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기우에 불과하다 (3)
환각 마법.
그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한 마법.
“저는 극심한 마력 소모를 보완하기 위해 간섭 과정에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자신의 직접 검수한 만큼.
제자의 발표는 옳았다.
환각 마법의 뚜렷한 한계.
그것은 바로 극심한 마력 소모에 있었으니까.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모든 마법에 한계는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감수하더라도.
환각 마법의 가치와 가능성은 다른 마법보다 크다고.
나스로우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러기에 내가, 이 나스로우가 택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선임 마법사란 직위가 무엇인가?
해당 마법학파의 최고 권위자라 칭하기에 마땅한 이들.
그들이 자신의 마법을 최고라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최고라 여기지 못하고 의심을 품었다면.
선임 마법사란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겠지.
그러니까.
나스로우가 분노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정말 최선이냐고 물었다.”
“한계라면 극심한 마력 소모를 말씀하시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스로우는 비웃었다.
‘한계를 들먹이다니.’
호열을 보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저건 지적이 아닌 명백한 실수였다.
말했다시피 분야를 떠나 모든 마법엔 한계가 존재했으니까.
‘자충수를 두시는군.’
그러나 이어지는 호열의 포석(布石).
그에 나스로우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건 던지는 자충수가 아니었다.
‘감히……!’
맞붙어 보자는 승부수였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법이다. 그대는 정말 환각 마법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법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탐색 과정부터 불합격이다.”
나스로우가 환각 마법에 매료됐던 이유?
간단하다.
환각 마법은 없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마법이었으니까.
다른 마법과 다르게 탐색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마력 소모는 극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어라 지껄이는 것이냐?’
그렇게 생각했다면 불합격이라고?
이건 환각 마법 자체를 부정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스로우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호열의 말.
“마력이 존재하는 이상, 마법에 무(無)라는 것은 없다.”
계속되는 포석.
그 말엔 나스로우도 맞수를 둘 순 없었으니까.
‘……옳다.’
거슬러 올라가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환각 마법의 탐색 대상은 마력,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기에 마력 효율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
“오직 순수한 마력만이 환각 마법의 탐색 대상이 될 수 있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환각 마법의 한계 극복은 그 탐색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걸 오류로 취급하다니.
다시 들어도 환각 마법을 기초부터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나스로우는 인내했다.
‘그 말엔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
환각 마법의 본질을 부정한 호열이었다.
그에 관한 근거를 내놓아야 할 터.
그럴 수 없다면 저건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했다.
나스로우는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탐색 대상은 빛이 될 수도, 대기 중의 공기가 될 수도 있다. 마력을 탐색 대상으로 삼는 것보다 그 효율이 뛰어날 테니까. 주변 환경에 따라 적절한 탐색 대상을 선정하는 것. 그 또한 환각 마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필수 덕목이다.”
……빛과 공기가 탐색 대상이 된다?
그 말에 나스로우는 흠칫했다.
마찬가지로.
그 말뜻을 이해한 숙련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허, 허나. 그 말씀은……?”
“그렇다. 우수한 탐색적 재능이 요구된다는 소리겠지.”
“그, 그런!”
나스로우는 침묵했다.
‘일리가 있다.’
그래, 호열의 말대로였다.
마력이라는 탐색 대상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따라 탐색 대상을 선정한다면.
환각 마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탐색 대상이라도 순수한 마력보다는 효율이 뛰어날 테니.’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익숙해져야 할 탐색 대상이 한두 개가 아니란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호열의 말.
“그대가 택한 환각 마법이니. 그 무게에 익숙해지게나.”
그 말에 나스로우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
그래, 자신이 환각 마법을 택했던 이유.
환각 마법이 다른 마법보다 뛰어나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다른 마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바로 환각 마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환각 마법의 무게에 익숙해지라는 것.
그런 환각 마법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 뜻.
당연하게도 거기엔 조금 전 호열이 언급했던.
‘우수한 탐색적 재능도 포함된 거겠지.’
나스로우는 호열을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제아무리 마법적 지식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건 고민이 없다면 내놓을 수 없는 방안이었다.
그 말인즉슨.
호열이 환각 마법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소리였다.
나스로우는 생각했다.
‘정말, 마법사가 맞단 말인가?’
동족이기에 알 수 있었다.
마법사란 더없이 이기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호열은 달랐다.
고심하던 나스로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본의 아니게 빚을 져버렸군요.”
정기 학회는 이제야 시작됐거늘.
