다.
스오오오오─!
녀석을 향해 뻗어 나가는 서릿발.
서리는 투사체 속도는 느릿하기 그지없거늘.
파괴력 하나만으로 상급 마법으로 분류되는 마법.
쩌적쩌저적─!
보다시피 순식간에 늪지대가 얼어붙는 것은 당연한 일.
찍찍찌지익─!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검 끝에 대한 압박감.
상태이상 ‘동상’의 영향으로 저하된 이동속도.
서서히 엄습하는 서리까지.
나는 냉기보다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물놀이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그것은 늪지대의 오물 한 방울 튀기지 않겠다는 의지.
‘게다가.’
나는 거목, 츄키라 나무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위태롭게 흔들리던 거목.
그 꼭대기에서 발광하던 ‘비약초’를.
‘거목이 쓰러지면 비약초도 늪지대에 빠질 거 아냐.’
그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저 귀한 비약초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