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드디어 움직이는가 (1)
견습 마법사.
한 명의 마법사가 마탑에 발을 들이기 전.
그들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다양했다.
불세출의 천재.
마법 신동.
하다 못해 가문의 자랑이라든가.
나름대로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수밖에.
그러나 마탑에 입성하고 난 뒤.
이제껏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 고작 바닷물에 물 한 컵에 불과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 다음부터는.
수식어 따윈 잊어버리는 것을 넘어 부끄럽다고 여기게 된다.
그저 마탑의 햇병아리가 되는 것이다.
“……있잖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런 햇병아리들이 하는 일이야 뻔했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삐약거리는 것.
그런데.
“그치?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오늘따라 부유 정원에 울리는 삐약 소리가 유난히도 은밀했다.
혹시라도 누가 듣고 있을까.
목소리를 낮추고 나누는 대화.
그 대화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지 않아, 저거?”
선임 마법사들이었다.
선임 마법사.
선택한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지만 올라설 수 있는 자리.
당연하게도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 모두가 자신이 선택한 마법이 최고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서로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서로 인사도 안 하실 때인데…….”
더군다나 지금은 정기 학회 기간이 아니던가?
선임 마법사들이 가장 예민해지는 때가 바로.
학파의 명예가 걸린 정기 학회 기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부유 정원의 풍경은 마탑의 햇병아리들에겐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다.
“……왜 저렇게 모여들 계신 거야?”
“그것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야야, 저기 뱅그릿 톰 선임 마법사 님도 계셔.”
그랬다.
행방불명 됐던 뱅그릿 톰.
그를 포함한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가 모두 한 테이블에 모여있던 것이었다.
크리스탈 홀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거늘.
이곳은 사교 장소, 부유 정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얘기만 나누시는 게 아니야.”
테이블 위 차려진 식사.
선임 마법사들이 조식 만찬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
병아리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앉으면 뭐가 좀 들리지 않을까?”
“너 미쳤어, 리첼? 눈치라는 게 없구나? 숙련 마법사들이 부유 정원에 얼씬거리지 않는 걸 보면 모르겠어? 보통 일이 아닌 거라고!!”
“당연히 보통 일이 아니겠지. 뱅그릿 톰 선임이 돌아왔으니까. 근데 솔직히 궁금하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마주 앉아서 식사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 거…….”
……아니, 그런데.
저걸 사이가 좋다고 봐야 하는 걸까?
정작 선임 마법사들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들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시는데.”
“꼭, 누구한테 시달리신 것처럼…….”
“야, 저분들이 누구한테 시달리실 분들이야?”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전부는 아니었다.
그 가운데 평소와 다를 거 없는.
그래, 한결같은 이가 하나 있었으니까.
그래, 대단한 선임 마법사들을 시달리게 할 수 있는 존재.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수석 공동 연구자 호열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다루는 자세는 더없이 모범적.
꼿꼿하게 세운 허리부터 팔과 목의 각도까지.
마치 격식이란 단어를 의인화한 듯한 호열의 모습.
“……혼자만 되게 잘 드시는 것 같지 않아?”
허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선임 마법사들과 달리.
호열은 태연하게 식사 중이었으니.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한 소리 들으신 거 아닐까? 왜, 정기 학회 때 봐서 알잖아.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발표가 없었지, 아마? 전부 지적을 받았잖아.”
“그런 얘길 부유 정원에서 한다고? 밥 먹으면서?”
“에이. 아무리 깐깐하셔도 그런 짓까지는 안 하시겠지.”
“맞아. 밥 먹는데, 일 얘기는 진짜 선 넘는 거라고!”
그러나 병아리가 어째서 병아리겠는가?
알고 있는 것도.
그 눈높이에선 눈치를 살펴도 딱히 보이는 게 없기에.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허나, 이번만큼은 햇병아리.
견습 마법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제라서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언제라도 바로 잡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죠.”
불과 몇 시간 전.
이곳 마탑의 최상층에서 벌어진 일은.
오직 원로 마법사들과 두 명의 수석.
그리고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만이 알고 있는.
마탑의 ‘내부 사정’이었으니까.
다섯의 원로 마법사.
그들 중 과반인 셋이 악마 숭배자였다니.
대체 그들은 언제부터 악마에게……?
정말 고기를 씹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것인가?
마치 다른 걸 씹고 있는 듯한 표정의 선임 마법사들.
머릿속이 심란한데, 목구멍으로 뭐가 제대로 넘어가는지 알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이들이 부유 정원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을 거르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
단지 호열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침묵 속.
