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드디어 움직이는가 (2)
AAU의 공식 회의.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하나둘씩 화상 채팅에 로그인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몰골이라 불러야 하나 싶게 처참했다.
카메라 빨을 탓하기도 무리였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혈색이 좋지 못했으니까.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말 그대로 폭풍과도 같았던 일주일을 보냈으니까.
그러나 엄살을 부릴 순 없었다.
“고생은요. 진짜 고생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요.”
자신들보다 더한 고생을 한 사람.
아니, 플레이어가 한 명 있었으니까.
고생의 무게를 측정할 순 없겠지만, 장담할 수 있었다.
각 지역 AAU의 직원들의 노고를 전부 합친다고 한들.
그 한 사람이 짊어진 무게에 당해낼 순 없으리라고.
“정말 끔찍한 일주일이었죠?”
“지금도 아찔합니다. 아주 그냥.”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철렁였는지.”
마탑의 선임 마법사가 실종됐다.
그야말로 초비상사태.
몇 번이나 강조했다시피.
마탑의 마법사들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마탑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런 마탑에서도 강자에 속하는 선임 마법사가 행방불명.
혹시라도 그가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재앙이 될 뻔했습니다. 대재앙.”
“우리 한국 지부장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겠네요.”
“……지나간 일이라서 그런가. 이젠 한숨이라도 나오네요.”
그런 마탑이 위치한 대한민국, 서울이었다.
마탑 효과로 찬란한 경제 성장을 일궈냈던 대한민국.
그러나 동시에 선임 마법사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것 또한 대한민국이었다.
“하마터면 지구 상에서 서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데!!”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정말.
만약 그 아찔한 상상처럼 서울이 전장이 됐더라면.
그로 인한 피해는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였겠지.
그러나.
“결국, 이번에도 이호열 플레이어에게 신세를 졌군요.”
그랬다.
동시에 대한민국에는. 서울에는. 마탑에는.
자신들보다 더한 고생을 한 플레이어.
이호열이 있었으니까.
맹활약, 그 자체.
아르카나의 전문가를 넘어서 아르카나 세계관에 적잖은 기여를 했던 AAU 임원들조차 호열의 활약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대단하긴 하지만 수석 마법사와 같은 직위라뇨? 아무리 이호열 플레이어라고 해도 어디 마탑의 수석 마법사가 보통 자리입니까?”
“그런데, 쓸데없는 의심이었단 거죠.”
“맞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균열에서…….”
[깨진 차원의 틈] 균열.
적정 레벨 900~1,000레벨.
버그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균열을 보란 듯이 클리어한 호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무사복귀 할 줄이야!”
“전 지금도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궁금해 죽겠다니까요?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에요.”
“에이, 그래도 소용없을걸요?”
인터뷰 곤란.
내부 사정.
애원한다고 한들.
호열이 보여준 단호한 태도가 꿈쩍하기나 하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그까짓 인터뷰 몇 번 안 하면 어떻습니까? 할 말 못 할 말 다하면 어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호열인데. 이번만 해도 벌써 몇 번째입니까, 이게.”
그래, 호열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스타 병에 걸려서는 언동을 조심하지 못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왜, 그 첫 등장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한결같았던 태도를 보여준 호열이 아니던가?
“인기를 넘어서 거의 신앙심 수준이죠. 대중들의 반응은.”
모두가 괜스레 호멘을 중얼거리는 게 아니란 말이었다.
지부장들이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웃을 수 있는 것도 호열 덕분이겠지. 그러나 AAU는 알고 있었다. 아니, 우려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호열 플레이어를 제외한다면…….”
만약 호열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플레이어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게도 ‘NO’였다.
“솔직히 격차가 너무 심하죠.”
“900~1,000레벨 균열을 누가 클리어할 수 있겠습니까? 수석 마법사가 동행했다곤 하지만 그 수석 마법사를 움직인 것도 이호열 플레이어의 능력입니다. 그것도 개인 능력.”
“결론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분발할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플레이어들도 이번 사태를 통해 느꼈으리라.
자신들의 무력함을.
그런 의미에서 신규 업데이트는 희소식이었다.
무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레벨.
그 레벨을 올리는 데에 필요한 건 경험치.
이번 신규 업데이트된 균열에서는.
적어도 경험치 하나만큼은 제대로 올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간만에 [포식자] 컨텐츠라.”
“이거, 최상위권 플레이어들끼리 신경전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포식자 구역에선 신경전 정도면 양호한 거죠. 뭐.”
.
.
.
