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81화 (13/489)

◈ 81화. 간단한 문제였군

적정 레벨 900레벨.

아니, 나중에 가서는 무려 일천(一千).

평범한 균열이 아니다.

버그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저런 균열이 튀어나오는 게 어디 있냐고!”

“진짜 그 행방불명됐다는 그 선임 마법사 때문 아니야?”

“진입해봤자 개죽음당할 게 뻔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균열에 호열이 입장하는 순간.

세상이 뒤집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오디오를 채워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진행자는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초 단위를 넘어 분으로 이어지는 정적─

방송사고가 분명했거늘.

시청자는 물론.

PD 현용석마저 진행자의 심정에 공감하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우리?”

“선배, 이거 꿈 아니겠죠?”

“아니. 아무리 이호열 님이라고 해도 저건.”

이제껏 호열이 보여준 활약?

충분히 놀라웠다.

아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스큐라 백작부터 마왕 데카라비아까지.

최상위 랭커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적만을 쓰러트려 온 호열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저 균열은 누가 봐도 갑작스럽고 위험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호열은 망설임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거침없이 균열로 진입했다.

그런 호열의 모습이 전파를 탄 것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진행자의 목소리.

인류의 평화를 위한 걸음이다.

저것이야말로 숭고한 태도다.

플레이어를 넘어선 인류의 영웅이다.

잠자코 경청하던 록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단하지, 이호열.’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에서의 경험.

그를 통해 이호열은 최소 900레벨이다.

호열의 레벨을 가늠했던 록스였다.

“근데, 이호열한테는 이것도 대수롭지 않은 일일걸.”

그러니까 이호열이 적정 레벨 900레벨 균열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록스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호열이 호열했네.’ 그 정도의 감상이랄까?

그래도 놀랄 일이 하나 있긴 했다.

“제시? 너 미쳤어?”

제시가 호열을 따라 균열에 진입하겠다고 말했거든.

카밀라가 기겁해서는 물었다.

“방금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마탑의 선임 마법사가 연관된 이상 나서서 좋을 게 없다고. 그런데 뭐 하러 그런 데를……?”

그러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제시의 차가운 표정에서 알아차린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굳이 나서서 제시를 말리지 않았겠지.

동료보다는 비즈니스 관계.

따지고 보면 제시는 언제든 샤이닝 길드를 떠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제시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조언이 필요할 때였다.

“가봤자 방해만 될 거야.”

“……뭐?”

“이호열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제시.”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게다가.

“이호열은 혼자가 아니잖아.”

“!”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제시? 마탑의 수석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그 잘난 선임 마법사 중에서도 최고인 수석 마법사라면서?”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록스의 말대로.

그의 능력을 어떤 플레이어보다 잘 알고 있는 제시였다.

머리 위의 고깔모자도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줬다.

-그래, 마르셀로가 함께라면 안심이지 않느냐?

제자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하는 말 같은 게 아니었다.

마르셀로, 녀석이라면.

선임 마법사가 적대적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가뿐하게 제압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에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동행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깔모자는 마탑의 쓸데없는 규율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마르셀로, 그 말라깽이 꼬맹이가 규율의 모순을 알면서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데 그런 마르셀로가 규율을 어기고, 마탑 외부로 나섰다라…….

-한동안 마탑이 들썩거리겠구나.

불변의 마탑에도 변화가 찾아오는 것인가?

달라진 거라곤 고작 한 사람.

호열밖에 없거늘.

과연, 이 정도는 돼야 내 흥미를 자극한 사내라 할 수 있지.

‘저도 알고 있어요.’

제시는 그제야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얼마나 세게 주먹을 쥐고 있었는지. 가뜩이나 하얀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졌다.

‘알고 있는데…….’

록스의 말대로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아서?

혹시나 호열의 마법을 영영 볼 수 없게 될까 봐?

지금은 고민해 봤자 대답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이 순간.

제시에게 보이는 건 오직 화면 속 균열이었으니까.

물론,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결같은 보폭.

한결같은 차림새.

한결같은 인터뷰까지.

-“질문은 받지 않겠다. 내부 사정이다.”

말 그대로 무사귀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호열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

그래, 이놈의 내부 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탈 발현.

마탑으로 복귀.

나와 마르셀로, 그리고 뱅그릿은 마탑의 계단을 올랐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대의 잘못이 아닙니다. 뱅그릿.”

“용서는 그대의 발표를 기다린 청중들에게 구하도록.”

어쩜!

같은 말에 대꾸해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마르셀로의 위로처럼 뱅그릿에게 잘못은 없었거늘.