선임 마법사들은 호열을 바라봤다.
……정말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호열은 모험가.
따지고 보면 얼마 전까지 외부인이었다.
하지만 마탑의 위상이야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졌던바.
그런 마탑이 악마 숭배자에게 놀아나고 있었다니.
자신들처럼 충격을 받을 법도 했건만.
호열은 태연하게 고기를 썰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마탑의 최상층.
원로 마법사들과 대적했을 때 보여줬던 태도까지.
원로 마법사가 어떤 존재던가.
그들이야말로 마법으로서 천지(天地)를 뒤흔들 수 있는 반신(半神)들.
같은 마법사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내뿜는 마력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압도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호열은 자신들과 달랐다.
압도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오히려 원로 마법사들에게 말을 건넬 정도였으니까.
‘분명 어리석은 숭배자라고…….’
그것도 한껏 가시가 돋친 말을.
그 사실을 직접 목격했기에.
호열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극적으로 변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 만약 호열이 없었더라면.
뱅그릿 톰을 되찾지 못했을지도, 수상함을 느끼고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 최악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랬다면 아직도 마탑은 악마 숭배자들의 기만에 놀아나고 있었을 테니까.
그랬다.
스스로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마탑의 모두가 호열에게 큰 신세를 졌다는 것.
그것이 호열의 식사 권유를 거절할 수 없던 이유였다.
불과 하루 사이.
마탑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호열이었거늘.
정작 호열의 태도엔 변함이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평소와 같아 보였다.
눈치를 살피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그래, 평소와 같다는 것.
예절과 격식에 더없이 민감하다는 것.
그런 호열이 테이블을 바라보곤 말했다.
“때론 식욕보다 중요한 것도 있는 법이지.”
“……!!!”
식욕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가?
모인 이들만 해도 스무 명이다.
그에 따른 답이야 각자 다른 게 당연할 터.
‘아뿔싸. 식사 예절에 어긋났다는 건가?’
‘이런 포크랑 나이프를 반대로 들었다……!’
‘……혹시 저만 다른 메뉴를 시켜서 그러시는 걸까요?!’
그러나 그 행동은 모두가 같았다.
호열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포크와 나이프.
비로소 제대로 된 식사가 시작됐다.
*
그래, 입맛이 없어도 먹어둬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일정이 바빠질 테니까.
사람은 뱃심으로 움직이는 법이거든.
물론, 그래도 제일 바쁜 사람은 나겠지.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팔자였다.
바람 잘 날이 없는 내 팔자.
마탑의 최상층.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에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원로 마법사.
아니, 이젠 악마 숭배자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
그들이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꼴에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았다는 거겠지.
나는 거기서 깨달았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을……!
오히려 전면전을 각오한 덕분에 가능했던 전개.
그 결과 퀘스트는 성공.
[퀘스트 : 마탑의 진실]
마법사의 탑엔 모순이 존재한다.
모순을 밝혀내고.
마탑과 진리를 바로 세워라.
─마탑의 수뇌부와 얽힌 수석 마법사, 뱅그릿 톰을 확보하라. (성공)
─원로 마법사들 가운데 악마 숭배자를 색출하라. (성공)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마탑과의 관계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마탑에서의 영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나는 성공하지 말라고 떠오른 퀘스트를.
보란듯이 성공해 낸 것이었다……!
그로 인한 보상은 꽤 컸다.
마탑과의 관계도, 영향력이 대폭 상승했으니까.
지금만 하더라도 마탑에 뜯어먹는 게 더 많은 내가 아니던가?
귀한 마법 서적은 물론.
대여가 승인된 마도구, 아이템 반출.
그리고 방금 먹은 공짜 아침까지.
‘그 최대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웬만한 보상보다도 마탑과의 관계도, 영향력 상승 보상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걸 말이지. 물론, 퀘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탑의 스케일에 맞게.
퀘스트 또한 연계 퀘스트였으니까.
역시나 절대 쉽지 않은 연계 퀘스트 말이다.
[퀘스트 : 마탑의 재건]
마법사의 탑에 존재하던 모순의 실체.
진리 추구라는 마탑의 목적조차 불순해진 지금.
마탑을 그 기반부터 바로 세워라.
─탑주와 조우하라. (진행 중)
─도주한 악마 숭배자를 처분하라. (진행 중)
─진정한 진리를 찾아라. (진행 중)
과연, 마탑이시다.
받은 만큼 구르라는 게 분명했다.
아주 그냥 시작부터 퀘스트 목표가 쏟아진다. 쏟아져.