──────
신규 균열, ‘포식자의 늪지대’가 추가됩니다.
신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광기 어린 이리’ : Lv.450
‘광전사 블러드 고블린’ : Lv.460
‘스카이 블레이드’ : Lv.500
‘누더기 투사’ : Lv.520…….
──────
목요일.
버그가 아닌 진짜 신규 업데이트.
그 업데이트 내역에 커뮤니티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적정 레벨 미쳤겠는데 ㄹㅇ???
-이호열 빼고는 다들 긴장 좀 해야될듯?ㅋㅋ
-근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음?? 통일성이 없네 몹들이;;;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등장하는 몬스터에겐 일관성이 있었다.
[놀 서식지]라면 놀이 등장하는 게 당연했고, [고블린 서식지]라면 고만고만하게 생긴 고블린들만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균열은 조금 이상했다.
[포식자의 늪지대].
늪지대란 이름으로 봐서는 악어나 리자드맨이 등장할 법했거늘.
종족은 물론, 서식하는 환경까지. 몇몇 댓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등장하는 몬스터들에게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비슷한 점을 찾자면.
레벨 정도랄까?
그러나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균열로는 등장하는 건 처음이지? 포식자 구역.”
“맞지. 등장했었으면 댓글 반응이 이럴 수 없을걸.”
“딱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네.”
대화를 나누는 가온의 남씨 형제.
당연하게도 둘은 아는 사람에 속했다.
남태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간만에 원 없이 싸울 수 있겠는데. 안 그래, 형?”
포식자 구역.
설명하자면 간단했다.
그 이름대로 포식자들이 몰리는 구역을 뜻했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에 통일성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
인근 지역에서 포식자라 불리는 녀석들이 모여든 곳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몰려든 이유까지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늪지대에 존재하는 전리품을 두고 포식자들끼리 전투를 벌인다는 거다.”
히사기가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그래, 거기까진 이해가 됐다.
늪지대에 존재하는 전리품.
그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강한 몬스터들이 몰려든 장소.
그게 바로 포식자 구역.
이번에 나타난 균열, [포식자의 늪지대]라는 것.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 말은 몬스터끼리도 서로 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저저, 이 자식아! 너 포식자 구역이 처음이냐?”
“네, 처음인데요……?”
“뭐, 진짜 처음이라고?!”
큼큼, 처음이면 낯설 만도 하지.
냅다 화부터 냈던 게 미안했던 모양인지.
빡빡머리 사내가 헛기침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포식자 구역에선 몬스터들끼리도 싸운다. 싸우는 걸 넘어서 서로 죽이기까지 하지. 말했잖아? 애초에 다른 지역에서 모여든 놈들이라고. 혈연, 지연 봐줄 게 없다는 소리란 거지.”
그랬다.
포식자 구역은 단 한 순간도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곳.
당연하게도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도 레벨, 그 이상이었다.
포식자 구역에서 등장한다는 건 그런 사투의 연속에서 살아남았단 소리였으니까.
“잘 걸렸다. 포식자 새끼들.”
“……그래, 잘 걸리긴 했네. 근데 있잖아, 언니.”
“뭐?”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안 닥쳐?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 진짜.”
아니, 괜찮지 않았다.
존나게 열이 받은 상태였으니까.
레오니의 삐쭉 튀어나온 입술이 그 속내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언니. 그러게 우리가 평소에 일찍 일찍 자라니까…….”
적정 레벨 1,000.
호열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균열에 들어갔던 것?
‘내가 알고 있어 봤자 달라질 건 없었겠지…….’
자신이 합류해 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됐을 테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상태로 꿀잠을 퍼질러 자다가 깨어나서 알게 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란 말이다……!
‘나 진짜 병신 같다.’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뭐랄까.
무력감과는 또 다른 감정.
무력감을 뛰어넘은 자괴감이랄까.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냥 다 다물어. 이제부터 잠은 죽어서 잘 생각이니까.”
포식자의 늪지대.
신규 균열에서 닥치는 대로 레벨을 올리겠다고.
전투가 끊이지 않는 포식자 구역?
전투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광전사에게 그보다 적합한 사냥터도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생각을 품는 건 레오니만이 아니었다.
“1차 목표는 더도 말고, 딱 10레벨만 올리기.”
“우리 천하통일의 최우선 목표는 늪지대의 전리품이다.”
“여기서도 넷튜브각 오지게 많이 나오겠는데?”
각자의 목적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포식자라면.
강자라면 [포식자의 늪지대]에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품고 있는 생각은 각자 다를지라도.