이놈의 주둥이는 한 마디도 곱게 내뱉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물론입니다. 다시 붙잡은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게 뇌물이나 건네려던 뱅그릿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예 사람이 바뀐 것 같잖아.

이유는 몰라도 나 때문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쓸데없이 목에 들어간 힘 좀 빼라고…….’

말했다시피 내가 한 거라곤 뱅그릿에게 독설을 내뱉은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 심각한 상황에서 학회나 운운하고 말이야.

“뱅그릿.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대의 신변입니다.”

나는 마르셀로의 말에 퀘스트를 확인했다.

─마탑의 수뇌부와 얽힌 수석 마법사, 뱅그릿 톰을 확보하라. (진행 중)

그래, 퀘스트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란 소리겠지.

마르셀로는 그런 면에서 철저했다.

쿵─

마르셀로의 마력에 감응.

거대한 문이 열리자 크리스탈 홀의 전경이 보였다.

크리스탈 홀엔 뱅그릿을 포함.

선임 마법사 전원이 모여있었다.

각자 대기 중이던 선임 마법사들이 입을 열었다.

“뱅그릿, 무사했군요!”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영문은 몰라도 일단은 다행입니다.”

“마르셀로 수석!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눈치를 보아하니.

마르셀로가 수석 권한을 발동.

선임 마법사를 전원 소집한 모양이었다.

뭐, 나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선임들에겐 설명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뱅그릿의 신변 보호, 그리고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만 대기해 주시길. 확실한 답을 가지고 돌아오거나,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과연, 마르셀로.

무려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가 모인 공간이었다.

누군가 뱅그릿의 신변을 위협하려 든다고 한들.

저들의 눈을 피해 뱅그릿을 해치는 건 불가능하겠지.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이해가 됐다.

‘의심의 눈초리가 향할 곳은 위쪽이니까.’

위쪽, 마탑의 수뇌부.

뱅그릿에게 상태이상을 걸었던 것도 모자라서. 그가 균열로, 그것도 악마가 튀어나오는 균열로 향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원로 마법사였으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

그리고 마르셀로는 지체하지 않았다.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원로들이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악마와 관련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경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면목이 없습니다.”

나도 상상도 못했다.

악마가 마탑까지 마수를 뻗쳤을 줄이야.

그러나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는 거지.

가능성이 아주 높긴 하지만.

나는 침통한 표정의 마르셀로에게 말했다.

“고개를 숙여야 할 건 그대가 아니라네. 마르셀로 수석.”

“……?”

“면목이 없어야 하는 건 그대가 아닌 저들이니까.”

어느덧 다다른 마탑의 최상층.

내가 말하는 저들은 당연하게도 원로 마법사들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 또한 무거워지는 법.

설령 몰랐다고 해도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랑펠의 긍지가 원로들의 무능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밝냐.

마탑의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

역광이 비친 탓에 얼굴들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림자의 숫자로 원로들의 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네 명인가.

그래, 저 중에 악마와 관련된 자가 있다는 거겠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어쩌면 악마에게 빙의 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화의 흐름에 따라선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했다.

‘내 팔자이지만, 팔자 한번 사납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랬던가?

내가 마탑에.

그것도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직위로 입성했다고.

나를 부러워하던 이들에게 이 상황을 보여주고 싶다.

마탑.

알고 보니까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 집단이 없다.

하다못해 돈에 목숨을 거는 그림자 용병단도 이렇게 썩지는 않았다, 정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선임 마법사들 간의 사이가 괜히 나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악마를 놓쳐서 못 챙긴 경험치라도 챙겨주려는 거냐.’

그런 뜻이라면 전력으로 사양하고 싶었다.

상대는 무려 원로 마법사였으니까.

그저 마주했을 뿐이거늘.

느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긍지가 움직인 이상.

두려움도 떨림도 없다.

설령, 긍지에 가라앉아 익사하더라도.

나는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악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생각했던바.

그러니까 이쪽도 나름대로 준비를 했거든.

크리스탈 홀에 모인 선임 마법사들이 그 준비였다.

지금쯤 뱅그릿이 현사태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겠지.

-확실한 답을 가지고 돌아오거나,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래, 마르셀로의 신호가 바로 전면전의 시작.

그러나 전개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

“!”

마르셀로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빠득─

이 가는 소리와 함께.

“어째서 네 분밖에 계시지 않는 겁니까?”

……뭔데, 원래부터 4명이 아니었다고?

.

.

.

원탁 회의가 연기되고.

뱅그릿 톰이 행방불명되고.

이 사건에 악마가 관련된 것까지 알게 된 순간.