무엇보다 퀘스트 목표가 하나같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탑주만 하더라도 말이야.
최상층에서 얼핏 봤을 때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도주한 악마 숭배자를 처분하라는 목표는 또 어떠한가?
이건 원로 마법사를 찾아내서 결판을 내란 소리였다.
화룡점정으로 마탑의 궁극적인 목표인 진리 추구까지.
그 목표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마탑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관계도와 영향력이 대폭 상승해서.
이런 퀘스트까지 받게 된 건가?
뭐, 어쨌든. 그 원대한 목표에서도 알 수 있듯.
당장 깰 수 있는 퀘스트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 퀘스트 이름부터 [마탑의 재건]이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 설계된 지 모르는 마탑을 바로 세우는 일이니까. 쉽지 않은 게 당연하겠지. 그러나 모든 건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법.
또각─
그러니까 나는 발을 내디뎠다.
마탑의 지하(地下)를 향해서.
*
마탑엔 지하 공간이 존재한다.
그 지하 공간의 역할은 단지 마탑을 떠받드는 것.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 많은 마탑이다.
그 구조부터 과학적으론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
겉보기엔 그다지 높지도 광활하지도 않은 마탑이거늘.
정작 마탑의 내부는 셀 수 없이 많은 층과 그런 층마다 드넓은 공간이 존재했으니까.
마법으로 세워진 마탑이라는 것이다.
그런 마법의 탑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단단한 토대가 필요했다.
그 어떤 마법의 마력에도, 영겁의 시간에도, 흔들림 없이 언제나 항상(恒常)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그래, 마탑의 지하는 그 항상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정확한 명칭은 무간(無間).
이름에 걸맞게도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 무간지옥에 떨어진 이들이 있었다.
불과 하루 전까지 원로 마법사라 불렸던 악마 숭배자들.
마탑 역사상 최흉의 죄인들이었다.
‘빌어먹을 공간이군.’
마법의 ‘경지’에 다다른 원로 마법사들.
허나, 그들의 마력도 무간에서는 무쓸모한 것이었다.
고고하다 자부한 정신력도 마찬가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거지? 일주일? 한 달?’
시간 감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은 고장이 난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무간이 벅찬 것은 자신들만이 아닐 테니까.
“마르셀로. 언제부터 눈치챈 것인가?”
그 사실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마르셀로, 저 애송이를 구슬려서.
이 쇠창살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빌어먹을 무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 치욕을 배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줄 수 있으리라.
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것?
그보다 쉬운 일도 없었다.
마탑조차 자신들의 혀에 속아왔으니까.
게다가 저들에겐 자신들과 말을 섞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의 행방을 알아내야 할 테지.’
도주한 나머지 한 명을 찾아 단죄하는 것.
그게 현시점에서 마탑의 최우선 목표일 테니까.
그러니까 희망을 품었다.
‘……정신만 차리면 산다.’
물론,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오셨습니까?”
침묵을 지키던 마르셀로가 입을 열었다.
그 인사가 향한 곳엔 이호열이 있었다.
모험가이자 마르셀로가 선택한 공동 연구자.
그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무엇이냐?’
그에게선 당황한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은 무간이었다.
처음 발을 디딘 자는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항상의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저 녀석을 속여야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감각이 고장 나서 느끼는 착각인가?
그게 아니라면 진정 현실인가?
‘불가능하다……!’
또르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
무간.
항상의 공간이라.
마르셀로에게 그에 관한 설명을 듣는 순간 생각했다.
『그랑펠이 차기 가주로서 가장 먼저 몸에 익힌 건 사사로운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클라우디 가문의 가주의 자리는 조금의 동요도 용납되지 않는 그런 자리였다.』
이거 완전히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겠다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무간을 더없이 편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착각이 아니었다.
마르셀로만 하더라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거든.
물론, 악마 숭배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
‘처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군.’
그나저나.
자신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는 모양인데.
이거, 대충 상태를 보니까…….
─도주한 악마 숭배자를 처분하라. (진행 중)
예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단순하게 도주한 악마 숭배자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악마에 관한 정보는 물론.
‘어찌 됐건 원로 마법사란 자리에 있었으니까.’
아르카나 대륙에 관한 고급 정보도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급할 건 없었다.
이 무간의 공간은 내 편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홈그라운드란 소리였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처럼 말했다.
굳이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한결같은 태도야말로 항상.
“심문을 시작하지.”
그런 의미에서 좋게좋게 말했거늘.
……어째, 표정들이 더 울상이 됐냐?
그 이유를 나야 알 수 없다만.
동정심과 같은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
그 또한 항상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