모두가 같은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호열을.
“호열 씨를 따라잡는 건 무리라도 분발해야지.”
“홋카이도의 신세를 갚기 위해서라도.”
“……설마 이호열이 나타나진 않겠지? 아니, 1,000레벨짜리 균열도 클리어했으면서. 이런 균열까지 넘보는 건 너무 상도덕이 없는 거잖아?!”
*
와씨.
빡세네, 이번 균열?
등장하는 몬스터가 최소 450레벨이라니.
무엇보다 포식자 구역이란다.
쉽게 말해 전투에 미친 몬스터들만 몰려드는 콜로세움이라는 소리다.
나는 찻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심히 소란스럽겠구나.”
아니, 소란스러운 걸 넘어서 나한텐 너무 가혹하다……!
내 레벨은 고작 296레벨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전투가 끊이지 않는 균열이라니.
‘마력이 남아나지 않겠는데.’
육망성 브로치와 스왈린 공작의 애장품의 효과로 마력 재생력을 꽤 끌어올리긴 했다만……. 낮은 레벨 탓에 절대적인 마력량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나는 포식자가 아니라고.’
악마 숭배자들에 대한 심문도 끝나지 않은 상황.
솔직한 심정 같아서는.
이런 흉흉한 균열 따위 무시하고 싶었거늘.
─기이에 대한 접근 (진행 중) ▲
●균열을 공략하라. (반복)
●아르카나 대륙을 목격하라. (성공)
균열을 공략하라는 반복 퀘스트도 모자라서.
균열이 아르카나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내가 아니던가?
더 나아가서 악마가 아르카나 대륙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단 말이다.
이놈의 긍지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격식에 죽고 못 사는 피곤한 성격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지.
그런 의미에선 여러 우물을 파둔 게 다행이로군. 계속되는 전투 도중 마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래 봬도 써먹을 수 있는 게 꽤 있거든.’
일단, 흑마법도 있었고.
휘둘러볼 기회는 없었지만, 검술을 수련했던 나였다.
그 수련 기간은 짧았다고 한들. 그랑펠의 재능에 더해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이라는 우수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나란 말이다.
“씁쓸하지만 향긋하군.”
또한 아까부터 홀짝이고 있는 비약초로 만든 차까지.
‘맛은 없어도.’
정기 학회를 준비하며 비약초에 관한 서적을 탐독한 보람이 느껴지는군. 그저 차로 마시는 것만으로도 비약초는 꽤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으니까.
[3시간 동안 생명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확인해볼 게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꺼내 든 것은 작은 오각별 조각.
구마의식을 통해 정화했던 [불순한 지식의 오망성]이었다.
그래, 가설을 검증할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
[등급 : 에픽]
[제한 : 없음]
[효과 : 착용 시,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광물과 모든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
[설명 :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지식이 담긴 마도구.]
……그래, 내가 느낌이 왔었다니까?
과연, 에픽 등급 아이템!
그 효과부터 무지막지하다.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광물과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니!
나름대로 예상은 했었지만, 실망이 클까 기대하지 않았거늘.
‘이건 기대 이상이잖아?’
다른 플레이어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이보다 잘 써먹을 수 있는 효과도 없겠지.
모든 광물에 대한 지식 습득?
광물을 탐색 대상으로 하는 마법의 효율이 증가한다는 뜻.
모든 식물에 대한 지식 습득?
모든 식물엔 당연히 비약초에 관한 지식도 포함이란 말이다.
그래, 전투가 끊이지 않는 포식자 구역이면 어쨌단 말이냐?
나한테는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이 있단 말이다……!
당장 균열로 달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감이 치솟았거늘.
허나 모든 일엔 절차가 있는 법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균열에 진입할 때 진입하더라도.
마무리는 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석의 무게 (반복)▲
●토파즈 홀에서 검증을 진행하라. (성공)
●정기 학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진행 중)…….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것이 정기 학회 주관자의 긍지라는 것이다.
.
.
.
두 명의 원로 마법사.
그리고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들은 크리스탈 홀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뱅그릿의 발표를 경청하는 호열을.
마르셀로가 입을 열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기회입니다. 악크샨과 악마 사냥꾼, 그들에게 짓고만 마탑의 씻을 수 없는 죄악. 더불어 이호열 경에게 지고만 빚을 갚아나가는 첫걸음을 내딛는 겁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원로 마법사가 침음을 흘렸다.
“분명 탑주께서도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안건을 용인하겠네. 마르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