마르셀로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심지어는 원로 마법사들과의 전면전까지도.

그러나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다.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에 관한 이야기라면 알고 있네.”

“심히 유감이네, 마르셀로.”

“우리 원로 중 악마 숭배자가 있을 줄이야. 증거를 포착했을 땐 이미 늦어버렸네. 마탑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뒤늦게라도 그를 쫓으려 했지만 보다시피.”

악마 숭배자……!

원로들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마르셀로는 마른침을 삼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과 전개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저 말을 믿어야 하는가?’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저들의 말 무엇하나 믿을 수 없다!’

원로 마법사들의 모순은 하나둘이 아니었으니까.

설령 저들이 악마와 관련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말은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거늘.

악마까지 끼어든 지금 순간.

마르셀로의 머릿속은 복잡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숭배자가 정말, 하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로들이 저런 태도로 나온 이상.

내게 선임 마법사들을 움직일 명분이 있는가?

‘빌어먹을.’

마르셀로는 이를 악물었다.

구체 속에서 부유하는 탑주를 바라봤다.

‘탑주님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답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답답한 마음에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군.”

……그런데 대답이 들려왔다.

탑주가 아닌 호열에게서.

잠자코 있던 호열이 입을 연 것이었다.

“이곳에서 악마 숭배자의 냄새가 풍기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상한 일이군. 그대들의 말에 따르면 악마 숭배자는 이미 마탑을 떠났을 텐데 말일세.”

“……!”

그런 호열의 얼굴에서는.

복잡하거나 심란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떠오른 것은 오로지 확신.

“단순히 냄새가 배어들 정도로. 오랜 시간 악마 숭배자가 이곳에 머물러서인가.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악마 숭배자가 감히 아직도 이곳에 남아있어서인가.”

“!”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 질문에 마르셀로는 원로들을 바라봤다.

반응을 살필 수 없었다.

역광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대답하는 이도 없었다.

허나 호열은 그조차도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면 바꿔서 묻겠다.”

그건 마르셀로조차 생각지 못했던 핵심.

“뱅그릿의 출탑을 승인한 과반은 누구인가?”

……그랬다!

선임 마법사 뱅그릿의 출탑.

그와 같은 결정엔 수뇌부 과반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런 호열의 말뜻을 원로 마법사들도 알아차린 것인가.

“!!!!”

네 개의 그림자가 곧장 둘로 나뉘었다.

저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도주한 자까지 셋. 이제야 확실하게 과반이 보이는군.”

호열이 마르셀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 그런가,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

.

.

[퀘스트 : 마탑의 진실]

마법사의 탑엔 모순이 존재한다.

모순을 밝혀내고.

마탑과 진리를 바로 세워라.

─마탑의 수뇌부와 얽힌 수석 마법사, 뱅그릿 톰을 확보하라. (성공)

─원로 마법사들 가운데 악마 숭배자를 색출하라. (진행 중)

내가 입방정을 떤 이유야 간단하다.

지금이 아니라면.

이 퀘스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난이도가 말이 되질 않았다.

마탑의 마법사.

그것도 원로 마법사들이란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얼굴조차 구경할 수 없는 존재들이란 것이다.

설령 얼굴을 맞대는 사이가 돼도 문제는 여전하다.

그 직위를 떠나서 저들이 풍기는 위압감만 봐도.

마르셀로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뭐?

악마 숭배자라고오오오?

심지어 얽힌 악마의 수준도 장난이 아닌 놈이었다. 마력을 쏟아붓다시피 한 일격을 맞고도 한쪽 팔만 내놓고 도망친 녀석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말을 종합하자면.

이건 성공하라고 떠오른 퀘스트가 아니었다!

애초에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원로 마법사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다음에.

퀘스트를 수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오늘 있던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뱅그릿에 대한 계획이 실패했으니.

다음엔 더욱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게 뻔했다.

그 계획을 전부 막아내면서.

레벨을 올리고 성장까지 한다고?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 지금이라면.

그 이유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내 뜻을 알아차린 마르셀로가 행동에 돌입했으니까.

그래, 그것은 신호였다.

마탑의 최상층.

발현된 포탈.

연결 좌표는 크리스탈 홀.

이내, 빛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스무 명의 선임 마법사.

상대가 원로 마법사에 악마 숭배자면 어쨌단 말이냐?

이쪽은 원로 마법사가 둘.

수석 마법사가 하나.

선임 마법사가 스물.

그리고 나, 이호열이 있단 말이다.

그래, 이건 호가호위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더없이 뻔뻔하게 말했다.

“기만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어리석은 숭배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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