그 시작부터 숙련 마법사도 아니요.
선임 마법사에게까지 빚을 지게 만드는 호열이었다.
*
“……저게 뭔 소리냐?”
“탐색? 간섭? 발현은 또 뭐야. 진짜로!”
“아, 번역 기능은 뭐하냐고 저런 거 번역 안 해주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이번엔 졸지 않겠노라.
굳은 다짐이 무색해지게도.
플레이어들에게선 탄식이 떠나질 않았다.
“야, 남태민. 너는 뭐 알겠냐? 철민 오빠도 알아듣겠어요?”
가온 길드 소속, 마법사 클래스 플레이어.
그녀가 이어폰을 향해 물었다.
호쾌한 목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내가 어떻게 아냐? 그나저나 호열 씨 진짜 장난 아니다.
-그러게. 뭔지는 몰라도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데?
-저러니까 마탑에서도 수석 대접을 받으시는 거겠지.
-마탑 마법사가 대꾸를 못하잖아?
-캬. 진짜 걱정할 걸 걱정했어야 됐다. 호열 씨가 누군데!
……그래, 나도 바바리안한테 물어볼 걸 물어봤어야지.
말했다시피 이곳.
크리스탈 홀에 모여든 플레이어들은 이번 정기 학회에 많은 것을 걸었다.
혹시라도 퀘스트를 따내고,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호열처럼 마탑에 입성하게 된다면?
무려 마탑과의 접점이 생기는 것.
그야말로 엄청난 퀘스트 보상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길드가 달라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뭐라고 말 좀 해봐. 다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어폰에 대고 속삭이는 플레이어는 한두 명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만무했다.
길드의 분석관들이 매달린다고 한들.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탐색, 간섭, 발혀어어언? 이게 무슨 개소린데? 그냥 스킬명만 외치면 나가는 거잖아. 마법이란 건!!
『마법』과 [스킬]은 완벽히 다르다.
호열조차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며칠이 걸렸거늘.
플레이어들이 머리를 맞대봤자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그러나 단 한 명.
제시 하인네스만큼은 예외였다.
길드 랭킹 1위.
샤이닝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서?
아니, 정작 제시는 이어폰조차 끼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
그녀에겐 단지 고깔모자라는 스승.
그리고 호열과의 면담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와아.”
그렇다고 해도.
제시조차 많은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균열 공략, 몬스터 사냥, 만사를 뒤로 한 채.
온종일 마법 서적을 들춘 끝에.
탐색, 간섭, 발현.
이제야 비로소 마법의 구조를 이해했을 정도랄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단해요!”
호열의 비범함을 알아차리는 데엔 말이다.
고깔모자가 어김없이 한탄했다.
-매일같이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구나.
단 하루.
불과 몇 시간.
호열과의 짧은 문답에 제자를 빼앗겨 버린 듯한 이 기분.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고깔모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평가하는 것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재능은 필수, 시간과 고민이 요구된다는 소리였다.
고깔모자가 들썩였다.
-과연, 내 흥미를 자극한 사내답구나.
대마법사의 흥미를 자극하는 사내라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당사자에게 직접 알려주고 싶었거늘.
그럴 수 없다는 게 원통할 뿐이구나.
그래도 썩 나쁘지 않았다.
-간만에 학회다운 느낌이 드는걸.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탐구.
대마법사에게도 흡족한 광경이었다.
이 또한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려주고 싶거늘.
참다못한 고깔모자가 제자에게 속삭였다.
-제자야. 언젠가 저 사내의 머리 위에 나를 얹어주지 않겠느냐? 까칠한 성격에 그 꼴을 허락하지 않겠지만. 왜, 변명은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 그래. 그 마법 학교 영화처럼 핑계를 대보자꾸나! 나도 그 모자처럼 말을 할 수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
그러나 고깔모자는 이내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이어지는 발표.
잠자코 있던 호열이 또다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의문이 드는군.”
“……!”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 효과와 기전이 전혀 다른 비약초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예를 들면 라그라리 잎사귀와 카니리아 꽃잎.”
다리조차 꼬지 않은 더없이 올곧은 자세.
또한 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는.
자세보다 올곧은 화법.
“두 비약초는 외형과 서식 환경까지 동일하지만, 그 효과는 명백하게 다르지. 그대가 제시한 육성법이 두 비약초를 비롯한 모든 비약초에 공통적인 육성 효과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질문에 고깔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약초에 관한 지식까지?
말했다시피 이건 재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시간과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단 말이다.
설마, 하는 가능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설마 정기 학회에 발표되는 모든 연구를……!
먼저 살피는 것도 모자라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해 왔다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때문에 경악하고 있는 건 고깔모자뿐만 아니었다.
“!”
나스로우를 시작으로.
치유학파 선임 마법사, 벨리에 유시아.
커튼, 마이아, 가필드까지.
“!!!”
발표가 계속되고.
호열이 입을 열수록.
그 경악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전 검증에서 쌓였던 감정?
호열에게 보내던 곱지 않은 시선?
그따위 감정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몇몇 선임 마법사들을 반성하게 할 정도였다.
‘선임이라는 나조차 생각해내지 못했던 발상이다……!’
‘저 자가 나보다도 많은 고민을 했다는 소리인가?’
‘부끄러워요. 제겐 선임의 자격도 없어요!’
그러나.
시선 따윈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호열의 안색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니.
호열은 그저 다음 발표자를 호명할 뿐이었다.
“다음.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
*
물 만난 고기.
분명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단순하게 지켜보는 처지가 아닌.
수석이자 주관자로서 참석한 정기 학회.
그 무게를 실감해야 하거늘.
‘아주 그냥 입만 열면…….’
나는 정말이지, 물 만난 고기처럼 나대고 있었다!
연구 하나하나마다 태클을 걸고 있다는 소리였다.
발표하는 입장에서.
이런 내가 얼마나 밉상으로 보일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더더욱 못할 짓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교수가, 직장 상사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꼴이잖아, 이건?
그것도 모자라서 뭐? 그게 최선이냐고?
‘그야 최선이니까 학회에 발표했겠지!’
나는 물 만난 고기, 그중에서도 미꾸라지가 아닐까.
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것처럼.
학회에서 내 존재감은 미꾸라지 그 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생각했다.
‘꼬우면 다음부터 시키지 말든가.’
그래, 어중간한 것보다는 미친놈이 되는 게 낫다.
결심했던 대로 뻔뻔하게 학회를 끝마치자고.
그래도 다행인 건.
적어도 헛소리를 늘어놓진 않았다는 거겠지.
‘고생한 보람이 있군.’
온갖 서적을 붙들고 산 보람이 말이야.
마법에 관해 뭣도 모르던 시절.
예를 들면 지난번 정기 학회가 그랬다.
그땐 정말이지, 그랑펠의 재능에 의존해 멋대로 지껄였다면.
그래도 지금은 머릿속에 든 게 있었다.
‘물론, 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공부한 거긴 한데…….’
있는 거 없는 거.
전부 써먹기 위해 쌓았던 지식이 도움이 됐단 소리다.
물론, 그게 나대는 데에 도움이 됐다는 게 문제였다만.
─수석의 무게 (반복)▲
●토파즈 홀에서 검증을 진행하라. (성공)
●정기 학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진행 중)…….
아쨌든, 정기 학회도 퀘스트도 이제 끝이군.
나는 마지막 발표자를 호명했다.
“다음.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
순수마력학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
이번 정기 학회에 연구를 발표하는 유일한 선임 마법사였다.
계속되는 순수마력학파의 부진.
그를 쇄신하기 위한 발표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선임 마법사부터야 사전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니까.
그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어떤 심정일지는 짐작되는데.’
뱅그릿 톰.
나는 그를 뇌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순수마력학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입니다. 축하 인사와 약소하지만 전하고 싶은 성의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모든 선임 마법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순간.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던 게 바로 뱅그릿 톰이었으니까.
‘낙하산에 매달려볼 정도로 불안한 입지라.’
……어째 고운 말은 안 나올 것 예감이 드는군.
그런 나의 예상은 어떻게 보자면 적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입을 열지 못했으니까.
정적─
나의 호명에도 뱅그릿은 크리스탈 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탈 홀에 뱅그릿 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선임 마법사들이 수군거렸다.
“어디 간 거지?”
“아까까진 분명 저 끝자리에…….”
“뭐, 급한 용건이라도 생기셨나?”
“학회보다 급한 용건이 어딨단 말인가!”
수군거림은 커졌다.
기다림은 계속됐다.
그러나 뱅그릿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뱅그릿 톰.
그에게 무슨 사정이 생긴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주관하는 정기 학회다.
내겐 성공적으로 학회를 끝마쳐야 한다는,
퀘스트 목표가 있단 말이다.
나의 긍지가 이런 변수를 용납할 순 없었다.
주목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절차에 따라서…….”